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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중세 이슬람사회에 대한 진기한 기록
정수일 역주 『이븐 바투타 여행기』 1·2, 창작과비평사 2001
이희수 李熙秀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한국이슬람학회 회장. 저서로 『이슬람: 이슬람문명 올바로 이해하기』(공저) 『터키사』, 역서로 『중동의 역사』 등이 있음. lee200@dreamwiz.com
1. 『이븐 바투타 여행기』(Rihlatu Ibn Bat!tah)가 우리말로 완역된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냥 좀 힘들여서 시간을 투자해서 번역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책도 아니고, 우리 사회에서 읽힐 책도, 팔릴 책도 아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서구중심적인 지적 편중의 대표적인 예가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이다. 마르코 폴로(Marco Polo)의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이 세계 각국어로 번역되어 중세 세계여행기의 대명사로 자리잡는 동안, 일반 대중들에게 이븐 바투타는 겨우 그 이름만 전해오는 수준이었다. 방대한 자료와 여행기의 깊이, 방문한 지역정보의 신뢰도 등에 비춰 『동방견문록』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는 특히 아랍어 원전의 난해성 때문에 서구학자들에게는 큰 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초간 이후 6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프랑스어판만이 완역되었다는 것이 단적으로 이를 증명해준다. 이런 면에서 정수일(鄭守一)이라는 걸출한 학자와 이 번역사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시대적 상황이 어우러져서 세계 두번째의 완역이라는 영광을 국내학계가 갖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정박사를 우리 사회가 받아주지 않았다면, 그의 학문적 재능을 이데올로기의 희생물로 사장시켜버렸다면, 오늘날의 결과는 거의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국내학자 중에는 관심은 있지만, 아랍어판 원본을 갖고 있는 사람도 그것을 전부 읽어본 사람도 아마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가 지원도 안해주는 그 지루한 작업을 감당하겠는가? 이런 면에서 정박사에 대한 어떤 찬사와 감사도 오히려 모자랄 것이다.
2. 이슬람 세계가 낳은 걸출한 여행가였던 이븐 바투타(Ibn Batㅕtah, 1304〜68)가 세계여행을 시작한 것은 1325년, 그의 나이 21살 때였다. 그의 여행목적은 무슬림으로서 기본의무인 성지순례를 하는 것이었다. 평생에 한번 하나님의 집이 있는 메카를 방문하고자 하는 열망은 모든 무슬림들의 가장 큰 꿈이자 가장 흥분되는 종교적 이벤트이다. 더욱이 유년시절부터 전통적인 이슬람교육을 받았고, 이슬람세계에 대한 지적 열망과 신앙에 불타는 이븐 바투타의 여행 자체는 이미 장사와 기이한 경험을 목적으로 떠나는 여타 여행과는 순수성과 종교적 양식, 질적인 면에서 다를 수밖에 없었다. 북아프리카를 거쳐 이집트를 돌아서 아라비아반도로 들어간 그는 마침내 메카에서 종교적 순례의무를 마쳤지만, 그대로 고향에 돌아가지 않았다. 메카에서 바그다드로 귀향하는 이라크 순례단에 합류하면서 인류사 최고의 대여정을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1353년 자신의 고향 모로코로 돌아와 정착할 때까지 무려 27년의 세월 동안 그는 당시 암흑의 시대 잠자는 유럽대륙을 제외하고 인간이 갈 수 있는 모든 곳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뛰어난 그의 식견과 이성으로 기록하고 분석하였다. 지구의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동일한 길을 반복하지 않으며 육로와 해로를 불문하고 12만km를 누비고 다녔다. 한국 최고의 오지여행가 한비야씨가 걸은 지구 반바퀴의 스무 배를 더 걸은 셈이다.
