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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통신│7차 교육과정의 허실을 짚는다
요란한 빈 수레
최정윤 崔禎允
대림여자중학교 과학과 교사. blanqui@chollian.net
1. 올해부터 중학교에도 7차 교육과정이 1학년(7차 교육과정에서는 7학년이라고 부른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지난 교육과정들 역시 현장교사들에게는 불만스러운 면들이 있었지만, 이번에 적용되는 7차 교육과정은 좀 특별한 구석이 있다. 일단, 1995년 5·31개혁조치 후 교육부 고시가 나왔다고는 하지만, 현장교사들에게 정작 7차 교육과정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은 작년 10월이 지나고 나서였다. 유례없이 대대적인 연수가 잡히고, 7차 교육과정에 대한 어마어마한 양의 각종 해설서들이 각 학교에 어지럽게 쏟아지기 시작한 것도 겨울방학에 들어서는 작년 12월의 일이었다. 7차 교육과정이 당장 올해 중학교 1학년에서 시행되는데도 현장교사들에 대한 연수가 이렇게 늦어진 이유는 각 시·도 교육청이 이를 현장에 어떻게 적용할지를 놓고 골머리를 앓느라, 현장교사들에게 연수를 실시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 같다. 99년 7차 교육과정에 대한 후속지원 대책을 논의한 자리에서 각 시·도 교육청의 담당장학사들이 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낸 자료를 보면, 시·도 교육청 역시 학교 못지않게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현장교사들에게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시간들이었다. 7차 교육과정은 학교현장에 어떻게 적용될지 가늠할 수 없게 대단히 복잡하고 너무도 공상적이어서, 현장교사들은 이를 “최소한 2달 넘게 연구해야 이해할 수 있는 교육과정”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지난 6월에 청주 교원대에서 열린 ‘한국교육과정학회’에서 허경철 교육과정평가원장은 이런 말을 했다. “여기 계시는 분들 중 7차 교육과정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몇명 안될 것입니다. 7차 교육과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들이 많지만,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곳에는 각 대학의 교육학과 교수와 대학원생 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7차 교육과정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것은 현장교사들만이 아님을 그 입안자 스스로 밝혀주었다.
2. 7차 교육과정에서는 어느 때보다도 더 영어와 수학을 잘해야 아이들이 학교 다니기가 편해진다. 수학의 경우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는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단계형 교육과정이라고 한다. 거기에 수준별 수업을 강조하여, 과목별로 우열반 수업(수준별 이동수업)을 하면서 학기마다 이수기준(학교마다 진급·이수기준이 다르다. 모든 학교의 정기고사 평가내용은 서로 다르고, 또 진급기준 역시 학교마다 알아서 정하도록 되어 있다)을 정해 진급기준 미달 학생에 대해 재이수 과정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교육부 지정 연구시범학교의 사례는 재이수 과정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보여주었고, 이미 시·도 교육청 차원에서는 재이수 과정을 폐기처분한 상태이다. 대신 특별보충과정을 운영하라고 한다.
‘진급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별보충반을 만들어 학기중이나 방학 때 운영하라는 것이다. 심정적으로 보면 학습결손을 최대한 막아보겠다는 취지에 공감이 가지도 하지만,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진급기준에 미달할 아이들을 미리 점찍어서 ‘넌 이번 학기에서 40〜60점 미만이 될 것이 분명하니, 특별보충반 수업을 받아라’라고 하는 꼴이다. 서울시 교육청은 학기당 20시간에 해당하는 특별보충과정 운영지원비(특별보충반 운영 교사에게 시간당 1만 3천원씩 강사료 지급)를 마련해 각 학교에 내려보낸 다음, 서울시에 있는 모든 중학교에서 반드시 특별보충반을 운영하도록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좀 심한 학교는 특별보충반 수업을 듣지 않으면 진급할 수 없다고 아이들에게 공갈 협박(?)을 해서 방과후에 도망가는 아이들을 붙들어놓는다고 한다. 더구나 그 학교는 특별보충반 대상 학생을 3월에 교육과정평가원에서 나온 평가지로 선정했다고 한다. 그 아이들은 이미 3월에 진급기준 미달자로 낙인찍힌 꼴이다. (그러나 특별보충과정 이수 여부가 진급 여부를 결정할 수는 없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교육과정위원회와 교과협의회를 통해서 특별보충반 대상 학생을 중간고사 점수를 기준으로 교과별로 자율적으로 정한 후 대상자 중 희망하는 학생에 한해서 특별보충과정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우리 아이들이 특별보충반에 편성되었다는 것 때문에 수치심과 좌절감을 경험하는 것은 수학·영어 40점 미만을 받는 것보다 더욱 비교육적이라는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어와 수학 교과 모두 특별보충반 대상자 명단에 올랐던 우리 반 한 아이는 특별보충반 대상자 명단이 나온 날 희망하지 않으면 특별보충수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는데도 불구하고, 5일 넘게 무단결석을 했다. 그 아이는 자신의 요구대로 특별보충반 수업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좌절감과 수치심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후의 일이다. 어떤 정책도 모두를 다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학교교육이 영어와 수학 성적으로만 판가름나는 것인가? 우리 반의 그 아이는 결국 영어·수학 과외교습을 받기 위해 학원에 등록했다.
