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회
그때 병원에 가서 허벅지에 박힌 총알을 빼내는 수술을 하는디 너그 아버지가 병원에 가면서 하는 말이 너그들한테 절대로 알리지 말라는 것이었제. 좋은 일이먼 모를까 나쁜 일을 서울서 바쁘게 살고 있을 너그들한테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야 내 마음이기도 하지. 그러고 보니 우리는 언제부턴가 서로한테 아그들한테 말허지 말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하고 살었네. 그르케 며칠 용케도 숨겼는디 매일 아침마다 전화하는 셋째가 며칠 전화를 내가 계속 받으니까는 하루는 아버지 좀 바꿔주세요? 그리서 내가 놀라서 아버지 나갔다, 하니까는 어디요? 묻는데 내가 바로 뭐라 대응을 못하고는 어버버하다가 꼬치꼬치 묻는 셋째한테 이실직고했다아. 숨길 게 따로 있지 이런 일을 숨기냐고…… 셋째한테 무척 혼났네. 자식들한테 이렇게 혼나기도 하는구나, 묘한디도 한편으로 든든하기도 허고. 그렇게 언제부턴가 나와 너그 아버지 보호자가 너그들이 되었구나. 그날로 셋째가 내려와서 읍내 병원에 들러 의사를 만나더니 나한티 와서는 별거 아니라고 위에 작은 혹이 하나 생겼는데 그거 내시경으로 집어내면 된다고 했어. 서울에 가서 형제들하고 상의하고 날짜를 잡을 것이니 그때 서울로 오면 된다고 해서 일이 그렇게 된 것이다. 내게는 수술도 아니고 시술이라고 하더만. 금식을 허고 병원에 가서 여러 검사를 하고 수면내시경을 했는데 내가 잠이 안 들었다. 내가 나이가 많어서 잠드는 약을 조금 썼다가 잠이 안 들어서 나중에 더 썼다고 하는디도 내 정신이 말짱했어. 소리도 다 들리고 무엇이 입속으로 들어와 내 속을 휘젓는데 무척 아프고…… 시골서도 위내시경을 할 때 아프지 않게 잘허더만 큰 병원이라는 곳이 왜 이렇게 나를 아프게 하는가 싶어서 내가 막 손을 내젓고 의사를 밀치고 그랬다. 안정을 시켜드려야겠다,는 말이 들리더니 이삐가 들어오더라. 이삐가 엄마, 부르면서 내 손을 꼭 잡더니 엄마, 아파도 얼른 해버려야 끝나요. 엄마가 계속 못 하게 저항하면 시간만 더 길어져. 거기 누워서 내가 막막한 마음에 나 큰 병 걸렸냐? 물었다. 아니야. 위에 눈곱만 한 폴립이 있는데 그거만 떼내면 돼. 폴립이라니 그건 또 뭐대여 생각했으나 이삐가 아무것도 아니어요, 위가 예민하잖어요, 거기에 붙어 있는 거 떼어내는 거니까 안 아프면 이상한 거지. 엄마 나 낳을 때 생각해봐. 그거에 비하면 그야말로 코딱지 떼어내는 거나 마찬가지지 안 그래? 그 와중에도 코딱지라는 말에 웃음이 나오려고 했어야. 이삐는 참 말도 잘혀. 내가 저 문밖에 있을 테니 아무 걱정 말고 의사가 하는 대로 얼른 해버리고 만나자, 하더라. 이삐 말 듣고서야 의사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고 가만있었다. 눈을 딱 감고 죽이든지 살리든지 알아서들 하시오, 하고 있었어. 눈을 떠보니 여기저기 침대에 사람들이 누워 있더라. 속은 메스껍고 눈앞은 어질어질한데 바로 옆에 놓인 침대를 누가 끌고 가길래 여기가 어디요? 물으니까 수면내시경 회복실이라고 하더라. 그때야 내가 수면에서 막 깨어난 것을 알았다. 정다래 씨 보호자 분 회복실로 오세요,라는 방송이 들리더니 곧 이삐가 엄마, 하고 나타났어. 보호자라는 말. 