1328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중부 히자즈 지방으로 와서 최초의 순례를 마친 후에, 이라크, 이란 지방, 마르딘까지 가서 메소포타미아 여러 지방을 두루 여행하고, 예멘고원을 돌아보다가 배를 타고 지척에 있는 아프리카의 오른쪽 끝 소말리아로 들어갔다. 동부 아프리카의 해안선을 따라 잔지바르에 이르고, 다시 아라비아 남부의 오만과 바레인을 거쳐 세번째 히자즈 지방으로 돌아왔다. 이곳에서 시리아에 와서 라즈키야에서 배를 얻어 타고 알라이야를 거쳐 아나톨리아 반도에 발을 디뎠다. 당시 비잔틴과 오스만 제국 사이에 패권을 공유하고 있던 아나톨리아 여러 지방을 탐방하였다. 안탈리야, 부르두르, 이스파르타, 에이르디르, 괼히사르, 카라아아츠, 아즈 파얌, 데니즐리, 타바스를 방문한 후, 다시 밀라스에 도착했다.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이때 아나톨리아 중부지방의 실크로드 길을 따라 코냐, 카라만, 아크사라이, 니으데, 카이세리, 시바스, 귀뮈스하네, 이르진잔, 에르주룸에 이르고, 뒤이어 비르기를 기점으로 북으로 방향을 돌려, 마니사, 베르가마, 발륵세히르, 부르사, 이즈니크, 게이베, 괴이누크, 무두르누, 볼루, 게레데, 사프란볼루, 카스타모누를 방문했다. 다시 동부 흑해 연안의 시노프에서 배를 타고 크림반도에 도달했다. 킵차크 한국까지 가서 우즈베끄 왕궁에까지 이르렀다. 그곳에서 북으로 불가르국으로 갔다가 기회를 잡아 이스탄불을 오게 되었다. 다시 동유럽의 남부지방을 시작으로 외즈벡한의 수도인 사라이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일시 머무른 다음, 하레즘국, 지금의 트랜스속시아나 지방, 호라산, 아프가니스탄을 두루 여행하고 인더스 계곡에 이르렀다.
이처럼 치밀하고 정교한 계획에 따라 여행을 계속한 이븐 바투타는 되도록 한번 갔던 길을 반복하지 않고 새로운 여정을 선택함으로써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고자 하는 놀라운 야심을 드러내 보인다. 이는 단순한 호기심과 즉흥적인 여행의 의미가 아니라 매우 오랜 기간 준비하고 정확한 지리적 정보와 정치적 환경, 그 지방의 소상한 기초정보를 파악하고 있었음을 시사해준다. 그의 세계여행 의지에 고개가 숙여지는 대목이다.
인더스 지방에서 물탄을 거쳐 델리에 도착한 그는 이곳에서 이슬람 판관인 카디직을 7년간 수행하면서 이슬람인도사회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남기게 된다. 이 과정에서 무함마드 투그룩 샤의 명으로 공식 외교사절 자격으로 중국을 순방하러 떠난다. 그러나 여정에서 예기치 못한 복병들을 만나 결국 중국행을 포기하고 인도 서부해안을 둘러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인도양에 있는 말디브라는 섬나라에서 1년반 카디 생활을 한 후, 다시 중국행을 감행하여, 인도 동부해안을 따라 벵갈만과 수마트라를 돌아 드디어 중국 동남부 해안도시에 도착하게 되었다. 지금의 취안져우(泉州)인 자이툰, 꽝져우(廣州), 항져우(杭州)를 거쳐 내륙으로 당시 원나라의 수도인 뻬이징(北京)을 방문하였다. 중국기행을 기점으로 다시 고향으로 향한 이븐 바투타는 1349년 메카를 들러, 이곳에서 알렉산드리아를 거쳐 바닷길을 따라 모로코에 귀환하여 술탄 아부 이난의 영접을 받았다. 그러나 미지의 세계를 남겨두지 않겠다는 그의 여행열정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지브롤터해협을 건너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이슬람 도시들을 차례로 순방했다. 귀로에는 아틀라스 해안과 모로코 남부의 마라카시의 무슬림 지역을 갔고, 드디어 아프리카의 무슬림들을 만나기 위해 대(大)사하라를 여행하면서 수단, 나이지리아, 말리, 팀북투 등지를 여행하고 1353년 말에 여행을 끝내면서 모로코로 돌아왔다. 이미 그는 21세의 열혈청년에서 49세의 노인으로 변해 있었다. 인생과 청춘을 세계여행에 바친 위대한 한 인간이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3. 이 여행기는 의심의 여지 없이 음식·음료·복장·관습·도구·민속 등에 이르기까지 일종의 지역별·종족별 민족지(ethnography)적 성격을 갖춘 매우 훌륭한 기초자료이다. 이븐 바투타는 방문한 지방의 정치와 경제, 문화 등 모든 것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직접 보고 들은 내용을 상세하고 풍부한 자료로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이 책은 감동 진한 문체와 기록의 아름다움도 함께 물려주었다. 무엇보다 바꿀 수 없는 훌륭한 인류학 현지조사 보고서이고, 당시 가장 정확한 세계 민족지였다.
