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특집 | 테러 이후의 세계와 한반도
9·11과 미국인의 양심
죠지 캇찌아피카스 George Katsiaficas
미국 웬트워스공과대학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New Political Science 편집장. 저서 가운데 『신좌파의 상상력』 『정치의 전복』 등이 국내에 소개되어 있음. 이 글의 원제는 “September 11 and the American Conscience”임.
ⓒG.Katsiaficas 2002/한국어판 ⓒ창작과비평사 2002
나는 한국에서 거의 한 해를 보낸 후, 2001년 크리스마스날 미국에 돌아갔다. 이 풍요의 땅에서, 물건 상자들이 내 머리보다 높이 쌓여 있는 혼잡한 백화점 통로를 걸어가던 나는 소비자들이 살 수 있는 상품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과, 그것들을 쉽게 신용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가격이 싸다는 것에 놀랐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승용차에, 트럭에, 가정집과 사무실 앞에, 회사건물과 정부건물 안에, 텔레비전과 신문에도─간단히 말해 어디에나─새롭게 걸려 있는 수십개의 미국 국기들이었다. 미국을 애국심의 물결로 뒤덮기 위해 장사꾼들은 각종 새로운 전시방법을 고안해냈다. 자동차 안테나 끝에 국기를 달 수 있게 한 장치, 멀리서도 보일 만큼 큰 국기를 지탱할 수 있는 튼튼한 차창용 자석, 고속도로의 강한 바람에도 휘어지기만 하지 떨어지지는 않는 강력 흡착판을 부착한 깃대, 온갖 가정용 국기들, 범퍼에 붙이는 스티커, 양복 깃꽂이, 티셔츠, 그리고 잡다한 유행용품 등.
그보다 눈에는 덜 띄지만 거의 보복주의적 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는 닫힌 마음도 늘어가고 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주변화된 세계에서 미국의 월등한 부와 권력의 과시를 주저하게 하던 도덕심은 마치 수천명의 무고한 미국인이 살해당한 9·11공격 때문에 완전히 사라진 것 같다. 사람들은 점점 더 ‘우리’ 대 ‘그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들’을 정확히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복잡한 질문을 탐구할 인내심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 현상의 위쪽에는, 보통 자기중심적인 뉴욕 사람들 사이에서 대단히 상찬되는 새로운 이웃애가 있다. 티셔츠와 범퍼스티커에 새겨진 ‘우리는 단결했다’는 구호가 큰 반향을 얻고 있는 것이다. CNN은 미국의 세 가구 중 두 가구가 평균 134달러를 9·11 희생자 기금에 기부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IMF위기 이후에 나타난 것과 같은 대중적인 기부행위의 전례가 있지만, 미국에서는 그런 대중적 일체감이 드러난 예가 거의 없다.)
그중 가장 요란한 국기가 남성노동자들─목수와 배관공, 건설노동자와 도급업자─의 트럭을 장식하고 있다. 베트남전쟁 시기를 되돌아보면, 바로 동일한 인물들이 가장 큰 목소리로 전쟁을 지지하고 가장 심하게 반전 저항세력을 공격하였다. 그 당시 반전 활동가들은 대학에 거대한 근거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런 근거지의 규모는 의심스러우며, 어떤 경우에는 그런 것이 존재하는지마저 의심스럽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는 “〔미국〕 좌파의 반전 선동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 놀랍다”고 말한 중도파 민주당원의 말을 인용하였다.1 전쟁에 반대하는 소규모 시위들이 수십회 일어나긴 했지만, 공세적인 외교정책을 반대해온 일반 지식인계는 소리높여 아프가니스탄전쟁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베트남전 시기에는 많은 미국인들이 호치민과 민족해방전선을 지지했지만, 오늘날 적을 동정하는 여론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캐사 폴리트(Katha Pollitt)는 11월 5일자 『네이션』(The Nation)지에서 “〔베트남전쟁과 달리〕 이번에는 우리나라가 공격받았고, 적들은 미친 광신자들이다”라고 논평했다. 『네이션』의 편집인이자 『주간 LA』(LA Weekly)의 칼럼니스트인 마크 쿠퍼(Marc Cooper)는 10월 14일, 그들을 두고 “모든 인도주의적이고 진보적인 도덕성과 정반대되는 세계관을 지닌 원초적이고 종교적인 파시스트”라고 했다. 또다른 존경받는 평론가(그녀의 논평들이 ‘급진’ 교수들의 사적인 주소록을 통해 회람되었기 때문에 그녀의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다)는 “우리가 만일 평화와 협력의 길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근본주의의〕 불관용 노선은 현대사회에서 용인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불관용에 대한 불관용인가?
