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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테러 이후의 세계와 한반도

 

동아시아라는 관점에서 생각하자

아프간전쟁을 보면서

 

 

지명관 池明觀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소장, 석좌교수. 한일문화교류회의 위원장. 저서로 『한일관계사 연구』 『한국을 움직인 현대사 61장면』 등이 있음.

✽ 이 글은 일본 이와나미쇼뗑(岩波書店)이 발행하는 월간지 『세까이(世界)』 2002년 1월호에 게재된 오까모또 아쯔시(岡本厚) 편집장과의 인터뷰에 약간 가필한 것이다.─필자

 

 

역사교과서 문제를 되돌아보며

 

오까모또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방일 이래 역사상 가장 양호했던 한·일관계가 2001년에 들어와서 일본의 역사교과서와 수상의 야스꾸니(靖國) 신사 참배 문제로 급격하게 냉각되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까지 몇달 남지 않았는데 한·일 양국민은 이 대회를 꼭 성공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일단 한국 국민들한테서 일어난 일본에 대한 불신감정은 좀처럼 가시지 않을 것 같은데요.

지명관  그 교과서는 누가 보아도 비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개개의 사실보다 일본의 문부과학성이 ‘터치할 수 없다’고 한 역사관이 훨씬 문제가 된다고 생각해요. 나찌는 자기들이 일으킨 전쟁을 ‘독일민족의 운명을 건 전쟁’이라고 했는데, 이번 『새로운 역사교과서』라는 책은 러일전쟁(1904〜1905)에다가 ‘국가의 존망을 건 러일전쟁’이라는 타이틀을 붙였어요. ‘독일민족의 운명을 건 전쟁’이라는 말에 대해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이라는 책에서 나찌가 전쟁을 일으켜놓고 이렇게 말한 것은 이 전쟁은 전쟁이 아니다, 이 전쟁을 일으킨 것은 독일이 아니고 운명이다, 독일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자기들이 섬멸되지 않으려면 적을 섬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라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이른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에 속하는 사람들은 근대 이후에 일본인들이 아시아에 대해서 품었던 그릇된 생각, 아렌트 식으로 말하면 거짓말인데, 그런 세뇌됐던 생각을 다음세대 젊은이들에게도 이어가게 하려고 한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요.

이런 역사관은 부분적인 수정으로 고쳐지는 것이 아니에요. 일본은 근대에 들어서 거듭 그런 거짓말을 해왔습니다. 예를 들면, 러일전쟁 전후해서 보호조약이라는 것을 한국에 강요할 때도 ‘동양평화를 위하여’라든가 ‘한국의 독립을 위하여’라고 했지 않아요. 그런 일본의 거짓말이 저런 교과서에서 계속되고 있고 따라서 미래에도 계속될 것 아니겠습니까.

미래란 항상 불안하게 느껴지는 일종의 흑암인데 거기에 한줄기 빛을 던져주는 것이 바로 조약이나 협정 또는 약속이라고 아렌트는 말했습니다. 1998년의 한일공동성명에서 앞으로는 양국이 이렇게 하자고 약속을 하면서 일본과 한국 사이에도 미래를 향한 한줄기의 길이 비춰졌지만 그것이 이번에 끊어지고 만 것이지요. 2년 반의 이른바 한·일 밀월시대가 무너졌어요. 공동성명도 그전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거짓말이었던 것입니다. 저처럼 한·일관계를 위해서 애써온 사람으로서는 모든 것이 정치적 장난으로 무너지는 것 같아 허망할 뿐입니다.

그러나 한편 E.H. 카(Carr)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한 말을 생각했지요. “어떠한 역사를 쓰는가 또는 쓰지 않는가 하는 것이 그 사회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낸다.” 결국 그런 교과서를 썼다는 것도 일본사회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그것을 거의 채택하지 않은 것도 또한 현재의 일본사회를 나타내 보여준 것이 아니겠어요.

