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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김진석 金鎭奭

인하대 철학과 교수.

 

* 이 글은 1998년도 인하대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이루어졌다.

 

 

그리기의 틀과 탈. 닮음의 환상

 

 

재현의 형이상학과 역사주의

 

솔거(率居)가 그린 소나무 그림에 새 한 마리 앉았다고 한다. 아니 앉으려다 미끄러졌다고 한다. 그럴 정도로 나무 그림은 정말 나무를 빼닮았다고 한다. 그럴 정도로 나무 그림은 유사(類似)와 재현(再現)의 원칙을 완성하고 있었다고 한다. 정말 그랬던 것일까? 새는 그 그림이 정말 나무인 줄 착각하고 거기에 앉으려다 미끄러진 것일까? 유사와 재현의 원칙은 충족되면 될수록 함정으로 돌변하는데, 새까지 거기에 걸려든 것일까? 새조차도 유사와 재현의 신화에 깊이 빠져 있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리스시대부터 전해오는 다른 예도 있다. 나무에 달린 열매 그림이 너무 사실 같아서 새가 쪼아먹으려 했다는 이야기.

새들이 애초에 그 함정에 걸려들지 않았다면? 아마도 인간만이, 인간의 사유만이 그 함정에 갇혀 있었던 것이라면? 실제로 화가들은 이 점을 확인해준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이야말로 저 소나무 그림에 앉으려는 우스운 동물이 아니었을까. 아예 처음부터 새는 그 나무를 실제 나무의 재현이라고 여기지 않았는데, 인간의 사유가 비로소 그 이야기를 지어낸 후에 바로 그 이야기 속 나무에 걸터앉으려 했던 것은 아닌가. 그럴 것이다. 인간 사유는 유사와 재현의 신화를 만들어내고는 새를 미끄러지게 했지만, 우습게도 실제로 미끄러진 것은 인간인 듯하다. 새가 걸터앉으려고 애썼다거나 쪼아먹으려고 했다지만, 실제로 걸터앉으려고 혹은 쪼아먹으려고 기를 쓴 것은 인간이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천 몇백년 후, 20세기초 추상화에 이르러서야 인간은 그 유사와 재현의 신화를 극복한 듯이 보인다. 나무 모양은 거의 또는 완전히 사라진 듯했다. 또는 기껏해야 아이들처럼 ‘유치하게’ 선을 삐죽삐죽 그려놓은 모양, 생선뼈를 뒤집어놓은 모양이 다였다. 이제 새는 비로소 재현된 나무에 걸터앉으려 하지도 나무 열매를 쪼아먹으려 하지도 않는 듯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는다. 나무 그림을 실제 나무라고 착각하고 미끄러졌다는 새, 열매를 쪼아먹으려는 실수를 했다는 새는 가볍게 잘 날아다니고 있지만, 인간 사유는 여전히 재현의 나무에 걸터앉으려 하거나 자꾸 미끄러진다고 안달하는 듯하다. 인간 사유는 추상화로 그려진 나무에도, 또는 추상화 속에서 겨우 확인되는 나무에도 걸터앉으려고 하는 듯하고, 혹은 거기에서 미끄러질 염려가 있다고 전전긍긍하거나 노심초사하는 듯하다. 아무리 나무 모양을 지우고 지워도, 실제 나무를 재현한다는 나무 모양을 지우고 또 지워도, 나무와 닮은 나무의 기호를 세상에서 모조리 추방하고 배제하지는 못했다. 화폭 밖으로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세상의 나무 모양은 천연덕스러웠다. 시침 뚝 떼고 있었다. 아마도 그래서 추상화가는 오히려 재현의 원칙이 말할 수 없이 끈질기고 지독한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사실주의’에의 강박이 그처럼 심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추상화가 극단화할수록 추상화가에게 재현의 연대는 더욱 수상스럽고도 질긴 것으로 보였을 터이다. 그 연대가 그렇게 질기기에 바로 추상화가 그것을 깨고 부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진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또는 비슷한 이유로, 추상화가 구상화를 완전히 극복했다거나 이겼다거나 완성했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가 거기 있을 듯하다. 만일 어떤 추상화가가 나무의 구상과 구체성이 재현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그것을 이기거나 극복하려고 또는 심지어 완성하려고 나무의 추상에 매달렸다면, 그것이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일일 것이다. 그가 그렇게 추상의 강박에 시달린다는 것은 그가 구상의 강박에서 채 벗어나지 못했음을 반증할 터이니까. 역설은 정작 그의 뒤통수를 치는데, 그 자신만 그것을 몰랐을 것이다.

추상화는 구상과의 싸움에서 실패했다고 말해야 옳은 것일까. 사태를 그렇게 몰고갈 필요도 없는 듯하다. 우리는 여기서 미술사를 떠받치고 있는 중요한 기둥 하나를 움켜잡고 있다. 잘하면 뒤흔들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초 서양 현대미술에서 시작된 추상화의 가장 중요한 성과가 유사나 재현의 신화를 극복한 것이었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하나의 편견이거나 우화였는지 모른다. 정말 나무를 빼닮은 나무 그림에서 새가 미끄러졌다는 이야기 자체가 우화였듯이.

물론 추상화가 유사 및 재현의 전제를 어느정도 흔들어놓고 부순 것은 사실이다. 그것조차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조심해야 할 점이 있을 뿐이다. 구상으로 그린다는 것이 꼭 재현의 전제에 의존하거나 거기에 종속되어 있다는 말일까? 사물을 드러나게 하고 사물에 모양을 주는 일이 굳이 세계의 재현이라는 형이상학적 전제에 따른 것일까? 유사 및 재현의 원칙이 20세기에 들어와 크게 깨어진 것도 사실일 터이나, 실제로 정말 그때까지 전혀 깨어지지 않았던 순수한 어떤 원칙이 갑자기 깨진 것일까? 그 깨어짐은 오히려 현대 미술이나 비평이 연출해낸 사건이 아닐까? 따지고 보면 크게 깨어질 것이 없는 게 아닐까? 정말 유사와 재현의 원칙은 아무런 틈과 분열도 없이 지켜진 엄격한 명령이고 원칙이었을까? 또 추상화 이전의 회화가 구상화였다고 해서, 그림들이 모두 유사와 재현에 근거한 것이었을까?

