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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통신│7차 교육과정의 허실을 짚는다

 

효율성을 앞세운 교육시장화

 

 

조남규 趙南圭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육선전실장. 오류여자중학교 역사과 교사. nkcho@ktu.or.kr

 

 

1. 교육계에서도 ‘신자유주의’라는 용어가 심심찮게 나오더니, 이제는 거의 일상화되고 있다. 1995년 5·31 교육개혁 때만 해도 ‘수요자 중심’의 교육에 대하여 그 방향은 괜찮은 것이라고 생각하기조차 했다. 그러나 점차 그 성격이 분명해지고 있다. 경제논리·시장논리가 교육 분야에도 들어와 수요자 중심의 교육이 외쳐지더니, 그 결과는 경제논리 그대로 ‘유효수요자’만을 위한 교육임이 분명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교육인적자원부에서 발표한 과외비 실태조사에 따르면, 교육개혁의 치적이라고 선전되어온 각종 정책들이 한결같이 과외비 증가의 원인이 되었다고 학부모들이 응답하고 있다. 특기·적성교육 실시, 보충수업 폐지, 대입 특별전형 강화 등이 그 대표적 예이다. 우리의 현실에서 창의성과 개성, 적성 등이 입시에 반영되면, 집안에 경제력이 있어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받을 수 있는 학생들이 유리하기 십상인 것이다. 대학입시에서 면접이 강조되면 면접 쪽집게 학원이 성행하고, 영어회화가 강조되면 영어학원이 성행하며, 이로 인하여 가면 갈수록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어간다.

서울대 입학생의 50% 이상을 강남 출신이 차지한다는 것이 새삼스럽지도 않고, 고등학교에서는 가난하지만 공부 잘하는 학생을 찾아 장학금을 주려 해도 찾기 힘들다는 한탄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실시되기 시작한 7차 교육과정이나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는 자립형 사립고 등의 경우는 이러한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가속화하고 제도화한다는 점에서 매우 경계해야 한다.

 

2. 7차 교육과정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를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을 실시하는 10학년제로 설정하고, 수준별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고등학교 2,3학년에서는 선택중심 교육과정이라 하여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보장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먼저 한 교실에서 수업내용을 이해하는 학생은 5명도 안되고 나머지 학생들은 수업에서 소외되어 있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수준이 비슷한 학생들로 학습집단을 구성하여 그에 맞는 교육을 받게 하자고 한다. 그렇게 되면 수업에 대한 흥미도 더욱 높아지고, 따라서 학업성취도도 높아지며, 과외를 받을 필요도 없어진다는 것이다. 참으로 좋은 말이고 기막힌 발상이어서 왜 전에는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싶기조차 하다. 그러나 아무리 말이 그럴듯해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는 우열반을 실시하자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실제 영어와 수학 과목에서 우열반을 실시한 결과, ‘상’반에서는 약간의 성취도가 향상되었지만 ‘중’ ‘하’반에서는 성취도가 대폭 하락하여 전체 평균이 더 떨어진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 다른 한편, 중·하반을 벗어나 상반에 오르기 위한 학원 과외가 극심하게 되어, 2000년 초등학교 1,2학년에서 7차 교육과정을 실시하고 나서 초등학생 과외비가 15% 상승했다는 교육부 설문조사 결과도 보고되고 있다. 학습지 시장에서는 7차 교육과정이 효자로 생각되고 있는데, 학습지 회사의 직원들이 “이제 학교에서 우열반을 실시하는데, 어떻게 할 겁니까?”라며 접근하면, 백이면 백 모두 학습지를 구독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교육부는 수준별 교육을 적극 실시하지 못하고 학교 자율에 맡겨 평가권만 행사하겠다고 한발 물러서, 평가를 통한 행정·재정 지원으로 원격조정을 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수준별 교육의 또하나의 문제점은 왜 영어·수학만 강조하느냐는 것이다. 7차 교육과정에 따르면 영어와 수학은 ‘단계형 수준별 교육과정’을 실시해야 하고, 국어·사회·과학은 ‘심화보충형 수준별 교육과정’을 실시해야 하며, 그외 과목은 수준별 교육과정을 실시하지 않게 되어 있다. 단계형은 학습내용의 위계질서가 분명하고, 심화보충형은 위계질서가 불분명하고, 그외 과목은 위계질서가 없다는 것인데, 어디에도 그러한 학습내용의 위계질서가 확인된 근거는 없다. 심지어 학습내용의 위계가 분명하다고 여겨지는 수학조차, 실제 구성에서는 중학교 1학년 1학기에 배우는 ‘집합’이 다음 단계인 1학년 2학기에는 물론 중학교 내내 다루어지지 않다가 고등학교에 다시 나오게 구성되어 있어서, 전 단계를 이수해야만 다음 단계 이수가 가능하다는 단계형 교육과정의 의미를 완전히 퇴색시키고 있다.

