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연재

51회

 

   5장. 밤을 계속해서 걸어갈 때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처음 깨닫게 된 때는 비행기를 여덟시간을 타고 갔던 핀란드의 헬싱키에서였다. 내 책이 출간되어 그곳 출판사의 요청으로 갔었다. 한국 책이 그 나라 말로 번역되어 출간된 게 처음이라며 에디터가 내민 책을 나는 약간 피로한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봤다. 내가 썼지만 나는 한 문장도 읽을 수 없는 번역된 책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듯했다. 책과 나는 그렇게 서먹하게 대면했다. 비행기를 타고 오느라 피로했을 뿐이던 나의 눈은 헬싱키에 도착한 날부터 잠을 자지 못해 붉게 충혈되기 시작했다. 백야 때문이었다. 일년 중 오월 하순부터 칠월 중순 정도까지 그 나라에서는 백야가 이어진다는 것을 그때야 알았다. 백야. 말 그대로 밤이 되어도 바깥이 어두워지지 않고 하얀 밤이 계속되었다. 글로 읽거나 말로 듣거나 영화에서 봤을 뿐 내가 백야의 밤을 맞이할 줄이야. 낯선 도시의 호텔방에서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가 뭐가 이상해서 다시 일어났다. 처음엔 무엇이 이상한 것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예민해진 신경을 달래볼 요량으로 방 안을 서성거리다가 커튼을 제쳐보았다. 창밖이 밤이 아니라 낮이었다. 시계를 보니 밤 11시였다. 왜 이렇게 환하지? 나는 창가에 서서 백야의 거리를 우두커니 내다보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나는 시야에 들어오는 하얀 거리를 내다보다 서머타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겨우 해냈다. 그런데 자정이 지나도 새벽 두시가 되어도 계속 하얀 밤이었다. 새벽 세시에 내다봐도 날이 환하고 네시가 돼도 환하고 다섯시가 돼도 환했다. 나는 하얀 밤 때문에 뜬눈으로 날을 지새웠다. 시차를 빨리 맞추기 위해서 준비해간 멜라토닌과 애드빌PM을 먹어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백야라는 것을 알게 된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호텔 창은 암막커튼을 달아놓아 커튼을 치면 방은 어두워졌다. 갈라진 틈으로 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커튼 사이를 집게로 꽂아두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해보아도 창밖이 환하다,는 생각이 들면 잠이 달아나버렸다. 다시 일어나서 양쪽 커튼을 모아놓은 집게 사이를 비집고 창밖을 내다보곤 했다. 어두워지지 않는 하얀 거리에 서 있는 낯선 도시의 빌딩들, 가로등, 문 닫힌 레스토랑이나 식료품 가게들은 현실이 아니라 몽환적인 풍경처럼 서 있었다. 어두워지지 않는 밤이라니. 무엇이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더 깊이 그 생각에 빠져든다. 잊으려고 애쓰면 더욱 잊히지 않듯이. 생각을 하지 말자, 해서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을 길은 더 생각할 게 없을 때까지 생각을 하는 수밖에 길이 없다. 어떤 일이든 잊힐 때가 되어야 잊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창밖이 환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으나 그럴수록 창밖이 환하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그렇게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 낮잠도 곧잘 자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가 보면 낮과 밤이 뒤바뀌는 생활을 자주 해왔는데 왜 백야 앞에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인지. 그곳 출판사에서 마련한 이벤트들을 마치고 밤에 호텔로 돌아오면 발이 퉁퉁 부어 있곤 했다. 쓰러지면 곧 잠이 들 것같이 피곤한 상태인데도 침대에 누우면 정신이 또렷해졌다. 자야 한다고, 그래야 다음 날 일정을 치러낼 수 있다고 나 자신을 다독여도 소용없었다. 거기에 머무는 일주일 동안 잠을 자지 못한 내 눈동자는 항상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미안해서 얼른 시선을 돌렸다.

 

   잠을 잘 수 없는 고통과 불편함은 그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자꾸 발을 헛딛게 했다. 계단을 오를 때는 어지러워 난간을 붙잡곤 했다. 두통이 엄습해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사흘이 지나자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뿐 아니라 뜻을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인지력이 떨어져 멍한 상태가 되었다. 밤이 되면 어두워지는 그 자연스러운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점심을 먹다가 스르르 포크를 떨어뜨리기도 했고, 그 나라에서는 처음 책이 출간된 신인작가나 다름없는 나를 누가 안다고 서점까지 찾아오겠는가 했으나 안내를 받아 북토크 장에 들어섰을 때 자리를 가득 메운 것도 모자라 서 있는 사람들 앞에서 책을 낭독하다가 깜빡 졸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놀랍고 의아할 만큼 내가 소설을 낭독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태어난 나라도 다르고 쓰는 언어도 다르고 사회적 문화적 경험도 다른 사람들이 내 책으로 인해 여기 모여 있어, 정신 차려야 해, 나는 졸음과 사투하며 내게 속삭이곤 했다. 그럼에도 놀랍고 의아할 정도로 내 낭독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 때문에 정신이 맑아지는 순간도 있긴 있었다. 마음속의 어떤 아픔이 치유되는 그런 느낌이 들 정도로 몰두해서 한시간으로 예정되어 있던 낭독과 토크 시간이 두시간으로 이어질 때도. 그러고 나면 눈이 쏙 빠질 것같이 어지러웠다. 사양할 수 없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졸면서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들어오면 11시였다.

