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회
왜 그 나무 아래에만 서 있소?
내 모습이 흉하고 무서운가? 모습이 이러니 가까이 오고 싶기야 할라고…… 아버지 얘기를 듣고 싶담서 거리가 너무 머네. 자네가 서 있는 그 나무 이름이 복자기요. 복자기라는 이름 들어봤나? 어딘가에서는 나도박달이라고 부르기도 하지. 복자기 옆으로 쭉 퍼진 것이 계수나무요. 작가이니 복자기와 계수 단풍 드는 거는 꼭 보시오. 여기가 아니더라도 말이오. 몸이 이 모양이라 시간 보내느라고 읽는 거 듣는 거는 할 만큼 했다고 여기는데 어느 책에서도 복자기와 계수나무 단풍 들 때 모습을 묘사한 걸 못 읽었소. 글 쓰는 이들이 참 게으르구나 생각했소. 복자기 단풍 들 때는 참말 어찌할 바를 모르겠소. 운신을 못 하니 사계절 중에 여름 나기가 젤 힘들어서 그만 죽고 싶으먼 맴속으로 복자기 단풍 든 거나 한번 더 보고…… 하는 마음이 생길 정도로 아름답지. 나뭇잎의 붉은빛이 새 새끼 눈처럼 반짝반짝. 다른 나무들 단풍 든 거랑은 비할 수가 없소. 작가이니 복자기 단풍 들 때 일부러라도 숲에 가보시오. 작가 아니라도 단풍 들 때 복자기 자태며 계수나무가 뿜어내는 그 달콤한 냄새를 맡어보면 그 순간만이라도 매여 있는 것에서 놓여날 것이오. 복자기 단풍 든 자태는 먼 디서도 바로 알아볼 수 있을 것이오. 눈부시게 광이 나거든. 내가 복자기다 하고선 뽐을 내고 서 있거든. 야발지다고들 하지. 야발이 무슨 뜻이냐고? 작가가 그걸 나한티 묻네? 사전적 의미로야 얄밉고 되바라지다,요. 복자기를 말할 때 야발지다고 하는 건 워낙 잘나서 얄밉다는 뜻이겠지. 그 옆의 나무는 계수인디 어디서나 잘 자라고 생장이 빠르오. 오색으로 단풍 들 때 빼어나게 아름답지. 계수나무 자태가 눈에 띄기 한참 전부터 냄새가 맡아지오. 그 냄새를 뭐라 해야 할까 모르겠소. 작가라니까 꼭 맡아보고 표현해보시오. 잎사귀에 단풍 들면서 다디단 냄새가 주변으로 스며서는 이 냄새가 어디서 나나 하고 단내를 눈으로 따라가다보면 계수나무 앞에 머물게 되지.
계속 거기 서 있을 건가? 내가 갈 수도 없고 참……
당신 아버지는 학구열이 대단했소. 그 별것도 아닌 시험을 앞두고는 눈을 반짝반짝 빛냈소. 내가 하는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쑥쑥 빨아들이고 익혀서 내가 따라갈 수가 없었다니까. 자네 아버지는 밤에 한시간 반이나 걸어서 여기로 왔소. 바로 그 자리네. 거기 평상에 상을 내놓고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공부랄 것이 없는 공부를 했소. 자네 아버지는 올 때마다 뭔가를 가져왔소. 감자 같은 거, 달걀도 가져오고…… 아, 감자, 달걀! 그래, 자네 아버지 일생의 어느 시간은 늘 무엇인가를 내 집에 가져다놓는 것이기도 했네. 자네 아버지가 셋째 아들을 데리고 와서 숨겨달라고 했을 때 나로서는 이십몇년 만에 자네 아버지를 보는 것이었으나 그동안 자네 아버지는 수시로 내 근처를 왔다 가곤 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네. 전쟁이 끝난 후에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자네 아버지는 나 모르게 이 집을 다녀가곤 했소. 추수를 마쳤을 때는 쌀을 가져다놓고, 감자를 캤을 때는 감자 한포를, 명절 때는 신문지에 싼 고기를 가져다놓고, 겨울 앞에는 두툼한 내복과 털장갑을…… 가져다놓곤 했소. 나는 친척 중의 누군가가 내가 사는 게 안되어 보여 그러는 것이라 생각하고 말았는데 그게 자네 아버지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지. 셋째 아들이 여기 머물 때 겨울이 왔는데 어느날 셋째 아들의 내복과 털신을 가져왔을 때 알았소. 내 내복도 가져왔는데 그해에는 누구도 내 집에 내복을 따로 놓고 가지 않더라고. 그래서 그동안 내 집 앞에 무엇인가를 놓고 갔던 사람이 이 사람이었구나,를 깨달았소. 그 오랜 세월을 말이오. 같이 공부를 했다고는 하지만 그때 나라고 뭐 아는 게 있었던 것도 아니오. 나도 당신 아버지 말 듣고서야 뭔 문제가 출제되려나 생각해서 문제같이 만들어보고 같이 풀어보는 것뿐이었는데 그리 고마워하더라고. 빈손으로 오는 날이 없었지. 고구마라도 몇개 들고 오곤 했소, 어찌 공으로 배우냐면서. 나중엔 더 생각할 거리도 없어서 그만하자니까 자기가 열심히 안 해서 그러냐고 잘하겠다고…… 참 나. 그리 열심히 했는데 불행하게도 시험날도 다가오기 전에 전쟁이 터져서 시험 보는 일이 도루묵이 되었소. 전쟁이 나지 않았으면 우리는 나란히 철도원이 되었을까? 여그서 내다보면 천안 쪽으로 기차가 지나가는 게 보이요. 가끔 그때 생각을 하오. 인생은 모를 일이라 전쟁이 나지 않았다고 해도 또다른 일에 쓸려서 상상도 못 할 어디로 흘러들었을지도 모르지. 지금 모습은 아니겠지.
