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회
셋째 아들이 누구냐고?
내가 그걸 어찌 아나.
알면 자네가 더 잘 알지.
셋째 아들이라고 했으니 자네한텐 셋째 오빠겠구먼.
그때 세상이 흉흉했지. 나나 자네 아버지는 목숨이 오가는 전쟁을 겪고 보니 그후의 세상이 흉흉해도 그때 같기야 할라고 싶은 마음이 밑자락에 깔린 사람들이네. 그게 어찌 바뀌겠나. 그 마음을 요즘 젊은이들한테 백날 말해봐야 뭔 소용이겠어. 쿠데타 나고 대통령이 된 양반이 거의 이십년 동안 그 자리에 있어서 나는 그 양반이 영원히 대통령을 하려나보다 했는데 부하한테 총 맞고 서거하는 일이 생기더만. 그뒤의 일이지 싶어. 긴급조치인지가 발동돼서 학교에 휴교령이 내리고 보통 사람도 다섯명 이상 모이지도 못하게 하고 그랬지. 그 아들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던가보더만. 뭐에 쫓기고 쫓기다가 집으로 내려온 아들을 데리고 자네 아버지가 여기를 찾아왔어. 아들은 허리를 펴지도 못허고 구부정히 있었지. 통증이 심한지 이마를 잔뜩 찌푸리고 있는데도 이목구비가 훤했지. 키는 자네 아버지보다 더 컸네. 그 아들을 거의 업다시피 부축하고 내 앞에 나타났어. 전쟁통의 갈재에서 헤어지고 이십몇년이 지나 찾아온 것인데 마치 어제도 그제도 만나온 것 같더만. 자네 아버지는 옛날처럼 나를 형이라고 부르더니 대뜸 아들 좀 맡아달라고 했어. 아니 정확히는 숨겨달라고 했네. 혈기만 왕성해서 세상 무서운 줄을 모르는 놈이 날뛰다가 잡혀가서 고문당하고 얻어맞아 허리까지 부서지고 수배 중인데 이대로 또 잡혀 들어가면 살아남지 못할 거라며.
그이는 어찌 살고 있나?
뭔 죄를 졌기에 수배를 당했냐 물으니 데모한 죄라고 하더만. 하여튼 그때 그 아들이 여기서 반년쯤 나랑 살었어. 나중에 아들 얘기를 들으니 스스로 집에 온 것이 아니더만. 수배를 받는 중에 학교에 숨어 살았다고. 아버지가 학교까지 찾아올 줄을 몰랐다고 하더만. 몰래 인쇄물을 돌리다가 학교 캠퍼스에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자네 아버지를 발견하고는 학교 담을 넘다가, 그 학교 담이 고궁으로 이어지는 담이었다고 했네, 거기 기와에 옷자락이 걸려 도로 학교 쪽으로 떨어지는 통에 인쇄물이 다 흩어지고 소란스러워져서 자네 아버지한테 잡혔다고 허데. 그때 매일매일 신문을 샅샅이 읽어도 없었던 얘기들을 그 아들한테 많이 들었지. 서울의 남영동인가 하는 곳에 데모하는 대학생들 잡어다가 고문하는 데가 있다는 것도 알었지. 거기서 얻어맞아 허리를 다쳤는데 그 고궁 담을 넘다가 떨어지는 통에 또 다쳐서 꼼짝을 못하게 되어 자네 아버지한테 끌려 집으로 내려온 모양이더만. 자네 아버지는 아침이면 밥통과 국과 반찬들이 들어 있는 찬합을 자전거 뒤에 싣고 여기에 왔었네. 사흘에 한번쯤은 새 소금을 지고 와서는 솥에 소금을 달궈서 자루에 넣어 아들 허리 밑에 넣어주곤 했네. 달군 소금이 허리를 낫게 한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겄지. 효험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이상한 일이지. 지금 내가 허리가 뻑지근하면 소금을 달구고 있다니까. 부자가 말을 안 섞었어. 자네 아버지는 아들 앞에서 입을 달싹도 안 했네. 아들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면 자네 아버지가 일어서버리더만. 한번은 내가 자네 아버지에게 왜 아들하고 말을 안 하느냐고 물으니 머리통이 다 큰 놈이라 말을 섞어봐야 이길 수가 없다고 했어. 아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세상에 분노가 치밀어서 죽을 것 같다고. 그러니 알아듣고 싶지 않고 그래야 자기가 버틸 수 있다고 했어. 전쟁도 지나갔는디 이 시간도 지나가지 않겠냐고 그때까지는 아들을 지켜주는 거만 생각할란다고 했어.
그런데 우리 이야기를 알아서 뭐하려고?
아…… 자네는 작가지.
지금 취재하는 것인가?
아니라면 뭐 하러?
아버지를 알고 싶어서 그런다고?
응?
뇌가 잠을 자지 않는다고?
그것도 병인가?
자네 아버지 뇌가 잠을 자지 않는 것과 내가 뭔 관련이라도 있나?