방문한 각 개별국가의 정치문제, 내분, 통치자의 덕목과 악행 들, 도시기능과 행정조직 등은 물론, 경제활동과 장사의 법칙과 상술, 물가와 통화단위, 더욱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솔직하고 상세한 설명 등이 돋보인다. 따라서 이 여행기에는 다양한 의식과 의례, 각 지방별로 독특한 통과의례와 삶의 가치관의 차이, 동물과 농작물, 주요 산물 등에 이르기까지 의식주 일반이 잘 묘사되어 있다. 14세기 인류역사를 가진 자의 기록이 아닌, 일반대중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의 관점에서 조망할 수 있는 의미있는 역사기록이다. 나아가 이 여행기는 당시 각 지역의 다양한 이슬람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이슬람이 아랍에서 발생하게 되었지만, 이슬람이 갖고 있는 특유의 포용력과 관용성으로 어떻게 토착문화와 부닥치며 서로 절충하고 동화해가는지에 대한 기초자료를 이 여행기가 제공해준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이슬람 신비주의가 어떻게 토착문화와 섞이고 중앙아시아 여러 지방의 신앙과 가치체계와 접목하면서 민중들의 강력한 영적 기둥으로 작용하게 되는지에 대한 해답을 이 여행기는 주고 있다. 이슬람과 토착문화의 갈등과 상호수용의 문제가 초기 이슬람 전파과정을 연구하는 데 본질적인 핵심이기 때문에 이러한 광범위하고 다양한 사례의 제공은 이슬람 전파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임에 틀림없다.
모로코로 귀환한 이븐 바투타가 군주의 칙명을 받아 1355년 완성한 여행기 원본은 현재 사라지고 없지만, 이를 토대로 당대의 문필가 이븐 주자이(Ibn Juzayi)가 원문을 윤색하고 다듬는 작업을 다음해 완료하여 이것이 오늘날 전해지고 있다. 이 책은 흔히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로 알려져 있지만 원제목은 ‘여러 지방과 희한한 일과 다양한 사실을 경험한 자의 진귀한 기록’(Tuhfatu’d Nuzzar fi Gharaibi’l Amsar wa ‘Ajaibi’l Asfar)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인류 여행문학의 압권으로 손꼽힐 만하다.
물론 번역의 문제에 대한 약간의 견해와 아쉬움은 있다. 나도 그 아랍어 원전을 읽어보지 못했다. 읽어낼 재간도 없다. 다만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느라고 1984년경 터키어 번역본을 독파한 적이 있었다. 물론 부분 부분 영어 축약본도 참고하였다. 그러니 사실 정박사가 역주한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쓸 자격이 없다. 전공자가 없다고 우기는 출판사의 강권에 못 이겨 재미없고 딱딱한 번역본을 지루함을 참아가며 읽으면서, 국내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한자어로 번역한 역자에게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아랍어 원전에서 옮겼는지 중국어본 번역인지 혼돈이 갈 정도로 한문투 번역이 많아 혼란스러웠다. 아둔한 전공자가 읽어도 머리에 금방 들어오지 않는 용어를 굳이 사용한 역자의 의도는 무엇일까? 물론 중국에서 교육받은 역자의 환경을 고려하면 어느정도 이해할 수도 있겠다. 또 중세 아랍어의 장중함을 살리려는 의도도 없지 않았으리라 짐작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독자, 특히 젊은 독자들은 이런 한자어를 어렵게 느낄 수 밖에 없는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쉬운 우리말로의 번역이 아쉬웠다. 또한, 마치 ‘음역’(transcription)한 듯한 ‘쑬퇀’ ‘씰크로드’ ‘싸우디아라비아’ 등의 표기도, 이유야 있었겠지만 일반독자나 비전공자로서는 금방 알아보기 쉽지 않은 불친절한 것이었다.
