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연재

3회

경찰은 그녀더러 지금 오라고 했다. 지금, 이라니, 순간적으로 박복선은 머리가 텅 비어버리는 것 같았다. 김민규에게 일이 생겼다고만 할 뿐 경찰은 자세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퍼뜩 이건 하나의 음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경찰이라고 말하는 저 남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보장이 없었다. 채권자 중 누군가 민규의 이름을 이용해 그녀를 유인하려 드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녀는 웅얼거리는 말투로 대꾸했다.

“어쩌죠. 지금은 내가 바로 움직일 수가 없는데,”

아기는 여전히 젖병을 세차게 빨아대고 있었다. 젖병 바닥이 거의 드러나 보였다.

“아기!”

그녀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는 듯 소리쳤다.

“내가 애를 보는 중인데, 애 엄마도 없고 맡길 데도 없고. 그래서 못 움직여요.”

단호하게 말하고 보니 무척 그럴듯한 이유로 느껴졌다. 상대방에게는 횡설수설하는 것으로 들릴지도 몰랐지만 상관없었다.

상대가 뭐라 말하기 전에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아예 전화기의 전원을 꺼버렸다. 비어버린 젖병을 아기는 계속 빨아대고 있었다. 아기 엄마는 분유를 먹이고 나서 꼭 트림을 시키라고 했다. 박복선은 아기의 등을 기계적으로 문질렀다. 찜찜한 기분이 떨쳐지지 않았다. 아무 일 아닐 것이다. 아침에 유리잔이나 접시를 깨지도 않았고, 간밤 꿈자리도 특별히 나쁘지 않았다. 그녀는 조심스레 다시 전화기의 전원을 켰다.

저장되어 있는 김민규의 번호는 세개였다. ‘민규-2015’라고 입력된 번호가 가장 최근 것이었다. 통화 버튼을 눌러보았다.

“수신자의 사정으로 당분간 수신이 정지되었습니다.”

민규와 마지막으로 연락한 것이 언제였는지 박복선은 막막한 심정으로 헤아려보았다. 그때다.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6개월 전, 서둘러 K시를 떠나기 직전 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었다. 그러자 한시간쯤 뒤에 전화가 걸려왔다. 길거리인지 차 경적 소리 같은 것이 배경음으로 섞여 들렸다.

“언제까지 준비해요?”

김민규의 목소리는 침착하고 높낮이가 없었다.

“내일이나, 모레나. 오늘도 좋지만.”

“오늘은 안 되고 아무튼 알았어요.”

김민규는 왜인지 캐묻지 않았고, 또 무슨 일을 친 거냐며 화내지도 않았다. 김민규는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박복선은 어쩐지 풀이 죽었다.

“면목이 없다. 엄마가 너무 급해가지고.”

“네.”

사무적인 응답이었다. ‘아니에요’라거나 ‘괜찮아요’라는 대답을 기대했던 건 아니지만 그녀는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서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는 빤한 안부조차 묻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하긴 내가 무슨 염치로. 그런 것은 대수롭잖게 넘겨버리는 것이 박복선의 특기였다.

사흘 후 김민규의 이름으로 삼백만원이 입금되었다. 그녀가 부탁했던 액수보다 이백이 적었다. 혹시 나눠서 넣으려나 기다려보았지만 더는 소식이 없었다. 고맙다는 문자를 보낼까 하다가 말았다. 부모자식 간에 이런 정도의 일로 일일이 감사 인사를 주고받는 것도 낯간지러우니까. 박복선은 또 그렇게 그 순간을 넘겼다. 그 뒤로 김민규에게서는 소식이 없었다. 제 형이나 동생과는 간간이 안부를 나누는 눈치였다. 제 아버지와도 그럴 거였다. 참나, 그깟 삼백이 대수라고. 괘씸해할 수 있었으므로 박복선에게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두어달 전엔가 민희가 작은오빠한테 여자가 생긴 눈치더라고 전했다. 언제는 없었냐. 박복선은 심드렁히 대꾸했다.

“근데 여자 얼굴은 안 보나봐.”

민희가 말했다.

“봤어?”

“사진. 인스타에 올려놨던데.”

“인스, 뭐?”

“그런 게 있어.”

그때는 그러려니 했다. 더 깊이 알려 들지 않았다. 김민규에 대해 박복선이 일관되게 취해온 태도였다. 세명의 자식들 가운데 가장 믿어서일 수도 있었다. 자식이 여럿이어도 가슴에 와닿는 느낌은 다 달랐다. 장남 민철은 쾌활하고 경박한 성격에 욱하는 성질이 있었다. 자신을 닮은 것 같아 늘 미안했다. 막내 민희는 굼뜨고 순진했다. 잘 울고 잘 속았다. 답답하고 안쓰러웠다. 민규는 이쪽도 저쪽도 아니었다. 그는 말수가 적었고 어릴 때부터 제 속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았다.

―민규에게 연락 한번 해봐.

박복선은 김민철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아기 엄마의 말대로 창밖에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박복선은 아기를 품에 안고 서서, 언덕 아래 동네의 지붕들을 내려다보았다.  두 팔로 아기의 묵직한 엉덩이를 감싸 안았다. 그 체온이 이상한 위로가 되었다. 휴대폰 액정에 김민철의 이름이 뜨는 순간 박복선의 무릎이 꺾였다.

“엄마 놀라지 마요.”

김민철이 숨도 쉬지 않고 내뱉었다. 엄청난 사실을 단 한순간도 혼자 감당할 수 없다는 흥분의 기미마저 느껴졌다. 충격을 받을 상대방에 대한 배려 따위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놈이라고 박복선은 생각했다. 민규라면 달랐을 텐데. 민규라면.

“민규가 죽었대요.”

어쩔 도리 없이, 무방비로 박복선은 그 말을 듣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