추상화는 20세기초에 일어난 추상화를 통해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한 것도 아니다. 흔히 ‘원시미술’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많은 부분 나름대로 추상화의 기법을 실행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구상화이기도 하였다. 삐까쏘미술관이나 다른 현대미술관에 아프리카의 미술품이나 다른 ‘원시’미술품이 전시되어 있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20세기 추상화 이전의 모든 구상화가 순진하게 유사와 재현의 믿음에 봉사했다고 믿는 것이야말로 현대미술사에 내재된 독단이나 자만심이 아니었을까? 아울러 미학의 편견이 아니었을까? 20세기 미술이 유사 및 재현의 원칙을 화형시켰다면 그 사건은 아마도 인형이나 허수아비 불태우기 같은 의미가 아니었을까?

유사와 재현의 원칙이 미술사(전체로서든 또는 몇세기 동안이든)를 철두철미 지배했다고 믿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유사의 원칙을 너무도 형이상학적이고도 교조적으로 만든 데 커다란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닐까? 잘 알려져 있듯이 플라톤(Platon)은 이데아에서 두 단계 떨어진 것으로 모방을 이해했다. 목수가 이데아를 모방해 나무로 책상을 만들고, 화가는 바로 그 모방된 책상을 다시 모방한다는 것이다.1 하지만 엄격하게 따지고 보면 그런 방식으로 단계적으로 그려진 그림은 없을 듯하다. 원이나 삼각형이 그려진 추상화라 해도 완벽한 형상으로서의 원이나 삼각형을 모방하기 위한 것은 아닐 터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플라톤은 무슨 말을 한 것일까? 그림에 대해 가장 몰지각한 발언을 한 것인가? 근본적으로 그림의 존재가치를 폄하한 것일까? 아니면 거꾸로 그림을 폄하하는 관점만 빼면, 그래도 역시 그림에 관한 중요한 통찰을 담은 말을 한 것일까? 나아가 예술 전반에 관한 어떤 통찰을?

그림을 그리는 자는 존재하거나 생성하는 것을 아무렇게나 보거나 즐기지는 않을 것이다. 모방하고 복사하고자 한다. 이때 그는 사물의 올바른 인식에 가까이 가고자 하는 의도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일까? 또는 거꾸로 그 인식에 이미 두 단계나 떨어져 있기에 어쩔 수 없이 ‘기껏해야 모방이나 하는’ 환장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 둘의 방향은 다르지만 플라톤이 생각하는 그림의 자리는 그 두 전제에 의해 설정되는 듯하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에게도 모방은 지적인 인식과 뗄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그는 그림을 보고 무엇이 그려졌는지 확인할 수 있고 그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 때, 그림이 무엇을 모방한다고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거꾸로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나 한번도 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무엇이 모방되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려진 대상이 한번도 보지 못한 것이라면, 그림은 대상에 대한 모방으로서 쾌감을 준다기보다는 기껏해야 색을 칠하는 방식이나 다른 비슷한 방식으로 그러할 것이다.2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전제는 재현과 유사에 관한 철학적·미학적인 전제를 제공했을 것이다. 그 전제는 더 나아가 역사적인 구성물로 존재한다. 역사 속에서 지배적이었는데, 어느 한 순간 비판되고 뒤집히고 부정되었으며 역사적 효력을 잃었다고 해석되기에.  

그 전제는 형이상학적 측면뿐 아니라 역사적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첫째 형이상학적 측면에서. 그 전제에 따른다면, 애초에 그림을 그리는 일은 지적 호기심에 예속된 일에 지나지 않았을 터이다. 어떤 대상의 이미지에 대해 지식이나 정보를 주는 그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의도나 목적이 그림 그리는 일에서 언제나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소한 부분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화가가 사물과 정말 닮은 대상을 그릴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도 형이상학적 의미에서 사물 자체를 재현하기 위하여 그것에 가까이 가는 과정은 아닐 것이다. 그는 말 그대로 ‘모방’하고 ‘복사’하고자 하지만, 그때 모방과 복사는 사물 자체를 이상주의적 맥락에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닮는 것일 터이다. 더 나아가, 닮았으면서도 닮지 않은 데 놓여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닮았으면서도 닮은 것만은 아님’에 주의를 기울이는 대신, 자꾸 모방과 복사라는 말에만 존재론적인 재현의 의미를 부여한다. 예술행위를 그처럼 철저히 형이상학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고 평가하는 일은 예술에 대한 형이상학적 편견이자 강박이었던 듯하다.

마찬가지로 그 전제가 그림의 역사를 지배했고 또 20세기 추상미술에 의해 전복되었다는 해석은 역사주의적인 편견이자 강박이다. 모든 역사주의적인 전복의 테제가 그렇듯이 이 전제도 일면(一面)의 진리를 갖기는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그 전복의 씨나리오는 역사주의적인 구성이요 단순화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푸꼬를 수정하며

 

이 점에서 우리는 서양미술사를 지배하는 중요한 명제를 수정하고자 한다. 유감스럽게도, 재현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푸꼬의 작업도 그 명제에 기대고 있는 듯하다. 푸꼬는 말하기를, “두 개의 원칙이 15세기 이후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서양화를 지배해왔다. 첫번째 원칙은 조형적 재현(유사를 함축한다)과 언어적 지시(그것을 배제한다) 사이의 분리를 단언한다.”3 “오랫동안 그림을 지배해온 둘째 원칙은 유사하다는 사실과 재현적 관계의 단언 사이에 등가성을 확립한다. 하나의 형상이 어떤 것(혹은 다른 어떤 형상)과 닮으면 그것으로 충분하게 그림의 게임 속으로 ‘당신이 보는 것은 이것이다’라는 분명한, 진부한, 거의 수천번 되풀이된, 그러나 거의 언제나 말이 없는 언표가 끼여들어온다(그 언표는 형상들의 침묵을 둘러싸고 포위하고 점령하여 그것을 그 자체로부터 튀어나오게 하고, 최종적으로는 그것을 명명이 가능한 사물들의 영역 속으로 다시 쏟아붓는 한없고 끈질긴 중얼거림과도 같다). 여기에서 어느 방향에서 재현 관계가 설정되는지, 다시 말해 그림이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가시적인 것으로 귀속하는지, 아니면 그림이 스스로 그와 닮은 비가시적인 것을 창조하는지의 문제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본질적인 것은 유사와 재현적 관계의 단언을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4 정말 그럴까? 이 두 원칙에서 푸꼬는 유사와 재현 사이에 뗄 수 없는 유대를 너무도 강하게 설정하여, 그 둘은 거의 일치할 정도이다. 유사와 재현은 그처럼 분리될 수 없는 것일까? 유사란 정말 재현의 단언에 무조건 충실하게, 한치의 틈과 괴리도 없이, 상응하는 가시성일까?