그 말에 이삐가 나타나니까 아, 저 아이가 나 정다래의 보호자구나. 나는 이제 끝났네, 싶더라. 시술은 잘 끝났다고 했다. 이틀 더 입원을 했고 퇴원하면서 일주일 후에 검진을 받으러 오면 된다고 했어. 집에 갈란다고 하니 보름 있다가 검진받으러 또 와야 하는데 집에 뭐하러 가느냐고 만류해서 그거 지나면 집에 갈 수 있겠지, 했더니…… 집에를 안 보내주드라. 위에 생긴 폴립인지 뭔지를 떼내는 일은 잘 끝났다면서 왜 집에를 못 가게 하는지 모르겠어서 셋째네에 다른 식구 오기만 허먼 나 집에 좀 보내도라고 하다가 저번 일요일에 너 큰오빠랑 막내가 나누는 얘기를 들었구나. 점심 먹고 나른해서 누워 있었는데 내가 잠든 줄 알고 이 이야기 저 이야기들 하는 거 귀에 들리는데 내 위에서 떼어낸 거 그거가 4센티짜리 암세포였다는 걸 알었다. 막내가 1센티만 더 컸어도 내시경으로는 안 되었을 거라고. 조심하면서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얘기하는 소리 들었어. 내가 암이라고? 싶은 것이 막막해짐서 전신에서 힘이 쭉 빠져버리야. 너그들이 죄다 암것도 아니라고 위에 무슨 뾰루지 같은 게 생겨서 그거 떼어내는 거라고 감쪽같이 나를 속여서 나도 그만 깜박 속아버렸네. 막내가 어머니 지금 상태로 집에 보내면 절대 안 된다고 하더만. 내가 암이었구나. 그러게 그게 암것도 아니었으믄 밥 먹을 때마다 속이 뒤집히는 거같이 메스껍고 쓰리고 그랬을까. 위내시경으로 지질 수 있는 것이었으니 다행이었지, 생각하는데 그건 내 나이 때문에 그리 한 모양이더만. 나이 든 몸엔 암세포도 진행이 더디니 그거를 기대해보자고 이삐가 그러더라. 니 큰오빠는 어머니 불쌍해서 어떡하냐…… 이러고. 무슨 비밀회합을 하듯이 나직이 주고받는 말들을 들었네. 다 듣고 말었어.
아침에 셋째가 출근하면서 어머니, 헌이가 어머니한테 아버지 얘기 듣고 싶대요, 하면서 이거 온종일 어머니가 말씀하셔도 되는 녹음기니까요. 어머니가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하세요. 이렇게 틀어놓을 테니까 말씀 다 하셨다 싶으면 여기 있죠? 이거만 탁 눌러두세요, 하고 출근했다.
내 몸의 것이 암인 줄 알었으믄 손을 못 대게 했을 건디. 건드려서 더 퍼질 수도 있고 그래서 고생만 하다가 간 사람들 봐왔다. 내 나이가 몇이냐 병원에 왔다 갔다 험서 남은 시간 보내고 싶지 않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너그들한테 폐 안 끼치고 끝까지 병원 안 가고 집에서 지내다 가는 것이다. 이것도 욕심이랑가. 너그 아버지 먼저 보내는 것도 내가 바라는 일이었는디 그것이야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닝게. 너그들이 하는 말 듣고 며칠은 내가 암이라고? 마음이 묵직허더니 지금은 그러면 뭐? 싶네. 그냥 너그덜 원하는 대로 여그 있으라면 있고 저그 있으라면 있고 그럴란다. 내가 어쩌겄냐. 후회되는 일은 하나 있다. 너거 아버지한테 혼자 있을 때 밥 지어 먹는 법을 익히게 했어야는디 그러지 못한 거. 다른 것은 몰라도 전기밥솥에 밥 안치는 것은 알게 했어야 하는데 그걸 못했네. 옛날처럼 밥 짓는 것이 어려운 일도 아니고 쌀을 씻어 물만 맞춰서 메뉴를 누르기만 하면 되는디 그거를 알려주지 못했네. 토마토주스 갈아 먹는 법도 좀 일러주고 할 것인데 못 그랬다. 일러드렸으면 금방 익혔을 것이다.
