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연재

41회

 

   정다래

 
 
 

   무슨 말을 하라는 건지 모리겠네. 너그 아버지를 집에 두고 내가 서울에 이렇게 오래 있을 줄은 몰랐구나. 집에 너가 내려가 있다니 안심은 되지마는 너도 바쁘고 일이 많을 텐데 이리 오래 니 자리를 비워도 되냐? 너는 지난 몇년 동안 숫제 집에 오지를 않더니 아버지가 혼자 있게 되니 집에 왔구나. 고맙고나. 내가 있을 때 왔시먼 니가 좋아허는 새알 팥죽도 끓여주고 고구마순 김치도 담가주고 할 것인디. 니가 거기 있다 하니 니 아버지 밥 같은 것은 걱정 안 해도 돼서 좋다만 니가 마음이 쓰이네. 내가 빨리 내려가야 니가 니 일을 볼 것인디. 나는 다 나은 거 같은디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니 셋째오빠가 나를 지 집에 데려오더니 내 집에 안 보내주네. 나를 집에 안 보내기로 니 형제들이 다 합심을 한 거 같어야. 내가 여기 있으니 식구들이 이제 여기로 오는구나. 나 집에 좀 보내도라…… 하면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다 아직은 안 돼요,라고만 한다. 처음엔 지금 가면 보름 있다가 또 검사받으러 와야 하는데 그러면 누가 또 차 가지고 데리러 가야 하고 어쩌고 하면서 여기 가만있는 것이 지그들 도와주는 것이라네. 보름 지나 병원에 다시 가서 상태도 다시 검사받고 하고 나서는 한달 있다 또 와야 된다면서 안 보내주고…… 한달이 지나니 전체 건강검진을 받을 날짜를 받아놨다고 하면서 안 보내주고……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핑계를 대면서 집에 안 보내주네. 여기 있으니 편하기는 허다. 너거 아버지 땜이 잠 깨는 일도 없고 입맛 짧은 양반 오늘은 뭐 히서 자시게 하나 고민할 것도 없고 일생에 이렇게 편해본 적이 있나 싶어야. 허지만도 편한 것만이 대수냐. 밭에도 가보고 노인정에도 나가보고 싶다. 니 셋째 올케가 밥 차리놓으면 그거 먹고 셋째 출근하고 며느리도 일이 있으니 나가먼 텅 빈 집에 앉어 있다가 서 있다가 그런다.

 

   지금쯤은 인자 너도 알게 되었겄네. 어느 때 너그 아버지 주무시다가 어디로 사라지지야? 그거 숨는 것이다. 여태 뭐슬 그르케나 못 잊어서 그러는 건지 모르겄다. 참말로 안쓰런 일이다. 그런 지 오래되었다. 너그 아버지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난 뒤부터인 거 같어. 막내 대학 가던 해 그해에는 아버지가 다섯번을 쓰러져서 나는 그때 너그 아버지를 잃는 줄로만 알었어야. 그해 그렇게 넘기고는 뇌경색으로 쓰러지거나 하지는 않았는디 잠자다가 잠구새가 생기더만 무슨 꿈을 꾸는지 헛손질을 하다 고통스러운 소리를 냄서 벌떡 일어나서는 어디론가 숨는다. 정신이 들먼 암것도 기억을 못히야. 기억을 못하니 첨에는 나한티 엠한 사람 잡는다고 안 힜냐. 쓸데없이 너들한테 말허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는디…… 너희 아버지 앓는 병도 그때는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인데다 그것이 꼭 발작 난 사람처럼 온몸을 떨기도 하고 별안간 없던 힘이 생겨서 사람을 밀치고 하니깐 너거 고모가 사람들이 간질 같은 것으로 잘못 알고는 소문낼 수도 있담서는 내 입단속을 시켰네. 너 고모 말을 듣고 보니 그런 오해를 받으먼 너그들 혼인할 때에 괜한 말이 붙을까 싶어서 너그 아버지가 밤에 자다가 그리 숨어다니는 것은 내가 입을 다물었구먼. 약을 자시기 시작함서는 크게 쓰러지거나 하진 않았응게 그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졌고 잠구새하고 숨고 그럼서도 본인은 기억을 못하고 그게 또 그때뿐으로 그때만 넘기면 암시랑토 안 해서…… 그르케 나만 알고 있던 것을 인자는 너도 알았겠구나. 놀랐겠구나. 나도 그맀다. 자다가 깨보니 너그 아버지가 안 보이서 헛간의 변소로 소변보러 가싰나 생각하고 기다려도 들어오는 기척이 없어 이상허네 싶어 밖으로 나가서 헌이 아버지, 헌이 아버지…… 불러봉게로 너그 아버지가 마루 밑에 숨어 있다가는 나를 보더니 입에 손을 대면서 조용히 하라면서 어서 도망가라고…… 그게 시작이었는데 그때 놀란 마음이 지금도 생생허네. 마루 밑에 숨었던 것을 아침에는 기억을 못히야. 장독대의 큰 장항아리 속으로 숨었을 때는 내가 찾지를 못허고 어디 있어라오, 함서 집을 빙빙 돌고 돌다가 넘어져서 무르팍이 깨져 피를 흘리고 있는디 너그 아버지가 장항아리 속에서 나오더니 여그서 뭐하냠서 어서 피하라고 내가 막고 있을 테니까 작은 문으로 빨리 빠져나가라고 소리를 치는디 내가 혼자서 얼마나 무서웠겠냐. 내가 병원에 다시 가보자, 안 그러믄 아이들한테 말해야 쓰겄다고 엄포를 놔서 같이 병원에도 많이 다녔다. 별 효험을 못 봤다. 의사 말이 너그 아버지는 잠을 자는디 뇌는 깨어 있다고 허더라.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 나는 지금도 이해 못헌다만 그렇다는데 어쩌겄어. 뇌경색 땜에 잡수고 있는 약 탓일 수도 있다는디 그 약은 너그 아버지 뇌 속에 있다는 점만 한 석회질이 뇌수 속을 떠다니지 못하게 고정시켜주는 약이라는디 그걸 끊으면 그것이 움직여서 혼수가 온다는디…… 약을 끊을 수도 없어 지금까지네. 너그들 몰래 뇌 사진도 수없이 찍어보고 수면장애 검사도 수없이 받어보고 했어야. 그때만 지나면 또 암시랑토 않어서…… 세월이 지나고 기력이 쇠해지니 그 빈도도 줄고 강도가 약해지고 나도 인자 인이 백여서 받아들임서 살게 되었는디…… 결국은 너가 알게 되네. 내가 너들 보러 서울 가서 이틀 사흘을 못 넘기고 개밥 줘야 한담서 집으로 돌아오고 한 이유이기도 허다. 크게 놀라지 말고 다음 날이 되먼 아버지, 영양주사 맞게 해드려라. 숨어다니느라 나름 온 힘을 다 써서 맥이 빠져 다음 날엔 종일 누워 지내제? 읍내에 임철수 내과라고 있는데 거기 가면 아버지가 맞는 영양주사 있어. 삼만원짜리, 오만원짜리, 칠만원짜리 있는데 좋은 거 맞게 해드려라. 그러믄 한 며칠은 기운이 좀 있을 것이고 니 지내기도 수월할 것여.

