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회
형민은 다른 학부모들에게 연락해서 다 같이 병원에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가 아내에게 비난을 들었다. “우리는 사죄하러 가는 거야. 병문안 가는 게 아니라고.” 아내는 말했다. 딸에게 사건을 들은 직후, 아내는 자살을 기도한 아이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그쪽 부모는 우리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어. 그냥 고소를 하겠다고.” 그러니 우선은 찾아가서 사과를 해야 한다고 형민의 아내는 말했다. 상대방이 용서를 해주지 않더라도 매일매일 찾아가 사과를 해야 한다고. “그럼 하영이도 데리고 가?” 형민은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 생각은?” 형민의 아내가 되물었다. 솔직히 형민은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나라면 내 자식을 그렇게 만든 아이의 얼굴을 보고 싶을까? 보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또 그런 이유로 사과를 하러 오지 않는다면 그건 더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잘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형민은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가 조심스럽게 딸에게 물어보았다. 어떻게 하고 싶은지. 형민은 딸에게 그걸 물어보는 게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십대 아닌가. 형민의 생각을 읽은 듯 아내가 딸에게 말했다. “미안해. 넌 아직 어리거든. 그런데 엄마 생각엔 이런 판단을 못할 만큼 어리지는 않아.” 하영이는 고개를 돌려 형민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떴다를 여러번 반복했다. 형민의 딸은 어릴 적부터 엄마한테 혼날 때면 형민을 보면서 그렇게 눈을 끔벅거렸다. 아빠, 도와줘. 그런 신호였다. 형민은 고개를 저었다. 한참을 가만히 있던 딸이 천천히 말을 했다. “무서워요. 무서워서 못 가겠어요. 나중에, 나중에, 갈게요.” 형민의 아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고. 하지만 오래는 못 기다려준다고. 형민의 아내가 말했다.
형민은 오래간만에 아내의 차를 운전했다. 그 차는 이혼하기 전 해에 샀던 것인데, 차를 사고 너무 좋아서 일주일에 한번씩 셀프세차를 했다. 형민은 세차장에 가서 세차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목욕을 한 뒤, 점심으로 냉면이나 비빔국수를 먹던 일요일이 그리웠다. 차는 지저분했다. 하지만 형민은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이젠 아내의 차니까. 병원 인근의 사거리에 도착하자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차들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앞에 사고가 났나?” 형민의 아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오분이 지나고 십분이 지났다. 형민은 만약 사고가 났다면 아무도 다치질 않았길 기도했다. 그래도 부서진 차량 잔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되도록이면 늦게 수습이 되길 바랐다. 그래서 계속해서 차가 서 있기를. 조금이라도 늦게 병원에 도착하길. 딸이 무섭다고 말했을 때 형민도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었다. 솔직히 아빠도 무섭단다. 너만 그런 건 아니란다. 그렇지만 형민은 용기를 내야 했다. 아버지니까. 형민은 와이퍼를 작동해보았다. 움직이는 와이퍼에 맞춰 고개를 흔들었더니 조금은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 비가 오거나 눈이 왔으면. 형민은 폭설이 내려 도로에 고립되는 상상을 해보았다. 형민은 대학시절에 산악부에 가입한 적이 있었다. 산악부 모집이라는 포스터를 보자마자 어린 시절에 반복해서 꾸었던 꿈이 떠올랐다. 폭설이 내리는 날 산장에 고립되는 꿈이었다. 꿈속에서 성인이 된 형민은 벽난로 앞에 앉아 젖은 등산화를 말리고 있었다. 어째서 그런 꿈을 반복해서 꾸었을까? 그게 궁금해서 형민은 즉흥적으로 동아리에 가입했다. 그리고 등반 한번 해보지 못하고 신입생 환영회를 끝으로 탈퇴를 했다. 형민이 다닌 대학교의 주변에는 낮은 산이 하나 있었는데 야밤에 그 산을 한바퀴 도는 것으로 신입생 환영회를 대신했다. 십팔년째 내려온 전통이라는 것이었다. 준비물은 랜턴과 사발면. 그리고 뜨거운 물을 담은 보온병이었다. 밤 열두시에 학교 정문에 모여 출발했다. 산에 들어서기 전에 모두들 고개를 들어 보름달을 보았다. 산은 낮은 동산이었고 그래서 힘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새로 산 등산화 때문에 형민은 뒤꿈치가 아팠다. 그렇게 두시간을 걷다 어느 정자에 도착했다. 거기서 사발면을 먹었다. 선배들이 막걸리를 가지고 와서 다들 막걸리도 한잔씩 마셨다. 그리고 각자 자기소개를 했다. 이름, 나이, 고향. 그리고 전공. 그런 것들을 말하고 나자 산악회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마디를 했다. 지금부터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을 한가지씩 고백한다. 회장은 그게 산악회의 전통이라고 했다. 그래야 한 가족이 된다고 회장은 말했다. 형민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신입생들이 한명씩 돌아가면서 힘들었던 일을 고백했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이야기, 사업에 실패해서 반지하로 이사를 가야 했던 이야기, 어머니가 유방암에 걸려 오랫동안 투병을 한 이야기. 형민은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은 동기들을 바라보았다. 단 한명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형민은 자기 차례가 다가오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 옆에 앉은 동기가 이야기를 시작할 때 형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배가 어디 가느냐고 묻자 형민은 오줌이 마렵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자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 목소리가 위쪽에서 웅성웅성 들려왔다. 형민은 오줌이 마렵지 않았지만 억지로 오줌을 누었다. 그리고 근처 바위에 앉아서 고백의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한참 지난 후 정자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박형민 어디 있냐? 형민이 대답했다. 여기 있어요. 그날, 형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다고 하자 그럼 산악회에 가입할 수 없다고 회장이 말했다. 산악회 회원들은 생사를 같이 해야 하는 동지이기 때문에 이런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고 했다. 형민은 그 말이 무서웠다. 그래서 회장에게 이런 변명을 했다. 사실 저는 등산을 싫어해요. 그리고 형민은 정자에 혼자 남았다. 거기서 아침 해가 뜰 때까지 기다린 다음 하산을 했다. 형민은 움직이는 와이퍼를 보면서 아내에게 그때 일을 이야기했다. 딸의 잘못을 사과하러 가는 길에 왜 그 일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후로 형민은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혼자서 그 정자에 갔다. 뜨거운 물을 넣은 보온병과 사발면. 그리고 막걸리 한통. 그걸 정자에서 먹으면서 형민은 허공에 대고 아무 이야기나 중얼거려보았다. 아내가 와이퍼를 끄면서 대답했다. “정신 사나워. 그만 봐.” 그리고 핸들을 잡고 있는 형민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나도 무서워. 당신만 그런 거 아니야.” 신호가 한두번 더 바뀐 다음 차들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형민은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면서 도로를 살펴보았다. 사고가 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병원에 도착한 다음 형민은 화장실에 가서 오줌을 누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손을 닦았다. 로비로 나와 보니 아내가 입원한 아이의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형민은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 섰다. 아내가 통화를 마칠 때까지 형민은 로비에 있는 텔레비전을 보는 척했다. 한참을 통화한 뒤 아내가 형민에게 다가왔다. “아직 응급실이지만 그래도 의식은 돌아왔대.” 아내가 울먹이며 말했다. “다행이야.” 형민이 아내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다행이야, 다행이야, 다행이야. 형민은 아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그 말만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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