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연재

8회

보험 계약을 위해 두 사람은 두번 만났다. 두번 다 한소영이 오진숙의 사무실 근처로 찾아왔다. 당시 소이스토리의 사무실은 강남구 신사동에 있었고, 오진숙이 적을 두고 있던 보험회사 영업소는 경기도 부천이었다.

“내가 가면 돼. 원래 고객 편한 곳으로 설계사가 움직이는 거야.”

“아니야. 아니야.”

한소영은 극구 사양했다.

“내가 마침 그 근처에 갈 일이 있어. 너 일하는 곳이 궁금하기도 하고.”

부천으로 오겠다는 한소영의 의지가 꽤 강해 보였다. 약속 시간에 오진숙은 회의실까지 비우고 기다렸지만, 말과는 달리 한소영은 친구의 사무실로 올라오지 않았다. 그녀가 택한 곳은 근처 역 앞 번화가의 커피전문점이었다. 근방에서도 가장 들고나는 손님이 많아 늘 시끄러운 곳이었다. 십수년 만에 재회하는 소영과 이런 장소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고 생각하면서 오진숙은 황급히 달려나갔다.

안에 앉아 있던 한소영이 오진숙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서 손을 높이 들었다. 그녀는 활짝 웃고 있었다. 그 태도는 어제 보고 헤어졌다 오늘 또 만난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한소영이 오진숙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오진숙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똑같아, 소영아. 너는.”

“진숙아, 너는 더, 더, 예뻐졌다.”

소영의 목소리가 다정하고 나긋하게 귀에 휘감겼다. 소영은 진숙에게 좋다,는 감탄사를 반복해서 했다.

“친구를 만나니 참 좋다.”

오진숙은 한소영의 새까만 눈동자가 촉촉하게 변하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오진숙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녀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열심히 묻고 경청했다. 오진숙은 자리에 앉은 지 이십여분 만에 무능력한 남편, 대책 없는 연년생 아들들, 나날이 심화되어가는 가계경제의 문제 같은 것을 털어놓았다. 오진숙이 무슨 말을 해도 다 이해한다는 듯 한소영은 성실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숙아, 이 시간도 다 지나갈 거야. 악한 끝은 없어도 선한 끝은 있다고 하잖아. 네가 착해서 금방 다 괜찮아질 거야.”

한소영이 그렇게 속삭였을 때 오진숙은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

“앞으로 내가 많이 도와줄게. 너한테 제일 도움 되는 상품이 어떤 거야? 우리 오늘 여러개 하자.”

오진숙이 준비한 여러 상품 중에서 한소영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인 것은 종신보험이었다. 종신보험이란 피보험자의 평생을 담보해 사망하여야 보험금을 100% 지급하는 상품이었다. 가입자가 사망할 때까지 평생을 보장해주는 것이 장점이라면, 가입자가 죽을 때까지는 받지 못한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그녀가 선택한 것은 20년 납을 기준으로 월 200만원의 보험료를 납입하는 상품이었다. 그러면 사망 시 14억원 정도의 수령이 가능했다.

“20억이 넘으면 안 된다면서?”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20억원 이상 고가의 사망보장 보험에 가입하려면 본사의 심사절차를 거쳐야 했다. 한소영이 사전에 꽤 많은 공부를 하고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종신보험 외에도 한소영은 화재보험과 자동차보험 등의 서류에도 사인을 했다. 한소영은 보험 가입서류의 성명란에 ‘한소이’라고 썼다. 법적으로도 완전히 개명을 한 것 같았다. 보험금 수령인은 ‘남재현’이었다.

“결혼할 사람이야.”

한소영이 말했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오진숙은 그런데 한소영이 살아온 이야기는 전혀 듣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괜찮아,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두번째 만남은 일년여가 지난 뒤에 성사되었다. 그사이 한소영은 발리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극소수의 가족만 참석하는 스몰웨딩이었다. 대신 그녀는 결혼준비의 모든 과정과, 결혼식 일체는 그녀의 블로그를 통해 상세히 공개했다. 오진숙은 식이 끝나고 몇달 뒤에야 한소영이 결혼식을 올렸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축하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미안해, 친구야. 초대하지도 못했어. 사정이 있어서 외국에서 작게 치렀어. 너는 다 알지?

‘너는 다 알지?’라는 그 문장이 오진숙의 눈을 오래도록 잡아끌었다.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또 한번의 그 만남에서 오진숙은 한소영의 부탁을 들어주었을 것이다.

 

*

 

생명보험 역사상 최초의 살인범죄는 1762년 영국에서 발생한 이네스(Inness)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네스라는 남성이 양녀의 이름으로 1000파운드의 생명보험에 가입한 후 독살한 사실이 드러나 사형에 처해진 사건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언론에 보험살인사건이 보도된 것은 1924년의 일이다. ‘보험외교원(보험모집인)의 협잡’이라는 제목의 매일신문 기사였다. 보험금을 노리고 허위사망신고를 했다 적발된 보험모집인 일당에 대한 기사였다. 1975년 ‘박분례 사건’은 친언니를 비롯해 형부와 조카 등을 방화 살해하고 시동생은 우유로 독살해 보험금 147만원을 타낸 여성의 사건으로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1

빗길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사건의 피해자가 청년사업가이자 유명쇼핑몰 운영자의 남편인 남모씨라는 기사를 읽자마자, 오진숙은 어쩔 수 없이, 한소영의 얼굴을 떠올렸다.

 

 

  1. 「보험금 노린 자작극에 연 4조 줄줄 샌다… 솜방망이 처벌이 악질 보험사기 부채질」(한국경제신문 2017.2.17)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