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연재

4회

촬영을 하는 동안 그는 두번의 겨울을 보냈다. 그리고 그때마다 심한 동상에 걸렸다. 진구에게는 한켤레의 신발밖에 없었는데, 밑창이 해져 눈길을 걸으면 금세 발이 젖었다. 진구의 동상을 걱정해주는 사람은 할아버지밖에 없었다. 촬영이 중단될 때마다 자신의 잠바를 벗어 진구의 발을 덮어주었다. 할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는 성우 출신이었는데, <형구네 고물상>을 찍었을 당시 나이가 고작 마흔살밖에 되지 않았다. 그는 분장실에 앉아서 마흔살의 아저씨가 칠십살의 노인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했다. 할아버지는 분장이 다 끝나면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그에게 주곤 했다. 사탕을 건네받는 순간 그도 박형민에서 진구가 되었다. 할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는 스물두살에 성우가 되었는데 처음 맡은 역이 노인정의 노인3이었다. 대본에는 노인7까지 있었다. 잔소리가 많은 노인 역을 해낸 뒤 오랫동안 라디오 극장에서 할아버지역만 해왔다. <형구네 고물상>은 텔레비전 드라마 데뷔작이었다. 그리고 그 드라마를 계기로 죽을 때까지 드라마에서 할아버지 역을 맡았다. 심지어 마지막으로 한 역할은 증조할아버지도 아니고 고조할아버지였다. 그가 <형구네 고물상>을 잊지 않게 된 데에는 할아버지의 역할도 컸다. 텔레비전을 틀면 언제나 할아버지가 있었으니까. 어떤 드라마에서든 할아버지에게는 손주들이 있었으니까. 그 배우가 폐암으로 사망했을 때 그는 장례식장에 갔다. 발인하는 날 아침이었다.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건물 밖에서 사람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고인의 관이 나오자 그는 먼발치에서 묵례를 했다. “민지를 보니 할아버지도 보고 싶네요. 뵙고 싶어도 이젠 그럴 수 없지만요.” 그는 말했다. 사회자가 방청객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는 할아버지 역을 맡았던 분은 배우 김인기였다고 알려주었다. 오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방청객들 사이에서 아, 하고 안타까운 탄성이 들렸다.

사회자는 그에게 왜 그후로 드라마를 찍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고물상 앞에서 찍은 가족사진을 다시 한번 들여다봤다. “드라마를 찍지 않은 게 아니라 찍지 못했다는 게 맞는 말일 것 같아요. 더이상 기회가 없었거든요.” 방송국에 오기 전 그는 사회자가 이런 질문을 하면 원래 제 꿈은 배우가 아니었어요,라고 대답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옛 사진들을 보니 그런 거짓말들을 생각해온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형구네 고물상>이 종영되고 몇군데서 드라마 출연 제의가 왔지만 계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추운 게 싫어요. 여름에만 찍을래요. 아니면, 부잣집 아들을 시켜주세요. 그의 말을 들은 PD들은 생각했다. 드라마 하나로 뜨더니 배가 불렀군, 하고. 방송국에는 그가 건방지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그는 일곱개의 광고를 찍었다. 드라마 출연료와 광고료로 그의 어머니는 마당 딸린 작은 집 한채를 샀다. 방이 두개였고, 화장실이 대문 옆에 붙어 있는 낡은 주택이었다. 새로 등장한 컬러텔레비전도 샀다. 그는 주산학원도 다니지 않았고, 태권도학원도 다니지 않았다. 어머니가 가게에 나가고 없는 동안 텔레비전을 봤다. 아무리 기다려도 방송국에서는 전화가 오지 않았다. 김PD도 더이상 어머니 가게에 오지 않았다. 뭐가 잘못된 걸까? 그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단지 겨울에 찍는 게 싫다고 말했을 뿐인데. 단지 가난한 아이 역할을 하는 게 싫었을 뿐인데. 또다시 동상에 걸리는 게 무서웠을 뿐인데. 그러던 어느날, 텔레비전을 보다 그는 뭐가 잘못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흑백과 컬러는 달랐다. 컬러텔레비전이 보급되었고 이제는 연속극들도 다 컬러로 방영되었다. 그리고 그 연속극마다 귀여운 아이들이 있었다. 두 볼이 빨개지는 것도 귀여웠고, 흰 이를 드러내며 웃는 것도 귀여웠다. 자신에게는 없는 얼굴이었다. 그게 뭘까? 한참 생각하다 그는 한 단어를 떠올렸다. 생기. 그래, 그 아이들에게는 생기가 있었다.

드라마가 끝나고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진구라고 불렀다. “어릴 때는 그게 몸서리치게 싫었어요. 드라마는 한참 전에 끝났는데 아무도 저를 형민이라고 부르지 않았거든요.” 한번은 진구라고 부르던 반 아이를 때려 코피를 쏟게 만든 적도 있었다. 한살 어린 역을 맡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진짜 나이를 잊곤 했다. 심지어 같은 반 아이들도 그를 동생 취급하곤 했다. “학교 앞에 호떡 파는 할머니가 있었는데 그 앞을 지나가면 큰 소리로 진구야 하고 불렀어요. 그러고는 늘 호떡을 공짜로 주셨죠. 그 호떡을 먹을 때마다 체할 것 같았어요.” 할머니가 실망할까봐 그는 늘 호떡을 맛있게 먹는 척했다. 그가 학교 친구들에게 본명 대신 진구라고 불리던 데에는 어느 문구 회사와 찍었던 광고도 한몫을 했다. 2단으로 된 필통 광고였는데, 당시에 서너명 중 한명은 가지고 있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제품이었다. 필통 포장지에는 그의 사진이 새겨져 있었다. 진구도 갖고 있는 필통! 이란 문구와 함께. 그 포장지는 그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바뀌지 않았다. 크레파스 포장지에도. 연필 포장지에도. 학교 앞 문방구에는 진구의 얼굴이 새겨진 문구용품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심지어 진구가 필통을 들고 있는 포스트가 붙어 있기도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는 등하굣길에 진구의 얼굴을 매일 봐야 했다.

