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연재

34회

3주가 지난 후에 일반병실로 올라가게 되었다. 6인실이었다. 그의 자리는 병실 문 바로 앞이었다. 그곳에서는 간병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병원에서 직업 간병인을 소개해주었다. 퉁명스러운 성격의 조선족 노파였다. 처음에는 다친 부위에 통증이 심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차츰 줄어들었다. 진통제를 맞고 동시에 재활치료를 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 의료진의 전언이었다.

일반병실로 옮기고 나서 여동생은 한번 왔다.

“엄마한테는 말 안 했어.”

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큰오빠가 말하지 말라고 해서, 와보지도 못하는데 걱정한다고.”

자신의 말이 석연치 않다는 것을 여동생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의 형으로 말하자면, 타인의 감정을 염두에 두며 분별 있게 상황을 정리할 만한 위인이 아니었다. 형은 병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회사 쪽 사람들도 오지 않았다.

다인실 생활에 그럭저럭 적응이 되어갔다. 민규는 어디서든 그럭저럭 적응을 하는 편이었다. 짐을 쌌다 풀었다 하며 새로운 집에 몸을 맞춰 사는 일에 익숙해진 덕분일지도 몰랐다. 한강이 보이는 주상복합아파트의 작은 방 붙박이벽장 안에 그의 짐 가방이 들어 있을 터였다. 그는 가끔 그 사실을 떠올렸다.

사장은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증발해버렸다고 여기고 있을 거였다. 전화를 하거나 문자메시지라도 보내어 이런 형편을 알려야 할 테지만 그에게는 어떤 연락 수단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고 당시 바지 주머니에 있던 전화기는 처참히 부서졌으며, 그는 사장의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지 못했다. 그가 외우고 있는 번호란, 지연의 번호와 그 옛날 도미의 번호가 전부였다. 사장은 그의 증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어쩌면 아직 모를 수도 있었다. 그는 더 께름칙하고 갑갑해졌다.

입원환자의 하루는 나름대로 질서정연했다. 매일 이른 아침마다 간병인의 부축을 받아 휠체어에 앉아 엑스레이를 찍으러 갔다. 아침 회진이 끝나고 나면 아침식사가 나왔다. 그리고 점심식사, 오후 회진, 저녁식사. 하루 두번의 회진과 세번의 식사 사이사이에, 한 움큼의 약들과 진통제 주사가 놓여 있었다. 그 느슨한 질서 사이 어딘가에 자신의 영혼이 누워 있는 것 같다고 민규는 생각했다. 그가 기다리는 것은, 지연이었다. 지연은 이틀에 한번 정도 왔다. 오지 않으면 마냥 기다리다가, 간병인의 전화기를 빌려 한번씩 전화를 걸어보는 것 말고 그가 따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지연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그녀에게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겼을까봐서였다. 몸이 조금만 더 나아지면 곧바로 새 전화기를 사야겠다고 그는 결심했다.

옆 침상에는 대동맥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중년사내가 있었다. 어느 날 그 아내가 민규의 간병인을 향해 불쑥 물었다.

“그래. 이 총각은 산재 처리는 됐고?”

“아 됐겠지요. 그러니 나도 쓰는 거고.”

산재라는 단어가, 등을 돌리고 누워 있던 민규의 귀에 화살촉처럼 날아와 꽂혔다. 그것이 산업재해의 준말이라는 것 말고는 아는 바가 없었다. 병원의 행정직원이 내려와, 산재처리를 할 것인지를 물었다.

회사 담당자가 두고 간 명함으로 연락을 해보았다.

“어 잘 있죠?”

담당자는 마치 못 들을 목소리라도 들은 듯한 태도로 그를 대했다.

“일간 한번 들를게요.”

민규는 비로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의 행정직원에게 혹시 산재가 되는 거냐고 물었다. 직원은 그런 것은 스스로 신청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병실의 다른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의견이 갈렸다.

“빨리 알아봐. 걔네들이 그렇게 만만한 애들이 아니야.”

옆 환자의 보호자는 혀를 끌끌 찼다. 민규의 사건 경위를 알게 된 병실 내의 환자와 보호자들이, 산재가 될 것이라는 쪽과 어림도 없다는 쪽으로 나눠졌다. 민규는 당혹스러웠다. 지연이 까페에서 듣고 온 얘기를 했다. 어렵사리 꺼내놓는 눈치였다.

“거기 사람들 말로는, 아무래도 조작 실수 아니냐고들.”

중환자실에서 회사 담당자가 하고 간 말이 그제야 떠올랐다. 보험에 들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 그 남자가 했던 말의 주어는, 민규와 함께 떨어진 자동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