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연재

7회

   아버지는 사람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그 말들에 영향도 많이 받았다.

 

   아버지가 어떤 얘기를 듣고 사람들이 뭐라고 한다……라 하면 그 일은 옳지 않아 반대한다는 거와 같았다. 그렇게 회색 앵무새를 아버지에게 두고 와서 또다시 아침마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던 날들. 수화기 저편의 아버지는 정말 앵무새에게 말을 가르치고 있었다. 앵무새가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를 수 있게 됐을 즈음에는 앵무새는 아버지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아빠? 처음 들었을 때 기가 콱 막히는 것 같아 허공에 대고 헛웃음을 쏟아냈다. 나는 한번도 불러보지 못한 아빠,라는 호칭을 앵무새가 쓰다니. 방 안에 새장 대신 횃대를 걸어줬지만 아버지가 방에 있을 때면 앵무새는 아버지 어깨 위에서 살았다. 작지도 않은 몸집으로 떡하니 아버지 어깨 위에 앉아서는 누군가 찾아오면 어서 오시오, 했다. 결국 아버지는 물리치료를 받으러 갈 때도 앵무새를 데리고 다녀야 했다. 어느날 아침에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수화기 저편에서 앵무새가 사람처럼 걸걸한 남자 목소리를 내면서 너 본 지 오래다!라고 외쳐서 나를 소스라치게 했다.

   ―뭐라는 거예요?

   내가 되묻자 아버지가 크게 웃었다. 아버지가 쾌활하게 웃는 소리를 듣는 건 뜻밖에 청량했다. 아버지를 웃게 했으니 된 거지, 싶은 마음으로 넘어갔으나 이후 나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 때마다 앵무새에게 너 본 지 오래다!라는 말을 들었다. 다시는 뭐라도 놓치거나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듯 통인시장에서 J시로 내려가 살게 된 앵무새는 아버지 곁에 착 붙어 있었다. 아버지가 침대에 바로 누워 있으면 배 위에 앉아 있고, 등을 보이고 누워 있으면 등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가 일어서서 못이라도 박을라치면 앵무새는 아버지 팔이 미끄럼틀이나 되는 줄 아는지 어깨 위에서 팔뚝을 쭈르르 타고 내려와서 손등에 사뿐히 내려앉아 있다가 내가 전화를 걸면 그때마다 잊지 않고 걸걸한 톤으로 너 본 지 오래다! 소리를 질렀다.

 

   나는 공허해 보이는 아버지의 팔짱을 끼며 말을 돌렸다.

   ―어디 다녀오셨어요?

   아버지는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냥 응…… 말꼬리를 흐리더니 들어오니라, 하며 앞장서서 현관문으로 향하는 계단 쪽을 향했다. 방금 전까지 울고 있었던 건 잊은 듯했다. 아버지와 함께 현관문으로 연결된 여덟개의 계단을 오르는 데 팔분이 걸렸다. 왼쪽 다리를 먼저 계단에 올려놓고 오른쪽 다리를 나란히 올린 다음 또 왼쪽 다리를 윗 계단에 올리고 다시 그 곁에 오른쪽 다리를 놓는 순서를 한 계단을 오를 때마다 반복했다. 아버지 뒤에 바짝 서서 나도 아버지 따라 한발씩 차례로 계단 위에 올려놓다가 헛디뎌 넘어질 뻔했다. 균형을 잃고 휘청이다가 어떤 손이 나를 잡아채는 것 같은 기분에 뒤를 돌아다보았다. 너 본 지 오래다!라고 소리를 쳐서 나를 놀라게 했던 회색 앵무새가 묻힌 돌무더기에 내려앉았던 흰 나비가 다시 동백꽃 사이로 옮겨가고 있었다.

 

   처음엔 별일 아니려니 했다. 여동생에게 아버지가 울었다,는 말을 듣고도 또 내가 집에 도착해서 아버지가 앵무새가 묻힌 곳을 쳐다보며 울고 있는 걸 목격하면서도 그럴 수 있는 일이라 여겼다.

 

   아버지는 저녁밥을 먹지 않겠다고 했다. 아무것도 씹을 수가 없으니 내가 먹을 게 아니면 밥을 짓지 말라고 했다. 냉장고 안에는 엄마가 집을 떠나기 전에 만들어 쌓아놓은 반찬들이 수두룩했다. 콩물이 두통이나 물통 옆에 세워져 있고 두부부침과 달걀말이, 우뭇가사리, 스테인리스 통 속에는 도가니 국물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작은 연두부가 냉장고 아래칸을 가득 채우고 있고 감자를 삶아 으깬 것도 찬합에 한가득 담겨 있었다. 모두 잇몸으로 씹어 먹을 수 있는 것들이거나 컵에 따라 마시면 되는 것들. 음식들을 보니 아버지가 이 치료를 시작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염색을 하지 않은 머리는 희디희고 입가 양쪽이 유난히 홀쭉해져 아버지는 내가 본 중에 가장 늙어 있었다. 저녁은 먹지 않겠다는 아버지에게 한사코 빈속에 약을 먹을 수는 없으니 무엇이라도 드셔야 한다고 계속 말하자 아버지는 선반을 가리켰다. 거기에 도토리 가루가 있었다.