“그런데 진구의 성이 뭐였는지 알아요?” 그가 사회자에게 물었다. “글쎄요. 김씨였나. 잘 생각이 안 나네요? 뭐였어요?” 사회자가 그에게 되물었다. “저도 몰라요. 진구의 성이 무엇이었는지.” 그가 진구의 성이 궁금해진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담임선생님의 이름이 진구였던 것이다. 그는 진짜 이름이 진구인 사람을 그때 처음 보았다. 난 박진구인데, 넌 성이 뭐였니? 담임선생님이 그에게 물었다. 그제야 그는 극 중에서 성씨가 무엇이었는지 몰랐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드라마를 찍을 동안 한번도 그게 궁금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형은 형이라 부르고 동생은 동생이라고 부르고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성은 없었어요. 그냥 진구예요. 한참을 생각한 그가 담임선생님에게 말했다. 그런 사람은 없어. 누구나 성이 있다고. 담임선생님이 말했다. “극 중 할아버지 이름만 알면 진구의 성도 알 수 있을 텐데, 할아버지 이름도 생각나지 않더라고요. 사람들이 형구 할아버지라고 부르거나 고물상이라고 불렀던 것 같아요.” 그는 방송에 출연하기로 결심한 다음 작가에게 극 중 할아버지의 이름을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사회자가 대본을 한번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저희도 그게 궁금해서 알아봤는데요. 워낙 오래된 드라마라 필름이 몇개 안 남아서 확인할 길이 없더라고요.”

담임선생님에게 진구의 성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던 날, 그는 학교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어머니 가게로 갔다. 그즈음 그의 어머니는 여고 앞에 분식집을 냈다. 어머니는 남편이 아파서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했다는 분식집의 전 주인에게 비법 양념을 전수받았다. 권리금을 꽤 많이 주고 인수한 가게였다. 그는 꼬챙이에 어묵을 꽂고 있는 어머니를 말없이 한참 쳐다보았다. 뭐? 국수 삶아 오뎅 국물에 말아줘? 그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용돈 필요해? 그가 고개를 저었다. 엄마, 진구는 성이 뭐였어? 김씨야? 이씨야? 그가 물었다. 그의 어머니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글쎄, 하고 대답했다. 진구는 진구지. 그냥 진구. 그의 어머니는 얼른 김밥 세줄을 말아 그의 책가방에 넣어주었다. 주산학원 늦겠다. 얼른 가. 김밥은 혼자 먹지 말고 친구들하고 나눠 먹어. 그는 네, 하고 크게 대답했다. 그건 진구라는 캐릭터에게서 배운 거였다. 언제나 크게 대답할 것! 드라마 작가를 처음 만났을 때 작가가 그에게 해준 말이기도 했다. 진구라는 아이는 할아버지가 부르면 언제 어디서나 큰 소리로 대답하는 아이란다, 하고. 그는 그날 주산학원에 가지 않았다. 학원까지 걸어가다 그날이 수요일이라는 게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수요일은 주산학원에서 암산 시험을 보는 날이었다. 암산 시험만 보면 바보가 된 것 같았다. 그는 학원을 지나쳐 계속 걸었다. 학교가 보였고 그는 다시 학교로 들어갔다. 교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빈 교실에 앉았다. 그는 가방에서 김밥을 꺼내 한줄을 먹었다. 밥에 참기름을 듬뿍 넣어서 고소했다. 그냥 진구라니. 그게 뭐야. 그는 김밥을 씹으면서 생각했다. 맛있겠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담임선생님이 서 있었다. 드실래요? 그가 말했다. 담임이 그의 앞자리에 앉았다. 선생님. 진구는 진구예요. 그냥 진구. 그가 말했다. 그래? 그렇구나. 담임선생님이 김밥 두개를 한꺼번에 입에 넣는 걸 보고 그도 김밥 두개를 입에 넣었다. 근데요. 선생님. 그가 김밥을 씹으면서 말했다. 밥풀이 튀었다. 저는 박형민이에요. 그냥 형민이 아니라 박형민이요. 뭐가 웃긴지 갑자기 담임선생님이 웃기 시작했다. 밥풀이 그의 얼굴이 튀었다. 그러니? 난 박진구란다. 그냥 진구가 아니라 박진구. 담임선생님이 말했다. 선생님의 말을 듣자 그는 갑자기 배가 고파지는 것 같았다. 김밥을 허겁지겁 먹었다. 그날 저녁에 그는 밥을 두그릇이나 먹었다. 반찬은 김치찌개뿐이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것 같았다. 그러더니 일년 만에 이십 센티미터가 자랐다. 얼굴에 여드름이 나기 시작했다. 중학생이 된 뒤로 아무도 그를 진구라고 부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