지난날에 내가 너그 아버지한테 놀란 게 두가지 있는디 하나가 경운기를 사왔을 때다. 부속품들이 다 따로따로여서 그걸 다 조립을 해야 해서 처음엔 대체 저걸 어쩌려고 사왔나 근심거리였는디 너그 아버지가 마당에 멍석을 깔고 거기에 앉어서 설명서를 이리 보고 저리 보고 하더니 한나절 만에 경운기를 다 조립하고는 나를 부르더니 나와보라고 하더라. 크게 표시는 안 했지마는 솔직히 그때 놀랐어야. 몸체 따로 바퀴 따로 뒤에 물건 싣는 것 다 따로따로인데 그걸 한나절 내내 들여다보고 틀렸으면 다시 하고 또 들여다보고 하더니 종내는 척 하니 튼튼한 경운기를 조립해내더라. 깜짝 놀랐고나. 저이한테 저런 기술이 있었네, 싶은 것이. 너도 알다시피 나는 뭐 맞추는 것을 전혀 못하잖여. 하다못해 장항아리 줄 세우는 것도 나는 반듯하게 못해서 줄 안 맞추고 여기저기에 둥글게 세워두잖여. 뚜껑을 닫아도 내가 닫으면 뭔지 삐틀어진 느낌이니 원. 나는 살면서 뭔가 너그 아버지가 미심쩍을 때면 그때 부속품들을 다 연결해서 버젓하게 경운기를 조립해놓고 나를 부르던 때를 생각헌다. 그뿐이냐. 그때까지 나는 너그 아버지가 경운기를 운전하는 걸 본 적이 없는디 책을 보고는 이리 해보고 저리 해보더니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의기양양하게 경운기를 몰고 대문을 나가더라고. 뿌듯하고 자랑스럽더라. 너그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다. 지금이야 인터넷인지 뭔지로 기차표도 못 끊는 사람이 되었지마는 동네에 새 농기구들은 죄다 너그 아버지가 먼저 구해서는 조립허고 시범으로 운전하고 그맀어야. 이양기도 너그 아버지가 처음, 잡화기며 트랙터도 너그 아버지가 처음 사들여서 퍼뜨렸어야. 그래서 10년 전쯤에 너그 아버지가 운전을 배우겠다고 했을 적에 내가 너한티 못 배우게 말려달라고 전화한 것이다. 너는 에이, 아버지가 설령 배운다고 해도 면허증을 어떻게 따요? 그 연세에요? 했지마는 나는 알거든. 너그 아버지는 운전면허증 따는 거 아주 쉬웠을 것이여…… 필기시험인지 뭔지 그거가 장애라면 장애였겄지. 니가 내 말 듣고 기를 쓰고 말리니까 운전면허증 따는 거 포기했다마는 나중에 생각하니 좀 미안하더라. 그때 배우게 뒀시믄 이 세상 왔다 감서 운전도 해보고 좋았을 것을 그르케나 말렸네, 싶은게.
또 한가지 너그 아버지가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집을 비울 때였다. 이것은 너그 고모도 모르는 일일 것이다. 너그 아버지는 집을 나가면서 나간다는 말이 없었어야. 어디 간다는 말도 없었지. 아버지가 집을 비웠다는 것을 나는 쌀독이 있는 광 천장 모서리에 꽂혀 있는 봉투를 보고 알었다. 봉투 색이 누런색일 때도 흰색일 때도 있었는디 아버지가 밤이 돼도 집에 안 들어오면 광에 가서 그 천장 모서리를 보면 거기에 봉투가 꽂혀 있었고나. 봉투 안엔 돈이 들어 있었다. 돌아올 때까지 그걸 쓰고 있으라는 것이었제. 넉넉하진 않었어. 시골 살림이니까 돈 들어갈 일은 막으면 막을 수 있었응게. 다만 너그들 학교에 낼 돈이나 비상으로 쓸 수 있을 만큼은 넣어두고 나갔다.