 

   암것도 안 해도 밤이 오고 아침이 와야. 젊은 날엔 잠이 모자라서 등만 대면 잠에 곯아떨어지곤 했는디 인자 잠잘 시간이 많아지니까는 항시 깨어 있는 거 같어야. 아버지가 뭔 잠을 그리 깊이 자냐고 누가 업고 가도 모르것다고 했었는디 인자는 깊은 잠이 안 들어서 기척이 다 들린다. 셋째가 새벽 운동 나간다고 문 여는 소리, 니 올케가 세면장에서 손 씻는 소리들이 다 들려. 니 올케는 사람이 참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야. 늙은이가 이리 오래 방 차지하고 있으니 싫을 것인디 내색 한번 안 햐. 성경 공부를 하러 간다고 나갈 때마다 어머니, 뭐 드시고 싶은 거 없으세요? 들어오면서 사올게요, 한다. 암것도 안 하니 먹고 싶은 것도 없어. 한낮에 현관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볼 때가 있는데 한발 나가볼까 허다가도 이 문 닫히면 다시 열 자신이 없어서 가만 닫는다. 나는 아파트 같은 데서 살라고 해도 못 살겄어. 문 여는 것도 어찌나 어려운지 겨우 익혔다. 집들도 모양새가 똑같으니 어디가 어딘지를 모르겠고. 현관문 열고는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엘리베이터도 혼자 타본 적이 없으니 타기도 겁나. 게다가 내가 보행기 없이는 잘 걷지를 못허는데 계단을 올라갈 수가 있나 내려갈 수가 있나. 종국엔 나가봤자여, 생각하며 현관문 도로 닫고 마는데 하루 지나서 또 열어보게 되는 건 뭔지 몰라야. 암것도 헐 일이 없으니 누워 자다가 일어나다가 허다보면 인자는 참말로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버렸구나 싶어야. 너무 오래 살고 있는 것 같어서 맴이 안 좋아. 집에 가고 싶다. 너가 거기 있다 허니 더 가고 싶구나. 너는 어려서부터 나보다 아버지를 더 좋아하고 그맀제. 내가 이리 말하면 너는 또 예? 내가 언제요? 할 테지. 서운해서 하는 말 아녀. 그게 뭐 서운할 일여? 어려서부터 너가 아버지를 따르고 좋아한 게 사실인디. 세상의 어떤 어미가 딸내미가 자기보다 아버지를 더 따른다고 서운해하것냐. 아버지랑 서먹해하는 딸들도 많더만 니가 아버지를 잘 따르니 그것도 내 복이제.

