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회
이게 내가 만든 도마요. 이건 목침이네. 이건 큐브요. 베갯속에 넣기도 하고 탈취제로도 쓴다고 하더군. 이건 편백찜기요. 이거 만드는 과정은 좀 복잡해서인지 재미있소. 도마랑 목침은 만든 지 오래되었는데 이 찜기는 만들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지. 식당에서 이 편백찜기를 이용해서 음식을 쪄 먹는다고 하더만. 숙주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차돌박이 같은 걸 올리고 채소도 올려서 말이오. 편백나무가 이렇게 쓰이게 될 줄은 누가 알았겠나. 이걸 만들어보라고 한 게 자네 아버지지. 먹고살기는 해야 할 것 아니냐고. 자네 아버지를 다시 만나고 난 뒤에 나는 이걸 만들어서 생계를 유지했소. 처음엔 자네 아버지가 편백나무로 도마를 만들기 쉽게 제재소에서 일차 작업을 해서 내가 실어다주었지. 도마를 처음 만들던 날이 생각나네. 물에 닿으면 편백 향이 더 진해져서 물에 넣어뒀다가 꺼내 머리맡에 두기도 했었는데…… 나는 여기에 앉아 편백나무 판을 자르고 다듬으며 한세월을 보냈네. 자네 아버지가 내가 만든 것을 팔 수 있게 읍내 가게하고도 연결을 시켜주었네. 시작은 도마 만드는 것이었는데 내가 재미를 붙이자 다른 것들도 만들 수 있게 살펴주었지. 경추 목침 같은 걸 만들어놓으면 자네 아버지가 챙겨서 읍내의 가게에 가져다주고 이것들이 팔리면 돈을 받아서 내게 가져다주곤 했지. 편백은 불에 잘 타지 않는 나무요. 그건 좋은데 잘 잘리지도 않아서 가공하기도 쉽지 않지. 그래서 목재 귀할 때도 사람들이 잘 찾지 않았는데 지금은 편백이 자랑이지. 살균작용이 뛰어나다고들 알려지고 난 뒤에 편백을 아주 귀히 알더군. 세상의 기준은 이처럼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소. 필요에 따라 변화하지. 당연한 것 아니겠나. 그러니 신념이라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다시 시작된 전투에서 우리 쪽이 크게 이겼네. 부대원들의 사기는 어느 때보다도 등등했지. 산속에서 닭이 삶아지고 주먹밥이 만들어지고 술도 돌았으니까. 음식을 그리 먹을 수 있는 날은 드문 날이지. 나는 숲속에 숨어 있는 자네 아버지가 생각이 나서 내 몫의 닭고기와 주먹밥을 숨겨서 나왔소. 배가 고플 것이라 얼른 주고 돌아오려는 것이었는데 자네 아버지가 몸을 숨기고 있는 곳에 닿기도 전에 음식을 훔치려고 나온 빨치산 몇한테 포위를 당했네. 그들은 내 손에 든 것을 빼앗아 전광석화처럼 먹어치웠네. 그들은 낙오자 같았네. 며칠을 굶었는지 알 도리는 없었지만 음식을 보자 먹어치우는 속도가 너무 빨라 나까지 먹어치울 것 같은 공포가 느껴졌소. 다 먹고는 총부리를 내 귓등에 대더군. 이 밤에 먹을 것을 들고 누굴 만나러 가려는 것이었나를 물었소. 나는 누굴 주려는 게 아니라 숲에 숨어서 혼자 먹으려던 것이라고 했지. 부대원들에게 뺏길까봐 혼자 먹으려던 것이라고 말이네. 내 어수룩한 거짓말을 그들이 믿겠나. 그들의 총부리가 내 턱을 겨누었네. 지금 생각해보면 탄환이 장착되어 있기나 한 건지…… 총알을 아끼기 위해서 사람들을 죽이는 방법이 무자비했을 때였소. 전투 중도 아니고 닭고기를 들고 어딘가로 가고 있는 나를 죽이기 위해 총알을 사용할 리가 있었겠나…… 하지만 이 생각은 훗날 든 생각이고 그때는 여기서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네. 