한번은 그 봉투에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있었다.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돈이 크니까 꼭 너그 아버지가 안 돌아올 생각으로 집을 나간 것만 같어서 봉투를 가지고 너그 고모를 찾아가 내팽개치며 너그 아버지 또 집 나갔다고 고모가 찾아서 데리고 오라고 울고불고했네. 그 무렵에 자꾸 편지가 왔어. 내가 글을 모르니까 어디에 누구한티서 왔는지 알 도리는 없는디 그 편지를 읽는 너그 아버지 얼굴이 나로서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내가 뭔 편지냐고 물으니까는 얼버무리는 것도 이상했고 잊을 만하면 편지가 또 오는 것도 이상했고 그 받은 편지들을 어데다 두는지 암만 찾아도 찾을 수 없는 것도 이상했어야.
편지가 오기 전에 한번은 우물에서 배추를 씻고 있는디 누가 대문을 밀고 빠꼼히 마당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내가 누구요? 하니까 대문 안으로 들어오려던 사람이 얼른 뒤로 몸을 빼야.누군가? 싶어서 손에 묻은 물을 옷자락에 닦음서 대문 쪽으로 나가봤더니 동네에서도 읍내에서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 있더라. 무릎까지 닿는 일자 치마를 입고 고동색 재킷을 입고 안에다가 노랑 블라우스를 입고. 지금도 기억하네. 내가 누구 찾아왔냐고 물으니까는 입암으로 이사를 왔는데 너그 아버지 함자를 대면서 그분이 여기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지나가다 들러본 것이라고 하더라. 입암이면 집에서 걸어서 한시간 되는 거리인데 지나가다 들르다니 둘러대도 빤히 들통날 말을 하는 게 이상해서 근디 누구냐고? 내가 재차 물으니까 그이는 지 이름은 대주질 않고 너그 아버지를 서울에서 만난 적이 있는디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담서 어물거리는 것여.
서울?
너그 아버지가 서울에 갔다가 왔을 때가 가장 오래 집을 비웠을 때라는 게 떠올랐어. 가장 오래 집을 비웠는데 그전에 집을 비웠을 때마다 너그 아버지가 가져오던 돈도 없었고 운동화라든지, 자전거라든지, 너그들한테 줄라고 도시에서 본 새것을 사오지도 않았다는 생각이 났다. 뜻밖에도 북하고 북채를 사가지고 왔던 거도 생각났어. 나나 아그들한테는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것을 들고 오기는 그때가 첨이었다. 게다가 집에 온 뒤에 너그 아버지가 거의 보름쯤이나 앓아누워 있었어.
아이들 아버지는 지금 집에 없고 누구라고 전해주냐고 물으니 그냥 돌아가려고 해서 내가 붙잡고 다시 물었다. 누군지 이름을 알려줘야 전해줄 것 아니냐 하니까는 그제야 김순옥이라고 하데. 그때까지는 순한 얼굴이었는데 갑자기 표정이 쌔해지면서 김순옥이 왔다 갔다고 전해달라고 하고는 가야. 저물녘에 내가 너그 아버지한테 김순옥이 누구요? 물으니 너그 아버지가 타고 온 자전거 위에서 내리다가 넘어질라고 할 정도로 놀라더만. 이름만 듣고도 말이다. 입암으로 이사 왔다는디요? 하니 순옥씨 아버지가 차천자를 따랐던 사람으로 입암에서 살다가 서울로 갔는데 뭔 일로 감옥까지 가고 거그서 다시 못 살게 되어서 입암으로 왔다고 하길래 내가 순옥씨 아버지 말고 순옥씨가 누구냐고요? 물었더니 입을 딱 다물어버리야. 나는 너그 아버지가 누구보고 씨라고 부르는 걸 처음 들었네. 그것도 여자한테 말이다. 순옥씨가 당신한테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하던디요? 뭔 도움을 줬는디요? 물어도 너거 아버지가 다시는 말을 안 히야. 거짓말은 못허는 사람잉게. 