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시 | 2000년을 여는 젊은 시인 20인
최치언
1970년 전남 영암 출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여자의 일생
저 떡 파는 여자는 언제부터 떡을 팔았을까요
좌판을 먼저 샀을까요 아님 떡을 먼저 만들고
좌판을 사고 이제부터 떡을 팔아야지 했을까요
아침부터 떡을 파나요 내가 그 자리를 지나가면
그때부터 떡을 파나요 그런데 저 떡 파는 여자는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오면 졸고 가버리면
심심하게 머리만 긁적이는데 떡은 언제쯤이나 팔까요
혹시 단 한번도 떡을 팔아보지 못해 자기가 떡 파는
여자란 걸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저녁이면
쓸쓸히 좌판을 거두고 전대 속 같은 비좁은 방안에 들어앉아,
쉰 떡들에 묻혀 깜박 자신의 시름을
까먹고 쓰러져 잠이 들까요
떡을 많이 판 꿈을 꾸는 날은
새벽부터 떡을 많이 만들까요 아님 별일 없다는 듯
쑥떡 같은 얼굴에 분만 찍어 바를까요 그러면,
내가 지금 먹고 있는 떡은 그 여자가 만들었을까요
떡 파는 여자한테 그 여자도 떡을 샀을까요
아무려면 어때요 떡은 떡 파는 여자를 모르고
떡 먹는 나도 모르는데 정말 아무려면 어때요
저 여자는 어느 때부턴가 그저 떡만 파는 여잔데요
避老基悟
구둣방 할아버지가 나무로 피노키오를 만들었다
할아버지는 피노키오를 만들었는데 정작 나무는 만들지 못했다
어느날 피노키오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할아버지 저는 누가 만들었어요?/내가 만들었지
제 몸은 왜 이렇게 비를 맞으면 젖나요?
나무로 만들었으니까/할아버지가 나무를 만들고
그 다음에 저를 만들었나요?/아니 나무는 집 밖에 혼자
자라고 있었고 내 손은 너만을 만들었지/그럼 나는 나무도
모르고 할아버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내가 나를 알 수 있나요?
그야 너는 거짓말만 잘하면 된단다
뭐라고 말하면 되나요?
나는 피오키오다 나는 정말 피노키오다
할아버지의 코가 뾰족하게 자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