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회
아버지는 스물에 엄마와 결혼을 했다.
국군에 쫓겨 산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해가 저물면 산과 가까운 마을로 내려와 양식만 털어 가는 게 아니라 여자들을 데리고 산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엄마가 태어난 곳은 넝뫼였다. 넝뫼는 갈재와 가까운 산골이다. 혼인하지 않은 여자들이 산사람들에 의해 마을에서 사라지는 일이 이어 생기자 여동생을 혼인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한 외삼촌의 눈에 아버지가 들어왔다. 외삼촌은 아버지를 눈여겨보다가 여동생과의 혼인에 앞장섰다. 그렇게 엄마는 우리 집을 지나 진산리 쪽으로 구부러지고도 이슬어지를 지나서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나오는 산골 넝뫼에서 나서 그곳에서 열여덟이 되어 아버지와 혼인해 이 집으로 왔다.
―얼굴도 한번 못 보고.
엄마는 가끔 한숨을 내쉬며 아버지 얼굴도 한번 못 보고 결혼한 일이 믿기지 않는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했다. 듣는 나도 믿기지 않는 일이다. 정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는지. 외삼촌은 외할머니에게 아버지를 두고 양친을 일찍 잃고 소 한마리로 부지런히 일하며 살림을 늘려가는, 허세가 없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외할머니는 키가 크고 몸집도 큰 엄마를 산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안전한 곳에 숨겨놓고 싶은 마음뿐이어서 혼인을 서둘렀다.
외삼촌과 아버지는 친구이며 동업자였다. 외삼촌과 아버지는 벌목꾼들이 잘라놓은 나무를 받아서 소달구지에 실어다 제재소에 조달해주고 삯을 받아 반으로 나누는 일을 같이 했다. 아버지에게는 소가 있었고 외삼촌은 벌목꾼을 알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버지의 소는 낮에 쟁기를 달고 논밭을 갈고 밤에는 달구지를 달고 나무를 실어 날랐다. 나무를 벌목하는 일은 금지되어 있어 발각되면 벌금을 물거나 갇히는 수도 있는 일이라 삯이 많았다. 그래서 대개 아버지와 외삼촌이 벌목된 나무들을 읍내의 제재소에 실어 나르는 일은 인적이 드문 한밤중에 이루어졌다.
―소가 고꾸라지도록 나무를 실엇당게……
아버지는 그 소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마치 지금도 그 소가 눈앞에 있는 듯이 안타까운 표정이 되곤 했다.
―내가 죄가 많다. 낮에 그리 부려먹고는 밤에 잠도 못 자게 그리 끌고 다녔으니……
벌목한 나무를 실어 나르고 돌아오는 어느 밤에 외삼촌은 아버지에게 여동생과의 혼인 이야기를 꺼냈다. 세상이 어수선하니 약식으로 혼인식을 치르자고. 아버지는 외삼촌 말을 귓결로 들었으나 고모는 외삼촌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아버지에게 처가 생기면 집안 살림을 맡을 것이니 남들 보기에 버젓해 보일 거라는 생각이 먼저였다. 외삼촌은 엄마를 두고 아직 어리지만 심지가 굳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어느 집으로 가더라도 거기 살림을 일어나게 할 사람이라고. 국군에 쫓겨 숨어 사는 산사람들이 여동생을 납치라도 해갈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던 외삼촌은 마음이 급해져 아버지에게 몰래 여동생을 한번 보게 해주겠다고 해서 아버지는 혼인 전에 엄마를 한번 볼 수 있었다.
스무살 아버지는 나의 외갓집의 오두막 뒤꼍 대나무 숲에 숨어서 엄마를 봤다. 아무것도 모르는 열여덟살 엄마는 오두막에서 나와 뒤꼍의 장항아리 뚜껑을 열고 종지에 장을 떠 담으려다가 검푸른 장에 비친 흰 구름을 봤다. 열여덟살 엄마는 장에 비친 흰 구름에서 눈길을 떼고 얼굴을 들어 하늘의 흰 구름을 봤다. 아름다웠다. 엄마는 노래를 불렀다. 봄 처녀 제 오시네 새 풀옷을 입으셨네…… 노랫말이 기억이 안 나는 부분에서 엄마는 콧소리를 내다가 생각나는 부분에선 다시 음을 찾아 불렀다.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이슬 신으셨네. 햇볕을 많이 받아 얼굴이 그을린 엄마가 부르는 노래를 아버지는 대숲에서 가만히 들었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대숲이 흔들려 엄마 목소리가 멀어졌으므로 엄마가 노래를 다 부를 때까지라도 바람이 불지 않기를 바랐다. 이어지던 노랫소리가 끊겨서 아버지는 엄마 쪽을 건너다보았다. 엄마가 노래를 멈추고 흰 구름이 떠가는 하늘을 보고 있었다. 엄마가 구름이 떠가는 하늘에 대고 뭐라고 말을 했다. 사방이 고요했다. 아버지는 대숲에서 엄마가 뭐라고 하는지 귀를 기울였다. 엄마. 엄마는 하늘에 대고 엄마,를 부르고 있었다. 엄마, 나 시집 안 갈래, 하고. 대숲에 숨어 있던 스무살 청년 아버지는 엄마의 한탄을 듣고 긴장이 되었다. 대숲에서 나가서 엄마를 데리고 가 소를 보여주고 싶었다. 나중에 돈이 생기면 사려고 마음에 새겨놓은 논도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이 소의 코를 뚫고 코뚜레를 어떻게 걸었는지 얘기해주고 싶었고 그 소가 아버지를 얼마나 잘 따르는지도 알려주고 싶었다. 돈이 생기면 눈여겨봐둔 그 논을 사서 그곳에 이모작을 하면 일년에 수확할 수 있는 보리와 쌀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도 엄마에게 알려주고 싶어 얼굴이 상기되었다.
