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연재

29회

 

   아버지의 편지는 간결하고 짧았다.

 

 

   승엽이 보거라

 

   몸은 건강하냐

 

   오늘 서점에 가섯따

   생전에 책방에 드러갈 일은 업것지 햇는데 드러가보니 책 냄시가 조터라

   리비아라는 나라가 어뜨케 생깄는지 책에는 나오까 해서 갓다 여기 서점에는 리비아에 대한 책이 업섯다

   너는 리비아가 바다 중심이라는 뜨슬 가지고 이따고 알려주엇는디 나에게는 리비아가 어째 꽃 이름 가꾸나 사루비아 가튼 꽃

 

   헌이에게 리비아에 대한 책을 구해서 보내라 햇다

   니가 있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그냥 아라두고 십다

 

   니 어머니가 자주 운다

   니가 보고 시픈 모양이다

   알 수 업는 말을 한다

   울고 나먼 눈 아피 환하다네

 

   그러타니 걱정은 마라

 

   1989년 4월 24일

   아버지가

   

   

   아버지 전 상서

   그동안 무탈하셨는지요?

 

   여기 생활에 적응하느라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느라 지난주에는 편지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밤에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곯아떨어집니다.

 

   아버지께서 저 때문에 서점에 가셨다는 말씀이 계속 생각이 납니다. J시에서 제가 자주 다녔던 서점은 호남고등학교 앞에 있는 제일서점이었는데 아버지도 그곳에 가셨던 것일까? 상상해봤답니다.

 

   서른이 넘고부터는 저도 서점에 가는 일이 드물어졌습니다.

 

   어머니께서 우신다니 마음이 쓰입니다. 저는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요.

   두분 건강하시기만을 바랍니다.

   그럼 안녕히……

 

   1989년 5월 6일

   아들 승엽 올림

 

 

   아버지가 쓴 한줄짜리 편지도 있다.

 

 

   승엽이 보거라

 

   몸은 건강하냐

 

   오늘은 모판을 죄다 내다놓고 볍씨 뿌렷다

 

   1990년 4월 29일

   아버지가

   

   

   승엽이 보아라

 

   몸은 건강하냐

 

   말할 거시 잇다

   나는 너에게 편지를 지대로 쓰기 위해서

   한글을 배우러 다닌다

   나는 쓰는 거세 중점을 두고 잇다

   몇달 되엇다

   농고 여페 한글학교가 생겻다 대학생들이 야학을 한다 그곳서 일주일에 세번씩 한글 수업시간이 잇다

   놀랏다

   나보다 절믄 사람도 일글 줄도 쓸 줄도 몰라서 처음부터 배우더라

   낫 노코 기역자도 모린다더니 사실이더라

   대학생 선생은 내가 한문을 쓰먼 놀라서 여기서 뭘 배우겟다고 왓느냐고 하더라

   나 가튼 경우는 더 가르칠 거시 업다고 해서 내가 니 이야기 햇다 아들한테 편지를 써야는데 글자 안 틀리게 잘 쓰고 시퍼 왓다 하니

   나는 따로 안게 하고 바침자드를 봐주고 책도 가져와서 익게 한다

   내가 책을 잘 익는다고 하네 속그로 그거야 아버지 덕이제, 햇다

   너거 하라버지한테 소학에서 사서삼경까지 배울 적에 소리 내 익기를 가장 만이 햇다

   재밋다

   니 어머니한테도 가치 다니자고 햇더니 이제사 엇다 쓸 일이 잇다고 그를 배우냐고 하네

   여태도 살엇는디 인자 와서라고

   글을 쓰게 되먼 너한티 편지 쓸 수 잇다 햇더니 잠시 솔깃하는 거 갓더니 대답을 안 허네

   얘기는 더 해볼라고 한다

 

   니 어머니는 너희들이 글을 배울 때 아는 거시 업어 가르칠 수가 업어서 한이 되엇다고 한다

   인자는 글을 배워도 일러줄 어린 자식이 업는디 배워 어디다 쓰냐고 허네

 

   나는 더 바랄거시 업따

 

   1990년 4월 14일

   아버지가

   

   

   승엽이 보거라

   몸은 건강하냐

 

   니 어머니는 누구한티 들었능가 리비아가 돌에다가 닥을 구워먹게 뜨거운 곳이라고 하네

   거기에 미숫가루는 있는지 모르겟따고 허네

   니가 더우면 미숫가루 타주믄 참말 맛싯게 먹는다고

   미숫가루 보내면 니가 바들 수는 잇는지 물어보라고 하네

 

   나는 바라는 거시 업따

   하늘 아래 니 몸 건강한 거 그거면 된다

 

   1990년 6월 5일

   아버지가

   

   

   아버지 전 상서

 

   그동안 무탈하셨는지요?