잘 알려져 있듯이 푸꼬는 유사(ressemblances)와 상사(similitudes)를 구분한다. 전자가 재현의 원칙에 의존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그것에 의존하지 않는다. 곧 후자에게는 유사와 재현을 떠받치는 존재론적 원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푸꼬가 분석한 그림의 화가 마그리뜨(R. Magritte)는 푸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구분의 효용에 의문을 제기하는 듯하다. 굳이 유사를 그렇게 엄격하게, 곧 형이상학적으로 제한하거나 정의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물들의 유사 관계가 필연적인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유사와 상사의 구별을 통해 당신은 이 세상과 우리 자신의 존재─전적으로 낯선─를 강하게 암시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 두 단어가 거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전도 그것들을 구별하는 방식에 대해 특별히 가르쳐주는 게 없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가령 완두콩들 사이에는 가시적이면서(색·형태·크기) 동시에 비가시적인(성분·맛·무게) 상사 관계가 있는 듯합니다. 그것은 ‘거짓된’이나 ‘진정한’ 등등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물들’ 사이에는 유사 관계가 없습니다. 거기에는 상사 관계가 있거나 또는 있지 않습니다. 유사하다는 것은 사유에만 속합니다. 사유는 그가 보고 듣거나 아는 것이 됨으로써 닮습니다.”5

푸꼬는 재현의 가상, 전복의 가상에 너무 집착한 듯하다. 이 전복의 논리에 따르면 전통적인 방법인 구상에서 가장 멀리 나아간 것이 추상인 듯하다. 그런 것일까? 그러나 구상에서 가장 멀리 나아가는 길이 얼마든지 구상일 수 있다. 또는 반(半)구상일 수 있다. 또는 구상이기도 하고 추상이기도 한 것이다. 구상을 가로질러, 구상을 따라, 구상에서 가라앉으면서, 다시 구상으로 가벼워지며, 자꾸자꾸 가기 때문이다. 구불구불한 길. 그에 비하면 오히려 추상으로만 가는 길은, 너무 곧바르고 짧은 길인 듯하다. 너무 간단한 길이 되기 쉬운 것이다. 특히 몬드리안(P.C. Mondrian) 이후에는.

대부분의 그림은 엄밀히 말하면 구상도 아니고 추상도 아니다. 또는 구상이기도 하고 추상이기도 하다. 엄격하게 따지면 추상이 전혀 아닌 그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구상이기도 하고 추상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그것은 도깨비 같다. 도깨비는 도처에서 출몰한다. 구상과 추상의 구분은 저 오래된 냄새나는 사유, 변증법적 이분법의 잔재이다. ‘재현’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말할 수 있다. ‘재현’은 아예 없거나 또는 거꾸로 모든 것이 ‘재현’일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재현’이라면, ‘재현’에 종속되었던 시대와 ‘재현’을 초월한 시대를 구분짓는 순수한 선은 없는지 모른다. 애초에 순수한 존재, 형이상학적으로 순수한 대상은 부재하기 때문이다.

말라빠진 조그만 조각들을 만든 쟈꼬메띠(A. Giacometti)는 사람을 보이는 그대로 ‘복사했다’고 말한다. ‘복사하고자 했다’고 말한다.6 여기서 ‘복사’란 인물이나 머리를 존재론적으로 재현했다는 것인가? ‘재현’이란 말이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존재를 다시 보여준다는 뜻이라면, 대답은 당연히 ‘아니다’이다. 쟈꼬메띠는, 존재하는 대로가 아니라, ‘보이는 대로’ 사람이나 머리를 복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재현’은 기껏해야 보이는 대로의 재현이다. 해체를 부르짖던 때의 데리다(J. Derrida)가 부정하려 했던 것은 형이상학적 현현(顯現)이자 형이상학적 재현이다. 그러나 이제 그렇게 부정에만 급급할 필요가 없다. 길은 돌아간다. 돌아가 보면 다시 길이다. 재현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하자. 다만 그 재현은 형이상학적 원칙에 따르지는 않는다. 탈형이상학적으로 닮은 것들이다. 서로가 서로를 닮은 것들. 그러면서 어떤 점에서는 서로 닮지 않은 것들.

이 관점에서 푸꼬가 말한 재현적 관계를 살펴보자. 그에 따르면 재현의 단언은 한편으로는 분명하다. 그것은 “그러나 거의 언제나 말이 없는 언표”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그 재현의 단언을 말하지 않는 것일까?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일까? 말하지 않아도, “당신이 보는 것은 이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아도, 재현의 언표는 분명한 형태로 끼여들어온다는 것인가? 그렇게 확실한 언표라면 무엇 때문에 “한없고 끈질긴 중얼거림”과도 같다고 했을까? 그렇다. 그 언표는 때로는 언표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기껏해야 중얼거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중얼거림, 이것은 어떤 것인가? 그것이 그렇게 분명하고 확실한 것인가? 중얼거림이란 오히려 재현의 단언에 못 미치는, 또는 재현의 단언을 슬그머니 비껴 지나가는 어떤 상태가 아닐까? “거의 언제나 말이 없는 언표”가 정말 재현의 단언을 주장하고 완성할 수 있을까? 푸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재현의 단언이 깨어져 있거나 틈이 벌어져 새고 있다는 점을, 언표의 완강한 막이나 벽을 뚫고 새고 있다는 점을 느끼며 암시한 것이 아닐까?