손등이 간지러워 살펴보니 엄지와 검지 사이가 붉게 부풀어올라와 있다. 나무궤짝의 편지 더미를 들어냈을 때 작은 벌레가 보이더니 그것에 물린 모양이었다. 가렵다고 생각하자마자 가려움증이 참을 수 없이 강해져 나도 모르게 부풀어오른 곳에 혀를 대고 침을 묻히다가 나 좀 봐, 싶었다. 아버지가 잘하는 행동이다. 아버지는 논에서 거머리에 물려도, 우사에 잘못 들어온 벌에 쏘여도, 선산의 묘지에 풀을 깎다가 풀독이 올라도 그 자리에 침을 발랐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몸에 밴 습관이었다. 다치면 그 자리에 약 대신에 먼저 침을 바르는 일. 소독을 하고 약을 바르고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해도 아버지의 습관은 쉽게 바뀌지가 않았다.
나는 편지 사이에 끼어 있을지도 모를 물것을 털어내느라 부산을 떨고는 다시 편지를 펼쳤다.
아버지 전 상서
그동안 무탈하셨는지요?
이제 그곳은 겨울이 올 것이니 겨울 준비로 어머니가 무척 바쁘시겠군요. 창호지 문도 새로 발라야 하고 무엇보다 김장을 하셔야 할 테니까요. 어머니는 올해도 김장을 이백포기 하실까요? 이맘때 밭에 뽑혀 쭉 눕혀져 있던 배추들이 생각납니다. 그 많은 배추를 다 절이고 리어카에 싣고 가서 씻고…… 김장을 하실 때마다 거대한 공사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결혼한 후 첫 겨울 때 집사람이 어머니가 김장을 해서 보낸 양을 보고 깜짝 놀라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늘 어머니는 셋째가 김치를 좋아해서……라고 하셨지요. 덕분에 집에는 여름이 되도록 묵은 김치가 동이 나지 않아서 언제고 김치찌개를 해 먹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 말씀 따라 이곳은 겨울이 없습니다. 겨울이 없으니 눈도 볼 수 없습니다.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는 겨울이 없는 나라는 상상이 안 되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또 눈이 내리는 나라를 상상을 못합니다.
J시처럼 눈이 많이 내리는 고장도 드물 겁니다. 눈 얘기를 하자니 어린 시절을 보낸 겨울날들이 생각납니다. 거기는 한번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며칠이고 내렸지 않어요. 우물 옆에 담벼락에 뒤꼍에 아버지가 쓸어서 모아놓은 눈 무더기가 봄이 올 때까지 쌓여 있었지요. 하지만 아버지 덕분에 눈이 아무리 많이 내려 쌓여도 걱정을 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다음 날 새벽이면 우리들이 일어나기도 전에 눈을 다 쓸어놓으셨잖어요. 눈이 너무 많이 내려 빗자루로 쓸어낼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아버지께선 흰 눈에 덮인 마당을 우두커니 내다보다가 세갈래 길의 눈을 먼저 쓸어두셨지요. 우물에 갈 수 있도록, 변소에 갈 수 있도록, 대문으로 나갈 수 있도록요. 하얗게 눈이 쌓여 있는 사이로 나 있는 세갈래 길이 눈앞에 선합니다. 쓸어놓은 세갈래의 길에 눈이 계속 내려 덮이면 또 쓸고 또 덮이면 또 쓸던 아버지의 모습도요. 어느 겨울날 새벽에 일찍 일어났던 날에 아버지가 혼자서 눈을 쓸고 계셔서 도우려고 아버지 옆에 섰더니 아버지는 감기 든다고 들어가라고 하셨어요. 어서 들어가라고, 춥다고.
이 더운 나라에서 그때를 생각하니 목덜미가 시원해지는 느낌입니다.
아버지가 쓸어놓은 세갈래 길은 크리스마스카드에 그려진 그림처럼 제 뇌리 속에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뒤늦게 일어난 아우들이 아버지께서 쓸어놓은 길로 변소에 가고 세수하러 가고 학교에 가고 그랬지요. 눈이 너무 많이 내린 날은 대문 바깥에서 신작로까지도 한 사람이 걸어다닐 수 있을 만큼 좁은 폭으로 눈을 쓸어 길을 내주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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