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통화를 할 때는 엄마 말이 잔소리로만 들리더니 큰방 문을 열고 비어 있는 엄마 침대를 바라보니 거기서 자는 것도 괜찮게 여겨졌다. 헛간에 아버지의 농기구가 진열되어 있듯이 이 집의 작은방엔 내가 아버지에게 보낸 책들이 벽면 가득히 꽂혀 있다. 나는 내가 감당 못하겠는 개와 고양이와 앵무새 들을 아버지에게 데려다줬듯이 도시에서 책들이 감당 못할 지경으로 쌓이면 트럭에 실어 아버지에게 보냈다. 아버지는 시골집 방 한칸에 책장을 만들어서 내가 보낸 책들을 나란나란 꽂아두었다. 나와 내 형제들은 시골집에서 묵게 되면 그 방에서 자곤 했다. 책을 읽지는 않아도 책이 있는 방을 특별히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고 나로서는 책이 거기 있으니 집에 올 때 읽을거리를 따로 챙기지 않아도 되어 편한 점도 있었다. 집에 가면 책이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안심이 되기도. 언제부턴가 큰오빠가 작은방 책장 앞에 내 책 출간 후의 인터뷰 기사나 신문에 실린 에세이를 스크랩한 뒤 패널로 만들어서 세워두기 시작했다. 큰오빠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뭐랄 수가 없었다. 거실에 내놓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언젠가 신문에 ‘나의 아버지’라는 에세이를 청탁받아 쓴 적이 있었는데 큰오빠는 그것도 패널로 만들어 책장 앞에 세워두었다. 큰오빠는 마냥 기쁜 얼굴로, 니가 쓴 글을 아버지에게 읽어드렸다,고 했다. 나는 내 가족이 나의 글을 읽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그 마음을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부끄럽다,는 것이 가장 근접한 마음일 것이다. 함께한 어떤 시간을 내 식으로 문장으로 복원해서 내놓는 일을 그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생각하면 아찔하고 난감하고 부끄럽다. 그리고 두렵다. 사라져도 무방할 어떤 시간들이 내가 쓴 문장으로 인해 언어로 채집되어 존재하게 되는 것이. 아버지가 뭐래? 내가 체념하는 마음으로 묻자 큰오빠는 너가 별것을 다 기억한다,고 하시더라, 했다. 별것. 아버지가 말한 별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려고 나는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볼 때도 있었다. 나는 시골집에 와서 작은방에서 잘 때면 큰오빠가 만들어 세워놓은 패널들을 돌려놓았다. 패널 속의 내가 나를 응시하는 느낌이어서.
잠들기 전에 작은방으로 가서 책장을 훑어보다가 『그날들』이라는 책을 꺼내 들고 엄마 침대로 돌아왔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텔레비전 소리가 커서 아버지에게 소리를 좀 줄여달라고 하려다가 살짝 열린 방문을 닫는 것으로 대신하고는 윌리 로니스라는 사진작가가 쓴 글들을 읽다가 잠이 들었지 싶다. 윌리 로니스는 “나는 모든 내 사진들에 대한 기억이 있다”고 하며 바로 그날을 나는 기억한다,는 식으로 자신이 찍은 사진들이 탄생하던 순간에 대해 써놓고 있었다. 잠들기 전에 펼쳐나 보려고 꺼내 온 책이었는데 나는 엄마 침대에 엎드려 『그날들』을 읽는 데 몰두했다.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한 젊은 여인이 실을 짜는 기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어느 페이지의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기도 했다. 기계를 돌리다가 실이 끊어졌고 방직공장의 그 여인은 끊어진 실을 잇기 위해서 기계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사진작가였던 저자는 그 방직공장 내부를 촬영하는 목적으로 그 공장을 방문했던가보았다. 방직공장 사장에게 공장을 안내받으며 공장의 연대기에 대한 설명을 듣던 그는 끊어진 실을 잇고 있느라 무릎을 꿇은 여인을 발견한 순간 사장에게 잠깐만 기다려달라 하고는 사진을 찍었다. 그는 그 순간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어떤 순간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써놓고 있었다.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그런 순간”이라고. 저자가 써놓은 대로 그 여인은 “아름다웠고 동작은 무척 우아했다. 마치 하프 앞에 앉아 있는 연주자” 같아 책 밖의 나도 눈을 뗄 수가 없어 그 페이지에 오래 머물렀다. 프랑스 알자스는 어떤 곳일까? 그 방직공장은 지금도 남아 있을까? 끊어진 실을 잇기 위해 기계 앞에 무릎을 꿇고 있던 그 여인의 미래는 어찌 되었을까,를 생각하다 내가 먼저 잠이 들었는지 아버지가 먼저 잠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새벽 세시쯤이었을 것이다.
