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연재

52회

 

   남쪽에선 불어난 물살에 떠내려가던 소들이 물에 잠긴 축사 지붕 위로 올라가 피신해 있던 여름이 지나가는 중이다. 축사 위로 올라간 소들을 크레인으로 구조해내는 텔레비전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아버지가 저리 하면 소 배가 무척 아플 터인디…… 혼잣소리를 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던 여름이.

 

   ―새복까지 비 왔냐?

   아침을 먹을 때 아버지가 나에게 물었다.

   ―밤에 오고 새벽에는 그쳤어요. 내일은 태풍이 온다고 하네, 아버지.

   ―태풍은 벌써 몇번째냐?

   ―그러게 말이어요.

   ―그래도 이곳은 해는 지잖아요, 동쪽으로 가면 자정에도 해가 둥둥 떠 있는 곳도 있어요. 새벽 한시에도요.

   다른 해에는 여름 지나고 추석 무렵에 시작되던 태풍이 벌써 네번째였다. 나는 지난밤 내내 내리던 빗소리에 어느 순간 잠이 깨서 밤새 뒤척거렸다. 돌아누울 때마다 침대 위의 아버지 쪽을 바라봤다. 여동생이 보낸 약 때문인지, 낮부터 내리던 비 때문에 선산이 걱정되어 텔레비전 뉴스를 시청하느라고 피곤해서인지 아버지는 뜻밖에도 지난밤은 요란한 빗소리에도 한번도 깨지 않고 잠을 잤다. 여름 동안 비와 강풍이 이어지고 난 다음 날 아침이면 아버지가 선산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서서 나도 얼른 뒤따르곤 했다. 아버지에겐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 늘 해오던 일이었나보았다. 아버지를 뒤따라 선산에 가다보면 여기저기 산사태로 붉은 흙들이 쓸려 내려와 길을 막곤 했다. 뉴스에서는 남쪽의 강물이 범람해 마을의 집들이 침수되어 사람들이 황망하게 피신하고 닭이며 오리며 개들이 폭우에 목만 내밀며 떠내려가고 있는데 아버지가 관리해온 선산의 산소들은 용케도 무사했다. 산소들의 뗏장을 다독이고 비바람에 떨어져 산소 앞까지 쓸려 온 나뭇잎들을 수거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나는 물끄러미 바라봤다. 매해 태풍 즈음의 아버지의 나날들이 어떤 것이었는지 짐작이 갔다.

 

   ―지난봄에는 서른 몇날이나 비 한방울 안 오더니 이제사 논에도 밭에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비가 너무 많이 온다.

   ―……

   ―식이가 태풍 때문에 올해 농사 거두기 힘들 텐디?

   ―식이요?

   ―당숙네 막내 식이 말이다.

   ―아……그 식이요.

   ―여태 내가 짓던 문중 논도 지금은 식이가 짓는다.

   ―……

   ―모두들 떠나고 없응게로.

   ―……

   ―지금은 식이라도 남아 있으니 문중 논을 짓기라도 하는디 나중에는 어찌 될지 걱정이구나.

   ―……

   ―감도 다 떨어졌겄다.