그 일이 일어난 건 갈재였네.
노령이라고 해야 더 익숙할 것인디. 어디나 사연 없는 곳이 있는가만 이 갈재는 지금도 여기저기 귀신이 출몰하는 걸 봤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죽은 곳이오. 저기를 보시게. 저기가 입암산이고 저기가 방장산이지. 산세가 험해서 빨치산이 숨어들어 활동할 때 이 계곡 저 계곡에서 사람들이 숱하게 죽어나간 곳이지. 맥없는 마을 사람들이 이편한테 죽고 저편한테 죽고 그랬소. 사람들은 일을 볼라고 갈재를 넘을 뿐인데 숨어 있는 자들은 자기들 위치가 들통날까봐 죽여서 계곡 밑으로 굴려버리곤 했지. 그들은 국군한테도 무시무시한 타격을 입혔소. 서로 갈재를 뺏기지 않을라고 했으니까. 갈재가 남도하고 북도하고 경계선인데다 남도로 가려면 그 길뿐이라…… 국군은 갈재를 빨치산한테 넘기면 남도로 가는 통로가 막히기도 하는 것이라 더 치열했소.
응?
차우혁이라고 했나?
그 사람을 자네가 어찌 알아?
아버지에게 들었다고?
우혁이 아니라 일혁일 것이네.
그이가 보통 사람은 아니었지. 홍성이 본적지라고 하기도 하고 김제서 났다고도 하던데 혹자는 그이가 차천자의 서자라는 말도 있었지. 잊을 수 없는 사람이오. 전쟁통인데도 차일혁 같은 이 덕분에 노래도 듣고 그랬네. 전쟁 나고 해 지나고 나서 봄이 왔나 그즈음인데 그때 갈재 빨치산의 기세가 등등했소. 반대편 경찰을 통솔하고 있는 이가 차일혁이었소. 나를 학교에 안 보내준 아버지는 마을 구장이기도 했소. 아, 구장은 그러니까 지금의 이장 격이네. C시로 나가 학교를 다니는 줄로만 알았던 형이 그때 말로 ‘빨갱이’가 된지를 아버지가 알 턱이 있겄나. 그들이 죽창이며 몽둥이를 들고 다니며 의식 교육을 시켜야 한다며 마을의 어린애들까지 줄 세워 산으로 끌고 가는 중에 나를 빼주는 것을 나는 아둔하게도 구장이었던 아버지 영향으로만 생각했소. 나중에 알고 보니 좌익활동을 하던 형이 힘써서 그런 것이었소. 판세는 수시로 바뀌었소. 마을 사람들을 향해 눈을 부라리는 사람들이 빨치산이었다가 국군이었다가 수시로 바뀌어서 빨치산 세가 셀 때는 국군에 협조한 이들이 몰살이고 국군이 셀 때는 그 반대의 조력자들이 몰살이고…… 갈재의 계곡은 끔찍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네. 아버지가 머리를 쓴다고 쓴 것이 형이 좌익이니 나를 경찰 옆에 있게 해야겄다고 생각하고는 나를 차일혁 부대원으로 밀어 넣었어.
그것이 가능하냐고?
안 되는 일이 없던 때였네. 잠업 중학교를 나오고 학교 선생이 되기도 했던 때라네.
전국에서 학도병들이 일어나던 때이기도 했지.
그렇게 차일혁 부대원이 되어서 여기 갈재 전투에 참전했어. 자네 아버지는 그때 징병 문제가 해결이 안 되어서 집에서 잠을 못 자고 노숙을 했네. 숨을 데가 마땅찮으면 나에게 찾아왔어. 내가 차일혁 부대원이 되었다고 하니 자네 아버지가 자기도 부대원이 되게 해달라더만. 손가락이 그리 되어 총을 쏠 수도 없는 일이라 가당치도 않은 일인데도. 나는 자네 아버지가 숨을 데가 없어서 찾아오면 집에서 좀 떨어진 헛간에 있게 하고 먹을 것을 가져다주곤 했지. 자네 아버지는 차일혁 부대원들 주위를 뱅뱅 돌았소. 우리 부대원들을 몰래 따라다녔다니까. 산에서 우리들이 밤새우고 비 맞고 바람 맞고 그럴 때 자네 아버지도 저만큼 숲속에 숨어 있었소. 내가 찾아내서 내려가라고 해도 헛간에 숨어 있는 거보다는 이게 더 안심이 된다고 우기면서. 그러던 어느날 우리 부대가 가극단을 구하는 일이 발생했지.