나는 잠이 깨어 여기가 엄마 침대라는 생각을 하는 것과 동시에 나의 잠을 깨운 게 어쩌면 거실에 아직도 켜져 있는 텔레비전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화장실도 가고 싶고 아버지가 여태 텔레비전을 보시는가? 궁금하기도 해서 몸을 일으켰다. 『그날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어서 주워서 침대 머리맡에 놓았다. 먼저 화장실에 갈 생각으로 안방 문 바로 맞은편에 있는 화장실 문을 열다가 아버지가 자고 있을 거실의 침대 쪽을 바라보았다.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출렁거리는 푸른빛이 비추고 있는 아버지 침대가 비어 있었다. 나는 내가 잘못 보았나 싶어 화장실 문고리에서 손을 떼고 아버지, 부르며 그쪽으로 가봤다. 켜진 텔레비전의 홈쇼핑 채널에서는 그 시간에 새싹보리 분말을 팔고 있었다. 화장실에 가셨나 싶어서 다시 화장실 문을 노크해봤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벽의 스위치를 눌러 불을 켜고 화장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세면대 위 칫솔 통에 꽂혀 있는 칫솔과 그 옆의 치약, J시 농협 마크가 찍혀 있는 수건이 바닥에 떨어질 듯이 겨우 수건걸이에 걸려 있고 욕조 바닥에 떨어진 샤워기는 천장을 향해 있고 뚜껑이 열린 채 덩그렇게 놓여 있는 변기가 막 켠 불빛 속에 고적하게 놓여 있을 뿐 아버지는 없었다. 변기에서 일어날 때 저걸 짚고 일어나는 것인가. 변기 앞에 있는 스테인리스로 된 지지대를 나는 잠깐 응시했다. 아버지는 없고 눅눅한 냄새만 코에 맡아졌다. 거실과 부엌을 연결하는 미닫이 문을 밀고 들어가 “아버지” 부르며 부엌 뒤로 연결된 다용도실까지 살펴봐도 아버지는 없었다. 작은방에도 그 앞의 옷들과 이불을 넣어두는 방에도 아버지는 없었다. 벽시계는 새벽 세시를 지나고 있었다. 이 시간에 아버지가 없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마음이 급해져 나는 현관문을 열고 맨발로 바깥으로 나왔다. 차가운 밤공기에 대고 아버지! 불러보았으나 사방이 조용했다. 나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 벽에 붙은 스위치들을 다 눌러서 집 안팎이 환해지도록 불을 켰다. 낮에는 미처 못 보았던 마당의 우물가 쪽 해당화가 불빛에 붉게 드러났다. 나는 맨발인 채로 마당에 서서 아버지, 아버지 하고 불렀다. 감나무도 동백도 대문도 앵무새 무덤도 조용했다. 당황한 채로 사방을 휘둘러보았으나 차가운 공기만 냉랭했다.
내가 아버지를 발견한 곳은 예전에는 잿간이었던 헛간이었다.
아버지는 헛간 벽에 걸린 농기구들 아래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벽에 걸린 갈퀴와 괭이와 낫과 곰방메와 호미와 쇠스랑과 곡괭이와 삽 들의 그림자 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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