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개찰구를 빠져나와 역 광장으로 나오면 거기 오토바이를 세워둔 채 선글라스를 쓰고 헬멧을 손에 든 아버지가 다른 한 손을 쳐들어 흔들곤 했다. 붐비는 사람들 속에서 나 여기 있다,는 표시였다. 매번 아버지가 쓴 선글라스가 낯설어서 잠깐 멈춰 서서 아버지를 바라봤던 기억. 아버지는 내가 자신을 못 알아보아 멈춰 서 있는 줄 알고 한번 더 손을 흔들 때에 나는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여러해 그랬으니 오토바이를 끌고 마중을 나온 아버지가 입었을 옷도 여럿이었을 텐데 짙은 남색 잠바만 생각이 난다. 계절도 여러 계절이었을 텐데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만 생각이 난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진남색 점퍼. 목까지 지퍼를 올리게 되어 있고 양쪽에 손을 넣을 수 있는 주머니가 달려 있었지. 오토바이 앞에 달린 바구니에 내가 들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도시에서 막 도착한 나를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거침없이 앞을 향해 씽씽 달리던 아버지. 앞에서 운전을 하는 아버지 점퍼의 양 주머니에 두 손을 넣어 아버지 허리를 꽉 잡고 기차역을 빠져나와 논과 밭 사이로 난 길로 접어들어 집으로 달려가고 있으면 귀에 새소리가 잡히고 코에 막 모내기를 마친 들판의 물 냄새가 맡아지고 눈에 흰 구름이 떠가는 하늘이 담겼다.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허리께를 잡으면 아버지는 더 꽉 잡아라, 이르며 속도를 높였다. 공기 속으로 옅게 섞이던 오일 냄새. 오토바이는 곧 J시 전파사, J시 자전거포, J시 신발가게 들을 지나 마을로 향하는 소롯한 들길로 접어들었다. 집으로 가는 샛길엔 중간에 공동묘지가 있었다. 비 오는 밤이나 바람 부는 새벽이면 그 공동묘지에서 맨발의 어린아이가 걸어서 친구를 찾아 마을로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어려서부터 들었다. 때로는 어떤 여자가 묘지의 흙을 밀어내고 나오며 울부짖는다고도. 왜 그런 으스스한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이들은 어린아이이거나 여자인지. 오빠들은 공동묘지 앞을 지날 때면 걸음을 빨리해서 나와 멀어졌다. 나는 뒤처져서 같이 가…… 소리치며 뛰다가 그것으로 안 되겠으면 길바닥에 주저앉아 발을 뻗고 울었다. 울고 있는 내 뒷덜미에 어떤 손이 닿는 것 같은 느낌에 두려움을 느끼며. 그때 오빠들이 어떻게 나오든 내가 같이 가자고 소리치지 않고 주저앉아 울지도 말았어야 했는데…… 그때 생각이 나면 지금도 드는 후회. 내가 공동묘지를 무서워하는 걸 알게 된 오빠들은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나를 그렇게 골려먹었다. 두렵고 고통스러웠던 것도 추억이다. 나는 아버지가 모는 오토바이 뒤에 타고 마을로 들어갈 때마다 매번 그쪽을 쳐다보며 지금도 공동묘지가 있어요?라고 묻곤 했다. 지금도 있다, 한결같던 아버지의 대답이 어느해인가 근처가 개발이 될 예정이라 공동묘지를 이전했다는 대답으로 바뀌었다. 그랬어도 나는 그쯤을 지날 때쯤이면 저절로 고개를 돌려 공동묘지 쪽을 바라보곤 했다. 그때마다 아버지 잠바 주머니 속의 손에 힘이 갔다. 아버지의 탄탄한 허리를 꽉 붙잡고 그 공동묘지 근처를 통과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오토바이의 속도를 높일 때마다 꽉 잡아라,라고 일렀다. 꽉 잡아라…… 바람 속에서 뒤의 내게 전달돼오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나는 좋았다. 언제까지나 아버지는 그렇게 그 자리에서 꽉 잡아라,라고 말해줄 줄 알았으니까. 공동묘지를 지나서도 오토바이의 속도가 높아지면 나는 주머니 속 양손으로 아버지 허리를 꽉 잡는 걸로도 모자라 아버지 등에 얼굴을 파묻고 눈앞에 펼쳐지는 논과 밭 그리고 멀리 다른 마을들과 야산들을 실눈으로 훑어보았다. 기차를 타고 J시에 돌아온 나를 태우고 쌩쌩 집으로 달리던 아버지. 바람에 날리는 내 머리카락들이 아버지가 쓴 헬멧 쪽으로도 날아갔다. 밭에 내려앉았던 까치들이 오토바이 소리에 놀라 날아오르며 흰 배를 내보이기도 했지. 울퉁불퉁한 길에 오토바이 바퀴가 튈 때는 아버지 잠바 주머니 속 내 양손에 힘이 가해졌다. 꽉 붙잡은 아버지의 짱짱한 허리 때문에 불안하거나 위험하다는 생각도 없이 뭐라 설명을 못하겠는 나른한 안도감으로 눈이 스르르 감기기도 했다.