『이븐 바투타 여행기』에 대한 역자의 칭찬 일변도의 소개와 지나친 미화와는 달리 이 여행기는 동시에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고 비판도 받았다. 사실 이븐 바투타는 인도와 쿨에서 도둑을 맞았고, 한번은 캘리컷에서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여행기의 중요한 부분들이 망실되었다. 따라서 이븐 주자이에 의해 완성된 여행기는 본인도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여행기의 있는 그대로를 최대한 반영하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상상도 여러 군데에 걸쳐 첨가하였다. 주자이는 『이븐 바투타 여행기』 원문에 여러가지 잡다한 이야기를 섞었고, 이슬람 세계의 중심도시들을 묘사할 때는 당시 알려진 유명한 시인들의 표현을 빌려쓰기도 했다. 베르키, 쿠르투비, 에르자키, 시라피의 시와 문구 들을 인용하였고, 마수디, 비루니 같은 대학자들의 작품에서도 상당부분 전재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들어간, 사실과 거리가 먼 과장과 인용들로 인하여 이 여행기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많은 학자들이 이 여행기의 구체적인 사실에 대한 비교분석을 시도했다. 그에 따르면, 볼가강 북부지방에 관한 이야기는 이븐 파들란, 이스타흐리 하우칼, 아부 하미드 등과 같은 이전 아랍지리학자나 여행가의 작품들에서 따왔고, 불가르 도시와 카라한국에 대한 내용은 완전히 조작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따라서 이 여행기에는 사실 왜곡이나 직접 방문이 의문시되는 많은 구절이 발견된다. 예를 들면 이븐 바투타가 당시 이슬람세계의 중심지인 이스탄불을 여행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회의가 일어날 정도의 비판을 받았다. 왜냐하면 수백개에 달하는 외국이름과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언어로 된 문장을 몇개월이 지난 후에까지 기억해서 여행기에 풀어놓은 작가가 이스탄불에서 직접 면담을 했다고 주장하는 비잔틴 황제 안드로니코스 3세와 직전 황제 안드로니코스 2세의 이름을 전적으로 틀리게 적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아나톨리아 내륙지방의 여러 이슬람 중심도시(코냐, 에르주룸 등)에 대한 여행기가 너무나 피상적이고 초보적인 내용이어서, 그가 직접 방문한 체험을 토대로 했다기보다는 다른 책이나 전언에 의거해 이 책의 내용을 채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4. 두 권으로 된 『이븐 바투타 여행기』의 출간으로 국내학계는 물론 일반대중들도 그동안 낯설게 여겨온 이슬람세계를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맞았다. 마침 미국테러 대참사 이후 국내학계가 이제는 우리 입장에서 차가운 머리로 이슬람과 이슬람세계를 바라보자는 인식의 공감대가 확산되는 싯점에 출간된 책이란 면에서도 그 의의가 있다. 우리 사회가 지난 50년간 이슬람세계와 가장 적대적인 이해당사자인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언론과 정보에만 의존해 이슬람에 관한 지식을 축적함으로써 엄청난 편견과 오류를 구조적으로 양산해왔다는 점은 이미 많은 지식인들이 지적해온 터이다. 13억 55개국에 달하는 거대한 문화권이며, 중세에는 화려한 인류지식의 보고였던 이슬람세계에 대한 폭넓은 지식의 축적과 객관적 이해 없이 지식의 글로벌화는 허구일 뿐이다. 다만 이 여행기는 일관되게 이슬람신앙의 정신과 규범의 틀 속에서 세계와 다양한 삶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슬람의 본질적 가르침과 일부 무슬림지역에서 행해지는 토착적 관습과 통치자의 악행 등이 혼동될 위험성도 안고 있다. 적어도 이슬람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는 비전문가 독자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일부다처, 여성할례, 침략과 약탈경제 패턴 같은 아랍의 유목적 관습과 이슬람의 가치를 구분하지 못하는 국내학계의 초보성은 이미 이슬람문화의 올바른 이해에 얼마나 큰 걸림돌이 되어오고 있는지 절감하고 있는 터이다. 이런 점에서 독자들의 조심스런 이해가 요구된다.
그러나 이 책에 대한 김호동 교수의 서평(『조선일보』 2001.9.22)의 지적대로 고전이란 결코 쉽게 읽히는 글만은 아니다. 『이븐 바투타 여행기』에 등장하는 생소한 용어와 낯선 문화적 풍속은 약간의 인내와 예비공부를 필요로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속에서 진정한 중세 이슬람사회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지적 환희를 동시에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고전을 읽는 묘미이고, 특히 흥미진진한 이슬람 고전의 특징이다.
다시 한번 정수일 박사의 노고와 학자적 전문성에 경의를 표한다. 모두들 쉽게 공부하고 얄팍한 지식을 양산해내는 국내 인문학 연구풍토에 비춰볼 때, 꼼꼼하고 철저한 그의 번역과 역주, 글자 한 자 한 획조차 오류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는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를 일깨워주었다는 면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이제 아랍인 후예로서의 ‘무함마드 깐수’라는 언론과 세간의 쎈세이셔널리즘에서 벗어나 동서교류사 분야의 세계적 학자로서 국내학계를 자극하고 학문발전에 기여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