어쨌든 이렇게 자네를 보니 좋군. 사람을 만난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어. 어제는 내가 119에 전화를 했지. 둘러볼 것 없네. 아무것도 타지 않았어. 불이 나서 119에 전화한 게 아니라네. 여기에 사람이 나타나게 하는 가장 빠른 길은 119에 전화하는 것이라네. 소방차를 몰고 오지 않으면 자주 하겠는데 소방차를 몰고 오니 미안해서 자주 하지는 못하네. 어제는 한달이 지나도록 사람과 말을 섞어보질 못해서 나로서는 참다가 한 전화요. 소방대원이 와서 내가 짜장면을 시켜서 같이 먹자고 했소. 돈은 내가 내겠다고. 여기까지 짜장면이 배달되는 세상이 올지는 몰랐네. 자네가 서 있는 자리에서 같이 짜장면을 먹었네. 탕수육도 시켜줬지. 소방대원 청년 입가에 짜장면이 묻어서 웃기도 하면서. 짜장면을 다 먹고 소방대원이 다시는 이런 전화하지 말라고 하면서 갑디다. 입가에 그대로 짜장을 묻히고 갈 것 같아 닦아주려고 가까이 와보라 했더니 그냥 가더만. 짜장면 값도 놓고 말이네. 그게 바로 어제 일인데 오늘 또 자네가 찾아왔으니 내일 또 사람을 보게 되면 연달아 사흘 사람을 만나게 되는 셈인데 그런 행운이 있을까?
자네 아버지는 전쟁이 나기 전에 만났소.
철도청에서 철길을 수리하는 사람들을 뽑는다는 공고가 났을 때였는데 지원을 하려면 J역 사무실에서 서류를 받아 와 작성을 해야 했소. 나는 철도원이 될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네. 게다가 행정직도 아니고 기차가 안 다니는 시간에 레일을 점검하고 연결고리들을 조여주고 고장 난 게 있으면 수리를 하는 임시직이었거든. 나는 나의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소. 나에게는 형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 형을 교육시키는 일만도 벅차했지. 내가 공부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소. 그때는 내가 젊었고 어쨌든 아버지 말은 듣고 싶지 않아서 그 공고를 보자마자 역에 갔었소. 서류를 접수하고 필기시험을 치르는 절차를 따라야 했으니까. 농사짓는 일로만 먹고살기가 힘든 때라 지원자가 많았소. 서류를 가지러 역 사무실로 갔는디 자네 아버지가 서 있었지. 자네 아버지 손에 서류봉투가 들려 있었소. 나처럼 취직을 하고 싶어서 서류를 받으러 온 사람인가보다, 생각했는데 내가 나올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더만. 그러고는 나를 따라오지 않겄나. 길이 같은가 했는데 그런 것 같지 않아서 한참을 가다가 내가 뒤돌아서서 왜 나를 따라오느냐고 물으니 서류를 같이 작성하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소. 그 표정이 절실해서 거절을 못 하겠더라고. 어차피 작성해야 할 서류라서 그러자고 했지. 마땅히 앉아 있을 데가 없어서 다시 역으로 갔어. 냄새나는 대합실 의자에 불편하게 앉아서 서류를 작성하는데 자네 아버지가 내 이름을 알고 있더라고. 나를 무릉이 형,이라고 부르더라고. 내 이름을 어찌 아느냐고 하니 J읍에서 아는 게 가장 많은 사람을 어찌 모르겠느냐 합디다. 내가 J읍에서 아는 게 가장 많은 사람이라고? 기분 나쁜 말은 아니었지. 나는 진심으로 공부를 하고 싶었소. 아버지만 아니었으면 이 고장을 떠났을 것이고 그럼 전쟁도 다른 데서 겪었을 것이라 인생이 달라졌을지도 모르지. 농사꾼 아버지는 내가 형처럼 학교에 가고 싶어할까봐서 노심초사였소. 둘 다 공부를 시킬 처지가 못 되니 아예 어렸을 때부터 나로 하여금 상급학교 진학하는 것은 꿈도 못 꾸게 했지. 공부는 형 하나로 족하다, 너는 집에 남아서 가업을 이어가야 한다,는 게 내가 어려서부터 들어온 말이네. 아버지는 이른 아침부터 나를 논에 데려가 피를 뽑게 하고 산에 데려가 나무를 해서 지고 내려오게 했지. 나는 울분에 차서 그런 아버지 옆에서 매일 책을 봤소. 나무해 오라고 하면 도끼를 들고 산에 가서 나무 둥치에 쾅 소리 나게 도끼를 박아놓고 그 옆에 앉아 책을 봤지. 아버지랑 달구지를 몰고 읍내에 나가야 했을 때는 앞에 앉아 있는 아버지 보란 듯이 뒤에 꼿꼿이 앉어서 책을 봤지. 달구지가 덜컹대는데도 말이오. 나의 그런 모습을 자네 아버지가 지켜본 것 같아. 볼 때마다 내가 책을 읽고 있으니 아는 게 가장 많은 사람으로 생각한 거지. 서류를 작성할 때 보니까 당신 아버지는 한문을 아주 활발하게 썼소. 잘 쓴다고 했더니 아버지한테 배운 거라 하더만. 그런 반면에 한글은 발음하기는 하는데 정확한 뜻을 해독하지 못하기도 해서 내가 서류를 여러번 읽어주기도 하고 때로 빈칸을 채워주기도 했지. 하여튼 그날 서류를 작성한 김에 제출까지 하고 슬슬 걸어오는데 자네 아버지는 무엇으로든 보답을 할 테니 필기시험 공부를 같이하자고 하더만.
시험공부라니?
어떤 문제가 출제될 것인지도 모르는데 무슨 공부를 같이한단 말인가 싶어 내가 어이없이 웃으니까 자네 아버지는 얼굴까지 붉히며 멋쩍어합디다. 무릉이 형은 책을 많이 보고 공부를 많이 했으니 시험에 출제될 예상 문제를 짚을 수 있지 않느냐면서 제발 같이 공부하자고 간절히 말하는데 마음이 흔들렸제. 아버지 앞의 내 모습 같아서 말이오. 게다가 당신 아버지가 그런 제의를 하기 전까지는 필기시험 예상 문제 같은 것을 생각해본 일이 없어서 자네 아버지 말이 신선하게 들리기도 했소. 놀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같이하자고 매달리는 인간도 있구나, 싶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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