온라인 연재

28회

 

   리비아가 바다 중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는가? 나는 편지의 마지막에 아버지, 근사하지요?라고 오빠가 쓴 오래된 글씨를 한참 바라보았다. 여태 오빠에게서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근사하다는 말은 오빠의 말투가 아니었다. 오빠는 일상에서든 말투에서든 옷차림에서든 장식적인 것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 공무원과 대기업의 회사원으로 사십년 가까운 세월을 근무하면서도 그 흔한 넥타이핀을 하는 걸 한번도 본 적이 없다. 편지지를 접었다가 편 자국 때문에 어떤 글씨들은 갈라져 보였다. 어떤 곳은 누렇게 얼룩이 져서 글씨가 뭉개져 있기도 하고 물방울을 떨어뜨렸다가 손으로 쓸어낸 것처럼 사인펜 자국이 저 위까지 흘려지듯 번져 있기도 했다.

 

   물방울?

 

   아…… 나는 무릎이 꿇려지는 기분이 되었다. 이 편지를 읽으며 아버지가 흘린 눈물방울이 번진 자국이란 생각이 들어서. 손바닥으로 편지지의 글씨가 번진 자리를 쓸어보았다. 어떤 마음들이 손바닥에 사진처럼 찍히는 느낌이었다. 오래전 낯선 나라로 파견근무를 나간 젊은 남자가 책상인지 숙소 침대 바닥인지에 엎드려서 편지지를 앞에 놓고 굵직한 사인펜으로 두고 온 나라 고향의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건 뜻밖에 내 마음을 흔들었다. 마른 풀숲 같던 마음이 일순 어딘가로 곤두박질치듯 흩어져버리고 저 멀리 젊은 남자의 등이 보였다. 아버지, 근사하지요?라고 쓰고 있는 젊은 남자의 사인펜을 쥐고 있는 굵은 손도.

 

   나는 그대로 폐가의 먼지와 거미줄과 택배 상자투성이의 방바닥에 퍼질러 앉았다. 나무궤짝 안의 다른 편지 묶음을 해체하고는 리비아, 트리폴리에서 오빠가 받았을 아버지의 첫 편지를 찾아보았다. 애써 찾을 것도 없었다. 편지들은 의외로 보낸 편지와 답장과 다시 보낸 편지와 답장순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승엽이 보거라

 

   몸은 건강하냐

 

   잘 도착해따니 안심이구나

   비행기를 그르케 오래 탓따니 마니 곤해것따

   여기 걱정은 마라라 니 어머니도 잘 잇고 나도 잘 잇따

   너에게 답장을 쓰려고 이 편찰지를 사려고 오늘 읍내 문방구에 처음 가봐따

   한번도 이런 걸 사보지 안아서 어떤 거를 사야 할지 몰러 니가 나에게 쓴 거와 똑가튼 거로 삿따

 

   아버지가 소리 나는 대로 쓴 글씨와 마주치자 빗속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가 가게를 할 때 장부에 쓴 숫자들.

   담배 9보루.

   안고빵 7개.

   막걸리 2통.

   아버지는 숫자를 표기하기 위해서만 글씨를 썼다. 그 외에 아버지가 쓴 글씨를 다시 본 것은 내가 이곳을 떠나고 오빠와 함께 자취생활을 하던 때였다. 우리가 먹을 쌀을 부치고 아버지는 전보를 치곤 했는데 날짜도 없이 단 한 문장이 쓰여 있었다.

 

   쌀 부쳐따

 

   오빠가 결혼을 하기 전까지 살림을 살았던 나는 전화가 개설될 때까지 아버지의 전보를 자주 받았다. 전보엔 언제나 한 문장만 있었다.

 

   김장 보내따

   깻잎 바다라

   고구마 캐서 보냇따

 

   아버지는 오빠와 같은 색깔의 사인펜을 사고 오빠가 사용한 것과 같은 편지지를 골라 오빠처럼 편지지 두칸을 잡아 소리 나는 대로 한줄씩 글씨를 써내려갔다.