3. 나는 지금 중학교에서 1학년 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수업시간에 속으로 몇번씩 교육부 욕을 한다. 교과서는 종이도 좋아지고, 사진도 컬러에다 글자 크기도 커져서 겉보기에는 아주 좋다. 하지만 교과내용과 수준의 적정화를 외치던 7차 교육과정의 구호는 어디로 갔는지, 교과서를 얇게 만들기 위해 교과내용을 심하게 요약해놓아서, 아이들에게 수박 겉핥기 식으로 가르치지 않으려면 오히려 설명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하다. 게다가 지금 중학교 2학년 내용이 7차 교육과정에서는 1학년에 가르치도록 되어 있는 부분이 많다. 7차 교육과정에서 얘기되는 교과내용의 적정화는 더 어려운 내용을 가르치라는 것이다. 비단 과학 교과만의 일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더 어려운 것들을 가르치면, 아이들의 실력이 더욱 향상되는 것인가? 교육부는 교과내용의 양과 난이도에 대한 교사들의 문제제기를 인정하면서도, ‘교과서를 다 가르치라는 것이 아니다. 교사가 자기 전문성을 발휘하여 새롭게 교과서를 재편성하여 가르쳐라’고 발뺌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교사에게 교과서를 재편성할 수 있는 자율성이 주어졌는가?
이번 6월 28〜29일 이틀 동안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전학년에 걸쳐 교육과정평가원에서 실시한 ‘국가수준학업성취도 평가’는 원래 취지가 교육과정평가원의 연구목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시·도 교육청이 모든 학교에 시험을 볼 것과 평가결과를 보고하도록 강요하는 공문을 내려보내 파문을 일으켰다. 현장교사들의 반발로 약화되기는 했지만, 내년에 또 되풀이될 소지가 짙다. 중학교 3학년에서 치르는 ‘평가’의 경우 1,2학년에서 배운 내용을 평가하는데, 어떤 교사가 과연 교과의 모든 내용을 가르치지 않고,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하여 과감하게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단 말인가? 교과내용의 양과 난이도는 오히려 교사에게 더욱 ‘주입식 수업’을 강요하고 있다. 또 아이들에게는 공부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을 잃게 하며, 학부모에게는 사교육 시장의 필요성만 더욱 증폭시킬 뿐이다.
교육부에 묻고 싶다. 도대체 7차 교육과정의 교과내용의 양과 난이도를 우리나라 어느 아이들의 수준에 맞춘 것인지, 이에 대해 정말 과학적이고 정밀한 검토는 이루어졌는지? 교육부가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고백해주었으면 좋겠다.
올해는 7차 교육과정이 전면적으로 시행되고 있지 않은데, 수준별 이동수업은 과목별 우열반 수업임이 밝혀지면서, 교육부와 교육청도 수준별 수업을 꼭 이동수업 형태로 하지 않아도 된다고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그러나 7차 교육과정과 더불어 전반적으로 교사의 업무량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7차 교육과정에서 중시하는 것 중 하나가 정보화교육이다. 그런데 정작 정보화교육의 본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하기도 전에 컴퓨터를 이용하여 모든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정보화로 오인되고 있다. 그래서 학교의 모든 업무를 전산처리하는 씨스템이 도입되었고, 낡은 교실에 어울리지 않은 멀티씨스템이 등장했다. 많은 교사들이 하루 일과 중 많은 시간을 컴퓨터 앞에 붙들려 있다. 수업시간에 멀티씨스템을 이용하는 교사가 선진적인 교사인 것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칠판의 판서를 컴퓨터를 이용한 판서로 바꿀 뿐이라도 선진적인 수업을 하는 것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찌는 불볕더위에 낡은 선풍기의 굉음과 비싼 멀티씨스템이 공존하는 교실 풍경이 7차 교육과정이 불러일으킨 교실의 현재 모습이다.
4. 내가 7차 교육과정을 접한 것은 작년 여름방학기간에 있었던 1급 정교사 자격 연수에서였다. 연수기간 동안 올해 도입될 7차 교육과정에 대한 강의가 이어졌다. 대부분 현실성이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 심지어 어떤 강사는 교직에 대한 구조조정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기조차 했다. 대부분 교육관료로서의 책임있는 자리(교육청이나 교육부)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한결같이 하는 말은 “7차 교육과정의 핵심적인 내용들은 이미 정해져서 내려왔기 때문에 문제점이 있음을 알지만 어떻게 할 수 없었다”라는 변명들이었다. 그 말은 곧 “교육부를 향해 정면으로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라고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차라리 7차 교육과정은 너무 좋은 것이니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고 강의를 했다면 화가 조금 덜 났을 것 같다. 현장교사들이 누구보다 그 문제점을 잘 알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아니면 최소한의 양심을 저버릴 수 없어서였는지, 갖가지 문제들을 지적하면서도 어떤 해결방법도 모색하려 하지 않는 모습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리고 7차 교육과정이 학생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7차 교육과정이 아이들에게 정말 다양성과 창의성과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현장교사들이 크게 반발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7차 교육과정은 수준별, 단계형, 심화보충형, 재량활동, 선택중심교육과정 등 또다른 용어로 다시 학교를 획일화하려 하고 있다. 또한 학교를 조금이라도 인간다운 환경과 구조에서 학습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 작정이었다면, 적은 교육예산이라도 더 알차게 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책상, 걸상, 화장실, 먹는 물, 샤워실, 분필가루 날리는 칠판, 여름이면 덥고 겨울이면 추운 환경, 낡은 선풍기, 낡은 난로, 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명패만 걸어놓은 특별실들…… 이런 것들을 고쳐나가는 것이 그럴싸한 멀티씨스템을 교실에 들여놓는 것보다 돈이 더 들고 생색이 나지 않을지라도, 학교교육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을 한다면 지금 같은 모습은 아니어야 할 것이다. 또한 교육의 형식에 치우친 교육개혁이 아니라 내용과 형식의 조화로운 변화를 현장으로부터 찾아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교육당국은 말로만 교사·학생이 교육의 주체라고 하지 말고, 그들의 의견을 귀담아듣고 반영하는 교육정책을 펴나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