사실 수준별 교육과정이 제기된 이유는 국어는 7학년, 사회는 5학년, 음악은 9학년인 학생이 있을 수 있으니 학생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수월성을 보장하여 분야별로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을 하나씩 키워내자는 것인데, 그나마 영어·수학 중심으로 이루어져 사실상 입시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로 인한 사교육비 증가를 부추기고 있다.

7차 교육과정의 또하나의 중심축은 고등학교 2,3학년에서 실시되는 선택중심 교육과정이다. 선택중심 교육과정은 기존의 문·이과 과정을 폐지하고 학생들에게 과목 선택권을 부여하여, 개인별 교육과정이 이루어지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일정 규모(약 30명) 이상의 학생이 선택한 과목은 학교가 개설하여야 한다는 규정까지 고시되어 교육부는 자승자박의 꼴이 되어 있다.

79개의 일반교과와 500개가 넘는 전문교과 중에서 학생들이 선택하여 이루어지는 개인별 교육과정의 경우의 수는 이론적으로 8천 가지가 넘고, 현실적으로는 학생 개개인의 수만큼 나오게 되어 있어 선택중심 교육과정을 말 그대로 실현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점은 교육부도 인정한다. 그래서 문·이과보다 세분화된 5개 정도의 집중과정을 개설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선택하게 하겠다는 것이 교육부의 복안인데, 이는 대개 인기있는 외국어와 공학 및 인기없는 인문학·사회과학·자연과학 집중과정으로 구분되어 있다. 결국 세분화된 집중과정이라는 것도 대학 가기에 유리한 국어·영어·수학·사회과 중심의 과정임을 알 수 있다. 게다가 특정 집중과정만을 가르치는 특성화고교를 적극 지원하고 있어,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고교를 양산하는 것이 선택중심 교육과정의 현실적 모습으로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수요자 중심의 논리는 ‘선 복수지원 후 추첨’을 보장하여 학교서열화를 부추기고 있다. 학생들의 다양한 특기와 적성과 능력을 보장하겠다는 7차 교육과정이 입시 중심의 고교서열화로 귀결되어, 고교 평준화까지 해체하는 첨병의 노릇을 하는 꼴이 되고 있다.

 

3. 이러한 7차 교육과정의 고교서열화 역할을 결정적으로 지원하게 될 것이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도입이다. 자립형 사립고는 국가의 재정지원을 받지 않는 학교에 한하여, 학생선발권과 등록금 자율책정권, 교육과정 자율운영권을 주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학생선발권 부여는 평준화를 결정적으로 해체하게 될 것이고, 등록금 자율책정권으로 인하여 자립형 사립고는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학생만이 갈 수 있는 귀족학교로 변질될 것이며, 교육과정 자율운영권의 부여는 입시 중심의 교육으로 귀결될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 직면하여 교육부와 사학재단연합은, 자립형 사립고는 학생 선발시 국·영·수 중심의 지필고사를 보지 않도록 하고, 장학생을 30% 이상 둘 것이며, 특성화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교에만 허용될 것이라고 변명하고 있다.

그러나 지필고사가 치러지지 않더라도 중학교에서부터 자립형 사립고를 가기 위한 경시대회 열풍이 불어닥칠 것이고, 특성화된 프로그램이란 다름아닌 입시 위주의 프로그램에 이름만 그럴듯하게 붙인 꼴이 될 것이며, 벌써부터 장학생은 15%로 줄여야 한다는 말이 내부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하니, 자립형 사립고의 미래가 훤히 보인다 하겠다.