   나는 감도 다 떨어졌겠다,는 아버지 말에 그러게요, 응수를 하며 웃었다. 아버지가 담담하고 잔잔한 목소리로 농사에 필요 없는 비가 많이 내리는 걱정, 태풍 걱정, 식이 걱정, 감 걱정까지 하니 모처럼 내 마음도 온화해졌다. 간밤 비바람에 떨어졌을 감 걱정을 할 때 아버지는 니 엄마가 감을 참 좋아하는디……라고도 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건 물렁한 홍시인데…… 생각하며 웃었다. 밤에 비가 오고 난 다음 날 아버지와 함께 동네를 한바퀴 돌다보면 어느 집이든 감나무 아래 아직 다 자라지 못한 풋감이 떨어져 수북이 쌓이던 여름이었다. J시는 감나무가 많은 고장이다. 집집마다 서너그루의 감나무가 자라고 있는 곳. 간식거리가 궁했던 어린 시절에 J시에서 자라는 아이들이라면 모두 감나무를 바라봤다. 봄에 감나무에 물이 오르고 새순이 돋고 감나무 잎새 사이로 감꽃이 피어 떨어지면 아이들은 감나무 아래 쪼르르 모여 앉아 감꽃을 주워 먹었다. 입안에 퍼지던 달큼한 감꽃 냄새. 여자아이들은 감꽃을 실에 꿰어 목이나 손목에 걸고 다니다가 배가 고프면 감꽃을 떼서 먹기도 했다. 그 어느 여자아이들 무리 속에 단발머리의 나도 끼어 있었을 것이다. 비바람에 떨어졌을 게 어디 감뿐이겠는가. 그럼에도 아버지가 감을 꼬집어 걱정하는 데는 어떤 무의식이 작용했을 것이다. 여름 내내 비와 태풍에 풋감이 떨어지면 아이들은 작은 항아리에 풋감을 담고 물을 붓고 소금을 쳐서 풋감에서 떫은맛이 빠져나가기를 기다렸다가 하나씩 꺼내 먹었다. 가을이 되기 전에 굵어진 감이 떨어질 때도 있었다. 그걸 먼저 줍기 위해 아이들은 잠에서 깨자마자 감나무 밑으로 달려갔다. 우리 집 감나무는 넓적감나무라고 불렀다. 이름 그대로 넓적한 감이 감나무에 주렁주렁 열렸다. 어쩌다 감나무에서 홍시가 되어가는 감을 발견하면 매일 그걸 바라봤다. 아침마다 혹시 그 홍시가 떨어졌을까봐 감나무 밑으로 가보곤 했던 기억. 추수를 마친 겨울 초입이면 감 따는 날을 정했다. 아버지는 감 따는 날 아침이면 긴 장대 끝을 벌려서 오빠들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아버지는 감나무를 타고 올라가 가지를 잡아당겨 감을 따서 감나무 아래에 서 있는 나와 엄마에게 던져주었다. 감을 하나씩 받아서 광주리에 담다가 보면 어느덧 감이 가득 찼다. 광주리에 가득 찬 주홍색 넓적감들을 바라보게 될 때면 마음이 환해지곤 했다. 부자가 된 듯해서. 엄마는 그 감들의 얼마간은 깎아서 곶감을 만들었고 나머지는 광의 쌀독 항아리에 넣어두었다가 홍시가 되면 우리들에게 한개씩 꺼내주었다. 긴 겨울 내내. 감 따는 날의 마지막 일은 까치밥을 남기는 일이었다. 높은 곳에 열린 감 줄기를 벌려진 긴 장대 사이에 끼워 감 따는 일에 재미를 붙인 오빠들이 가장 높은 곳에 달린 감까지 다 따려고 하면 아버지는 그만 따라고 했다.

   ―까치들이 먹게 두라.

   그때 꼭대기에 남아 있던 그 주홍 감들을 까치들이 먹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아버지의 그 말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남아 있다. 나무 한그루를 심을 수 있는 자리에 내가 감나무를 심은 것은 어린 시절 기억 때문일 것이다. 가을이 되어 감을 따게 될 때면 손이 닿는데도 까치들이 먹게 두라,던 아버지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남겨놓게 되니까.

   매일이 이런 별일 없는 잔잔한 말이 오가는 아침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한순간 아버지 얼굴에 근심이 어른거리더니, 비가 와서 그런가, 니 고모가 오늘 새복에 기척이 없구나, 했다. 나는 젓가락을 든 채로 식탁 건너편의 아버지를 막막하게 바라보았다.

   ―어디 아픈가?

   나는 아버지가 들고 있는 밥숟갈 위에 장조림 한조각을 올려놓았다. 몇개월 만에 치과 치료를 마친 아버지는 이제 장조림을 씹을 수 있었다.

   ―마저 드셔요, 아버지. 밥 먹고 우리가 고모 집에 가봐요.

   아버지는 그러자,며 장조림이 올려진 밥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아버지는 얼마 전부터 이제 이 세상에 없는 존재들을 찾았다. 그저께는 아침을 먹던 아버지가 앵무새 참이가 자주 앉아 있던 횃대 쪽을 쳐다보며 참이는 어디 있냐?고 물었다. 참이의 존재를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던 나는 참이요?라고 되묻다가 아! 참이요…… 말끝을 흐렸다. 어느 봄 도다리를 사러 간 통인시장에서 나를 졸졸 따라왔던 참이. 아버지 대신 나에게 너, 본 지 오래다! 종알거리던 참이. 참이를 찾는 아버지를 마주 대하자 J시에 왔던 첫날이 저절로 떠올랐다. 마당의 동백나무 위로 흰나비가 날아오르는 걸 바라보며 울고 있던 아버지가. 아버지는 많은 것을 잊어가는 듯했다. 낙조한 참이를 묻고 표지로 돌무더기를 쌓아둔 것도. 아버지가 참이를 다시 찾으면 동백나무 옆으로 함께 가서 기억을 상기시켜주려고 했는데 내 대답을 들을 생각은 아니었던 듯 아버지는 식사를 이어 했다. 그러더니 사흘이 지난 오늘 아침의 아버지는 간밤의 비 걱정, 식이 걱정, 감 걱정을 하더니 갑자기 수저를 든 채로 고모가 새벽에 다녀갔느냐고 묻고 있다. 매일 새벽에 눈을 뜨면 이 집이 지난밤에 무사한가? 살피러 오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던 고모가 몇년 전 새벽 잠자리에서 세상을 떠나고 출가외인을 선산에 묻는 법은 없다는 집안사람들의 반대에도 기필코 고모의 산소를 선산에 마련한 일도 잊은 것인가.