나무가 우거진 숲속에서 위기에 처한 나를 지켜보던 자네 아버지가 더는 숨어 있질 못하고 수풀 속에서 튀어나왔네. 그리 나올 수밖에 없었네. 그들과 내가 자네 아버지가 숨어 있는 그쪽으로 정통으로 향해 가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포로가 되었지. 그들은 자네 아버지의 두 손을 내게, 내 두 손을 자네 아버지에게 뒤로 돌려 묶게 했지. 우리는 등 뒤로 두 손이 묶인 채 그들이 가라는 대로 밤 숲을 걸어가게 되었네. 그들에게 발각된 시간으로부터 한참 흘러서 우리가 어디쯤을 걸어가고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네. 산길에서 넘어지고 숲의 나무에 찢기고 계곡을 타고 내려가기도 하고 오르기도 하였네.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도 알 수 없었지. 어디쯤에선가 고약한 냄새가 풍겨왔어. 뒤에서 우리에게 총부리를 겨누며 길을 재촉하던 그들이 먼저 코를 싸쥐면서 한걸음 물러섰지. 나는 그게 시체 썩는 냄새라는 걸 금방 알았네. 우치리인지 남창골인지에서 빨치산들이 소탕되어 그 시체들이 구덩이 구덩이에 쌓여 있다는 소문이 들리고 형도 거기에서 처형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어. 황망하여 신발조차 제대로 꿰신지 못하는 아버지와 함께 형을 찾으러 갔었지. 그때 내 코를 찌르던 냄새였지. 해가 있을 때는 경찰이 지키고 있어서 근처에 숨어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네. 밤이 깊었을 때 아버지를 따라 시체들이 있다는 계곡을 향해 갔는데 어둠 때문에 앞이 보이질 않았네. 우리가 움직일 때마다 새들이 푸드덕 날아올라서 들킬까봐 조마조마해하면서 나무들이 시커멓게 서 있는 사이사이를 헤치고 갔던 그때 맡았던 냄새였지. 그게 시신 썩는 냄새라는 걸 알게 된 순간 나는 앞으로 한발짝도 나아갈 수가 없었어. 공포도 공포지만 당장 냄새를 참아낼 수가 없었지. 아버지는 형의 시신이라도 찾겠다고 그 냄새를 뚫고 골짜기로 향했지만 나는 뒤따르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지. 눈이고 코고 귓구멍이고 몸에 구멍 뚫린 곳에서 고름이 줄줄 새어나오는 것 같아 자꾸만 팔소매로 얼굴을 훔쳤어. 그때 맡았던 냄새를 내가 어찌 잊겠나. 등 뒤의 그들이 우리가 구덩이를 팠던 곳 아니냐고 목소리를 낮추며 주고받는 소리를 들었네. 그들이 토벌대에 협조하고 부역했다고 색출한 사람들 수십명을 처형하고 그 시신들을 내던져놓은 곳인 모양이었어. 구덩이를 파고 밀어 넣을 여유도 없이 시신들을 계곡에 내던져버리곤 했지. 밤이라 냄새만 맡아질 뿐 눈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나는 알고 있었네. 이 정도의 악취라면 이미 형체는 알아볼 수조차 없고 뼈들이 나뒹굴고 있을 테지. 죽은 이들이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도록 덤불이나 흙으로 덮어놓았을지도 모르나 냄새는 막을 수가 없었지.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네. 자네 아버지라고 별수 있었겠나. 먹은 것도 없을 텐데 어둠 속의 나무를 붙들고 계속 토악질을 했어.