   ―언제 어두워지죠?

   나는 마치 그곳 출판사 에디터가 어두워지지 말라고 주술을 걸어놓은 것처럼 말했다. 이제는 주술을 풀어달라는 투로. 에디터가 미안해할 일도 아닌데 그녀가 약간 미안한 얼굴로 웃었다.

   ―그래도 이곳은 해는 지잖아요, 동쪽으로 가면 자정에도 해가 둥둥 떠 있는 곳도 있어요. 새벽 한시에도요.

   새벽 한시에도 해가 둥둥 떠 있는 곳은 어디일까? 거기 사람들은 어떻게 잠이 들까? 생각해보니 그곳에 머무는 동안 밤에 호텔방에 돌아와 세수를 한 적이 없었다. 찬물에 손을 담가 씻고 나면 잠이 달아날 것 같아 세수를 하는 대신 커튼을 꼼꼼히 치고 얼른 지친 몸을 침대에 눕히곤 했다. 너무 피곤해 잠들 수 있을 것 같았으나 커튼을 칠 때 내다봤던 창밖의 빛이 눈앞에 어른거리며 잠이 깨버리곤 했다. 밤이 되어도 어두워지지 않는다는 것이 내게 그리 큰 충격이었을까? 이렇게 잠을 못 자면 죽을지도 몰라, 혼자 중얼거리며 침대 밑에 시트를 깔고 누워보기도 했다. 세면장으로 들어가 바닥을 닦고 거기 바닥에 누워 있기도 했다. 그래도 잠들 수가 없어서 호텔 룸에서 가장 어두운 곳이 어딜까? 찾다가 침대 아래를 한참 들여다보기도 했다. 침대가 낮아 내 몸을 눕힐 공간이 없었다. 그러다 발견한 옷장. 나는 옷장 속으로 들어가 문을 닫은 채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아버지 생각을 했다. 아버지가 수면장애를 겪고 있다는 말을 여동생에게 처음 들었던 때였다. 수면장애라니? 나는 무심히 넘겼다. 여동생이 아버지는 주무시는데 아버지의 뇌가 눈을 뜨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라고 말했을 때는 아버지 상태를 설명해주기 위한 비유로만 들었다. 아버지의 지병인 뇌경색이 끼치는 영향이겠지, 생각하고는 아버지의 수면장애를 잊어버렸다. 그렇게 방치한 아버지의 수면장애가 백야의 나라에 와서야 떠올랐다. 내 이야기를 골똘히 듣고 있던 사람들 모습이 섬광처럼 스치는 것과 동시에. 말이 달라 통역을 통해야만 하는데도 진지하게 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그들. 잠을 잘 수 있을까? 싶어 들어간 어두운 옷장 속에서 나는 부끄러워져 얼굴에 열이 올랐다. 나는 나의 아버지의 얘기를 들으려고 한번이라도 노력한 적이 있었던가? 먼 이국의 사람들도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데 나는 내 아버지의 말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 아버지의 슬픔과 고통을 아버지 뇌만 기억하도록 두었구나, 싶은 자각이 들었다. 말수가 적은 아버지라고 해도 아버지가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는 딸이 되어주었으면 수면장애 같은 것은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낯선 나라에 와서 겨우 백야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해 충혈된 눈으로 쩔쩔매다가 결국 옷장 속까지 기어들어갔을 때에야 수면 장애를 겪는 아버지의 고통의 어떤 것일지가 떠올랐다. 내가 핀란드에 간다고 했을 때 후배는 국토에 호수가 20만개쯤 넘게 있다는 나라라고 했다. 호수의 숫자를 헤아려보면 그 나라의 네 가구 중 한 가구가 호수를 가지고 있는 셈이라고도. 자작나무 같은 침엽수림이 끝도 없이 펼쳐지고 그 사이에 크고 작은 호수가 반짝거리는데 기왕 비행기를 타고 갔으니 핀란드의 호수를 보고 오라고 했으나 잠을 자지 못한 나는 호수는커녕 디자인의 나라라고 불리는 나라에 가서 묵고 있는 호텔 바로 옆에 있는 디자인 뮤지엄에도 가보지 못했다. 나는 밤이 돼도 어두워지지 않는 나라의 호텔 옷장 속에 숨어 있다가 무심히 아버지에게 혼잣말로 아버지, 어젯밤은 잘 주무셨어요? 중얼거렸다. 일이 끝나자마자 나는 바로 서울로 돌아왔다. 잠을 자기 위해서. 공항 기념품 매장에서 마리메꼬 브랜드의 에스프레소 찻잔 세트를 눈여겨보긴 했으나 곧 무기력해져서 포기했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 잠을 자고 싶을 뿐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