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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테러 이후의 세계와 한반도
아르헨띠나인은 거리로, 러시아인은 TV 앞으로
보리스 까갈리쯔끼 Boris Kagarlitsky
1958년 모스끄바 출생. 현재 러시아과학아카데미 비교정치학회 연구원이자 암스테르담의 다국적협회 특별연구원. 많은 저서 중 『근대화의 신기루』 『변화의 변증법』 『생각하는 갈대』 등이 국내에 소개되어 있음. 이 글의 원제는 “Argentineans are Taking to the Streets, While Russians are Flocking to their Television Sets”임.
ⓒB.Kagarlitsky 2002/한국어판 ⓒ창작과비평사 2002
모스끄바—정초에 보는 대로 그해를 보내게 된다는 속담이 있다. 이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아르헨띠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전세계 지배집단과 금융엘리뜨들에게 심각한 경고가 되어야 마땅하다. 격분한 군중이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로 쏟아져나온 후, 이곳 러시아 사람들은 3년 전에 아르헨띠나가 모범으로 떠받들어진 사실을 상기했다. 실업계 언론은 ‘아르헨띠나의 기적’과 그 창시자인 도밍고 까바요(Domingo Cavallo)에 대한 열광적 기사들을 쏟아냈었다. 다행히 당시 러시아 당국은 평소 관행과는 반대로 양식(良識)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아르헨띠나를 모델로 삼아서 가혹한 금융정책을 추구하는 대신에, 루블화를 평가절하했고 민영화를 사실상 중지시켰으며 생산을 지원했다. 그 결과 경기상승이 일어났다.
일종의 경제적 실험이 행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 신자유주의자들과 서방 금융기관들은 까바요에게 초청장을 보내면서, 1998년 러시아의 파산은 자신들의 이론에 합치하는 정책을 실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정책이 가차없이 시행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비일관성’과는 대조적으로 아르헨띠나에서는 동일한 정책이 확고하고도 단호하게 이행되었는데, 비판자나 양식을 이유로 한 어떠한 양보도 취해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3년 후 우리는 러시아의 비일관성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결론지을 수 있겠다.
아르헨띠나 대다수 주민에게 1990년대의 ‘경제기적’은 사실 처음부터 사회적 재앙이었다. 페소화에 대한 고환율 정책이 세워진 후 생산이 저하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쇠퇴가 4년 이상 끊임없이 계속되었고 주민의 중요 계층이 무일푼으로 전락했다. 가게에서 자국산 상품을 구입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한때 라틴아메리카의 가난한 이웃나라들을 깔보며 생색을 내던 나라에서 대규모 빈곤사태가 출현한 것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에 빈민촌들이 생겨났다.
이런 현상들에도 불구하고 세계 금융계 언론(과 아르헨띠나 엘리뜨 자신들)은 계속 그 정책이 성공했다고 공언하였다. 그들은 사회적 위기가 중산계급의 가장 부유한 계층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고 경제적 부진이 은행권에까지 파급된 후에야 비로소 이를 인식하게 되었다. 여기에 특이한 점은 아무것도 없다. 러시아에서도 재앙이라고 여겨진 것은 1990년대 초에 나타난 이 나라 시민 3분의 2의 빈곤화 현상이 아니라, 이러한 불행을 기반으로 부를 늘린 많은 사람들을 파멸시킨 1998년의 국가파산이었다는 것이다.
아르헨띠나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위기는 아르헨띠나 정부의 비효율적 운영이나 실수의 결과가 결코 아니다. 경제적 결정의 근거가 된 철학 전체에 심각한 책임이 있는데, 이는 비단 라틴아메리카만의 문제는 아니다. 돈이 물신화되었는데, 이것이 놀랄 일은 아닌 것이다. 권력을 실제적으로 행사하는 금융집단이 자신들의 눈으로 세계를 보도록 모든 사람들에게 강요한다. 모든 것이 뒤집혀 있다. 안정적인 환율과 낮은 인플레이션이 그 자체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논법이다. 그러나 실제의 삶은 모든 것이 정반대라는 것을, 금융체제의 안정성은 경제의 일반적 상태에 달려 있다는 것을 모든 국면에서 보여준다. 그렇지만 이 점을 인정하는 것은 금융 과두체제의 ‘지도적 역할’을 의심한다는 뜻일 것이다. 1998년에 러시아는 금융 과두지배자들이 생산적 경제와 적어도 약간의 유대를 갖고 있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구원되었다. 그 당시 은행들의 붕괴는 가즈쁘롬(Gazprom, 구 소련 당시 설립된 주식회사로 러시아의 가스 생산과 공급을 거의 독점하고 있음—옮긴이)과 석유재벌들의 입장을 강화했을 뿐이다.