이 집의 대문은 두개다.
아버지는 막 어딘가로 외출을 하려거나 혹은 외출을 다녀온 단정한 차림으로 마당에 서 있었다. 도로의 농협 창고 앞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을 택해 몇번의 골목을 돌아 맨 나중까지 걸으면 이 집의 대문이 만나지고, 도로에서 창고 앞까지 오기 전 도랑 쪽으로 접어들어 오래된 팽나무들이 서 있는 쪽으로 길을 잡으면 작은 문과 만나졌다. 나는 도랑 앞에서 택시에서 내려 캐리어를 끌며 집 쪽으로 향했다. 어느 대문으로 들어오나 이 집으로 들어오면 더이상 다른 곳으로 갈 수가 없는 마을의 가운뎃집이다. 양 대문은 항상 열려 있었다. 도로 쪽에 살면서 도랑으로 빨리 가고 싶은 사람들이 대문으로 들어와 옆 마당을 통과해 작은 문으로 나가기도 하고 반대로 도랑 쪽에 살면서 도로 쪽으로 급히 볼일이 있는 사람들이 작은 문으로 들어와 옆 마당을 지나서 대문으로 나가기도 했다. 아버지가 깊은 생각에 빠져 마당에 서 있었기 때문에 작은 문으로 들어와 막 마당으로 들어서려던 나는 아버지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끌고 오던 캐리어에서 손을 풀었다. 캐리어의 바퀴 돌아가는 소리가 멈추자 사방이 고요했다.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게 아니라 아버지는 뭔가를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무얼 보고 계신가? 싶어 캐리어를 세워두고 아버지 가까이 다가갔다. 마당 한가운데 돌을 쌓아 만들어놓은 정원 낮은 곳에 수국이 한껏 피어 있고 그 위를 나비가 날고 있고 아버지는 그 나비의 움직임을 미동도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
아버지는 그제야 나비에게서 눈을 떼고 나를 보았다. 처음엔 얼굴이 야위어서 볼 쪽이 움푹 팬 아버지가 햇빛 때문에 눈을 껌벅이는 줄로만 알았다. 아버지는 울고 있었다. 야위고 건조해 보이는 볼에 눈물이 번져 있었다. 아버지의 눈물을 보자 방금 누가 내 뒤통수를 갈기고 달아난 것 같고 머릿속이 쩡, 소리를 내며 갈라지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당황해하며 소년처럼 팔등으로 눈물을 쓱 닦아냈다.
―아버지!
물기에 젖은 아버지 눈의 초점이 나에게 맞춰지지 않고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눈물을 모른 척하고 목소리 톤을 높였다.
―뭘 보고 계세요?
내가 아버지의 허리춤을 껴안았다.
―너냐? 니가 어쩐 일로?
―아버지 보러 왔는데 어쩐 일은 무슨 어쩐 일은요?
아버지는 아직 눈앞에 서 있는 내가 환영 같은지 멀거니 바라다만 봤다.
―뭘 그렇게 뚫어져라 보고 계셨어요?
―나비.
―저 나비요?
아버지가 방금 바라보던 곳을 살펴봤다. 동백나무 위로 흰나비 한마리가 날아가 앉는 게 보였다. 동백꽃이라더니 이름만 동백이다. 정작 겨울엔 잠잠하다가 이제 피어나 햇볕 아래 꽃자리가 붉디붉었다. 벌써 진 꽃이 통째로 나무 밑에 쌓여 있다. 나비를 보고? 나는 시선을 돌려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저 나비 아래에……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저 나비 아래에 뭐요?
아버지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나비가 동백꽃 근처에서 날아와 수국 옆 돌무더기에 내려앉았다. 웬 돌무더기일까. 다른 곳과 달리 거기만 잔돌이 소복하게 쌓여 있다. 나비를 보고 왜 우세요, 아버지? 솟아오르는 질문을 누르며 나는,
―왜 여기만 돌이 쌓여 있어요?
하고 물었다.
―거기에 묻었다.
―……
―참이를 거기에 묻었어.
참이.
참이가 낙조했다는 얘기는 가족 중 누군가에게 들었는데 묻힌 곳이 저기였구나, 나는 돌무더기와 그 위에 내려앉은 나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참이를 묻은 자리 표시로 잔돌을 쌓아놓은 모양이었다. 나비는 돌무더기에 내려앉아 날개를 팔랑거리고 있다.
- 분단을 넘는 학교 - 2021년 9월 29일
- 병원 노동자 파업의 정치경제 - 2021년 9월 27일
- 아프간 둘러싼 강대국의 책임을 생각한다 - 2021년 9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