 

   너는 언지나 근사해따

   나는 아버지가 되어서 너의 힘이 되주지는 모타고 니 어깨만 무겁게 햇지마는

   너는 언지나 근사해따

   그러타 지금은 거기가 니 자리다

   너는 언지나 그래와떤 거처럼 니 자리에서 성실히 니 할 일을 해낼 거슬 나는 익히 안다

 

   집에 혼자 나머서 애들 기르고 헌이랑 셋째까지 데리고 있는 니 처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뿐이다

   성푸미 오나한 사람인 줄은 이미 알앗지마는

   고마운 일이다 멀리서도 공경하고 성실하고 상냥히 대히라

 

   나는 더 바랄 거시 업다

 

   1989년 4월 18일

   아버지가

 

   리비아로 떠나기 전에 오빠는 가족들과 함께 J시를 방문했다. 부모님께 작별인사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나도 함께였다. 오빠는 J시에 도착하자마자 오거리에 있는 아버지의 단골 정육점에 들러 소고기 한근씩 세근을 세 뭉텅이로 나누어 쌌다. 오빠의 아내, 나의 올케의 태생지도 J시였다. 올케는 J시를 방문할 때면 먼저 부모님을 보고는 틈을 보아 친가로 건너가 저녁을 먹거나 그곳에서 자고 아침에 왔다. 그날은 오빠의 송별회이기도 해서 저녁을 집에서 우리와 함께 먹고 밤이 깊어지기 전에 아이들을 데리고 친가에 갔다. 왁자했던 집은 한순간에 적막해졌다. 이 고장은 이른 배꽃이 피는 사월에도 가끔 눈이 내린다. 봄바람이라 여기기에는 이른 바람이 일렁이는 사월 초의 그 밤. 마당의 감나무에 새순이 돋아 있었는지도. 오빠는 엄마와 올케가 저녁을 준비할 때 아버지와 낙천이 아저씨가 소밥을 주는 것을 옆에서 거들었다. 소값 파동으로 인해 소들을 거의 내다 팔고 ‘김낙천’이란 팻말을 달고 있는 황소와 소 여덟마리만 있던 때였다. 낙천이 아저씨 혼자 해도 그만일 소밥 주는 일을 아버지와 오빠가 함께 했다. 오빠는 물이 콸콸 나오는 호스를 조절하고 낙천이 아저씨가 여물통에 부어놓은 사료를 소들이 먹기 좋게 펼쳐놓고 아버지가 긁어 모아놓은 소똥을 쇠스랑으로 밀어 한쪽으로 쌓아올렸다. 나는 묵묵히 일하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얼핏 보면 낮에 도시에서 내려온 사람이 아니라 이 집에서 오래 소밥 주는 일을 해온 사람처럼 보여서. 오빠가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은 어두워지기 전의 저녁 빛에 어룽지며 실루엣처럼도 보였다. 오빠는 언제 저렇게 소들과 친해졌나, 하는 생각을 했다. 소들은 오빠를 아는 사람처럼 대했다. 내가 옆에 가면 음매, 소리를 내며 뒷발질을 하더니 모두들 온순하게 오빠가 부어주는 사료를 되새김질하고 오빠가 부어주는 맑은 물을 붉은 혀에 적시고 긴 눈썹이 말린 눈을 껌벅거리며 오빠에게 곁을 허락했다. 오빠는 가끔 등을 펴고는 소 등을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려주기도.

