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연재

31회

서울 지역 아파트의 평당 가격이 천만원을 넘은 것은 몇해 전의 일이었다. 그가 가진 돈을 긁어모으면 아파트 1평을 살 수 있다는 의미였다. 민규가 자라는 동안, 평수의 개념에 익숙해질 일은 별로 없었다. 집의 크기는 방이 몇개인지로 가늠하곤 했다. 살아온 동네는 한곳이었지만 길 건너, 언덕 아래, 학교 뒤쪽 등으로 자주 이사를 다녔다. 아들들과 딸이 섞여 있었으므로 부모는 방 세개짜리 집을 얻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였고, 그 목표는 운용 가능한 자산과 자주 상충했다.

방 세개짜리 집에 살다가 또 부모 중 누군가가 사고를 치면 두개짜리 집으로 갔다가 하곤 했다. 방이 두개면 하나는 여동생 몫이고, 하나는 그외 나머지 식구들이 대충 함께 쓰곤 했다. 날이 더울 땐 마루에서 자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부엌과 마루와 방의 구분 없이 살아가는 것, 개인의 공간, 프라이버시에 대한 인식은 만들어질 틈이 없었다. 이 집은 전에 살던 집에 비해 겨울철 웃풍이 셀지 조금 나을지, 변기의 수압은 어떨지, 하수구는 자주 막히지 않을지, 같은 것들이 그나마 관심을 끄는 요소였을 뿐이다. 새로 옮겨도 어느 집들이나 비슷했기 때문에, 주변사람들의 집들도 다 비슷했기 때문에.

그런데 서울에 와서 민규가 머물게 된, 아니 지키게 된 집들은 그의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집’이라는 공간과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라서 같은 단어로 불러도 될지 난감할 정도였다. 첫번째 집은 강남구에 새로 지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였다. 오래된 단지를 재개발한 곳으로, 분양권에 엄청난 프리미엄이 붙어 한때 꽤나 화제가 된 곳이었다는 사실을 민규는 알지 못했다. 30평대와 40평대가 중심인 단지였는데 민규가 있게 된 곳은 30평대였다. 그를 압도한 것은 실내가 막 넓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그 공간을 이루고 있는 것들과, 둘러싸고 있는 것, 그 모든 것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무엇 때문일까. 인간으로 하여금 ‘아, 좋다’ 하고 한숨을 내쉬게 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그간 살아왔던 공간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었다. 고급스러운 건축 자재와 마감? 세련된 색감과 톤? 그것들은 당연히 차이가 났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는 어쩐지 정답을 맞히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집이 군더더기랄 것이 전혀 없다면 그 집들은 군더더기들로만 이루어진 것 같았다. 크기도 모양도 재질도 다른 여러개의 천 쪼가리들로 누덕누덕 기운 이불 같았다. 이런 곳을 몰랐다면, 그 집들의 초라함도 몰랐을 텐데. 민규는 자신이 가까스로 빠져나온 어떤 곳에 대해 생각하다 아연해졌다. 왜 빠져나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을까? 그럴 리가 없었다. 잠시 몸을 빼냈을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가게 될 곳은 거기밖에 없었다.


   그 집들에서 무사히 잘 지내기 위해서는, 약속된 계약조건을 충실히 지키는 일이 필요했다. 집의 일부에서만 생활해야 하며, 취식을 하면 안 되고, 개인물건을 함부로 놓아두어선 안 되며, 어떤 경우에도 외부인을 데려오면 안 된다는 조건들. 그러나 더 중요한 철칙이 있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으나 스스로 터득한 것이었다. 하나의 집에 머무는 동안 공간에 정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 절대로. 절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