전쟁 중인데 웬 가극단이냐고?
전쟁 중이라 더 노래가 필요했을지도 모르오. 그 가극단 이름이 뭐였더라. 지금은 이리 기억이 안 나지만 그때는 그들이 공연을 하면 누구라도 가보고 싶어하는 당시 유명한 가극단이 있었소. 눈물의 여왕이라고 불리던 비극배우가 있었는디 그 사람이 단장이었소. 고복수, 황금심…… 그런 사람들이 그 가극단의 단원들이었으니 유명세가 대단했지. 극단 이름을 잊었구료. 무슨 새 이름이었는데. 그 당시 그들의 활동은 대단했소. 황폐하고 피폐했던 때라 가극단이 오면 구름떼같이 사람들이 몰렸지. 아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죽고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불안하게 하루하루를 연명해가다가 가극단의 노래를 듣게 되면 그 끝은 울음바다가 되곤 했지. 그 가극단이 광주에서 공연을 끝내고는 전주로 가는데 갈재를 지나다가 빨치산의 습격을 받은 것이오. 차일혁이 아니었으면 극단 모두 사살당하거나 아니면 빨치산한테 끌려갔을 것이네. 끌려갔으면 어찌 되었을까. 차일혁의 부대의 반격을 당하고 빨치산들은 다시 산으로 들어갔소. 습격을 받아 목숨이 왔다 갔다 한 뒤라 가극단원들은 공포에 떨고 있었는데 차일혁이 눈물의 여왕이라 불리던 그 단장한테 가서 부대원들의 사기를 북돋워달라면서 공연 요청을 했다니까. 방금 전까지 총탄이 빗발치는 전투 속에 있던 단원들한테 공연이라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말이오. 당황한 가극단 단원들한테 차일혁은 통사정을 했소. 그는 괴짜이기도 했소. 성질이 불같은 데가 있었는데 언변이 통쾌하고 적확해서 말 섞었다가 그를 제치는 자를 나는 못 봤네. 빨치산을 토벌하는 게 그의 임무였는데 지금 저 남도의 화엄사 말이오. 그 화엄사를 지킨 사람도 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소. 빨치산들의 은거지는 대체로 산이었소. 그런데 그 산에 나무들이 우거져서 소탕이 어려워지는 철이 되니까 암자랑 사찰을 죄다 불태우라는 명령이 내려졌거든. 화엄사를 지키고 싶었던 차일혁은 부대원들에게 화엄사의 문짝을 떼어내게 한 뒤 대웅전에서 소각하게 하고는 떠났소. 문짝이 없으니 빨치산들이 숨을 수도 없고 총을 쏴도 막힘이 없게 되었으니 목적을 이룬 것이라는 그만의 해석을 내놓았지.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공연을 하느냐고 난색을 표하는 가극단원들한테 차일혁은 계속 부탁을 했소. 이 산속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부대원들을 위로해달라면서 용기를 내달라고 거듭거듭 사정을 했소. 그리하여 어이없게도 방금 전까지 총탄이 오고 간 갈재의 산속에서 가극단원들의 공연이 벌어졌소. 울고 왔다 울고 가는 설운 사정을 당신이 몰라주면 누가 알아주나요. 황금심의 목소리가 계곡에 울려퍼졌지. 믿어지지 않겠지만 사실이오. 대원들이 한 사람 두 사람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하자 산중은 물소리와 노랫소리로 가득 찼지. 알뜰한 당신은 알뜰한 당신은 무슨 까닭에 모른 체하십니까요. 전쟁하고는 조금도 맞지 않는 노래가 산중에 퍼졌소. 전투에 지고 다른 계곡으로 물러난 빨치산들도 그 노랫소리를 함께 듣고 따라 불렀소. 그런 일이 있었지. 알뜰한 당신은 오늘날까지도 이렇게 내 입에 붙어 있네. 살아오는 동안 나도 모르게 그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가 있습디다. 혼자 부르고 혼자 듣는 노래지만 부르고 있으면 회한이 서리지. 같은 민족끼리 무엇 때문에 그렇게 죽기 살기로 총을 겨누고 서로 물어뜯고 죽이고 구덩이를 파고 시체들을 버리고 그랬을까.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도 함께하고 했을 사람들끼리 말이오.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이 계속되진 못했소. 공연을 하고 있는데 빨치산이 기습을 해왔거든. 다시 전투가 시작되었지. 처음에는 공포에 질려 공연을 꺼리던 단원들이 나중에는 전투 중에도 계속 노래를 불러주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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