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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이민용 李玟鎔

순천향대 강사, 독문학

 

 

정통 역사소설의 한 전형

하인리히 만 『앙리 4세』 1·2·3, 미래 M&B 1999

 

 

우리 문학은 크게 보아 지난 10년 동안 사회적 현실에서 물러나 개인과 역사로 그 중심을 옮겨갔다고 볼 수 있다. 민주화투쟁이 어느정도 성과를 거둔 후 민족문학·민중문학·노동문학이 있던 자리에 주로 여성작가들 중심의 감성소설이 있었다면, 또 한편에는 역사소설의 흐름이 있었다. 『소설 동의보감』에서 시작된 역사소설의 열기는 『영원한 제국』을 거쳐, 『로마인 이야기』 『람세스』와 같은 외국 역사물로까지 번져나가 이들을 베스트쎌러의 대열에 올려놓았다. 이런 열풍에 고무되어서일까? 또 한 편의 역사소설이 유럽에서 출간된 지 60여년 만에 문득 세 권의 책으로 우리 곁에 다가왔다. 독일 작가 하인리히 만(Heinrich Mann)의 『앙리 4세』(Die Jugend des Königs Henri Quatre, 김경연 옮김)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최근 우리나라에 선보였던 역사물들과는 달리 이미 그 문학적 평가가 어느정도 마쳐진 정통 역사소설의 한 전형이다.

하인리히 만은 지금까지 『충복』 『작은 도시』 등으로 우리에게 소개된 작가이다. 『앙리 4세』와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충복』은 제국주의로 치닫고 있던 빌헬름시대 독일의 특성을 가장 잘 형상화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요컨대 그는 초기에 유미주의 작품들을 쓴 적도 있지만 주로 어두웠던 20세기 전반기의 억압적인 독일 현실에 맞서 현실비판적인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았던 작가이다.

『앙리 4세』는 원래 총 1700여 면 분량의 방대한 2부작 소설이다. 이번에 우리에게 소개된 것은 그중의 제1부 『앙리 4세의 청춘』이다. 이 작품에는 지금 우리나라의 베스트쎌러 역사물에서처럼 대중의 흥미를 자극할 만한 요소들이 꽤 많이 있다. 낭뜨칙령을 선포한 프랑스 왕 앙리 4세의 일대기를 그린 큰 줄거리에 프랑스의 분열과 통일 이야기, 종교전쟁, 왕과 귀족들의 음모와 암살, 유명한 낭만주의자 앙리 4세의 사랑이야기, 방탕한 애정행각과 뛰어난 재능 때문에 후에 알렉쌍드르 뒤마(Alexandre Dumas)의 작품에서 형상화되고 영화 「여왕 마고」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앙리 4세의 왕비 마르그리뜨 드 발루아, 그리고 서양사에서 유명한 성 바르똘로뫼의 밤 학살사건, 즉 앙리와 마르그리뜨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왔던 신교도 수천명이 빠리에서 며칠 사이에 한꺼번에 학살된 사건 등이 어우러진 내용은 이 작품을 단순한 대중 역사소설로도 충분히 읽히게 한다.

보통 역사소설이라는 작품들은 역사에 대한 대중의 기존 지식과 관심에 쉽게 영합하는만큼 작품성이 108-411허술해지기 쉬워 곧 생명력을 잃고 사라지기 십상이다. 그러면 『앙리 4세』가 단순 오락 역사물의 수준을 넘어 역사소설의 대표작으로 남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최초로 역사소설을 본격적으로 논의한 공적이 있는 게오르크 루카치의 지적대로, 작가 하인리히 만의 뛰어난 역사의식과 현실의식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파시즘이 대두할 때부터 집필되어 작가가 프랑스에서 망명생활을 할 때 발표되었다. 작품의 배경은 종교적 이유로 비이성적 살육이 난무하는 16세기 종교전쟁기의 유럽이다. 이것은 야만적인 파시즘이 발호하던 당시 유럽과 비교될 수 있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다른 종파의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대량학살한 까뜨린느 드 메디씨스와 기즈 일파의 가톨릭 극단주의자들은 파시스트에 비유될 수 있다. 앙리 4세는 수많은 희생과 위험을 무릅쓰고, 또 여러 차례 종교적 신념을 바꿔가며 ‘불행의 학교’에서 단련되어 이성과 사랑, 휴머니즘의 힘으로 조국 프랑스의 통일과 종교적 평화를 이루어간다. 하인리히 만은 이런 앙리 4세의 이야기를 통해 파시즘의 야만성을 폭로하고 파시즘의 질곡에서 고통받는 유럽인들에게 투쟁의 비전과 용기, 정신적 무기를 제공했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또한 반파시즘 망명문학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앙리 4세』는 독일의 전통적인 성장소설 혹은 발전소설로도 간주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리소설, 연애소설로도 읽힐 수 있다.

그런데 『앙리 4세』는 여느 역사소설만큼 그렇게 쉽게 읽힐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이것은 300여명이나 되는 복잡한 등장인물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작가의 독특한 문체 때문일 것이다. 하인리히 만은 이 작품에서도 과장과 비약, 희화화, 반어적 표현, 모순적 단어의 연결 등과 같은 기법들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작품에서 계속 사악한 인물로 묘사되는 까뜨린느 드 메디씨스가 가끔 ‘좋은 여자’ ‘좋은 친구’라고 언급되어 독자를 잠시 어리둥절하게 한다. 또 등장인물들이 아무런 설명 없이 여러가지 다른 별명으로 지칭되는가 하면, 인물의 이름과 성이 따로따로 표현되어 서로 다른 사람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게다가 작가가 상념을 많이 개입시켜놓았기 때문에 작품 전체의 흐름과 시대적 배경을 미리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곤란할 때도 있다. 이 작품을 번역본으로 읽다보면 원본을 들춰보고 싶은 충동이 가끔 이는데, 이것이 흔히 몇군데쯤 있기 마련인 번역 문체의 ‘난해함’ 때문만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편 이 작품에서는 앙리 4세가 별 모순 없는 선한 인물로만 그려지고 다른 인물과 상황은 그와 관계되는 면에서만 다루어진다. 그런만큼 이 작품에는 민중적 영웅은 있을지 모르지만, 역사의 민중은 희미한 채로 뒤로 밀려나 있어서─이것이 파시즘 치하의 민중들을 형상화한 것이라 해도─다양한 인물들의 생생한 모습을 충분히 느낄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다보니 작품 현실의 변증법이 약화되어 역사적 진실이 흐려진 경우도 있다. 예컨대 앙리의 대립인물인 까뜨린느 드 메디씨스는 작품에서 줄곧 마녀로 치부되는데, 이는 그녀가 종교적 당파의 세력균형에 힘쓰고 왕권을 지키려고 노력하여 절대주의국가로 가는 길목을 닦았다는 역사적 평가들과 상충된다고 할 수 있다.

역사소설은 역사적 소재를 다룬 것이라는 막연한 규정을 넘어서는 어떤 확실한 개념이 아직 정립되지 않은 상태다. 그래서 본격적인 논의나 연구가 더욱 필요한 형편이다. 유럽에서 역사소설로 평가받은 『앙리 4세』가 앞으로의 역사소설 연구에 어떤 비교의 근거로 조금이라도 작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울러 이 기회에 이 작품의 제2부도 곧 번역되기를 기대한다. 그래야만 제1부에서 아직 이룩되지 못한 ‘앙리 4세의 완성’을 끝까지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