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연재

44회

 

   박무릉

 
 
 

   누군데 나를 찾아왔소?

 

   누구?

   아……

   이게 뭐요?

   책?

   아버지가 나에게 이걸 갖다주라고 했다고?

   이제 나는 눈이 안 보이서 글을 더 못 읽는다고 했는데?

   그나저나 자네 아버지는 잘 있소? 본 지가 꽤 되었네. 어디 아픈 건 아니고? 못 와도 한달에 한번씩은 왔었는데. 그 사람 대신 딸이 나를 찾아올 줄은 몰랐군. 작가 딸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딸이오?

 

   호칭을 어찌하먼 좋겠나? 처음 보는데 이름을 막 부를 수도 없는 일이고, 그짝이라고 하는 것도 좀 그렇고 작가 선생? 그건 내가 발음해본 적이 없어서 어색하네. 자네라고 해도 되겠나? 여기서는 자신보다 나이 작은 아랫사람한테 자네라고들 합니다.

   말을 놓으라고?

   말을 어떻게 놓겠소. 처음 본데다 작가 선생인디. 자네라는 호칭이 별로 마음에 안 들어도 우리가 또 만날 것도 아닌 것 같으니 그렇게 하지. 자네가 지은 책을 읽어서 그런가 영 낯선 사람 같지는 않네. 그거 아시오? 자네 아버지는 나한티 자네 말을 참 많이 했소. 내가 시큰둥해도 자네 새 책이 나오면 여기 가져오곤 했지. 사인된 것도 있었는데 기억 안 나나? 하긴 사인해준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왜 그런 표정인가? 아 내 이름을 이제야 기억한 모양이구먼. 기억하기로 하면 기억할 것이네. 매번 사인된 책을 가져왔으니 자네가 미리 알아서 해줬을 리는 없고 자네 아버지가 매번 부탁했을 테지. 한번쯤은 내 이름을 쓰면서 이 양반이 누군데? 궁금해하지 않았겄나.

   아…… 갑자기 웃어서 미안하오. 옛날 일이 생각나서 말이오. 내가 딸은 뭐 하냐고 물었을 때 말이네. 자네 아버지는 자네를 두고 글씨 쓴다고 했소. 그래서 나는 처음에 자네가 정말 글씨 쓰는 서예가인 줄 알았지 뭔가. 벼루에 먹을 갈아 붓에 묻혀서 쓰는 서예 말이네. 둘째 딸은 약사라고 하던데 큰딸은 글씨를 쓴다니 참 특이하구나 생각했어. 이런 말, 차별하는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는데 내가 안목이 넓지 못해 여태 여자가 서예를 하는 것을 보지 못해 상상이 안 가더라고. 그래도 내 딸도 아닌데 글씨를 쓴다고 하니 그런가보다 생각하고 지나쳤는데 한번은 자네 아버지가 신문 접어온 걸 바지 뒷주머니에서 꺼내 펼쳐놓더만. 딸이 신문에 나왔다면서. 펼쳐서 보니 자네더라고. 내가 놀라서 물었네.

   ―이 사람이 자네 딸인가?

   자네 아버지가 그렇다고 하더군. 신문을 보니 J읍에서 발행하는 지역 신문이었네. 작가 탐방 같은 그런 기사였네. 자네 고향이 여기라 기자가 J읍에서 자랄 때 이야기를 여러번 물어보더만. J읍에서 학교 다닐 때에 대해, 그때 기억나는 선생님에 대해, 어린 시절에 대해, 여기 살고 있는 자네 부모님에 대해…… 그때 인터뷰하기 싫은 거 억지로 했지요? 기자의 질문도 좀 시시했지만 거기에 답하는 자네 말도 길 가던 사람이 하는 말과 큰 차등이 없었네. 하나 기억나는 건 어렸을 때 헛간에서 물것에 물려가며 책을 읽었다고 말한 것은 기억에 남네. 왜 헛간에 들어가 책을 읽었느냐 기자가 물으니 형제들이 많아 따로 방을 가질 수가 없었는데 헛간에 들어가 책을 읽으면 아무도 방해를 안 해서라고 대답했더군.

   나는 몸이 이렇게 된 후에 눈에 띄는 것은 다 읽으면서 살았네.

   지금은 읽는 것도 힘들어 몇해 전부터 읽는 건 끊었지만 한때는 이 산골에서 신문을 세개를 구독했다네. 신문 하나 보고 여기까지 배달해달라는 게 미안해서 그 보급소에서 취급하는 신문을 죄다 신청했지. 신문 읽는 게 낙이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야. 나한티 내일이란 새 신문이 배달된다는 의미였소. 한밤중에 깨서 신문 때문에 어서 날이 새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때도 있었소. 나는 그 신문에서 자네를 몇차례 봤어. 그런데 자네 아버지가 가져온 건 중앙에서 발행하는 신문도 아니고 J읍에서 발행된 신문이었소. 내게 보여주고는 그 신문 조각을 다시 잘 접어서 뒷주머니에 넣더라고. 그래서 내가 말해주었네. 큰딸은 글씨 쓰는 사람이 아니라 작가라고. 앞으로 누가 물으면 작가라고 하라고. 자네 아버지는 그게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더만. 자네 아버지는 자네 새 책을 나에게 꾸준히 가져왔네. 내가 항상 뭔가를 읽고 있으니까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을 수도 있고 내가 자신하고는 다르게 자네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해서인지도 모르지. 자네 아버지가 자네가 쓴 책을 읽는 거 같진 않더만. 속도가 느리지만 천천히는 읽을 수 있지 않느냐, 딸이 쓴 책이니 읽어보라고 했더니 자네가 쓴 책을 읽을수록 자네하고 멀어지는 느낌이라 읽지 않기로 했다고 했소. 자네가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더만. 거짓말이라고는 모르던 딸인데 글을 읽어보면 거짓말이 많다고 하더라고. 내가 그건 거짓말이 아니고 상상력이라고 해주었지. 내가 제대로 말해준 건가?