자립형 사립고는 금년에 초·중등교육법 등의 개정으로 제도적 정비와 시범학교 선정이 마쳐진 후, 2003년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한데 서울의 어느 유명한 신흥 명문 사립재단에서는 시범학교에 선정되기 위하여 같은 재단의 여자상고 운동장을 쪼개어 팔아 재정자립을 꾀하고 있어, 이 여상은 운동장 없는 학교의 신세가 될 예정이며, 또다른 재단은 몇억씩 들여 학교에 냉방기를 설치하는 등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러니 공식 발표로는 등록금이 연간 400만원 수준이라지만, 2000년 한국교육개발원 공청회에서 제기된 연간 1천만원이 더 정확한 실제 등록금이라 하겠다.

입시교육을 부추기는 마지막 결정타는 이른바 전문직 석·박사에 대한 교직개방이다. 이는 법제처에서 7월에 입법예고되어 8월 임시국회나 9월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예정이다. 실직 상태에 있는 석·박사들의 고충과 이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데는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이들은 수능 출제위원들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고교마다 쪽집게 강사로 불려갈 것이 불을 보듯 훤하게 예고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학부모들은 너도나도 석·박사 쪽집게 강사의 특별수업을 요구하게 될 것이므로, 고교 교육은 더욱 파행으로 치달을 것이다.

 

4. 이러한 7차 교육과정과 자립형 사립고로 표현되는 것은 학교간 경쟁으로 교육의 효율성을 높이는 교육시장화 전략이다. 교육부는 학교의 모든 것을 평가하고 공개하며, 학생과 학부모는 자신의 경제력과 능력을 기반으로 학교를 선택하고, 경쟁에서 뒤처진 학교와 교사와 학생은 시장논리에 따라 도태되는 것이 95년 5·31 교육개혁 이래 일관되게 추진되어온 교육개혁의 내용이다. 수요자 중심의 교육이란 결국 경제적 능력이 있는 유효수요자만을 위한 교육인데, 이 유효수요자는 입시와 취직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7차 교육과정이 중시하는 수요자는 근본적으로 기업이요 재벌임을 알 수 있다.

7차 교육과정이 문제가 많다면 6차로 되돌아가자는 말이냐는 질문이 심상치 않게 들린다.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전교조가 합법화되더니 개혁을 포기하고 교사이기주의로 돌아서서 서운하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암기식·일제식 교육의 대안이 교육의 시장화와 종속화일 수는 없다. 외세 의존하여 개방을 추진하던 개화파가 한결같이 일제에 협력하였던 역사적 과오를 우리가 다시 반복해서는 안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 교육이 교실붕괴까지 거론될 지경에 이른 근본 원인은 수준별 우열반을 실시하지 않아서가 아니며, 과목선택권을 부여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후진적인 교육시설 속에서 봉건적인 씨스템을 가지고 세계화·정보화 시대를 따라잡으려 하는, 가랑이가 찢어지는 상황 때문인 것이다.

교육재정을 확보하여 학급당 학생수를 20명 이하로 줄이면 우열반을 실시하지 않아도 공동체 속에서 개별화 교육이 가능하며 학습성취도도 더 향상된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 이를 위하여 교육재정 GNP 6% 확보는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대다수의 사립학교는 아직도 이사장의 독단과 월권에 숨죽이고 있고, 상당수의 공립학교도 교장의 눈치를 보며 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학생들의 창의성과 개성은 민주적인 학교운영으로 생활 속에서 이들의 창의성과 개성이 존중받을 때 진정 꽃피울 수 있다는 점에서, 교장선출보직제와 학생회 법적 기구화, 사립학교법 개정 등이 학교민주화의 선결과제라 하겠다.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세계 정치와 경제는 근본적으로 패권적이고 실물경제를 왜곡하며 위기로 치닫고 있다. 영어와 컴퓨터로 전국민을 무장시키려는 미국 뒤따라가기 정책보다는 근본을 돌아보고 내실을 다지며 통일을 지향하는 교육이 백년지대계라는 말에 더 합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