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연재

9회

   ―아버지

   내가 불렀으나 아버지는 미동이 없었다.

   ―여기서 뭐하세요? 아버지!

   일단 아버지를 찾았다는 생각에 반가워서 달려가듯 아버지 앞에 선 나는 멍해졌다. 아버지는 거기서 울고 있었다. 아버지의 눈물을 보자 당황해서 더워졌던 내 몸의 열기가 누가 쏟아부은 차가운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싹 식어내렸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내가 급하게 켠 헛간의 전기 스위치를 가만히 내렸다. 아버지를 잠시만이라도 그대로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버지는 여기서 무엇을 보고 있었던 것일까? 다시 어슴푸레해진 헛간의 아버지 옆에 앉아서 아버지가 바라보고 있는 곳을 쳐다봤다. 농기구들. 아버지는 이제 늙어서 농사를 짓지도 못하는데 헛간 벽엔 고구마 캐고 감자를 캘 때 쓰는 용도가 각각 다른 호미들, 풀을 베거나 거둬낼 때 쓰는 낫들이 나란나란 매달려 있었다. 대여섯개나 되는 삽들은 앞으로 튀어나오게끔 파이프를 달아서 따로 걸어두었다. 삼지창과 닮은 쇠스랑까지 걸려 있었다.

 

   아버지는 누구든 농기구를 쓰고 제자리에 두지 않은 것에 대해선 매우 엄격했다.

 

   제자리에 두지 않으면 다음 사람이 그걸 사용해야 할 때 찾아 헤매게 되어 해야 할 일을 다 못 한다는 것이었다. 농기구 때문에 야단을 듣는 건 언제나 둘째오빠였다. 오빠는 어디서 얻어온 해당화나 장미 같은 것을 우물 옆 빈 땅에 심기를 좋아했다. 오빠가 자꾸 꽃들을 심어서 처음엔 그저 빈 땅이었던 자리가 나중에는 화단이 되었다. 라디오 같은 것을 해체해서 다시 조립하는 것도 좋아했다. 벽에 걸린 시계를 해체해서 다 망가뜨려도 야단치는 일이 없던 아버지는, 산사나무를 심는다고 흙을 파면서 사용한 삽이나 호미를 아버지가 헛간에 지정해놓은 자리에 제대로 걸어놓지 않은 것에는 큰 목소리를 냈다. 모든 물건에는 쓰임이 있는데 제자리에 두는 것이 첫 번째 일이라고 했다. 제자리에 두면 금방 찾아 쓰이지만 제자리에 두지 않으면 어디에 있는지 찾느라 한나절을 허비하게 된다고. 농기구 정리에 대한 아버지의 원칙은 누구도 건드릴 수가 없었다. 섣달 그믐날에 아버지가 잊지 않고 했던 일도 빌려다 쓴 농기구와 빌려 쓴 돈들을 갚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다시 빌려오더라도 빌린 것은 새해가 되기 전에 갚아야 한다고 했다. 다시 빌려오더라도 묵은 것들은 묵은해에 해결해야 한다는 게 아버지 생각이었다. 마을에서 아버지에게 빌려주고 받지 못한 농기구나 아버지가 빌려주고 다시 찾아오지 못한 농기구는 없을 것이다. 내 눈에 땅 앞에서는 언제나 서툴러 보였던 아버지는 이제 정말 농사를 짓지 않는다. 쓰임을 다한 농기구들만 유물처럼 헛간 벽에 나란나란 걸려 있을 뿐.

   ―아버지 이제 안으로 들어가요.

   그렇게 날을 지새울 것 같아서 내가 아버지를 부추기자 아버지는 어린애처럼 나를 의지해 몸을 일으켰다. 헛간을 나오자 초여름 새벽 찬 공기가 아버지와 나의 얼굴을 감쌌다.

   ―아버지, 나를 꽉 잡아요.

   나는 현관문에 이르는 계단을 오를 때 야윈 아버지의 팔을 잡아당겨 내 허리를 붙잡게 했다. 바람결에 코에 맡아지는 게 장미 냄새인지 동백 냄새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냄새를 맡자 내가 쉽게 도시로 돌아갈 수는 없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내 데뷔작의 첫 문장은 어디다 뒀던가,이다.

