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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 | 테러, 전쟁 그리고 그후

 

결과는 더없이 불확실하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Immanuel Wallerstein

1930년생. 현재 뉴욕주립 빙엄튼대학 사회학 교수 겸 페르낭 브로델 쎈터 소장. 간행중인 『근대 세계체제』(1〜3권 간행)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유토피스틱스』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 등 수많은 저서와 논문이 있음. 본지 109호(2000 가을)에 「인종차별주의, 근대의 쌍생아─오스트리아 새 정부의 출범을 지켜보며」를 발표. 원제 “The Outcome Could Not Be More Uncertain+”(http://fbc.binghamton.edu/commentr.htm, 2001.10.1).

ⓒ I. Wallerstein 2001/한국어판 ⓒ 창작과비평사 2001

 

 

미국 의회와 세계를 향한 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은 향후 미국의 의도를 역설하면서, 앞으로 많은 난관들이 놓여 있겠지만 “그 결과는 확실하다”고 말했다. 이보다 더 허황한 말은 있을 수 없다. 그의 말이 단지 사기진작을 위한 수사라면, 공격을 당한 국가의 지도자로서 할 수 있는 통상적 발언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부시와 그의 핵심 참모들의 분석적 견해를 반영한 것이라면, 위험천만한 착각이다.

물론, 첫번째로 떠오르는 모호함은 부시가 어떤 결과를 말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알 카에다(Al-Qaeda)의 파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 극히 어렵긴 하지만 가능한 목표이다. 미국이 ‘테러리스트’로 지목하는 모든 집단이 어디에 있건 그것을 제거 혹은 근절하겠다는 뜻일 수도 있는데, 그 경우라면 성공 가능성이 극히 의심스럽다. 미국 국민과 세계 전체에 미합중국 정부의 군사력에 대한 믿음을 회복시키겠다는 뜻일 수 있는데, 그것은 현싯점으로서는 성공 여부가 상당히 불확실한 목표이다. 미국이라는 국가와 미국기업들의 이익을 유지하겠다는 뜻일 수 있는데, 그것은 성공 가능성이 아무래도 미덥지 못한 목표이다.

‘결과들’을 생각해봄에 있어, 다양한 시간표를 설정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6개월, 5년, 50년이라는 세 시간표를 제안한다. 부시가 처한 상황은 6개월의 전망에서 볼 때 가장 낙관적이다. 9월 11일 이후 짧은 기간 동안에 그가 이미 얻은 이익을 생각해보라. 그날 이전 부시행정부는 거의 모든 곳으로부터, 특히 의회의 민주당으로부터, 유럽의 동맹국들로부터, 러시아와 중국으로부터,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대다수 나라의 정부와 국민들로부터, 그리고 범세계적인 ‘반(反)세계화’운동으로부터 온갖 반대에 시달렸다. 이것은 참으로 대단한 목록인데, 9월 11일 공격 이후 이런 반대는 거의 대부분 사라지거나 목소리가 대폭 약화됐다. 의회의 민주당과 유럽의 동맹국들은 공격당한 미국을 중심으로 결집했다.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의 대다수 정부들은 공격에 대한 미국의 반응에 최소한 제한적인 지지라도 보냈다. ‘반세계화’운동은 상대적으로 잠잠해졌고, ‘평화’운동으로 변신해야 할지 고심중이다.

물론 이번 공격으로 모종의 즉각적인 정치적 이익을 얻은 것은 부시만이 아니다. 미국은 비록 최소한의 의사표명으로라도 모든 지역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편 줄에 서도록 만들려는 열망이 너무 컸기 때문에 반대급부로 외교적 댓가를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다른 나라들은 그 댓가를 서슴없이 요구하였는데, 특히 친밀한 핵심 ‘우방’과는 거리가 먼 나라일수록 더 그랬다. 의회의 민주당과 서유럽의 동맹국들은 아직은 감히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중국, 파키스탄, 수단 그리고 여러 아랍권 국가들(파월C. Powell이 그밖의 또 어느 나라에 약속을 했는지야 누가 알겠는가)은 그렇게 얌전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곧 민주당과 서유럽 동맹국들도 이 게임에 합류할 것이다. 그러니 당분간은 오사마 빈 라덴이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모든 이들에게 윈-윈(win-win) 게임이 벌어진 것처럼도 보인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면 빚을 갚아야 할 것이다. 그때까지 미국은 뭔가를, 군사적인 어떤 일을 해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지 우리는 확실히 모르고, 미국정부조차 확실히 알지 못하는 듯하다. 널리 인정된 바와 같이, 선택할 좋은 방안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에 특수부대를 낙하산으로 침투시켜 빈 라덴에게 국부 공격(특정 목표에 한정되는 신속·정확한 공격—옮긴이)을 가하는 것은 1980년 이란에서처럼 미국이 참패할 위험을 무릅쓰는 것인데, 이 사건으로 인해 카터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했다. 가능성이 가장 높은 단일조치인, 아프가니스탄 폭격도 여러가지 한계가 있다. 즉, 그럴듯한 목표물이 거의 없다는 점, 민간인 대량살상의 가능성과 파키스탄으로의 난민 유입, 무슬림 국가들에서 발생할 엄청난 정치적 불안, 그리고 폭격만으로 탈레반의 중부 아프가니스탄 통제권을 끝장낼 가능성이 낮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미 행정부 내에는 그나마 그럴듯한 목표물이 있는 이라크를 폭격하기를 원하는 인물들이 있다. 문제는 싸담 후세인이 오사마 빈 라덴과 한편이 아니라, 빈 라덴의 향후 목표물 중 하나일 공산이 더 크다는 점이다. 이라크를 폭격하게 되면 광범위한 연합을 형성하려는 파월의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될 뿐 아니라, 미국이 1991년에 직면했던 것과 똑같은 딜레머—과연 미국은 지상 공격과 점령이라는 부담을 과감히 떠맡을 것인가?—에 빠지게 될 것이다.

