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
나는 도시에서 생긴 것들 중에 그것을 더는 내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되는 상황에 처하면 기차를 타거나 자동차에 실어 이 집에 데려다놓았다.
이제 여기서 살아, 떼어놓고는 나만 도시로 돌아갔다. 고양이 두마리, 강아지 두마리, 앵무새 한마리. 아버지는 농기구들이 세워져 있거나 걸려 있는 헛간에서 고양이가 살게 하기 위해 바닥을 깔고 집을 만들어주었다. 내 목표는 고양이들이 방 안에서 지낼 수 있게 하는 것이었으나 번번이 성공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시골 사람이었다. 그들을 방 안에 들여다놓으면 “넘들이 숭본다”고 했다. 대신 헛간 바닥을 고양이가 긁으면서 놀 수 있도록 짚으로 엮은 덕석을 깔아주었다. 높은 곳에 올라가기를 좋아하는 고양이들을 위해 헛간 벽 이곳저곳에 사다리를 세워주고 사다리 칸칸에 새끼줄을 감아주기도 했다. 하지만 고양이들은 아버지 뜻대로 헛간에만 있지 않았다. 헛간에서 나와 담장 위, 지붕 위를 걸어다녔다. 밭에서 낮잠을 자거나 마당의 감나무 위에 올라가 있기도 했다. 누구네 집 고양이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고양이는 이 집 저 집을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사람이 먹는 밥이나 반찬 말고 사료만 먹이라고 당부를 하니 소도 아닌데 무슨 사료를 먹이냐? 했어도 아버지는 때가 되면 헛간의 밥통에 사료를 부어주고 맑은 물을 떠놓았다. 소 사료가 아니라 고양이 사료를 사보기는 처음이라고 하면서도 사료가 바닥이 나면 새 사료를 사러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에 나가곤 했다. 엄마는 그런 아버지가 신기한지 고개를 빼고 괭이 사료 사러 가요? 반은 놀리는 말투로 물었다. 엄마는 나에게 니 말이라 아버지가 듣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그리 말했어봐라, 뭔 고양이한티? 했을 것인디…… 니 아부진 니 말이라믄 다 듣는당게…… 했다. 그러면서 엄마는 아버지에게 할 잔소리가 있으면 도시의 나에게 전화를 했다. 술 좀 드시지 말라고 해라, 찻길이 위험한게 오토바이 좀 타고 다니지 말라고 해라, 며칠째 장을 앓고 있으니 시내의 국악원에는 당분간 나가시지 말라고 해라…… 나는 엄마의 주문대로 곧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뭐라뭐라 하면 아버지는 힘없이 그러냐, 알았다, 했다. 아버지와 고양이들은 비교적 잘 지낸 편에 속했다. 고양이들은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다가도 배가 고프면 헛간으로 돌아와 사료를 먹고 어두워지면 돌아와 잤다. 그랬어도 내가 사는 도시를 떠나와 이곳에서 반은 야생이 되어 살고 있는 고양이들을 보면 시골로 고양이들을 데려간 것이 잘한 일인지 잘못한 일인지 분간이 서지 않았다. 몇해 후에 고양이들이 아예 사라졌기 때문이다. 개는 이 집에서 잘 지내지 못했다. 개를 여기에 데려다놓을 때는 다른 것은 몰라도 도시에서와는 달리 몸만은 자유롭고 활기차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그건 내 생각일 뿐이었다. 개의 목줄이 풀려 있는 것을, 우리 집을 거쳐 도랑으로 나가거나 큰길로 나가는 사람들이 두려워했다. 고양이는 헛간이 아니라 방 안에서 길렀으면 좋겠고, 개는 묶어놓지 않고 풀어놓고 길렀으면 좋겠는 게 내 마음이었으나 시골이라 그리하는 게 더 어렵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시골집에 고양이를 데려다놓거나 개를 데려다놓고는 나는 한두달 매일 아침마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서, 고양이가 똥은 잘 가리는지 개줄을 너무 바짝 매놓지는 않았는지 확인했다.
―니가 전화를 자주 하네.
똥을 싸고는 야무지게 무엇으로든 싹 덮어놓는다, 개는 이름을 지어줘야 할 것 같다, 마루는 어떠냐? 아버지는 내가 묻는 말에 어떤 식으로든 대답을 꼬박꼬박 했다. 그렇게 몇개월이 흐르면 시골집에 데려다놓은 개와 고양이들을 향한 나의 마음이 얼마간 희미해졌고 동시에 아버지에게 거는 전화도 뜸해졌다.