   올케가 친가로 떠나자 오빠는 읍내 정육점에서 사들고 온 신문지에 싼 소고기를 작은집과 고모 집과 당숙 집에 돌리고 돌아와서는 큰방에서 잠든 것 같았다. 설거지를 하면서 보니 엄마가 장롱에서 이불을 꺼내 오빠에게 덮어주었다. 손에 물기를 닦고 작은방으로 돌아와 꾸물거리고 있다가 나도 설풋 잠이 들었다. 그로부터 얼마나 잤는지는 모를 일이다. 잠결에 두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무슨 소리인가. 눈을 뜨고 싶은데 노곤했던 탓에 자꾸 눈이 감겼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목소리들을 들으며 꿈인가, 아니면 누가 찾아왔나, 싶었다. 목소리는 가까이 들렸다가 다시 멀어지고 아주 멀어지는가 싶으면 다시 가까이 들리기를 반복했다. 그 소리가 자장가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멀어지면 다시 살풋 잠이 들었다가 가까워지면 무슨 소리지? 생각했다. 간간이 웃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여전히 노곤해서 눈을 감은 채로 나는 어느 순간 어…… 아버지네, 생각했다. 웃는 건 오빠였다. 집은 사방으로 터진 구조여서 문이나 담 같은 것을 통과하지 않고 앞마당과 옆 마당과 뒷마당을 빙빙 돌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아버지와 오빠가 앞마당으로 옆 마당으로 뒷마당으로 다시 앞마당으로 빙빙 돌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이 내가 잠들어 있던 작은방 곁을 지날 때면 얘기 나누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가 옆으로 돌아가면 작아졌다가 뒷마당 쪽으로 가면 안 들렸다가 다시 앞마당 쪽으로 나와 작은방 창 앞을 지날 때면 들렸다가…… 그러는 중이었다. 잠이 깬 내 귀에 아버지의 나직한 목소리가 잡혔다. 아버지는 파견근무를 앞두고 송별인사를 하러 온 아들에게 안 가면 안 되냐? 묻고 있었다. 나는 뜻밖의 아버지 말에 의아해져서 몸을 일으켜 창 쪽으로 다가가 그들이 주고받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왜요, 아버지.

   ―니가 여기에 없다고 생각하니 겁이 나네

   ―제가 아버지와 여기서 함께 살았던 것도 아닌데 왜 그런 마음을 가지세요?

   ―그거하고는 다르제.

   아버지 목소리는 기운이 없었다.

   ―니가 나라 안에 없는데.

   ―……

   ― 잠이 안 온다.

   ―몇년 근무하다가 돌아올 거예요, 아버지.

   ―미안하구나.

   ―뭐가요, 아버지?

   ―내가 능력이 있었으면 너가 그 먼 곳으로 가지 않아도 될 것인데.

   ―회사 일입니다. 발령이 났으니 가는 것이지, 아버지 능력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제가 돈을 벌기 위해서 자원해서 막노동하러 가는 것도 아니잖아요.

   목소리들은 다시 옆 마당으로 돌며 멀어졌다. 나는 부자가 옆 마당을 돌아 뒷마당을 돌아 다시 앞마당으로 나와 작은방 창 밑을 지나갈 때마다 바짝 귀를 기울였다. 아버지는 오빠가 나라를 떠나는 게 불안한가보았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을수록 아들과 아버지의 위치가 바뀐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빠는 아버지를 위로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너 없이 내가……라는 말을 반복했던 그 밤.

 

   오빠는 자신이 나라 안에 없는 공백으로 아버지가 느낄 불안을 덜어주기 위해 아버지에게 열심히 편지를 썼던가보았다. 무뚝뚝한 편인 오빠가 선택한 편지쓰기는 그때의 아버지에게 큰 위로가 된 듯했다.

 

   오빠의 편지는 맨 앞에 꼬박꼬박 아버지 전 상서,로 시작했다. 그리고 첫인사는 어김없이 그동안 무탈하셨는지요?였다. 거기까지만 보면 모두 똑같은 편지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아버지는 또 꼬박꼬박 승엽이, 보거라,로 시작했다. 몸은 건강하냐?가 어느 편지든 아버지의 첫인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