 

   지난 한 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서울에 있을 때보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을 법한데도 일주일이 훌쩍 지나고 내일 편지를 수거해가는 날이라고 합니다. 지난주에도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아 편지를

   드리지 못해서 게을러지려는 마음을 뒤로하고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매주 편지를 드리겠다고 약속을 해놓고 건너뛰어 죄송합니다.  

   

   이제 모내기는 다 마쳤겠지요?

   어머니는 논에 새참 내 가시느라고 정신없으셨을 테고 아버지께서도 못줄 잡아드리느라고 얼굴이 까맣게 그을렸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모내기철이 좋았습니다. 비어 있는 논에 모를 심고 난 후에 논이 푸르게 변하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아침에 사람들이 논 속에 줄을 지어 서서 모를 심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 학교를 갈 때는 저렇게 한모 한모 심어서 저 넓은 논에 모를 언제 다 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서 보면 그 넓은 논 모두에 모들이 줄 맞춰서 심어져 있곤 했지요. 사람들이 함께하는 일이 얼마나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그걸 보면서 배웠습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일정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노동을 하고 난 뒤의 결과가 그처럼 선명하게 드러나준다면 정말 보람 있을 텐데요. 꼭 우리 논이 아니어도 수리조합을 사이에 두고 양쪽 논들에 푸르게 심어져 있는 모를 보고 있으면 제게 힘이 되어줄 무엇인가를 양편에 거느린 것처럼 마음이 흡족해지곤 했습니다.

 

   이곳은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전 국토의 98프로가 넘는 땅이 모래사막이라 아버지가 계신 곳처럼 벼농사를 지을 땅은 없다고 보면 맞습니다.

 

   어머니께 미숫가루는 보내지 않으셔도 된다고 전해주십시오.

   먹는 것 걱정은 하지 마셔요.

   여기에 한국인이 저만 와 있는 것이 아니라 회사 직원이 많이 와 있습니다.

   우리는 학생들이 기숙사에서 모여 생활하는 것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조리사들이 저희와 함께 나와 있습니다. 그들이 아침 점심 저녁을 한국식으로 만들어줍니다. 서울에서 지내는 것처럼 한국 음식을 먹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아침 기상시간도 정해져 있고 저녁 취침시간도 정해져 있어서 군대생활을 하는 느낌도 듭니다. 아직은 그게 낯설어서 취침시간이 되어도 잠들지 못하고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는 때가 많지만 곧 익숙해지겠지요. 이렇게 규칙적인 생활을 하다보면 건강해질 것 같은 느낌입니다.

 

   아버지.

   제가 멀리 있지만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기면 서슴지 마시고 말씀해주세요.

   혼자 마음속에 두지 마시고요.

 

   그럼 이만 총총

   1990년 6월 12일

   승엽 올림

   

   

   오빠의 편지를 읽다보니 어린 시절 학교 가는 길에 수리조합 둑길을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펼쳐진 푸른 논이 떠올랐다. 나는 밤이슬을 맞고 핀 나팔꽃을 보느라 저 아래 나무 잎새로 가려놓은 자리에 딸기가 붉어졌는지를 살펴보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는데 오빠는 모내기를 마친 푸른 논을 바라보며 학교 갈 적마다 양편에 힘 있는 무엇을 거느린 기분이었다니. 똑같은 풍경을 보는 이렇게 다른 마음들. 아버지는 큰오빠가 북아프리카 중앙에 위치한 리비아라는 나라에 나가 있다는 이유 하나로 씨눈이 달린 감자를 밭에 하나하나 묻듯 그 나라에 대한 것을 찾아내서 아버지 것으로 했다. 뒤늦게 알게 된 마음들. 그랬구나. 그때 아버지가 내게 리비아에 대한 책을 구해서 보내달라고 했던 건 이런 마음에서였구나. 내가 도시의 서점에서 리비아에 관한 책을 구해서 아버지에게 보낼 때 아버지는 익숙하지 않은 책 읽기와 올바른 쓰기를 위해서 한글을 가르치는 야학에 다녔다. 덕분일까. 처음엔 단문이던 아버지의 편지는 때로 복문이 되기도 하고 부호와 마침표를 쓰기도 하며 길이도 점점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