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연재

29회

그는 그녀의 앞을 막았다. 그러고는 무릎을 꿇었다. 도미를 만나기 전에 그러려고 계획했던 것이 아니었다. 도미의 하얗게 질린 표정을 보니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그런 방법을 통해서라도 그는 그녀가 자신의 순수한 호의를 받아들여주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하지 마세요, 제발요. 오빠 제발 가세요.”

도미는 일단 주위를 둘러보았고, 곧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는 일어서지 않았다. 무릎뼈가 바닥에 닿으니 이상한 안정감이 느껴졌다. 더는 두려울 게 없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렇게 너를 위해 모든 것을 던졌다, 모든 것을 바칠 것이다, 그러니 너는 어떻게 하겠는가. 착하디착한 너는.

다른 학원생들이 여럿, 무릎 꿇은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누구는 혀를 차고 누구는 못 본 척했다. 대부분은 별꼴을 다 본다는 듯 킥킥 웃어댔다. 도미는 과연 천사 같은 여자였다. 끔찍해 죽겠다는 표정을 하고서, 발을 동동 구를 뿐, 그를 그 바닥에 놓아두고 차마 휙 떠나버리지 못했다.

민규는 가끔 생각했다. 그때 도미는 차라리 자신을 향해 침을 뱉거나, 뺨을 때리거나, 발로 걷어차거나 할 일이었다고. 그러면 자신은 다시 헛된 희망을 품지 않았을 거라고.

마침내 도미가 손을 뻗는 동작을 하며 그에게 알겠다고 말했다. 그러니 제발 여기서 이러지 말고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간곡히 말했을 때 그의 눈에는 감격의 눈물이 고였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그녀와 연락이 닿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제 그녀는 학원에도 나오지 않았다. 민규는 바짝바짝 애가 탔다. 불안해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최후의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여동생의 전화로 그녀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고, 오빠와 관련된, 네가 알아야 하는 중요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자신의 내부에 그런 모습이 있는 줄은 자신도 몰랐다.

그날의 일은 토막토막 기억이 난다.

도미가 벽을 향해, 주춤주춤 뒷걸음질했다. 민규는 그런 도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잡으려거나 뭘 어떻게 해보려는 의도는 절대로 아니었다고 그는 이제라도 변명하고 싶다. 뒤쪽 벽의 존재를 확인하자마자 도미는 비명을 질렀다. 새된 비명이었다. 그는 당황했다. 그런 것이 아니라고, 난 정말 너를 해치려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그는 해명하려 했다. 온몸을 까뒤집어서라도 증명하려 했다.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우리는 곧 함께 더 먼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가야만 한다는 것을.

그때 그녀의 입을 막았던 자신의 손바닥이 얼마나 축축했었는지를 떠올리면 그는 지금도 얼굴이 벌게졌다.

그후 도미는 사라져버렸다.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학교도 학원에도 오지 않았다. 친구들도 다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들은 도리어 그를 의심했다. 한밤중에 민규가 도미를 끌고 가는 것을 누군가 보았다는 얘기가 동네에 돌았다. 민규가 도미를 죽이고 뒷산에 파묻었다는 얼토당토않은 얘기도 있었다. 구체적인 정황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도미의 새어머니는 실종신고 대신 가출신고를 했다. 군대에 가기 전까지 민규의 시간은 모조리 도미를 찾아 헤매는 데에 바쳐졌다.

지연을 보고 있으면, 간신히 묻어두었던 도미에 대한 기억이 자꾸 꿈틀대며 솟아올랐다. 어떻게든 억누르고 싶었고, 억눌러야만 했다. 민규는 매일 거듭하여 다짐했다. 실수를 되풀이할 수는 없다고. 소중한 것을 또다시 놓칠 수는 없다고. 그는 최대한 조심조심 지연을 대했다. 지연만은 자신을 의심하는 일이 없기를, 떠나는 일이 없기만을 바랐다. 또다시 무릎을 꿇어야 한다면 백번이라도 꿇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