석유와 가스의 매장량이 풍부하지 않은 아르헨띠나에서 금융계의 지배는 전일적임이 입증되었다. 대항세력의 부재로 인해 정부의 무책임한 행태가 도를 더해갔다. 두 주요정당인 페론당(Peronists)과 급진당(Radicals)은 동일한 경제이념을 지녔던 것이다. ‘정치계급’의 통일성은 관련 전략의 연속성을 보장해주었다. 노동당이 집권할 수 있는 위협이 상존하는 이웃 브라질에서는 우익이 그렇게 자신감을 갖지 못했다. 브라질 노동당은 이전의 급진성을 상실한 지 오래되었지만, 엘리뜨들은 이 당을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따라서 1998년 금융질서가 혼란해지기 시작하자 브라질 정부는 국내 통화를 평가절하하고 러시아에서의 처방과 유사한 조치를 취했다. 브라질에서 경제적 성장이 재개된 후에 아르헨띠나 산업의 지위는 더욱더 악화되었다. 한때 피혁업으로 유명했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자국산 부츠 한 켤레를 사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 가게들이 모두 값싼 브라질산 수입품으로 가득 찬 것이다. 영국의 경제학자인 앨런 프리먼(Alan Freeman)이 1999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연설을 했는데, 생산을 부활시키기 위해 페소화의 평가절하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받자 그는 그 질문을 이해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평가절하가 바람직하게 여겨지든 아니든 경제가 깊은 수렁에 빠졌다면 통화는 어차피 평가절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엘리뜨들이 명백한 사실들을 인정하기를 꺼려하고 자기 나라의 주민들에게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
정당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정치계급은 여전히 통일된 상태였으며, 이같은 단결을 통해서 국민과 현실 양자에 전면적으로 대립해왔다. 정초 아르헨띠나에서 위기가 진행된 동안 권력은 문자 그대로 거리에 있었으니, 누구도 통치하기를 원치 않았다. 갑자기 정치가들은 자기들의 결정이 하나도 실행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권력을 잡아봐야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아르헨띠나의 대통령 관저인 ‘핑크하우스’(Pink House)는 되풀이해서 텅 비게 되었다. 사람들은 새 TV수상기를 구입하는 것보다 대통령을 바꾸는 것이 더 쉽다고 농담을 했다.
정계 및 재계의 엘리뜨들이 정상적이고 당연하며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주민에게는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주민에게 필수불가결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엘리뜨들에게는 불가능하고 생각할 수 없으며 불합리한 것으로 보였다. 이미 반복적으로 그리고 성공적으로 행해졌고 더욱이 20년 전에는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되던 수많은 것들이 ‘정치계급’을 지배하는 철학에 의해 불가능하다고 평가받아 폐기되었다. 공공투자는 아예 배제되었다. 생산과 고용의 증대를 촉진하고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처방일지라도 그것이 인플레이션 증가를 수반한다면 허용될 수 없는 것으로 선언되었다. 새 소유주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설령 민영화가 실패로 돌아갔다고 인정한다 해도, 민영화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 국가규제는 원칙적으로 비효율적인 것으로 선언되었고, 시장의 방법들은 그 성취결과와는 상관없이 비난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선언되었다. 문제는 대다수 주민들이 사태를 정반대 방식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수백만의 민중은 일상경험을 통하여 공식이데올로기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며 그 무엇에 의해서도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을 목격했다.
3주 동안 대통령이 5번이나 바뀐 후, 새로이 국가지도자가 된 에두아르도 두알데(Eduardo Duhalde)가 마침내 페소화 평가절하라는 확실한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 금융위기는 성공적으로 극복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당국에 대한 민중의 심각한 신뢰 위기를 극복하기에는 이제 이런 조치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아르헨띠나에서 정초에 벌어진 드라마는 끔찍하게도 3년 전의 러시아 사태를 상기시키지만, 거기에는 실질적인 것 이상의 차이가 하나 있다. 아르헨띠나에서는 민중이 거리로 뛰쳐나갔고, 러시아에서는 민중이 TV 수상기 앞으로 몰려들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기질과 문화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차이는 아르헨띠나 민중과 달리 러시아 민중은 1990년대 동안에 당국은 물론 그들 자신도 존경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한편 러시아 당국은 신자유주의의 이상에 꼭 부합하는 새로운 일련의 경제조치를 새해에 실시하기 위해 계획하고 있다. 연금과 공동써비스 개혁은 이 영역들에서 시장 관계의 무제한적인 지배를 보장해줄 것이다. 심각한 대항세력의 부재가 크렘린 당국을 ‘핑크하우스’ 거주자들만큼이나 철저히 무책임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지도자들은 자기들이 전혀 벌을 받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 그러나 ‘정치계급’과 주민 간의 차이는 아르헨띠나에서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에서도 거대하다. 수십여 국가들이 이 목록에 추가될 수도 있다. 조만간 민중은 자신의 존재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 잊혀져온 그 모든 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