계곡에서 올라오는 냄새에 비하면 토사물에서 나는 냄새는 차라리 신선할 지경이었지. 나와 자네 아버지는 그 역겨운 냄새 때문에 계속 걸으라는 그들의 명령을 더는 따를 수가 없었네. 그들은 우리 때문에 갈 길을 재촉할 수가 없게 된 거지. 우리를 포로로 삼은 빨치산은 세 놈이었는데 그중의 한 놈이 자네 아버지에게 냄새가 올라오는 쪽으로 도망가라고 했네. 그쪽으로 달려가면 살려주겠다면서 말이네. 토악질을 해대던 자네 아버지는 어둠 속에서 나를 찾다가 빨리 달리지 않으면 쏘겠다는 그들의 엄포에 계곡 쪽으로 몸을 돌렸네. 나무와 바위와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길이라 달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네. 어둠 속에서 헤매는 자네 아버지를 보고 있던 놈이 뒤로 묶은 내 손을 풀고 총을 주더군. 계곡 쪽으로 도망치고 있는 자네 아버지를 쏘라고 했네. 두 놈은 양쪽에서 나를 겨누고 있었네. 내가 그들에게 말했지. 지금 여기서 내게 총을 쏘면 그 총소리에 너희들의 위치가 노출될 거라고. 그들이 주춤하더군.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내가 차일혁 대장이 이끄는 부대원 중의 한 사람이라고 말했지. 근처에 차일혁과 그의 부대원들이 있다고 말이네. 그들이 차일혁? 하며 되물었네. 잠깐 흔들리는 것 같더니 내가 차일혁의 부대원인 걸 어떻게 믿냐면서 자네 아버지를 향해 총을 쏠 것을 다시 명했네. 내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자 그들이 자네 아버지를 향해 돌아오라고 했어.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나를 쏘겠다고 엄포를 놓았지. 자네 아버지는 계곡 쪽에서 다시 올라오더군. 내가 그들에게 차일혁 대장이 주변에 있다고 말한 것은 그들을 설득할 요량이었지. 당시 차일혁은 다른 토벌대장들하고는 좀 달랐네. 그는 빨치산을 토벌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오로지 공격만 하는 방법을 쓰지 않았네. 차일혁은 숨어 있는 빨치산들을 설득해서 전향시키기도 했네. 그의 말은 청산유수였네. 그리고 그 자신이 한 말을 지켰네. 총탄에 맞은 빨치산들의 시신을 예를 지켜 묻어주기도 했지. 그 때문에 차일혁이라는 이름은 빨치산들 사이에 빠르게 번져나갔어. 차일혁을 만나면 살아남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도 했지. 그래서 그들에게 내가 차일혁 부대원이라고 한 것이었고 그것이 사실이었는데 그들은 넘어오질 않더군. 나는 그들이 우리를 죽이고 싶으면 총을 쏘면 될 텐데 그러지 않는 걸 보고 우릴 딱히 죽일 생각은 없는 거라고 파악했지. 그들을 설득해서 부대로 돌아갈 수 있으면 모두 다 같이 목숨을 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네. 자네 아버지가 돌아오자 그들은 다시 내 손을 뒤로 묶었네. 냄새가 올라오는 계곡 쪽으로 나를 밀치더니 총을 자네 아버지에게 주었네. 나를 쏘라고 지시하면서 말이네. 어둠 속에서 자네 아버지가 자신은 총을 쏠 수 없다면서 잘린 손가락을 그들에게 보여주더군. 어둠 속에서 벌어진 촌극이었네. 한 놈이 다가와 나를 총부리로 후려쳤네. 얼마나 얻어맞았는지 의식이 가물가물했지. 나는 쓰러지면서 그들이 자네 아버지에게 나를 계곡 밑으로 굴리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네. 그러지 않으면 자네 아버지를 쏘겠다고 하더군.
자네 아버지가 나를 어떻게 했을까? 그들의 지시대로 시체들이 쌓여 있는 계곡 밑으로 나를 굴렸을까? 나는 모르오. 다만 기억하는 것은 그들의 말보다 더 공포스러웠던 것이 계곡 밑에서 흘러나온 냄새였다는 사실이오. 그 냄새 때문에 정신이 혼미했고 실컷 얻어맞아 의식이 흐릿해져갔으니까. 그러다가 딸깍, 머릿속이 암전되었지. 아무것도 의식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왔소. 그때 일은 자네 아버지를 다시 만나서도 묻지 않았네. 나는 계곡의 시체 구덩이에서 아버지에 의해 발견되었네. 아버지는 형은 찾아내지 못했지만 나는 찾아냈지. 아버지가 나를 차일혁의 부대원으로 보내면서 내 어깨에 새겨놓은 박무릉이라는 글씨 때문에 말이오. 시체들 속에서 아무 표식이 없어 형을 찾아낼 수 없었던 아버지는 나를 보내면서는 어깨에 박무릉이라고 새겨두었소. 그런 덕에 계곡의 시체들 속에서 나를 찾아낼 수는 있었으나 그것이 아버지 인생에 이로웠을 것 같진 않네. 나의 몸은 이미 반은 썩어 있어서 이렇게 다리를 잘라내야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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