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연재

3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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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을 하는 날이면 형민은 회사 근처 포장마차에서 아침으로 샌드위치를 사 먹었다. 중년 부부가 운영하는 가게는 여덟종류의 샌드위치를 팔았는데, 그중에서도 형민은 달걀지단이 두개 들어가는 더블달걀샌드위치를 먹었다. 햄과 치즈는 넣지 않았다. 한쪽 빵에는 딸기잼을 바르고 다른 쪽 빵에는 설탕을 뿌렸다. 매일 샌드위치를 사 먹었기 때문에 포장마차 부부는 형민에게 묻지도 않고 늘 그렇게 만들어주었다. 전날 과음으로 몸이 무거운 아침이면 초코우유를 곁들여 먹기도 했다. 그렇게 달달한 아침을 먹고 나면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부부 중 남편이 형민의 샌드위치를 만들 때면 딸기잼을 두숟가락 퍼서 귀퉁이까지 발라주었다. 평소에는 한숟가락이었다. 그랬던 가게가 문을 열지 않았다. 형민은 부부가 꽃놀이라도 갔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편의점에서 샌드위치와 바나나우유를 샀다. 편의점의 파라솔 의자에 앉아서 아침을 먹으면서 형민은 바나나우유를 마지막으로 먹은 게 언제였는지를 생각해보았다. 너무 오랜만이라 마지막이 언제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오후에 일을 하다가 형민은 갑자기 어떤 기억 하나가 떠올라 웃었다. 웃음소리를 들은 조과장이 뭔 좋은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형민은 별일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조과장 옆에 앉은 박대리가 말했다. “박차장님. 우리 몰래 재미있는 거 보는 거죠?” 형민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주, 아주, 재미있는 걸 본다고. 뭔지는 비밀이라고. 저녁에 조과장이 퇴근 후에 한잔하자고 형민을 붙잡았다. 막내 처제가 아이를 낳아서 아내가 장모님을 모시고 처제한테 갔다는 거였다. 조과장이 맛있는 걸 산다고 하자 박대리가 형민에게 귓속말로 이렇게 말했다. “차장님. 곱창 먹자고 해주세요. 저 곱창 먹고 싶어요.” 그래서 셋은 곱창에 소주를 마시러 갔다. 형민은 원래 대창을 좋아했는데, 염통이 맛있어서 추가로 염통을 더 먹었다. 술을 마시다 형민은 회사에서 왜 웃었는지를 이야기해주었다. 바나나우유 때문이었다고. 형민이 대학생 때의 일이었다. 학생회도 아니었는데 어째서인지 신입생수련회를 따라간 적이 있었다. 이박 삼일의 일정을 마치고 수련회장 앞에서 신입생들이 단체사진을 찍는데 모두들 바나나우유를 들고 있었다. “글쎄, 그게 뭐냐고 물어보니 일학년 중 한 녀석이 제안한 거래. 신입생들이 모두 나이가 같았나봐. 1974년생. 보통은 재수생 삼수생도 있고, 빠른 년도에 입학한 학생들도 있는데, 그해는 안 그랬지. 서른명 나이가 모두 같았어. 그래서 1974년에 만들어진 바나나우유를 들고 단체 사진을 찍기로 했다나봐. 갑자기 그때 그 장면이 생각나서 아까 웃었어.” 형민은 말했다. 그래서 한동안 선배들은 그 학번을 바나나우유와 아이들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이야기를 듣던 박대리가 자기가 신입생 수련회를 갔을 때도 비슷한 일을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각 조별로 마스코트를 들고 다녔거든요. 저는 4조라서 사조참치캔. 5조는 오징어. 1조는 빼빼로였나?” 박대리가 그렇게 말을 하고는 퀴즈를 하나 냈다. “6조까지 있었는데 6조는 뭘 가지고 다녔게요?” 그러고는 형민과 조과장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먼저 답을 말했다. 그게 박대리의 말버릇이었다. 질문하고 바로 답하는 것. “육개장 사발면이요.” 육개장 사발면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형민이 웃었다. 바나나우유보다 그게 더 웃긴 것 같았다. 형민이 웃는 걸 보자 조과장이 형민을 보며 웃었다. 그게 뭐가 웃기냐며. 다음날도 샌드위치 가게는 열지 않았고 형민은 편의점에서 육개장 사발면을 사 먹었다. 아침으로 사발면을 먹어서인지 종일 속이 불편했다. 조과장이 무단결근을 했다. 점심까지 기다렸다가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다음날도 조과장은 출근하지 않았고 다시 전화를 걸어보니 이번에는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포장마차는 문을 열지 않았고 조과장과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제야 형민은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에 조과장이 서류를 조작해서 자판기 부품을 몰래 빼돌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뒤늦게 조과장의 집에 찾아간 형민은 조과장이 몇달 전에 별거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인은 남편이 어디에 사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 사실을 부장에게 보고했다가 형민은 한심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걸 믿느냐고. 그렇게 물러터졌으니 부하직원 간수도 못하는 거 아니냐고. 형민은 조과장이 작성한 모든 서류를 검토했다. 허리띠 한칸이 줄었다. 부품 주문서와 입금내역과 서류들을 들여다보면서 형민은 조과장과 곱창을 먹던 그날 밤을 종종 생각했다. 택시를 잡으러 길가로 나오던 중이었다. 그때 길을 걷다 갑자기 달을 가리키며 조과장이 말했다. 열다섯살 때 아버지가 뺑소니차에 치여 돌아가셨는데 그날부터 지금까지 늘 똑같은 꿈을 반복해서 꾼다고. 커다란 가위를 가지고 달을 오려내는 꿈이라고. 달은 늘 반달이에요. 왜 반달인지 저도 모르겠어요. 그게 조과장과의 마지막 대화였다. 형민이 먼저 택시를 탔다. 내일 보자,라고 형민이 말했는데 조과장이 대답하지 않았다. 조과장이 빼돌린 돈은 일억이 조금 넘었다. 겨우. 형민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큰돈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인생을 바꿀 만큼의 돈은 아니었다. 회사는 조과장을 고소했고, 형민은 3개월 감봉 처분을 받았다. 형민의 감봉 처분이 결정되던 날 박대리가 집 앞으로 찾아왔다. 술에 취하지도 않았는데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박대리의 얼굴을 보자마자 형민은 물었다. “조과장 이야기야? 아니면 니 문제야?” 박대리가 말했다. “둘 다요.” 형민은 제자리에 서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연립 주변을 걸었다. 박대리가 뒤따라왔다. 나동 앞을 지나갈 때 화단을 슬쩍 봤는데 그 자리에는 아무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형민은 계속 걸었다. 그러다가 담배를 피우는 벤치 쪽으로 가보니 여전히 할머니 두분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형민은 그곳을 지나쳤다. 그러면서 박대리에게 말했다. 말하지 말라고. 제발, 혼자만 알고 있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