아버지가 꽃밭에 묻었다는 앵무새는 시장통에서 얻은 것이다. 얻은 것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진 않다. 앵무새가 따라왔다고 해야 정확하다. 집에서 차로 십분 거리에 통인시장이 있고 내가 가끔 생선을 사러 가는 가게가 거기에 있다. 일부러 차를 타고 그 생선가게에 생선을 사러 가는 이유는 동네 슈퍼마켓 생선코너에서는 볼 수 없는 청어며 가자미며 민어가 거기에 있고, 신선한데다 주인아주머니가 손이 커서 가끔 미더덕 같은 것을 한주먹씩 덤으로 주기도 하니까. 도다리를 사러 갔던 날, 생선가게에 이르기 전에 쑥이 눈에 띄어 쑥을 한봉지 사서 장바구니에 넣고 걸음을 옮기려는데 앵무새가 시장 바닥을 걸어다니고 있었다. 앵무새? 그림이나 책에서 보면 앵무새는 몸통과 깃털이 노랑 초록 하얀색으로 이루어져 있던데 그 앵무새는 얼굴까지도 회색으로 어두웠다. 처음에는 주인이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회색 앵무새 혼자였다. 무슨 앵무새가? 잠깐 바라보다가 갈 길을 가려고 생선가게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앵무새가 나를 종종 따라왔다. 강아지도 아닌 게? 앵무새가 나와 보폭을 맞춰 내 뒤를 따라오니 신경이 쓰였으나 그러다 말겠지, 했다. 생선가게에서 살찐 도다리를 사고 대구도 한마리 사는 동안 앵무새는 내 발치에 있었다. 내가 시장통을 다 빠져나올 때까지도.
―가!
성가셔서 나중에는 말귀 알아듣는 사람에게 호되게 하듯이 가! 가라고! 소리를 쳤다. 앵무새는 무슨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나를 빤히 쳐다볼 뿐 가지 않았다. 통인시장 뒤편 갓길에 세워놓은 자동차 앞에 설 때까지도 나를 따라왔다. 앵무새가 나를 따라온다, 웃음이 나오려고도 했다. 나는 회색 앵무새를 처음 만난, 내게 쑥을 팔았던 가게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앵무새도 나를 따라 방향을 바꿨다. 쑥을 팔던 할머니에게 이 앵무새가 계속 나를 따라다닌다고 어쩌냐고 묻자 할머니는 혀를 끌끌 찼다. 벌써 사흘째 앵무새가 시장통에서 그리 헤매다니고 있다고 했다. 앵무새가 혼자 집을 나왔을 리는 없고 누군가 일부러 시장통에 두고 간 것 아니겠냐고. 이따금 강아지를 데리고 와서는 몰래 두고 가는 사람이 있다면서. 아니, 강아지는 강아지인데 앵무새를? 할머니는 나를 보더니 앵무새 임자인 모양이라 했다. 시장통 사람들을 따라다니기는 하는데 막상 데려가려고 하면 부리로 쪼고 소리를 치며 사납게 굴어 곁에 가지를 못했는데 나에겐 얌전하게 군다는 것이었다. 왜 나에게? 나는 회색 앵무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어쩌든 집에 가야 했다. 도다리와 대구를 손에 든 채 그렇게 계속 앵무새의 호위를 받으며 시장통을 걸어다닐 수는 없었다. 꾀를 내서 앵무새가 해찰을 하는 것 같을 때 걸음을 빨리해서 헤어지려고 해봤으나 어느덧 앵무새는 내 뒤에 와 있었다. 시장 골목의 전봇대까지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가보았으나 어느새 따라와 내 앞에 서 있었다. 가라고! 외치는 일도 허망해졌다. 나는 앵무새를 속여먹을 생각으로 정육점으로 들어가보기도 하고 아욱을 사는 척하며 채소가게 안으로 들어가 괜히 빙 돌아서 되나오기도 해봤으나 허사였다. 참 별일이네, 이제 앵무새의 표적이 되다니…… 서글픈 생각이 들어 걸음을 빨리해 세워둔 차 곁으로 다가가 문을 열고 차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나름 잽싸게 문을 닫으려고 했는데 앵무새가 먼저 차 안으로 폴짝 뛰어들어왔다. 그 회색 앵무새가 참이였다.
―이상헌 일이지. 어데 아픈 데도 없었는디 아침에 깨보니 죽어 있더랑게. 그 전날 밥도 잘 먹고 했는디……
아버지는 회색 앵무새와 잘 지냈다. 이름을 참이라고 지어준 것도 아버지였다. 앵무새가 참말을 한다는 것. 아버지가 가르친 말이나 하는 것이지 앵무새가 무슨 참말을 하겠는가 싶었지만 토 달진 않고 나도 참이라고 불렀다.
―서운하세요?
―……친구맨이로 지냈응게.
아버지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들렸다. 내가 앵무새를 아버지에게 데려왔을 때 아버지는 이젠 새를 데려왔고나 헛웃음을 웃었다.
―그냥 새가 아니야 아버지.
―그냥 새가 아니먼 뭐여?
―말을 해요.
―말을 해?
―그렇다니까요. 잘 가르쳐보세요. 아버지가 하고 싶은 말을 가르치면 앵무새가 대신 할 수도 있어.
개나 고양이는 안으로 들이지 않았던 아버지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앵무새가 있는 새장은 안방에 걸었다. 이 시골 마을에서 앵무새를 기르는 사람이 없고 까치나 참새나 직박구리나 원앙이나 딱따구리나 파랑새 들은 봤어도 앵무새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게 아버지 판단인 듯했다. 그러니 앵무새 장을 방 안에 들여놓는다고 해서 누군가 무슨 앵무새를 방 안에서 기른다요! 흉볼 사람도 없을 거라 생각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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