   ―그럼 도토리묵을 쑤어볼 테냐?

   ―도토리묵을 쑤면 드실 거예요?

   아버지는 고갤 끄덕였다. 하필 도토리묵을…… 나는 선반에서 도토리 가루를 꺼내면서 난감한 기분에 휩싸였다. 여태 도토리묵을 쑤어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도토리 가루가 존재한다는 것도 몰랐다. 봉투엔 100% 국산 도토리를 정성껏 손질하여 만든 도토리 가루라고 쓰여 있었다. 봉투에 조리법이 그림과 함께 인쇄되어 있었다. 달리 어쩔 도리가 없어 나는 거기에 쓰인 순서대로 도토리묵을 쑤었다. 냄비를 찾아 도토리 가루 한컵에 찬물 여섯컵을 붓고 가스레인지를 켰다. 센 불로 끓이면서 계속해서 저어줍니다? 센 불이 어느 정도인지 미심쩍어 잠시 주춤했으나 무조건 가스레인지 불을 가장 높게 올리고 나무주걱으로 계속 저었다. 곧 물에 풀린 도토리 가루는 냄비 안에서 서로 풀처럼 엉겨붙었다. 약간의 현미유와 굵은 소금을 넣고 진한 밤색이 될 때까지 약 오분 이상 저으라고 돼 있었는데 현미유가 없어서 콩기름을 대신 넣기도 했다. 도토리 가루는 냄비 안에서 금방 되직하게 변했다. 식히려고 네모난 파카통을 찾아 거기에 부으려고 했더니 아버지가 세면대에 엎어진 그릇들 중 오목한 볼을 가져와 거기에 부으라고 했다. 볼에 담긴 뜨거운 도토리묵을 아버지는 숟가락으로 저어가며 떠먹었다. 파카통에 부어두고 식혀야 모양도 나고 말랑한 묵이 될 텐데. 아버지가 떠먹는 건 묵이 아니라 죽 같았다. 간을 맞추려면 굵은 소금을 넣으라고 했는데 빠뜨렸다는 걸 뒤늦게 알았으나 아버지는 간장을 청하지도 않았다.

   ―무슨 맛이에요?

   내가 묻자 아버지는 맛을 모르는 표정으로 그냥 이리 먹으면 속이 편하더라, 했다. 궁금해서 한숟갈 떠서 먹어보다가 아버지 모르게 뱉어냈다. 이걸 두고 무슨 맛이냐고 물었다니 속에서 쓴 물이 올라오는 듯했다. 대답하기 궁색하게 아무런 맛이 없었다. 아버지는 도토리 죽으로 저녁을 때우고 한주먹이나 되는 약을 먹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저편의 엄마에게 잘 있는가? 물었다. 엄마의 목소리. 내가 잘 있을라고 왔간디요, 엄마 말에 아버지가 웃었다. 지금 웃으요? 엄마가 물었다. 그럼 웃지 어쩐단가? 통화를 엿듣는데 두분의 싱거운 대화에 나도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가 의사가 뭐라고 하더냐,고 묻는 아버지의 뺨에 또 눈물이 흘러내렸다. 병원은 내일 가요, 하다가 엄마가 또 우요? 했다. 아버지는 의사가 안 그러덩가 내 눈물샘이 고장나서 그런다고. 내일 도시의 병원에 입원할 엄마는 도시의 큰아들네 집에서 J시의 아버지를 달랬다. 사람이 늙으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쓰요. 자꼬 분간 없이 그르케 울어싸먼 넘들이 뭐라겄어요. 아그들 마음은 또 좋겄냐고? 내가 이러고 있는디 한 사람이라도 강단이 있어야제, 안 그요? 엄마 말에 아버지는 힘없이 그짝 말이 맞네, 대꾸했다. 엄마는 어떻게 해서라도 끼니 거르지 말라고 당부했다. 아버지는 그럼세,라고 대답했다. 엄마는 약은 먹었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먹었다고 대답했다. 엄마의 입에서 갑자기 내 이름이 튀어나왔다. 나를 따라댕기듯이 헌이를 졸졸 따라댕기지는 마시오, 아버지는 그럼세, 했다. 갸가 성질이 차서 짜증 낼 것잉게로. 엄마에게 나는 성질이 차가운 인간인 모양이었다. 엄마의 말은 계속 이어졌고 아버지는 응, 그럼세,를 반복했다. 보다 못한 내가 아버지 손에서 휴대전화를 빼앗아 엄마, 이제 전화 끊으세요,라고 했다. 그리고 엄마 걱정이나 해…… 지금 엄마가 아버지 걱정을 할 때가 아니야! 했더니 그럼 아버지 걱정은 니가 헐래?라는 엄마의 반박에 나는 주춤했다. 곧 엄마는, 답답하게 작은방의 바닥에서 자지 말고 큰방의 엄마 침대에서 자라고 일렀다. 글쎄 그런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좀 하지 말라니까…… 하려다가 엄마가 고맙다이, 하는 통에 엄마도 어서 편히 주무세요,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아버지는 거실에 내놓은 침대에 누워 텔레비전을 켰다.

 

   언제부터 아버지가 안방이 아니라 거실 쪽에 따로 침대를 내놓고 자기 시작했는지도 나는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