그 일이 있고서부터 일하다가도 너그 아버지가 순옥씨라고 했던 말이 영 맴에 걸리더라고. 순옥씨? 생각하면 이상하게 불안하고 일하는 것이 다 헝클어져버리고 그랬다. 봉투에 어느 때보다 큰돈이 들어 있는 걸 확인하는디 바로 그 순옥씨가 떠올랐어야. 그 뽀얀 얼굴과 검은 눈과 치마 밑의 종아리가. 천둥이 치는 것같이 뭣시 들이닥치는 것 같더라고. 두려운 마음이 드니까 맨 먼저 떠오르는 게 너그 고모라서 달려갔던 것이지. 아버지를 붙들고 올 사람은 너그 고모뿐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너그 고모는 정말 힘이 쎄다이. 꼭 내 말 땜시가 아니라 진작에 어디서 뭔 말을 들었는갑더라. 서울서 갈치조림집을 내서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입암으로 돌아왔는디 쫄닥 망해서 왔다더만. 딸 때문이었는갑더라. 대학 다니던 딸이 용공 분자로 몰려서 댕기던 학교도 그만두고 감옥에 가게 생겨서 갈치조림집을 다 정리하고 겨우 딸을 빼내 숨어 살라고 입암으로 돌아왔는디 그 딸이 또 어디로 도망을 갔다던가 어쨌다던가. 내가 여적 확인을 안 해봤는디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그 딸이 김순옥 같어. 쪼그만 동네니까는 뉘집 갱아지가 새끼 몇마리 낳았는디까정 다 알잖여. 어찌 돼얐든 너그 고모가 참말로 집 나간 지 한 열흘 되는 날쯤에 니 아버지를 데꼬 왔시야. 너그 고모는 여태 그때 어디서 너그 아버지를 데꼬 왔는지 말을 안 해주고 돌아가셨다. 아주 지독한 분여.
하여튼 그날 밭에 갔다 와서 봉게로 너그 아버지는 마루에 앉고 너그 고모는 토방에 앉어 있더라. 두 사람이 말도 안 허고 기냥 앉어만 있어서 나도 수건을 벗어서 손에 들고 감나무 밑에 앉었다.
―내가 죽는 꼴을 볼라믄 알어서 허소.
갑자기 너그 고모가 찬바람을 일으키며 쌩하니 일어서더라. 너그 고모 화났을 때 하는 버릇 있잖여. 손으로 치마라든지 옷고름이라든지 그런 걸 확 잡아채서 꼬듯이 여미지. 그때 너그 고모는 치마도 아닌 몸뻬를 입고 있었는디 그걸 잡아채듯이 앞으로 모았다 풀더니만 너그 아버지를 싸늘하게 쏘아보고는 대문으로 나가버려야. 너그 고모가 너그 아버지한테 그리 싸한 표정 짓는 거 첨 봤다. 너그 아버지가 누님! 부름서 너그 고모를 따라가려다가 다시 마루에 주저앉더라. 내가 감나무 밑에서 일어나서 광으로 가서 봉투를 가져와 너그 아버지 앞에 내던졌구먼.
―나 이거 필요 없어라오!
나도 사납게 내뱉고는 너그 고모처럼 찬바람을 일으키며 부엌으로 갔다. 저녁때가 다 돼서 밥을 지어야 해서 광에 양석 푸러 가고 우물로 물 길러 가고 텃밭으로 호박 따러 가고 이리저리 부산하게 움직임서 보니까는 너그 아버지가 한 식경이 지나도 그 자리에서 꼼짝을 안 해야. 어느 틈에 너 큰오빠가 학교 갔다 와서 아버지, 부르더니 옆에 앉더라. 부자가 암 말도 안 허고 또 그렇게 마루에 걸터앉아 있기만 해야. 둘째가 들어와서 형이 그러고 있으니 형 옆에 앉고 셋째가 와서 작은형 옆에 앉고…… 너는 어디에 있었나 모르겠네. 그렇게 사방이 어두워졌시야. 내가 저녁 밥상을 차려서 마루에 내놓았다. 너그 큰오빠가 아버지 진지 잡수세요, 하니까 너그 아버지가 응, 그러자…… 하면서 밥상에 앉더라. 우리 식구가 암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르케 저녁밥을 먹었던 날이 있었고나. 된장찌개 냄새가 코에 맡아지고 너그들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를 듣는데 눈물이 나더만. 너그 아버지를 두고 인자는 내가 집을 나가버리까 싶은 것을 참니라고 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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