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회
겨울이면 아버지는 눈을 열심히 쓸었다. 눈을 쓸고 있는 아버지 머리 위로 새하얗게 눈이 쌓이고 이따금 아버지가 얼굴을 들면 아버지 눈썹에도 눈이 쌓여 있었다. 그걸 털어낼 틈도 없이 아버지는 허리를 굽혀 간밤 마당에 헤아릴 길 없이 쌓인 눈에 길을 냈다. 아침을 맞이한 우리들이 그 길을 걸어다닐 수 있도록. 잠이 깨어 방문을 열면 아무리 눈이 많이 내린 날에도 마당에 세갈래의 길이 비질되어 있었다. 잊고 있었던 그 세갈래 길이 떠오르자 오빠가 사인펜으로 쓴 큼직큼직한 검은 글씨들이 눈송이가 되어 날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가 훈육을 위해 회초리를 든 것을 지금까지 나는 딱 한번 보았다. 한번,이라서인가. 그때의 일은 잊히지 않고 아버지를 생각할 때면 어김없이 출몰해서 문장이 되곤 한다. 그것도 자주.
고등학교 시험에 낙방한 셋째오빠가 가출을 했을 때 아버지는 모든 일을 손에서 놓고 오빠만 찾으러 다녔다. 누군가 어디서 오빠를 보았다고 하면 그게 어디든 달려갔다. 후기 시험이 코앞인데도 오빠를 찾지 못하자 아버지가 앓아누웠다. 오빠는 어떻게 집에서 먼 무주까지 갔었는지. 무주 읍내에서 불량해 보이는 청년들 속에서 오빠를 본 것 같다는 누군가의 말에 앓고 있던 아버지는 바로 일어나 무주로 갔다. 그곳에서 머리를 어깨까지 기르고 어울리지도 않는 통바지를 접어 입고 껄렁하게 주머니에 손을 넣고 제 나이보다 몇살은 더 많은 청년들 속에 섞여 있는 오빠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던 날도 겨울밤이었다.
―밥 먹자.
아버지는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오빠와 마주 앉아 국에 밥을 말아 저녁밥을 먹었다. 긴장이 되어 자꾸 수저를 내려놓으려는 오빠에게 아버지는 더 먹으라,고 했다. 오빠는 야단도 치지 않고 묵묵히 밥을 먹는 아버지 앞에서 꾸역꾸역 밥을 먹었다. 큰오빠는 작은방 책상에 앉아 꼼짝하지 않았다. 밥을 다 먹자 아버지는 장롱 위에서 신문지에 꽁꽁 싼 것을 꺼내 들고는 셋째오빠에게 가자,며 앞장을 섰다. 어디를 가자는 것인지 말해주지도 않았다. 걱정이 된 엄마가 따라 일어서고 나도 엄마 손을 잡고 따라붙었다. 저물녘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꽤 쌓여 있었다. 눈 위를 아버지가 걷고 오빠가 뒤에 걷고 엄마가 걷고 그 뒤를 내가 따라갔다. 생각지 못한 일들은 언제나 일어난다. 신문지에 싸여 있던 것은 회초리였다. 아버지는 빈집에 오빠를 데리고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그때껏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회초리는커녕 큰소리 한번 낸 적이 없었으므로 그 많은 회초리가 다 부러질 때까지 오빠에게 매질을 할 줄은 엄마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셋째오빠의 고등학교 시험 낙방이야말로 아버지로서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셋째는 무엇이든 넘치게 잘해서 장차 무엇을 시켜야 할지 모르겠는 아들이었으니까. 학교에서 선생들은 셋째를 탐냈다. 밴드부 선생은 북을 치게 하고 싶어했고 배구부 코치는 배구 선수를 시키고 싶어했다. 게다가 셋째는 1등을 놓친 적이 없이 공부도 잘했다. 어쩌면 시험에 낙방하고 가장 놀랐던 것은 셋째 자신이었을지도. 하다못해 운동회의 달리기에서까지 1등이었던 자신이, 성적이 더 낮았던 친구들이 합격한 고등학교에 낙방을 하다니. 생각지도 못한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당황한 채 일단 집을 나갔는지도. 엄마는 닫힌 문고리를 잡고 곧 후기 시험을 보러 가야 하는 아이한테 매질을 하느냐며 아버지를 애타게 불렀고 나는 한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의 모습에 지레 놀라서 그 빈집 눈 쌓인 마당에 주저앉아 발을 뻗고 울었다.
―시험 좀 떨어졌다고 집을 나가야?
오빠는 끅끅 울며 회초리를 맞았다.
―앞으로도 뭔 실패만 하먼 다 집어치우고.
―……
―집을 나갈 테냐?
셋째오빠가 다리를 절며 전주로 후기 시험을 보러 가던 날 아침에도 눈이 펑펑 내렸다. 아버지는 다른 날보다 더 일찍 일어나 마당의 눈을 깨끗이 쓸어놓았다. 오빠가 타고 갈 버스가 도착할 신작로로 이어지는 고샅까지. 아버지는 아궁이 앞에 둬서 따뜻해진 신발을 셋째오빠에게 신기고 털목도리를 둘러주고 장갑을 끼워주었다. 아버지는 나직한 목소리로 시험에 떨어져도 된다,고 했다. 뜻대로 안 되면 내년에 다시 시도하면 되니 시험 끝나면 바로 집으로 오라고. 오빠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창가에 서서 신작로에 서 있는 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나는 이제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져 폐가의 방 안까지 들이칠 것 같은 빗소리를 들으며 아버지의 편지를 다시 펼치다가 편지지 접힌 곳에서 기어가는 벌레를 털어냈다. 물리지도 않았는데 몸이 여기저기 가렵기 시작했다.
먼 나라로 파견근무를 떠난 아들에게 처음에는 짧게 쓰기 시작했던 아버지의 편지는 점점 길어졌다. 편지지가 가득 차서 뒷장으로 뒷장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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