분명하게 말해진 언표라도 꼭 액면 그대로 사용되거나 교환되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거의 언제나 말이 없는 언표”라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한없고 끈질긴 중얼거림과도 같”은 이 언표가 “최종적으로는 그것(형상들의 침묵─인용자)을 명명이 가능한 사물들의 영역 속으로 다시 쏟아붓”는다고 했을 때 ‘최종적’이라는 심급의 결정성은 그렇게 확고한 것이었을까? 최종 심급에서 이 사물들은 어쩔 수 없이 재현의 원칙에만 따르는 것일까? 명명되는 것들은 얼마나 자주, 얼마나 끈질기게 그 명명을 거부하고 회피하고 우회하는가? 명명은 얼마나 우습게도 허식과 관례에 따르고, 얼마나 맹목적으로 코드에 따르는가? 코드에 따를 때라도 그들은 얼마나 교묘하고도 대담하게 코드를 조롱하고 우롱하는가? 명명되었다고 또는 심지어 최종적으로 명명될 수 있다고 해도, 사물들은 재현의 원칙에 완벽하게 굴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만 그런 시늉을 하는 것은 아닐까? 어떤 그림을 보고 “이것은 무엇이다”라고 말한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서 그 명명이 그림에 대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까? “최종적으로는” 명명 가능한 사물의 영역은 가상적인 영역이 아닐까? 그리고 그 영역이 가시화된 사물의 영역과 일치했다는 것도 가상적인 판단이 아닐까?

그 사물의 모습이 다른 무엇과 닮아서 재현의 원칙이 지배하는 것일까? 하지만 닮았다는 것이 꼭 재현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우리는 이 등가성, 추상미술이 회의하면서 극복했다는 이 등가성에 의심을 가진다. 닮았다는 것은 사실 매우 복잡한 사태와 연관되어 있다. 물론 추상화 이전의 그림들은 무엇과 닮았다. 다른 한편으로 그 모습이 다른 무엇과 유사하다고 해서 그림이 드러내는 가시성의 비밀이 풀리지는 않는다. 보여지는 것은 물론 무엇과 닮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유사성이 가시성을 다 설명해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떤 것에 닮은 것들은 얼마나 많을 수 있고, 이것들은 또 서로 얼마나 다를 수 있는가? 모네(C. Monet)의 나무와 고흐(V. van Gogh)의 나무는 얼마나 나무를 닮았으면서도 얼마나 서로 다르며, 또 나름대로 힘겹게 가시화의 어려움과 싸우고 있는가? 얼마나 애절하게 가시화의 장벽에 매달리며, 얼마나 치열하게 가시화의 장벽을 뚫고 있는가? 고흐의 태양은 태양과 너무 닮았으면서도 너무 닮지 않았다. 이 경우 닮았다는 것이 무슨 그리 큰 중요성을 가질 수 있을까? 또 그 유사성에 근거하여 “내가 보는 것은 태양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무슨 대수로운 일일 터인가? 다른 사물이나 다른 형상과 닮았다는 것은 유사성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겠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은 때로는 그저 그렇다는 것이지 그 이상을 말하기 위한 필수적인 기반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다른 사물이나 다른 형상과 닮았으면서도 닮음 이상으로 다른 요소를 얼마든지 가질 수 있고, 또 닮음 이상으로 닮음을 무화(無化)시킬 수 있는 성격들을 얼마든지 펼칠 수 있을 터이니. 닮았다는 것은 철학적·미학적으로 정의된 ‘유사’와 일치하지도 않고 그것으로 환원될 필요도 없다.

한 그림은, 설사 그것이 재현의 원칙에 상응하는 유사의 원칙에 따르고 있는 듯할 때라도, 언제 어디서나 유사의 원칙을 배반할 수 있고 비껴갈 수 있다. 유사한 것은 유사의 이름 아래 유사성을 지운다. 유사한 것은 유사의 탈을 쓰고 유사성에 탈을 낸다. 그러면서 유사성에서 이탈한다. 닮았다는 것은 철학적·미학적인 ‘유사’보다 포괄적이며 애매하고 끈질기며 주변적이다. 닮은 것은 형이상학적인 유사의 이념을 구성하지도 않고 그 이념에 기생하여 그것을 전복하지도 않은 채, 닮음의 진부함과 신비를 동시에 실행하고 실현한다.

그려진 것의 보일 듯 말 듯한 비밀은 바로 이 이상한 닮음에 있다. 그림으로 보여지는 것은 다른 사물이나 형상과 유사한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출발하여 더 멀리 간다. 또는 아예 거기에 미치지도 못한 채 그 둘레를 빙빙 돈다. 조형적 표현이 유사를 내포할 수는 있겠지만, 닮았다는 것은 재현으로 귀착하지 않는다. 재현에 의해 전적으로 흡수되거나 점령되지도 않는다. 유사의 탈을 쓰고 그림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이처럼 유사의 사실주의에서 벗어난다. 그림 속에서 어떤 사물과 닮은 것은 단순히 실재하는 어떤 사물을 모방하고 재현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데 유사의 사실주의가 근거하는데, 이는 재현의 형이상학과 몰래 연결되어 있다. 아마도 재현의 원칙에 기대는 일이나 그것에 기대어 거꾸로 그것을 극복하려는 일 모두가 이 재현의 형이상학에 의존할 것이다. 사물을 빼닮은 그림을 그리는 일이 사물을 재현하는 일이라고 믿는 것 자체가 그 형이상학의 표현일 터이다. 재현 이전 상태에서 존재론적으로 순수하게 존재하는 사물의 실존을 설정하는 것부터가 형이상학의 숨겨진 믿음이기 때문이다.