 

   지난겨울부터 이상하게 밥만 먹으면 속이 쓰리고 아프더라. 읍내 약국에 가서 약을 지어 먹어보다가 별 차도가 없어서 은행 옆의 병원에서 사진을 찍어봤는디 의사가 첨에는 별일 아니라고 나이 들먼 다 소화도 안 되고 여기 아펐다 저기 아펐다 하는 거라고 하더라. 언제부턴가 병원에 가면 의사들이 나도 아는 소리만 헌다니까. 소화 안 된다고 하면 음식을 서른번은 씹어서 삼키세요, 밥 먹고 바로 눕지 마세요, 하루에 십분이라도 걸으세요, 큰 소리 내서 웃거나 아니면 손바닥으로 박수라도 쳐보세요…… 그런다. 다 아는 소린데 하라는 대로 하게 되지는 않어. 그것도 귀찮을 때가 많다. 병원에서 조제해준 약을 먹어보고 이삐가 따로 마련해서 보내준 좋다는 것들도 먹어보고 해도 나아지는 게 없어서 그 병원에 다시 갔더만 위 사진을 또 찍어보고는 위에 뭐가 보인다면서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하더라. 이제 와서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하냐고 따진게로 그것도 시원하게 말을 안 해줘. 보호자랑 함께 오든지 하라나 어쩌라나. 보호자라…… 너그 아버지가 나보다 나이가 두살 많은 노인인디 나한테 말을 안 해주먼서 너그 아버지한테 말해줄 것도 아니어서 매일 아침마다 전화하는 셋째한테 말을 한 것이다. 셋째는 이름에다 효 자를 넣어 지어서 그런가 효자여. 아침에 출근하면 아버지한테 전화부터 한다니까. 뭐 딱히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녀. 옆에서 들으면 아버지 잘 주무셨어요? 어머니는 별일 없으세요? 두분 다 감기 조심하셔야 합니다…… 뭐 그런 말들. 아침 일찍 어디 나갈 일이 있어도 셋째한테 전화 올까봐서 그거 받고 나가니라고 늦을 때도 있어야. 셋째가 출근해서 매일 집으로 전화하는 거 회사에서는 알려나? 내가 회사 사장이믄 셋째한테 전화세 물리것구먼. 셋째가 아침마다 그리 전화를 하니 비밀이 유지가 안 되어야. 너그 아버지나 내가 읍내 병원에 입원할 일이 있을 때마다 너그들한테 들키는 건 다 셋째 때문이여.

 

   너그 아버지가 산으로 들로 새를 잡으러 다니던 때다. 엽총을 소지할라믄 무슨 시험도 보고 교육도 받고 허더만. 생전 시험 같은 것은 보지도 않은 사람이 귀찮지도 않은지 기필코 그 과정을 통하더랑게. 너도 기억나지야. 집에 한동안 엽총이 있었잖어. 왜 이런 게 집에 있냐고 너그들이 위험한 거니 반납하라고 해도 하는 척만 하고는 도로 집으로 가져오고 가져오고 그랬어야. 주변 산에 멧돼지들이 너무 많이 생기니깐 사냥 기간을 정해서 그 기간에는 멧돼지를 잡아도 된다믄서 관에서 엽총을 빌려주기도 했다. 그렇다고 너그 아버지가 멧돼지를 잡아오는 것도 아니여. 멧돼지는 무슨…… 꿩 한마리도 못 잡는당게. 그리도 엽총을 메고 한나절씩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다가 들어오곤 했제. 왜 새 한마리도 못 잡고 맨 빈손으로 오냐고 하면 기껏 한다는 소리가 새는 잡아서 뭐하냐고…… 말이 되냐. 그러믄 뭐하러 잡으러는 가냐고? 새 잡으러 간다고 총까지 메고 나가서는 빈손으로 돌아와서 잡아서 뭐하냐니. 한번은 새 잡으러 간다고 엽총을 들고 나갔는데 신작로에서 금산 양반이 너그 아버지한테 엽총을 줘보라고 하더니 여기 정말 총알이 들어 있는 건 아니제? 하면서 방아쇠를 당긴 일이 있었다. 너거 아버지가 만류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그 양반이 방아쇠를 당겨버렸어. 새나 멧돼지를 잡으라고 있는 총알이 너그 아버지 허벅지에 박혔다. 지금 생각해도 참말 아찔한 일이네. 그때 너그 고모한테 금산 양반 거의 초상날 뻔했어야. 너그 고모 알지 않냐. 너그 아버지 일이라면 끔찍하게 여기는 고모한텐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제. 혹여라도 내 동상 다리가 상해서 못 걷게 되먼 금산 양반은 두 다리 못 쓰게 해놓겠다고…… 아이구 고모도 참. 그때 일 때문에 너그 고모 돌아가실 때까지 금산 양반하고는 말도 안 섞었어야. 정작 너그 아버지는 금산 양반이랑 스스럼없이 지냈는디도. 그 양반이 잘한 것은 없어. 너그 아버지 오른쪽 다리 봐봐라. 아직도 그때 수술 자국이 있당게. 유독 다리에 힘이 없는 것도 그때 총 맞은 영향도 있것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