많은 진보주의자들이 빈 라덴과 히틀러, 탈레반과 나찌를 비교하는 부시정권의 논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이런 분석에서는 어떤 공격행위도 정당해 보인다. 국제법의 원리를 토대로 베트남전쟁을 비난한 것으로 널리 존경받는 프린스턴대학의 리처드 포크(Richard Falk) 교수는 아프가니스탄전쟁을 “2차대전 이후 진정으로 정의로운 최초의 전쟁”이라고 불렀다. 보통은 극단적 표현을 잘 쓰지 않는 포크 교수는 9·11공격이 “인류사에서 최고로 추악한 교활함을 보여준다”고 비난했다. (3천명이 살해된 것을 ‘추악한 교활함’ 목록의 첫줄에 올린다면, 그가 자신의 목록에서 무엇을 제외할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포크에 따르면, “나찌즘의 범죄가 뉘른베르크에서 폭로되었듯이 묵시론적인 테러리즘의 언설은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다.” 포크는 심지어 이 전쟁을 “대량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아직은 전지구적 테러와 어떤 유의미한 연관성도 없는, 미국에 적대적이라고 간주되는 나라들”로 확대하려고까지 생각하고 있다. 그의 목록에는 이라크, 리비아, 씨리아, 이란 그리고 수단이 포함된다. (보통 그렇듯이 미국 진보주의자들의 눈에는 대체로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
오랫동안 『네이션』지에 기고해온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tchens)가 MIT 교수인 노암 촘스키(Noam Chomsky)에 대한 정치적 이견을 인신공격적으로 제기하면서, 전쟁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한 가장 독설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세계무역쎈터와 국방부가 공격받은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언론의 쇄도하는 질문에 대해 촘스키는 미국이 1998년 수단의 알-시파(al-Shifa) 제약공장을 파괴한 것을 언급하는 간결한 성명을 발표하였다. 촘스키에 따르면, 그 공격 이후 수단에서는 어떤 약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수만명─그중 다수는 어린이들─이 말라리아, 결핵 그리고 기타 치료 가능한 질병들로 고통받았고 죽었다”는 것이다. 용을 죽이려는 성 죠지(Saint George)처럼 촘스키를 공격하려고 나선 히친스는 먼저 네번째 비행기의 납치범에 맞서 싸움으로써 목표물에 도달하기 전 비행기를 추락시킨 승객을 칭송하였다. “미미한 것일지라도 그런 타고난 불굴의 정신이 노암 촘스키의 모든 저작보다 값지다. 냉혈한 촘스키는 9·11 계획을 1998년 8월의 멍청하고 잔인하고 냉소적인 클린턴의 카르툼(Khartoum) 공습과 비교하였다.” 히친스는 계속 말한다. “나는 신중하게 그리고 흥분하지 않고, 이런 정신상태를 범죄와 파시즘에 대한 관대함이라고 주저없이 묘사하겠다. 그런 자들과는 어떤 정치적 연합도 불가능하며, 그들과의 어떤 정치적 연합도 이제 필요하지 않다는 말을 하게 되어 고마울 따름이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건 이제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2
이에 대해 촘스키는 인신공격적인 언쟁에 말려들기를 거부했다. 그는 히친스가 “진심으로 그렇게 말할 리가 없다”면서, “공정하고 분별있는 대응은 이 모든 것을 일종의 탈선으로 간주하고, 이 저자가 과거에 종종 해온 바 있는 중요한 작업으로 복귀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찌 됐든 히친스는 베트남·캄보디아·칠레 등지에서 이루어진 미국 정책에 대한 책임을 물어 헨리 키씬저를 국제전범재판소에 기소하려는 중요한 작업을 수행한 사람인 것이다. 그렇지만 촘스키는 또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 9·11에 관한 자신의 첫 진술을 보충 설명했다. “인구비례로 보자면, 이는 마치 빈 라덴의 조직망이 미국에 대한 단 한번의 공격으로 수십만명의 사람들─그 대다수는 어린이들─을 쉽게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의 고통 속에 몰아넣고 죽어가게 만든 것과 같다.(…)9·11과 비교하는 것이 잔인한 짓이라고 여기는 것은 끔찍한 범죄 때문에 발생한 아프리카의 희생자들에 대해 심각한 인종주의적 경멸을 표하는 것과 같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는 그 범죄에 대해 책임이 있다. 납세자로서 대규모 배상을 하지 못했고, 가해자들에게 피난처와 면책특권을 허용했으며, 그리고 그 끔찍한 사실들을 너무도 깊은 망각의 구덩이 속에 가라앉힘으로써 적어도 몇몇 사람들은 그것을 의식하지조차 못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히친스는 마음을 누그러뜨리려 하지 않았고, 논쟁을 그만두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다시 공격에 나서서 “〔촘스키의〕 궤변은 끝이 없는 것 같다. 〔그의〕 잔인한 논리는 완전히 비합리성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다”고 썼다. 그리고 “노암 촘스키는 그가 인도차이나전쟁 시절에 보여준 위대한 도덕적·정치적 교사의 자질을 상실하였거나 상실해가고 있다.(…)몇달 전 우리가 마지막으로 편지를 주고받았을 때, 나는 그의 문장과 의견에 로봇처럼 경직된 요소가 있다는 것을 알고 경악하였다.”