보드리야르(J. Baudrillard)는 영토를 재현하는 지도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그 지도가 영토를 재현하려 할수록, 그 지도는 모순에 빠진다는 점에 도달했다. 아니 거기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거기에 끌려갔는지도 모른다. 그럴 정도로 그는 거기에 홀려 있었다. 그러고는 어디에 이르는가? 그러므로 재현은 끝이라고! 끝장이라고! 그리고 새로운 것이 시작된다고! 가상. 가상. 온통 가상이라고. 가상뿐이라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러한 전복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한 전복은 재현을 너무 형이상학적으로, 너무 존재론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말하자면, 지도는 영토를 엄밀하게 재현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도는 영토를 닮으려 할 뿐이다. 비슷비슷해지려 할 뿐이다. 비슷하다는 것은 말 그대로 비슷하다는 것이다. 꼭 닮았을 수도 있지만 그저 닮았을 수도 있고 때때로 닮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모순에 빠지는 것도 아니다. 모순이란 말 자체가 어쩌면 너무도 가상을 부풀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재현’이란 말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환상의 탈

 

우리는 그린다는 행위가 제기하는 가장 기본적인 물음과 만난다. 무엇을 보면서 그것과 닮은 모양을 그리는 일은 어떤 일인가? 아무리 그림이 사실적일지라도, 그것은 사물을 변형시키면서 재창조한 것일 터이다. 모든 사람이 “내가 보는 이 그림은 저것을 닮았다(또는 저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경우에도 그 빼닮았음은 유사나 재현의 형이상학적 원칙에 굴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간다. 또는 덜 나아간다. 그 그림은 닮음 속에서, 현실과 유사해지거나 ‘현실을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고 새로운 현실을 만든다. 또는 있는 현실을 다르게 보이게 만든다. 그림의 차원에서 현실은 그림 이전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그림과 동시에 새로 존재하기 시작하는 어떤 것이다. 그림 속의 현실은 매우 낡은 것이면서도 매우 새로운 모습으로 시작하기에. 닮았으면서도 닮음에만 의존하지 않고 닮음에서 벗어나는 이것, 그림 속에서 뻔히 드러나면서도 그 뻔함 속에서 말이 없는 이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환상(幻像)이 아닐까? 이상한 일이지만, 모든 닮은 것은 유사와 재현의 탈을 쓰고 그것을 비껴가면서, 더 나아가 닮음의 탈을 쓰고 그것을 바꾸면서, 그것에 탈을 내면서, 환상을 생산해낸다. 훤히 드러나 더이상 숨기는 것이 없는데도 바로 그 훤함 속에서 비밀스러운 환상. 현실과 닮으면서, 심지어는 그것을 빼닮으면서 현실을 다르게 만들고 다른 현실을 재창조하는 것, 이것이 그림이 드러내는 환상이고, 그림 속에서 드러나는 환상이다. 보라, 이미 햇빛 안에 명백하게 있는데도 그것은 그림을 통해 비로소 새로 창조되는 셈이다. 그림을 통하여 눈에 외시(外示)되는 것은 이 창조의 과정을 통하여 비로소 처음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환상은 형이상학적 유사나 재현 이하이거나 그 이상이다. 닮은 듯이 보이는 사물 주위를 유사나 재현보다 좁은 범위에서 뱅뱅 돌거나, 그보다 훨씬 넓은 범위에서 빙빙 돌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 비밀스런 환상이 전혀 보이지 않게 감추어진 어떤 것도 아니고 보이는 것을 초월하는 어떤 것도 아니다. 뻔히 드러나는 데에, 너무도 공공연히 드러나는 데에, 그 가시적인 것의 비밀스러움이 있고 그 현실적인 것의 환상 같음이 놓여 있는 것이다.

닮은 것을 만들어내는 일은 형이상학적 재현의 탈을 쓰기는 하지만 거기에서 조용히 이탈하고 거기에 그 순간마다 탈을 낸다. 사람들은 재현의 원칙을 무작정 따르지는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그렇다면 그 개념을 폐기할 것인가? 역사적 전복의 기초이던 그것을 다시 전복해야 할까? 그러면서 저 역사적 전복의 무효를 선언해야 할까? 요란한 역사적 전략들.

하지만 있었던 그대로 그 말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 혼돈과 다의성 속에서 꿈틀거리게 하고, 자연스런 기복 속에서 실존하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닮음의 탈을 쓰고 탈을 내면서 거기에서 이탈하는 어떤 환상이 그것이라고 이해하는 게 낫지 않을까? 가장 넓은 차원에서 닮은 것을 그리고 만드는 일, 그것을 재현이라 부르는 게 낫지 않을까?7

이 환상적인 것은 지나간 어떤 시대에 발생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지나간 시대에 어떤 지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그림이나 조각 양식이 있다. 그 양식은 전적으로 추상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면서 어느정도 추상성을 내포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언제부턴가 우리가 사실적이라고 여기는 양식에서는 꽤 벗어났을 것이다. 그때 거기에서 가시적인 외시 이미지는 현실적인 가시성이었을 터이고 가시적인 것의 외시성이었을 터이다. 물론 이제는 더이상 현실이 아니거나 현실에서 아득하게 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그 지나간 가시성이 우리에게 환상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그 가시성이 지금의 우리에게만 환상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그 가시적인 그림은 당시 사람들에게도 작용하고 존재했을 것이다. 닮은꼴을 그리거나 조각하는 일은 현실의 가시적인 창조이면서 동시에 환상을 살려내는 일이기에. 현실에 환상의 이미지, 곧 현실처럼 살아있고 그것처럼 명백한 환상의 이미지를 부여하는 일이기에. 지나간 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여기의 사물과 현실들도 그림 속에서 기꺼이 환상으로 외시된다. 환상이란 단순히 지금 여기의 현실이 아닌 어떤 것이 아니라 지금의 현실과 닮았으면서도 그림 속에서 비로소 새롭게 드러나는 어떤 것이기에. 그때 그 환상은 이 현실을 빼닮은 현실을 창조한다. 재현의 형이상학적 원칙에 따르면 현실적인 것을 닮은 것은 가상에 지나지 않지만, 그림 속에서 사물은 이제까지의 현실과 닮았으면서도 그와 다르게 존재한다. 이것이 가시적인 것의 비밀 중의 비밀인 환상이 아닐까.