 

   나는 아버지와 집을 나서기 전에 아버지 침대 옆 작은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수화기를 바라봤다. 매일 아침을 먹은 후면 어김없이 셋째 오빠에게서 전화가 오는데 지금이 그 시간이다. 다른 때 같으면 셋째에게서 전화가 올 거라며 수화기 옆에 앉아 있을 아버지는 모자까지 쓰고 현관문 앞에 서서 나를 바라봤다. 어서 나오라는 뜻이다.

   ―셋째 오빠에게서 전화가 올 텐데 받고 나가요, 아버지.

   그래도 아버지는 현관문 앞에 서 있다. 나와 시선이 부딪혀서 나는 손짓으로 전화기를 가리켰다. 그때야 아버지는 내 말을 알아듣고 내 쪽으로 걸어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버지가 앉자마자 바로 전화벨이 울렸다. 아버지가 수화기를 들었다.

   ―아버지 셋째인데요.

   ―……

   ―잘 주무셨어요?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수화기를 귀에 대고만 있었다. 좀 떨어져 서 있는 내 귀에 수화기 저편의 셋째 오빠가 아버지 아버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그 소리를 듣고만 있더니 수화기를 내게 내밀었다.

   ―전화가 끊어졌나보다. 아무 소리가 안 들린다.

   나는 아버지가 내미는 수화기를 받아들었다. 아버지, 아버지?를 부르던 셋째 오빠가 수화기 속에서 제 목소리 안 들리세요?라고 묻고 있었다. 나는 다시 아버지에게 수화기를 건넸다.

   ―잘 들리는데 아버지?

   아버지는 내가 건네는 수화기를 바라볼 뿐 셋째 오빠와 통화를 할 생각은 없는지 받질 않았다. 계속 그러고 있을 수는 없어서 수화기에 대고 내가 오빠, 하고 응답했다.

   ―아버지가 왜 아무 말씀이 없으시냐?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뭐라 해야 될지를 모르겠어서 잠깐 머뭇거리다가 눈에 들어오는 화장실 문을 바라보았다.

   ―아버지 화장실이 급해서 화장실 가셨어.

   ―아……

   ―출근했어요?

   ―응…… 아버지 별일 없지?

   ―네.

   ―니가 애쓰는구나.

   ―어서 일해 오빠.

   ―그래…… 내일 또 전화할게.

   ―응.

   수화기를 내려놓고 아버지 옆에 앉았다.

   ―아버지 왜 그래?

   ―……

   ―오빠와 통화하기 싫어?

   그래도 아버지가 아무 말이 없어서 나는 침대에서 방바닥에 내려앉았다. 아버지는 침대에 걸터앉고 나는 방바닥에 앉으니 자연스럽게 아버지가 무릎에 내려놓은 손을 잡게 되었다. 아버지의 두 손을 잡아 깍지를 껴보는데 잘려진 뭉툭한 손가락이 위로 솟아올랐다. 나는 손톱이 없는 아버지의 뭉툭한 손가락을 쓸어보았다. 아버지가 움찔하더니 내게서 손을 빼내려고 힘을 주다가 내가 붙들자 금세 포기하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앉아 있었다.

   ―엄마하고 통화하실래요? 전화 연결해줄까?

   ―아니다.

   ―엄마하고도 통화하기 싫어?

   ―통화하고 싶다.

   ―그럼 연결해줄게요.

   ―아니다.

   ―왜요? 아버지?

   ―안 들린다.

   ―……?

   아버지는 나가려던 것을 잊은 것인지 내게서 손가락을 빼고는 침대에 올라가 누우려고 했다.

   ―우리 나가려던 길이었는데 아버지? 나가지 말까요?

   내 말에 아버지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기로 했냐?

   그사이 고모네 가기로 한 것을 잊은 것인가.

   ―선산이나 갔다 올거나?

   ―좋아요. 그런데 아버지. 안 들린다니 무슨 말이어요?

   ―전화 소리가 안 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