촘스키에게 인신공격을 한 사람은 히친스만이 아니었다. 한때 1960년대의 급진파였고 현재 뉴욕대학의 교수인 토드 지틀린(Todd Gitlin)은 ‘좌익’ 욕설의 합창에 합류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촘스키 같은 냉소적인 비평가들은 수천명을 죽인 살인자들에 대해 그저 지나가는 말로 비난하면서, 이스라엘 점령지역의 팔레스타인인들의 불타는 복수심을 찬양하는 데는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이 설 자리는 없다.”
이러한 공격들을 단순히 사적인 문제로 보기보다는, 미국인들이 미국의 전지구적 역할에 대해 어떤 도덕적 혹은 실질적 비판의 시늉도 하지 않게 된 현상의 일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미국이 어떤 ‘실수’를 범했더라도 9·11 ‘범죄’사건에 견줄 만한 것은 없다.
앞서의 사례들에서 알 수 있듯이, 전통적인 반전 정서를 지닌 목소리들이 오늘날 분열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며, 이와 동시에 베트남전쟁에 반대한 많은 세력들이 오늘날 테러에 대한 전쟁을 확고하게 지지하고 있다. 미국 흑인들은 1960년대 초에 베트남전쟁에 대한 반대를 주도했으며, 전통적으로 미국의 해외 군사개입에 대해 강력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왔다. 그러나 9·11 직후 많은 지도적 흑인논평가들과 존경받는 조직들이 모두 9·11을 ‘반인류적 범죄’─애국적 충성심의 신호가 된 바로 그 수사학─로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마니교적인 사고가 보수적 지식인들 사이에서보다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곳은 없다. 죠지 부시는 반테러 전쟁에는 “중립지대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맥락에서는, 예를 들어 알-시파에 대한 폭격이나 그와 유사한 미국의 수많은 행동도 ‘반인류적 범죄’가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은 누구든 즉각적으로 테러에 동조─또는 심지어 지지─한다는 비난을 받게 된다. 향후 미국 공격의 지속기간과 강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런 입장은 미래에 대한 불길한 조짐이다.
10년 이상 우익세력들은 다문화주의와 대학 내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독설을 퍼부어왔다. 지난 몇달 동안 그들은 자신들의 공세를 재개하면서, 공개적으로 평화를 주장하는 몇몇 교수들을 공적인 검증의 대상으로 색출해냈다. 의미심장하게도 이런 활동을 지원하는 조직을 설립한 사람은 부통령의 부인인 린 체니(Lynne Cheney)인데, 그녀는 첫번째 부시정권 기간에 국립인문학재단(National Endowment for the Humanities) 총재를 맡았을 때부터 강력한 보수적 목소리를 내왔다. 대학의 행사들이 전쟁 지지에 대해 얼마나 모호한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115개의 사례를 열거하면서 린 체니의 대변인들은 미국인들이 이슬람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대해서도 반박하였다. 린 체니는 10월 5일 연설에서 “〔그런 생각은〕 9·11사건이 우리의 잘못 때문이라는 것을 암시한다”고 하였다. 이 집단의 보고서는 논점을 분명히했는데, “〔오히려〕 우리는 서양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투쟁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위해 투쟁하는지 알 때만 그렇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든 대학들이 미국 역사에 대한 강좌들뿐 아니라 서양문명의 위대한 저작들을 엄격하고 폭넓게 다루는 강좌들을 포함하는 강력한 핵심 교과과정을 채택할 것을 요청한다.”3
미국 대중에게 세계의 문명들을 교육하고 미국의 군사력을 억제할 필요성이 지금처럼 절박한 적은 거의 없었지만, 반대방향으로 치닫는 목소리는 더욱 강력하다. 더구나 전통적인 평화세력들이 분열되는 동시에, 세계 평화운동권의 다수가 미국의 반테러 전쟁을 지지하고 있다. 평화주의를 창당 원리로 삼은 독일 녹색당은 (히틀러 이후 독일 전투부대를 처음으로 해외에 배치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의 전쟁을 정당화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의 활동가들이 지극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비이슬람국이면서 시민들이 전쟁을 깊이 우려하고 있는 한국은 전세계의 정부와 활동가들에게 발언을 할 수 있다. 만일 한국인들이 미국의 반테러 전쟁이 확대될 실질적 가능성에 맞서 유의미한 저항을 전개해낸다면 각국의 정부들이 주목할 것이고 미국과 유럽의 활동가들에게 영향을 줄─어쩌면 그들이 행동하도록 북돋울 수조차 있을─것이다.
이 겨울밤에 나는 벽난로에 불을 지피기로 마음먹고 슈퍼마켓에 가서 장작을 샀다. 상점에 들어서서 나는 75% 이상의 할인 표지가 붙어 있는 상품진열대를 보게 되었다. 그중 커다란 한 무더기는 미국 국기와 ‘우리는 단결했다’는 말이 인쇄된 흰색 면티였다. 나는 미국의 신애국주의가 이 티셔츠와 마찬가지로 곧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열심히 그렇게 상상하더라도, 9·11 이후의 변화는 그저 한때의 스쳐 지나가는 유행 이상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白承旭 옮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