 

 

환상의 초혼제

 

이 환상은 어떤 초자연적인 것도 현실을 초월하는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다시, 그저 현실적이고, 한번 외시되기만 하면 그저 뻔히 드러나며, 자신이 무엇과 닮았음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당당하게 드러내는 뻔뻔스러움까지 가진 것이다. 여기에 미술의 수수께끼가 있는 듯하다. 거의 주술적인 수수께끼. 특히 유사와 ‘재현’의 구속을 다 털어버렸다고 여기는 현대미술에 던져진 수수께끼. 만일 유사 및 ‘재현’의 극복이나 완성이 정말 이루어졌다면, 다시 구상화가 살아날 필요가 없을 터이다. 구상화는 죽지 않았다. 죽다 살아나는 듯이 보인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부활인가? 부활이라 믿고 이야기하는 일은 너무도 쉽게 유일신을 숭배하는 종교에 종속되는 일이리라. 구상은 정말 죽은 적은 한 번도 없기에 부활하지도 않는다. 사물이나 오브제(objet)의 이미지는 유일신의 부활이나 불멸에 의존하지는 않는 듯하다. 모든 사물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들의 미미한 구상성을 그 미미함 속에서 충분히 확보한 듯하고, 그림은 이 외시 앞에서 매번 경악하고 떨면서 태어난다. 유일신처럼 한번 죽었다가 살아나면서 영원한 존재가 담보되는 것이 아니고, 죽었다가 어쩌면 잠깐 깨어나는 듯하고, 때로는 한동안 살아 있다가 또 죽고 그랬다가는 다시 금방 살아나거나 한참 있다가 겨우 잠깐 또 살아난다. 또는 인간처럼 한평생을 살다 가거나 아쉽게 한평생을 제대로 채우지도 못한다. 가지각색이다. 추상과 비구상의 맹렬한 침투 속에서 죽다 되살아나는 사물의 구상성은 이미지의 표면적인 모양과 물질이 갖는 무력하면서도 끈질긴 힘 덕택이다. 이 끈질긴 힘이 무력하다는 것은 모순이 아니다. 그들은 유일신처럼 권력을 휘두르거나 복종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햇빛 한 조각으로 충분하거나 그늘 한 점에 가려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우고 또 지워도 사물들의 구상성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사물들은 제 얼굴을 잠깐 지우거나 감추기는 했어도 결코 완전히 포기하거나 지우지는 않았다. 얼굴이나 표정을 자꾸 바꾸기는 했다. 때로는 정말 달라 보이기도 했고 때로는 서로를 잘 구분하지도 못할 정도였다. 또는 거꾸로 자주 바뀌는데도 사물들의 표정은 그저 그렇게 닮은 듯했고, 그런 가운데서도 사물들은 충분히 달라 보였다. 때로는 추상적 형상에 갇힌 듯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물들의 풍경은 빛이 아주 조금이라도 비치면 다시 살아난다. 이 점에서 조용히 다시 살아나는, 죽다 살아나는 사물들의 구상성은 무력한 듯하지만 나름대로 끈질기다. 너무도 끈질기다. 그들의 무력(無力)은 무력(巫力)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유일신의 체계를 욕망하지 않고 거기에 미치지도 않는 무속의 힘. 한번 부활하면 영원한 부활이라며 성스러움을 과장하거나 과시하는 종교와 달리, 가시화되는 순간마다 사물과 오브제들을 죽음에서 일으켜세워 되살려내는 무속의 힘.

20세기 추상화가 유사 및 재현의 죽음을 선고하기는 했지만, 구상들은 다시 살아나 세상을 떠돈다. 추상의 무기로 죽이고 죽여도 살아나고 살아난다. 잠깐잠깐 살아나거나 오래오래 살아 있거나 죽다 살아나기를 거푸 반복한다. 또는 처음부터 그렇게 살아 있었으면서 사물들은 그려질 때마다 죽음의 의식을 치르는 모양이었다. 죽음을 통해 살아 있는 모양이었다. 추상화 이후 구상을 되살리는 화가는 일종의 초혼제를 치르는 모양이었다. 구상을 살려내는 화가는 무당을 닮은 모양이었다.

무당은 너무 빨리 온 죽음, 부당하게 온 죽음, 원통하게 온 죽음을 어루만지고 설득한다. 이미 한번 온 죽음을 어찌하지는 못하고, 죽은 자에게 한을 풀고 가라고 설득한다. 무당을 닮은 화가는, 예술사의 권위를 믿고 추상화가 강요한 구상의 죽음의 한을 씻어준다. 너무 빨리 왔거나 원통하게 온 구상의 죽음 때문에 죽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노래한다. 해한(解恨)만 하는 것이 아니다. 화가는 우리가 익숙하게 안다고 여기는 가상, 존재의 형이상학적 그림자인 가상을 씻어버리는 씻김굿을 한다. 그 대신 그 뻔한 외시에서 새로운 환상이 외시되게 한다. 명백하게 현실적이면서도 명백하게 비현실적인 환상을.

 

 

모던의 틀과 탈

 

모던 예술이 전통적인 재현의 방식을 거부했다는 설명은 설명의 명백함을 넘어 도그마가 되어버렸다. 너무도 당연한 사실로 정립된 도그마. 왜 그런 거부와 저항에 대한 맹신이 생겨났을까? 모더니즘의 거부는 처음에는 재현을 송두리째 거부하는 움직임으로 이해되었지만, 그보다는 넓은 재현, 우리의 표현으로 하자면 ‘x─현’으로 나아가는 중대한 과정이 아니었을까. 그러기에 처음에는 더이상 구상은 불가능하고 의미도 없다고 선언하는 제스처들이 흔하였으나, 그런 선언은 역사적이며 인과론적인 설명에서 끌어낸 성급한 결론에 지나지 않았다. 구상 또는 재현은 죽지 않는다. 이미 존재했던 고전적 형태 역시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심지어 서로 멀리 떨어진 시대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외시를 반복하고 재현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시대의 노래들이 진부한 사랑의 힘을 거듭 재현하고 또 재현하지 않는가. 극단적인 예로 보이겠지만, 서로 다른 시대의 예술가에 의해 똑같이 닮은 외시를 가지는 작품도 생산될 수 있다. 모든 예술이 나름대로 외시의 환상을 구성한다면 지금도 여전히 벨라스께스(D. Velázguez)처럼 그릴 수도 있고 앵그르(J.A.D. Ingres)처럼 그릴 수도 있지 않은가? 닮았으면서도 닮음의 탈을 쓴 외시 이미지의 반복을 막으려든다고 막을 수도 없을 것이다. 전통적인 재현의 방법이 힘을 잃은 것도 사실이지만, 넓은 차원의 재현의 힘이 소진된 것은 아니다. 구상의 방법들은 아직도 여전히 새로 발견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고전적 양식들도 새롭게 발견될 여지를 가지고 있다. 프랜씨스 베이컨(Francis Bacon), 루시앙 프로이트(Lucian Freud)의 그림은 도저한 추상과 설치의 시대에 얼마든지 평면 작업이 지속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데이비드 호퍼(David Hopper)의 그림은 진부한 미국사회의 가상공간 속에서도 외시의 재현은 여전히 살아있고 새로 발견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과거에는 사물의 구상적 외시가 전통적 방식으로 재현되었다면, 모더니즘 이후로는 저항과 부담을 무릅쓰면서만 재현될 수 있다는 점이 차이일 것이다.

