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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근대’의 실상에 다가서는 종합적 연구
이매뉴얼 월러스틴 『근대세계체제』 1·2·3, 까치 1999
백영경 白英瓊
가톨릭대 강사, 서양사
새천년이 되어도 근대를 규명하고 극복하는 문제는 여전히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화두이다. 우리는 통상 서양의 근대를 말할 때 산업화나 민주주의, 국민국가의 형성, 개인주의, 혹은 계몽과 이성, 합리주의와 같은 특성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러한 근대 서양의 이미지는 19세기 이후의 영국, 프랑스, 독일, 20세기 미국의 (주로 긍정적인) 특정 측면에 대한 단편적 지식에 근거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아는 ‘근대’는 역사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공통된 특징 못지않게 시간의 진행에 따라 달라지는 공간적인 부피와 특성이 있음은 간과되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근대라 부르는 대상이나 (서양의) 근대성이라고 생각하는 특징들이 어떤 구체적 시공간 속에 실재해온 것인지를 따져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근대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 최근 우리 학문 논의에서 강박관념으로 보이기조차 하는 ‘서양중심주의 극복’ 문제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무엇을 두고 서양이라고 하는지를 짚어보지 않는 한 그에 대한 논의 역시 엇갈리는 대화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근대의 규명과 극복을 위해 노력하는 이상, 싫든 좋든 월러스틴(I. Wallerstein)의 작업, 그중에도 『근대세계체제』(The Modern World-System, 나종일·유재건·김인중 외 옮김)를 피해갈 수 없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가 아닌가 한다. 물론 자본주의적 근대는 시장경제·자유무역·공장제 등으로 환원될 수 없는 하나의 역사적 체제이며, 따라서 자본의 끊임없는 축적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자본주의의 특성이란 구체적인 역사적 궤적 속에서 파악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월러스틴의 주장의 요점은 이미 우리에게 낯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이나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를 통해 소개된 것은 역사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그의 방법이었을 뿐, 정작 그러한 방법을 통해서 본 근대 세계체제의 역사는 이제야 우리말로 소개되는 셈이다.
이번에 번역된 책들은 다섯 권으로 예정된 원저 중 이미 출간된 세 권에 해당하는데, 1450〜1650년에 이르는 이른바 ‘장기 16세기’에 근대 세계체제가 성립한 이후 19세기 초반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월러스틴 주장의 핵심은 중세 유럽과 근대 세계체제 사이의 단절이 18세기 중엽 산업혁명을 통해서가 아니라 장기 16세기를 거쳐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자본주의 이행논쟁이나 17세기 위기론,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을 둘러싼 역사학의 중요 논쟁들을 검토한다. 그는 흔히 19세기와 연결되어온 여러 현상, 즉 노동계급의 생활수준 하락, 자의식을 가진 계급으로서 부르주아지의 등장, 노동계급의 위협에 직면한 지배계층 내의 타협, 나아가 세계노동력의 인종집단화 같은 현상이 이미 16세기부터 진행됐다고 본다. 그는 자의식을 가진 계급이 부르주아지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지배계층 아닌 ‘다른 사람들’이 자본주의가 가져온 변화에 맞서 싸우기 위해 ‘전통’을 구호로 내걸게 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지금까지 단지 ‘전통’이라는 구호를 내세웠다는 이유로 이러한 투쟁들을 전근대적·퇴영적인 것으로 취급해온 견해에도 반대한다. 무엇보다 순수한 자본주의와 봉건제를 찾다보면 그 기간이 점차 깎여나가 급기야 역사에는 이행기만 남게 될 뿐이며, 심지어 20세기에도 비자본주의적 행동은 도처에서 발견된다는 그의 지적은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흔히 ‘본격적인’ 근대라는 시기도 구체적인 사실들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과연 계몽이나 시장경제의 시대인지 의심스러우며, 이른바 근대성과 부합하지 않는 요소들로 결합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편 자본주의적 근대가 16세기 유럽에서 시작해 전지구적으로 지리적 팽창을 거듭해왔다는 그의 주장 역시 또하나의 서양중심적인 시각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어왔다. 유럽 외의 지역에서는 자본주의가 자생적으로 발생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모두 서양중심주의·유럽중심주의라고 한다면 모를까, 월러스틴을 일반적 의미의 서양중심주의자로 보기는 어렵다. 물론 그에게도 따져봐야 할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74년에 발간된 『근대세계체제』 1권 말미에서 그는 “이러한 일〔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수립─인용자〕을 이뤄낸 것은 유럽의 공적이었다. (…) 근대세계가 저지른 온갖 잔인한 일들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태어난 것은 태어나지 않은 것보다 좋은 일이다”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각 80년과 89년에 출간된 2권과 3권에서는 더이상 그런 평가를 하지 않으며, 83년의 『역사적 자본주의』에서 “역사적 체제로서의 자본주의가 (…) 진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평가를 거쳐 90년대에는 유럽이 “다른 모든 문명들이 현명하게 피했던” 모험의 길로 들어섬으로써 “후퇴의 길을 밟았다”고 단언한다. 물론 ‘유럽의 공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더 따져봐야 하며, 유럽에 기원을 둔 근대세계의 공과(功過) 역시 간단히 논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어쨌든 근대세계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적어도 월러스틴이 자본주의와 근대의 성취에 대해 명확히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이상 그가 자본주의와 근대의 기원을 유럽에 둔다는 사실만으로 서양중심주의라고 모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적절치 못하다고 하겠다.
또한 장기 16세기에 성립했다는 ‘유럽’ 세계경제가 존재했던 역사적 공간은 지리적 의미의 유럽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유럽 세계경제는 16세기말에 이르러 북부유럽, 기독교권 지중해 즉 이베리아 반도와 중부유럽 및 발트해 지역, 아메리카 대륙의 몇몇 지역, 대서양의 섬들과 아프리카 해안 일부, 그리고 일시적으로 러시아를 포함하는 것이다. 물론 광대한 비유럽지역을 포괄하는 그것을 왜 유럽 경제체제라고 부르는가라고 의문을 던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최소한 이는 일반적 의미의 서양중심주의─즉, 이들 비유럽지역이 자본주의가 성립하던 바로 그 시점부터 근대세계의 유기적 일부였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근대화’할 것을 강요하는 입장─와는 명확히 다른 것이다. 월러스틴의 강점은 바로 그가 71년 『근대세계체제』 작업에서 최근의 『유토피스틱스』(1998)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기존의 분석들이 근거하고 있는 지적 패러다임으로부터 ‘탈피’하여 자본주의적 근대를 구체적인 시공간을 통해 존재하는 역사적 체제, 다시 말해 시작과 끝을 가질 수밖에 없는 유기체로 보았다는 점이다. 이는 그가 더이상 자본주의에 대한 뚜렷한 대안이 없어 보이는 현싯점에서도 자본주의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의 다른 저술도 그렇지만 특히 『근대세계체제』는 기왕에 획정된 학문분야의 경계에서 어느 한 곳에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 흔히 역사연구자들은 이 책이 도식적이고 사료를 통해 검증하기에는 다루는 범위가 지나치게 크다고 여기며, 사회과학자들은 이 책이 역사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시공간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근대적 삶의 됨됨이를 규명하는 일 앞에, 특수한 개별사례를 연구하는 것이 역사학이며 보편적 법칙을 정립하는 것이 사회과학이라는 식의 편리한 분업은 걸림돌이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