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시 | 2000년을 여는 젊은 시인 20인

 

주창윤 朱昌潤

1963년 대전 출생. 1986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물 위를 걷는 자 물 밑을 걷는 자』 『옷걸이에 걸린 羊』 등이 있음.

 

 

 

퀵써비스 맨의 飛翔

 

 

빨간 신호등에 걸려 멈춰 서 있는데

어느새 날아왔는지 한떼의 회색 비둘기떼처럼

퀵써비스 맨 오토바이들이

구구구구 울부짖는다.

그들은 제각기 흩어져 비상하다가

신호등 앞에서

서로의 부리로 안부를 확인한다.

생존의 속도를 늦추기도 전에

아직 켜지지 않은 초록불을 향해서

퀵써비스 맨 오토바이들은 질주하듯 퍼져 날아간다.

저마다 천국행 서류봉투를 들고 가거나

화환을 들고 장례식장으로

빠르게 질주한다.

나는 그 뒤를 조금 천천히 따라갈 뿐이었다.

 

 

 

사우나실의 나비 노인

 

 

사우나실에 혼자 앉아 있는데

여든쯤 된 노인 한 분이

들어왔다.

달팽이 허리

깊게 주름이 간 뱃가죽

 

나는 먼저 사우나실을 나와

온탕에 앉아

노인이 밖으로 나오길 기다렸다.

살을 뺄 이유도

벗겨낼 껍데기도 없는 노인이

사우나실로 들어간 이유를 생각했다.

 

십분이 지나도

노인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혹시 사우나실에서

졸도한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어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노인은 없고

대신 나비 한 마리가 밖으로 날아갔다.

 

이건 莊子의 꿈도,

나의 꿈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