그렇다면 저 유명한 모더니스트들의 한탄, 고전적인 작품을 좋아하지만 그리로 가는 길은 막혀 있다는 한탄 섞인 자부심은 무엇인가?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가 벨라스께스처럼 그리고 싶었지만 더이상 그렇게 그릴 수는 없어서 구리로 긴 줄을 만들어 꼬았다는 이야기, 마크 라스코우(Mark Rothko)는 그리스식으로 그리고 싶었지만 더이상 그렇게 그릴 수는 없어서 그의 추상화를 그렸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과거처럼 그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그릴 수는 없어서 모던하게 그릴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모더니즘의 탄생을 설명하는 이 신화는 얼마만한 진실을 가지고 있을까?

그 신화는 무엇보다도 재현의 신화에 근거한다. 재현의 신화를 거부한다면서 바로 그 거부를 통하여 신화를 생산하고 있기에. 전통적인 재현은 이제는 불가능하게 된 신화로 치부되지만, 바로 그 우상파괴를 통해 모더니즘은 자신의 우상을 세운 듯하다. 물론 20세기에 벨라스께스나 뿌쌩(Nicolas Poussin)처럼 그리는 일은 거의 미친 짓일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왜 미친 짓인가? 너무 쉬워서 그런가? 오히려 그렇게 그리는 일은 지금이나 앞으로도 매우 힘든 일이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아주 극단적인 예로, 역사적 상황 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듯 그들과 똑같이 그려진 그림이 있다고 하자. 그렇게 그리는 일은 그저 어리석거나 생각없는 일일까? 전혀 아니다. 최소한 형식이나 외양에서 그들과 똑같이 그리는 일조차 매우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역사적 상황이 바뀌었다면서 더이상 예전처럼 그릴 수 없다고 말하지만, 그로써 사람들은 변화의 필연성을 설명했다기보다는 기껏해야 빙자한 것일 터이다. 역사적으로 지나간 형식들도 얼마든지 지금의 우리에게 새롭게 말을 한다. 이처럼 ‘재현’을 형이상학적인 사태로 취급하면 문제는 간단하다. 그와 달리 그것을 닮음의 탈, 닮음의 환상으로 취급하면 문제는 매우 복잡해진다.

모더니즘이라는 역사적인 전환에 대해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재현이 불가능하기에 모더니즘이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포괄적인 차원의 재현이 열렸기에 모더니즘은 올 수 있었을 것이다. 다양한 방식의 추상도 세상의 모습을 닮으려는 갈래갈래의 과정이 아니겠는가. 그 닮음의 탈을 쓰고 탈을 내고 이탈하고자 하는 과정의 갈기갈기들이 아닌가. 흔히 모더니즘은 새로운 추상의 틀로 전통적인 ‘재현’을 추방하려 했다고 여겨지지만, 그 틀이란 것은 더 넓은 차원의 재현의 탈, 닮음의 탈일 뿐이다.

다시 제기되는 기본적인 물음. 닮은 무엇을 그리는 행위는 왜 어쩔 수 없이 형이상학적 유사와 재현의 틀에 갇힌다고 여겨졌는가? 우리는 앞에서 “무엇을 보면서 그것과 닮은 모양을 그리는 일은 어떤 일인가?”라고 물으면서 그 행위조차도 변형과 재창조 과정일 것이라고 파악했다. 다시 묻자면, 우리는 무엇을 꼭 보면서 그것과 닮은 무엇을 그리는가? 보는 행위는 그대로 그리는 행위로 이행되고 전사(轉寫)되는 것일까? 현재 보는 내용이 그 상태 그대로 입력된 후에 그리는 행위 속에서 출력되거나 반영되는 것일까?

현재형 ‘본다’에 내포된 여러 전제들이 서로를 끌고 서로 끌려다닌다. 하나만 끄집어내보자. 그렇게 보기 위해서는 대상을 고정시켜야 한다. 포즈를 취하게 하고 움직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사생(寫生)이란 말은 벌써 여기서 하나의 규범으로 작용한다. 대상은 생생하게 살아있다기보다는 굳어 있다. ‘본다’와 ‘보며 그린다’는 현재형 원칙은 살아 움직이는 선과 모양을 배제한 후에야 지켜지는 셈이다. 더구나 보며 그린다고 할 때도 대부분 주체는 실물의 크기를 이미 알고 있다. 그 크기를 재인식하고 재회상하면서 보는 행위는 이루어진다. 앞의 쟈꼬메띠 예에서 드러나듯 실제로 화가들은 정말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보려고 한 대로 보면서 그리곤 했다. 실물에 대한 지식이나 그 원형에 대한 믿음이 많건 적건 설정되었고, 대상은 그에 따라 선험적으로 설정되었을 것이다. ‘보며 그린다’는 행위는 존재론적 재현의 틀 밖으로 삐쭉 나온 가지들을 사정없이 쳐내거나 아예 보려고 하지 않았다. 존재론적 재현은 그런 배타적 현재형에 의존했다.