미국이 이렇게 효력이 의심스러운 대안 중 어느 하나를 택하기로 결정한다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만일 미국이 군사적으로 ‘실패’한다면 이것은 미국이 종이호랑이라는 빈 라덴의 주장에 힘을 실어줄 것이고, 강대국이 군사적으로 약하다는 것을 드러낼 때 동맹국들의 태도가 얼마나 변덕스러울지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미국이 군사작전 자체에서는 실패하지 않더라도 장기적인 군사적 대결에 휘말리게 된다면, 다음 사태들 가운데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 가령, 미국인 인명의 상당한 손실(이는 베트남전 당시 널리 퍼졌던 것과 같은 확전에 대한 미국 내부의 온갖 논쟁을 초래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민간인 대량살상(이렇게 되면 전세계 사람들은 9월 11일 공격에서 죽은 7천명의 목숨이 이렇게 엄청난 대응을 정당화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파키스탄·싸우디아라비아·인도네시아·이집트·알제리·레바논과 같은 일부 무슬림 국가들 및 이들보다 주목을 덜 받는 다른 국가들에서 대규모 정치적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이 중 어느 것도 미국정부에 그리 유리한 것은 없다. 갑자기,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평화’운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리고 린든 존슨(Lyndon Johnson)이 그랬듯이, 부시도 재선에 출마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게 될지 모른다.

물론, 이러한 상상은 과장된 것일 수 있다. 어쩌면 미국은 실제로 국부공격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도 있다. 어쩌면 편리하게도 탈레반이 저절로 붕괴될 수도 있다. 어쩌면 부시는 1991년 자기 아버지가 그랬듯이 승리한 영웅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바로 그 순간, 그는 두 개의 다른 장애물에 직면할 것이다.

한가지 장애물은 국내적인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굉장한 예상득표율을 기록한 지 18개월이 지나지 않아 선거에서 패배자가 되고 말았는데, 그것은 당시의 시쳇말로 “멍청이, 문제는 경제인데”였기 때문이다. 바로 이번주 미국의 경제적 보수주의의 화신인 『월 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은 재무장관 폴 오닐(Paul O’Neill)이 경제를 낙관적으로 전망한 탓에 자신의 신뢰를 모두 잃을 위기에 처했다고 적고 있다. 수많은 미국 자본가들이 다가올 험난한 시기에 대비해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의 유권자들은 기억력이 짧은 것으로 악명이 높으니, 일단 승리의 감격이 지나가고 나면 그들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투표한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나 경제적 곤란을 집권당의 탓으로 돌린다.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다면, 미국이 빈 라덴을 제거하고 탈레반을 전복하였는데, 3개월 후에 다른 누군가가 나타나 미국이나 서유럽에 엄청난 공격을 가해온다고 가정해보라. (머리 하나를 베면 둘이 생기는—옮긴이) 히드라(hydra)처럼 수많은 머리를 가진 괴물의 출현 앞에서 미국의 성공신뢰도는 한줌 연기 속으로 사라져버리지 않겠는가? 미국의 허장성세와 자신감이 꺾일 것은 확실하다. 이것이 그렇게 비현실적인 일일까?

자 그렇다면, 5년의 전망으로 이동해보자. 그때 세계체제 내에서 미국의 지위는 오늘날보다 더 강화될 것인가? 현재의 지정학적 배치가 전지구적 정치를 조직하는 하나의 진지한 방식으로 여전히 살아남을 것인가? ‘반세계화’운동은 어쩌면 지금보다 좀더 일관되고 훨씬 더 전투적인 어떤 것으로 변신해 있지 않을까? 이들은 한번 생각해봄직한 물음들이다. 무엇보다도, 혼돈상태가 훨씬 더 보편적인 규범과 같은 것이 되고, 불안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일상의 일부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세계경제가 거세게 요동치고 있지 않을까?

만일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50년 후에 우리의 자리는 어디가 될까? 그것만큼 불확실한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50년 이후의 싯점에서 돌이켜볼 때 9월 11일이 그 자체로 그렇게 중대한 사태로 보일지는 의심스럽다.

부시 대통령은 앞서의 의회연설에서 “우리는 하느님이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라고 말했다. 부시가 저명한 신학자는 아닌 것으로 안다. 내 생각에 위대한 세 가지 서양 종교—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가 악의 문제(하느님이 전능하시다면 왜 악이 존재하도록 허용하는가?)에 대처해온 방식은 모두 하느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했다고 말함으로써였다. 그러나 만일 하느님이 중립적이지 않다면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 그리고 만일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면, 하느님은 인간의 갈등에 대해 확실히 중립적이다.

〔姜美淑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