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
보통의 직장인들처럼 오진숙의 평일 아침 시간은 분주하고 정신없었다. 경기 북부의 집에서 영등포의 직장까지 출근하려면 8시 전에는 현관을 나서야 했다. 아침식사 준비를 하는 틈틈이 화장을 했다. 두부부침의 앞면이 익는 동안 왼쪽 눈썹을 그리고, 두부를 뒤집은 다음 오른쪽 눈썹을 그리는 식이었다. 나가기 직전에 두 아들을 깨웠다. 눈도 못 뜬 아이들에게 일단 칫솔 하나씩을 물려놓고 집을 나왔다. 그렇게라도 해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
중학생인 아이들의 등교시간은 아침 8시 40분이었다. 정문까지는 도보로 10분이면 닿는 거리였는데 학교 측에서는 안전의 염려가 있으니 8시 20분이 넘어서 오라는 지침을 내렸다. 오진숙이 없는 집에서 아이들은 늦잠을 잤다. 아빠는 있으나 마나였다. 아이들은 늦게 깨어 허둥지둥 학교로 달려가는 일이 잦았다. 차려놓은 아침을 챙겨 먹거나, 세수를 제대로 하고 갈 리 없었다. 어쩌다 일찍 깬 날엔 찬장 선반에서 젤리 같은 것이나 꺼내 먹으며 TV 앞에서 시간을 죽였다.
그녀의 아들들은 중학교 3학년과 2학년이었지만, 키도 체격도 훌쩍 큰 편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간혹 아이들과 같이 길을 나서면 오진숙을 엄마라고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은 누나나 막내 이모쯤으로 생각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종종 나이를 밝혀야 할 때 오진숙은 자신보다 네살 위인 큰언니의 출생연도를 댔다. 그랬는데도 돌아오는 반응은 “결혼을 일찍 하신 편이네요”가 대부분이었다. 오진숙은 부끄럽다는 듯 미소를 짓기만 했다.
요즘 시대에 스물네살과 스물다섯살에 연달아 아이를 낳은 여자는 많지 않겠지만 스무살과 스물한살에 연달아 낳은 여자보다야 확실히 많을 것이었다. 얼떨결에 스무살에 첫 아이를 낳은 뒤 17년이 지났다. 그때 덜컥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면 자신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을 거라고 오진숙은 가끔 생각했다. 뭐가 되었든, 실적 압박에 시달리는, 영업에 엄청나게 소질 없는 보험설계사로 살고 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십여년 전 한소영을 우연히 다시 만나고 나서, 가지 못한 길을 향한 미묘한 아쉬움은 더욱 증폭되었다. 한소영을 다시 만난 건 ‘싸이월드’에서였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들어온 사무실에서 직장동료가 무심히 타인의 미니홈피를 둘러보고 있는 걸 보았다. 오진숙은 그 무렵, 남들이 다 한다는 미니홈피를 갖고 있지 않았다. ‘일촌’이나 ‘파도타기’니 하는 기본적인 용어도 잘 몰랐다. 누구는 싸이월드로 애인을 사귀었다더라는 이야기, 또는 고등학교 때 연락이 끊겼던 옛 동창들과 덕분에 다시 연락이 닿았다느니 하는 이야기도 귀에 들려왔지만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학창시절의 그리운 추억이라니. 코웃음이 나는 표현이었다. 오진숙에게는 학창시절의 좋은 기억 같은 건 없었다. 그리워하고 만나고 싶은 얼굴도 거의 없었다.
그 동료는 오진숙이 등 뒤로 다가온 것도 모른 채, 남의 미니홈피를 훔쳐보는 재미에 폭 빠져 있었다. 동료가 무엇을 보는지 오진숙은 그저 흘끔, 보았을 뿐이다. 어떤 여자였다. 젊고 예쁘고 화사한. 그 모르는 여자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전신을 찍는 자신의 모습을 거기 박제해두었다.
“이게 누구예요?”
오진숙은 어안이 벙벙하여 소리쳤다.
“한소이. 요즘 뜨는 쇼핑몰 주인.”
직작동료가 대답했다.
“네?”
그건 한소이가 아니었다. 한소이라니. 그런 이름은 처음 들었다. 사진 속의 그녀는 틀림없이 한소영이었다. 동료의 설명을 듣고 그녀가 하루방문자 이만명을 거느린 싸이월드의 유명인사임을 알게 되었다.
“왜 유명한대요?”
“그냥. 센스가 있어요. 예쁘고 친절하고 옷도 잘 입고 멋진 곳도 많이 가고.”
그랬다. 소영은 옛날부터 센스 있고 예쁘고 친절했다.
“특별해요. 그냥.”
소영과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동료의 아이디로 대강 훑어보다가 오진숙도 싸이월드 회원가입을 했다. 소영에게 연락이 닿으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다. ‘소영아’라고 하는 게 맞는지 ‘소이야’라고 불러야 할지 알 수가 없었으므로 일단 이름은 부르지 않기로 했다. 일촌관계가 아니면 방명록을 쓰거나 쪽지를 보낼 수 없게 막혀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오진숙은 한소이의 가장 최근 사진 아래에 댓글을 달았다.
―이게 누구야? 너무너무 반갑다. 나 누군지 알겠어? 찐숙이야. 너 생각 많이 했다. 참 나도 설 살아.
그 댓글은 곧 흔적도 없이 지워졌다. 누군가에 의해, 깨끗하게.
- 분단을 넘는 학교 - 2021년 9월 29일
- 병원 노동자 파업의 정치경제 - 2021년 9월 27일
- 아프간 둘러싼 강대국의 책임을 생각한다 - 2021년 9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