 

   책장에 책이 많다고?

 

   이 책들은 내가 자네 아버지한테 사다달라고 해서 내가 구한 책들이니 내 책들이네. 자네 아버지가 나에게 책을 가져오기 시작한 건 자네 책들이 자네 아버지 집에 내려오고 난 뒤네. 딸의 집에 책을 더 쌓아둘 수가 없어서 집으로 내려보냈다고 하더만. 그 책들을 무작위로 한박스씩 가져왔네. 책들을 읽다보면 책 안에 또다른 책 이야기들이 나와서 그것들을 메모해뒀다가 자네 아버지에게 구해달라고 부탁하면 자네 아버지는 읍내의 책방에 메모지를 전했지. 며칠 후에 다시 책방에 들러 책들을 찾아다가 내게 가져다주곤 한 게 이십여년 되다보니 이렇게 쌓였네.

 

   거기 서 있지 말고 여기로 와서 좀 앉지 그러나? 보다시피 나는 걸을 수가 없네. 의족을 하는 일도 귀찮아. 전쟁이 끝난 후에는 이 집에 드나드는 고양이와 함께 이렇게 살았다고 하면 이상한가? 모르긴 해도 그 고양이도 수십대는 이어졌을 거야. 여기 드나들다가 새끼를 낳고 새끼가 자라서 같이 다니다가 언제부턴가 어미는 죽었는지 나타나지 않고 또다른 새끼들이 나타나는 걸 계속 지켜봤어. 꼬리가 잘린 고양이도 있었고 발가락이 여섯개인 고양이도 있었네. 때때로 집 어디서나 고양이가 보일 정도로 많을 때가 있긴 하나 아무래도 먹을 게 부족하니 하나둘 사라지고 찾아오는 놈만 찾아오지. 내 몸이 이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남아 있나 생각했지. 읽는 거 듣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네. 보는 것도 한계가 있었어. 내 시야라고 해봐야 저 아래까지뿐이지. 전쟁 끝나고 가끔 사람들한테 전해 들었네. 저 아래 과교동 사람이 장성에서 왔다고 하거나 장성에 산다는 말을 들으면 전쟁 후에 나, 박무릉을 본 적이 있냐고 묻는다는 말을 들었지. 내 이름이 박무릉이라고 하면 박무릉? 어디서 들었는데 하다가 아…… 저 과교동 사람이 난리 후에 박무릉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자네 아버지가 내 행방을 묻는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네. 그럴 뿐 자네 아버지는 본인이 나를 찾아오지는 않았네. 하긴 나라고 해도 그랬을 거네. 자네 아버지는 내가 이렇게 살아 있으니 찾아오면 나를 만날 수 있었을 텐데. 보다시피 나는 몸이 이 꼴이라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자네 아버지를 찾아갈 수는 없었지. 자네 아버지가 나를 찾아오기 전에는 자네 아버지를 만날 수가 없었지. 내 행방을 궁금해하는 것도 알겠고 나를 직접 찾아오지 않는 마음도 알 것 같았네. 그게 내 마음이기도 했으니까. 내가 자네 아버지였어도 그럴 것이라. 서로를 구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만나서 뭐하겠나. 놀라지 말게. 다 전쟁 때 이야기지. 그때 생각을 하면 내가 여그서 다 살고 나면 남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게 되네. 어떻게 살아야 후회가 덜할지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들 하지. 나 같은 사람에게도 해당이 되나? 어떤 사람들은 말이네. 환경과 상황이 앞날을 결정지어버리더라고…… 그런데 뭘 생각한단 말인가. 어떤 물살에 쓸려가는 줄도 모르고 쓸려갈 수야 없으니까 생각을 계속해야 된다고? 어떤 물살인지 알아서 뭘 하나…… 바꿔놓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자네 아버지가 내 안부를 묻기만 하고 나를 찾아오지 않았던 시간들을 나는 이해하네. 그렇게 흘러갔어도 내가 뭐라겠나. 그런데 어느해인가 자네 아버지가 대학생이었던 셋째 아들을 데리고 찾아왔지. 그때는 이미 자네 아버지나 나나 나이를 한참 먹어버려서 아무것도 문제가 안 되더만. 무엇 때문에 그리 오래 만나기를 꺼려 했는지 허망하기조차 했네. 자네 아버지가 나타났을 때 왔구나, 했어. 나도 몰랐는데 내가 언젠가 한번은 자네 아버지가 내게 올 것이라고 여겼던 모양이더라고. 기다리기까지 했던 모양이더라고. 내가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같이 말하고 있군. 그렇게 늦게 깨달아지는 것들이 있네. 그립고 반갑고 어쩌고 하는 그런 마음이라기보다 매듭이 풀리는 느낌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