 

   네칸짜리 여닫이 서랍을 온통 다 뒤져도 장갑은 보이지 않는다,로 이어진다. 그게 벌써 35년 전의 일이다. 여덟번째 장편소설을 거의 다 썼다고 생각한 며칠 전 새벽 책상에 앉았는데 35년 전 데뷔작을 쓸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출근하게 된 곳은 서대문과 아현동 사이에 있었던 ‘이음사’라는 이름의 출판사였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나는 한동안 아침마다 역촌동에 있던 큰오빠네 집 앞 긴 골목을 걸어 나와 큰길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그 출판사로 출근을 했다. 골목을 걸어나오면서도 버스 안에서도 내 고개는 푹 수그러져 있었다. 고개를 들고 웃을 일이 없었다. 도심은 거의 매일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이 터지는 중이라 공기가 매캐했다. 어쩌다 졸업한 학교에 볼 일이 있어 명동 쪽으로 나가면 전경들에게 서너번은 가방 조사를 받아야 학교에 다다를 수 있었다. 고시공부를 하다가 디스크가 터진 셋째오빠는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출판사 사무실은 허름한 건물의 3층에 있었는데 그 3층까지 오르는 나무계단에 발을 내디딜 때마다 삐거덕, 소리가 났다. 결이 맞춰지며 내는 소리인지, 결이 미끄러지며 내는 소리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나는 그 소리가 날 때마다 가만히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방금 올라온 몇개의 계단이 눈 아래에 있고 그 끝, 출입문 쪽으로 빠른 속도로 오가는 사람들의 발들이 보였다. 남자의 납작한 검은 구두, 여자의 하이힐, 그 속에 섞여서 바쁘게 움직이는 운동화와 슬리퍼에 가까운 굽 낮은 신발들이 내 눈 속으로 들어왔다 멀어지는 걸 보다가 나는 나무계단에 놓인 내 발이 신고 있는 신발을 내려다보곤 했다. 삐거덕거리는 이 계단을 다시 내려가 출입문을 밀면 바로 거리였다. 아침의 바쁜 발걸음이 오가는 그 거리에 섞일 내 발의 모양을 상상하곤 했다. 여기를 빠져나간다면 내 발은 어디로 향할까? 화양극장이 있던 사거리로? 거기까지 가기 전에 시작되는 육교 위로? 반대편을 향해 길을 건너 올라가기로 하면 종근당 앞을 지나갈 것이고 길을 건너지 않는다면 핸드메이드 소가구들을 내놓고 파는 아현동 길로 접어들겠지만 매번 상상 속의 나의 발은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다시 3층을 향하는 나무계단 위칸을 향했다. 삐거덕,이나 삐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3층에 다다라 조심스럽게 세개의 책상이 놓인 사무실의 문을 열고, 그중 내 책상 위에 가방을 내려놓은 뒤 낮은 구두를 벗어놓고 얼른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구두를 벗어놓고 슬리퍼로 갈아 신고 나면 이 사무실이 아닌 다른 곳으로 내빼는 상상도 거기서 끝이 났다. 이탈의 상상으로 상기한 내 뺨이 빠른 속도로 그곳의 공기에 적응해 누르스름해졌다. 나는 깊은 숨을 내쉰 뒤 책상에 놓인 번역원고 더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곳에서 출판하는 책 중에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있었다면 그걸 읽는 재미에라도 출근길이 좀 가벼웠을지도. 그랬다면 출근하다가 다시 계단을 내려가 방금 들어온 문을 밀고 나가 다른 장소로 향하는 상상 같은 건 하지 않았을지도. 그 출판사를 그만둘 때까지 그곳에서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출판하지 않았으므로 실제로 어땠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나 그랬다면 일하는 시간이 그렇게 힘겹게 느껴지진 않았을 거란 생각은 든다. 보람을 느낄 수 없는 일을 계속하는 일은 손가락이 하나씩 없어지는 느낌이어서 나는 가끔 교열을 보던 펜을 내려놓고 왼손으로 오른손을 오른손으로 왼손을 만져주었다. 그때 내가 출근해서 했던 일은 서로 다른 역자가 조각조각 나누어 번역한 책의 내용들을 한데 모아 최종적으로 문맥을 맞추는 일이었다. 한권의 책을 대여섯명의 역자가 앞이나 뒷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할당량제로 나누어 번역한 것이라 역자가 달라질 때마다 지명이나 연도, 숫자가 어긋나고 같은 에피소드인데도 역자에 따라 인용되는 내용이 서로 달랐다. 앞부분을 따라 겨우 맞춰놓으면 다음 역자는 다른 표기를 하고 있어서 나중에는 내가 무엇을 맞추고 있는지 혼란스러워지곤 했는데 그 혼란 뒤에 남는 것은 허탈감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길을 잃은 채 계속되는 뒤죽박죽 속에서 이야기를 맞추고 시간을 맞추고 지명을 맞추는 하루를 보내고 나면 머리가 깨질 듯했고, 고개를 숙이고 일하느라 긴장해서 솟구친 어깨는 퇴근할 무렵에는 귀 가까이까지 올라붙어 있었다.

 

   퇴근을 할 때마다 이렇게 계속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계속하다가는 내가 죽고 말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