보는 일과 그리는 일은 현재로 시작해서 현재로 끝나는 법이 없는데도 말이다. 한 순간으로 시작해서 그 한 순간의 점 속에서 종결되고 완성되는 ‘보며 그리기’를 이야기했으니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실제로 보는 일과 그리는 일은 허망하고 지루할 정도로 시간을 끈다. 단순히 보고 또 보고 다시 봐야 한다는 기계적 반복이 아니라, 보았던 순간이 기억 속으로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진다. 기억의 나날 속에서 가물가물하다가 다시 튀어나오거나 기억의 파도에 밀려갔다가는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해야 할 것이다. 그리기도 마찬가지다. 덧붙여야 하고 덧칠해야 하고 지워야 할 때도 있다. 정말 한 순간에 시작해서 한 순간에 끝나는 그리기가 있더라도, 그 일필(一筆)은 단순히 한 순간의 ‘본다’에 의해 생산된 것이 아니라 첩첩이 쌓이고 숨겨진 기억들이 현재와 미래와 만나면서 이루어진 움직임일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한 동양화가의 체험을 인용한다. 그는 모델에게 포즈를 취하게 하는 서양화가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 모델이 새라면 그는 쉬지 않고 움직일 것이고 화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와 달리 동양화가는 하루 종일 새를 관찰할 것이다. “휙 지나가듯이 바라던 포즈가 나타날 때마다, 그는 모델로부터 멀어져서 세 획이나 네 획으로, 수백 권을 헤아리는 공책들 중 한 권에 그가 보존한 기억을 스케치할 것이다. 끝에 가서는 더이상 새를 쳐다보지 않아도 그가 재생할 동작을 너무도 잘 기억할 것이다. 평생 그렇게 자신을 훈련하면서, 너무도 생생하고 너무도 정확한 기억을 획득하였기에 그는 관찰하도록 주어진 모든 것을 머리로 재현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복사하는 것은 현재의 모델이 아니라, 그의 정신이 저장해놓았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이 교훈은 앵그르가 뿌쌩에게서 끌어냈던 그것과 비슷하다. ‘뿌쌩은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다. 화가는 사물을 복사하느라 기진맥진할 때보다 오히려 그것들을 관찰하면서 솜씨있게 된다고 (…) 그리고 화가는 자연을 기억 속에 매우 잘 가지고 있어야 그것이 저절로 작품 속에 자리잡는다’고.”8 물론 기억은 단순히 뇌에서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연필이 아니면 눈으로라도 관찰하는 습관은 몸에 각인되는 기억이다.

설사 무엇을 닮았더라도 그 닮은 그림은 현존하는 모델을 복사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저장된 기억과 훈련을 복사한 것이다. 그리는 행위의 근저에 깔린 기억과 훈련의 흔적을 언제나 딱 집어 지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모든 재현은 그 자체로 x─현일 터이다. 대상을 보지 않아도, 지금 보고 있지 않아도, 화가는 재현한다. 우리는 이 맥락을 좀더 확대할 수 있다. 화가는 단지 기억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상상하고 추상한다. 기억의 도움을 받았을 수도 있겠지만, 인과론적 관계를 따라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더이상 대상을 보지 않아도, 기억과 상상과 추상의 도움으로, 그는 닮은 것을 그린다. 꼭 닮은 것이든 느슨하게 닮은 것이든, 닮은 것을 재현한다.

그림은 그리고 복사하는 행위의 현재적 틀에 갇혀 있는 이미지가 아니다. 기억과 상상과 추상의 길을 따라 돌아다녔고, 돌아다니고, 돌아다닐 이미지이다. 결국은 고정되지 않았느냐고? ‘결국’에 매달리지 마라! 지금 보고 앞으로도 볼 사람의 시선을 통해 그것은 언제나 그의 현재형을 넘고 또 넘어간다.

닮은 것에는 끝이 없는 듯하다. 나무를 닮은 나무 그림은 수없이 계속된다. 그리스의 나무, 솔거의 나무, 클레(P. Klee)의 나무, 쎄잔느(P. Cézanne)의 나무, 박수근(朴壽根)의 나무 등등. 그것들은 그저 그 비슷한 것, 그와 닮은 것으로 뻔히 외시되고 재현된다. 상징과 알레고리로 존재할 필요 없이, 상징과 알레고리 이전에, 뻔히 외시된다. 그림의 이미지는 틀에 갇혀 움직이지 못하는 듯하지만, 그것은 이미 과거로 미래로 돌아다니고, 과거의 미래로 미래의 과거로 돌아다닌다. 닮은 것들은 닮은 공간을 복제하면서 닮음의 미로를 확보하고 확장시킨다. 닮은 것들은 닮음의 틀에 갇힌 듯하지만, 닮은 것들의 탈을 쓰고 닮음에 탈을 내고 닮음에서 이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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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국가』 10권, 595a~598c.
  2. 『시학』, 4장 1448b 13~19행.
  3. Michel Foucault, Ceci n’est pas une pipe, fata morgana, 1973, 39면.
  4. 같은 책, 42〜43면. 강조는 인용자.
  5. 같은 책, 85〜86면. 사물들이 처음부터 유사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는 마그리뜨의 견해는 우리의 생각을 뒷받침해줄 것이다.
  6. “모든 그림에서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 그것은 닮은 것이다. 곧 나에게 닮은 것이다. 바깥 세계를 조금이라도 발견하게 만드는 것.” G. Charbonnier, Le Monologue du peintre, Paris 1959, 172면.
  7. 필자는 다른 글에서 이미 ‘재현’ 개념을 확장하였다. 그렇게 확장된 재현은 정확히 말하자면 단순한 두번째 재생산이 아니라, 두번째도 될 수 있고 세번째도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네번째도 될 수 있는 그러므로 항상 x번째인 ‘x-현’에 가까운 어떤 것이었다. ‘재현’ 개념을 형이상학의 틀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이론적 작업이 있다면, 그것은 예술 작업이 일차적으로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의미나 상징이라기보다는 외시(外示)라는 점을 밝히는 일이다. 「외시(外示)하며 외시되는 예술」, 『문학과사회』 1999년 가을호.
  8. Claude Lévi-Strauss, Regarder écouter lire, Plon 1993, 39〜4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