코이즈미(小泉) 수상은 2001년 10월 하순 샹하이(上海)에서 열린 APEC회의에서 “1998년의 김·오부찌(小淵) 공동선언 정신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는데, 뒤늦게 일본정부 역시 그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한 것일까요. 일본은 무언가 불편한 일이 생기면 총리를 바꿔버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일본은 신뢰받지 못하고 타국과 일본의 관계에는 항상 불안이 따라다니기 마련입니다. 코이즈미 수상은 지난 10월 15일 당일치기로 한국을 다녀갔습니다. 처음엔 무척 긴장된 얼굴로 무거운 발을 옮겼지만, 정상회담이 끝나고 나서는 마음이 퍽 가벼워진 것 같은 표정이었어요. 그리고 APEC, ASEAN+3 회의 등에서 계속 한·일, 중·일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점차 그가 동아시아의 두 지도자와 대화를 잘 나누게 된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10월 15일 방한 때도 APEC 회의 때도 한국의 신문은 매우 비판적이었지요. 그런데 11월 ASEAN+3 때는 그때까지와는 달리 코이즈미 수상의 자세를 긍정적으로 보도했어요. 일본신문은 코이즈미 수상이 테러대책 특별조치법 등을 아시아 정상들에게 설명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는 식으로 취급하고 있었지만, 한국신문에는 코이즈미 수상을 중심으로 한국과 중국의 두 정상이 손을 잡은 모습이 실려서 마치 일본이 둘의 손을 마주잡게 한 것 같았어요. 21세기에는 한·중·일이 새로운 경제관계·문화관계를 구축하여 무엇이든 문제가 있으면 대화하는 상황이 된다고 보았다고 할까, 전향적으로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지금까지 동아시아에서 또 세계적으로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지녀왔습니다. ‘대국’은 새로운 힘이 대두해올 때 그것을 새로운 가능성이라고 보기보다는 불안한 심정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이 중국을 보는 눈도 바로 그런 것 아닙니까. 미국 역시 새로운 힘과 손을 마주잡고 새로운 시대를 구축해가자는 적극적인 자세이기보다는 대두하고 있는 힘을 억눌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약간 이중적인(ambivalent) 심정으로, 중국이 대국이 되는 것은 경제적으로 시장이 확대된다는 의미에서 바람직하지만 중국이 패권을 행사해서는 안된다고 봐요. 바로 이러한 시기에 일본이 여기에 건설적으로 관여하여, 동아시아에 균형잡히고 평화로우며 안정된 관계를 구축했으면 해요. 한국은 새로이 일어나는 사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겁니다. 한국신문이 전향적으로 쓰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일본에 대해 일종의 기대감을 지닌 데서 비롯됐다고 생각해요. 일본이 이같은 기대에 응답을 할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하고 다시 우리에게 좌절과 실망을 안겨주는가. 이것은 금후의 동아시아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주목해야 하리라고 봅니다.

오까모또  예를 들면 이번 미국 테러사건 같은 때도 일본과 한국이 각각 미국에 ‘공헌’하려고 하기보다는 한·중·일이 협의·협력하면서 세계 전체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지명관  앞으로는 무엇이든 중요한 문제가 일어났을 때 동아시아 3국의 정상들이 곧바로 협의한다는 자세가 중요하겠지요. 그렇게 대화를 거듭하면 결속도 강화될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중국에서 들여오는 값싼 농산물과 공업제품 등이 일본이나 한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데, 서로 국내 사정을 말하면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어떤 양해사항으로서 제한을 가하는가 등을 상의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쪽에는 플러스이고 또 한쪽에는 마이너스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양측 모두가 승리하는 더욱 나은 방향을 모색하자는 거지요. 이리하여 동북아시아의 상호의존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1998년에 김대중정권이 성립됐을 때, 일본이 경제수역을 선포하는 문제가 일어나자 김대중 대통령은 그것을 새로운 정권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라고 받아들인 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꽁치어장 문제가 일어났지 않아요. 그후에 코이즈미 수상이 서울에 왔으니까 꼭 마찬가지 패턴이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것이 지금까지의 한·일관계였다고 생각합니다. 정상회담 후 꽁치문제는 얼마 동안 거론되지 않는 모양이지만, 저는 김대중 대통령과 코이즈미 수상 간에 상당히 마음을 털어놓은 대화가 있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어요. 두 분 다 그다지 웃지 않는 분인데 TV를 보니까 파안대소하고 있었어요. 코이즈미씨도 아시아에 친구를 가져야 하지 않겠어요. 김대중씨를 만나보니까 의외로 친구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지요. 또한 김대중씨도 코이즈미씨와는 말이 통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는지 모르고요.

이번 테러사건을 보니까 지금까지 유럽이나 미국이 안전한 지역이라고 생각했는데 도리어 동아시아가 안전한 지역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동안 동아시아 3국은 역사교과서 문제나 야스꾸니신사 참배 문제로 대립했지만, 한·일, 중·일 사이의 문제는 이런 글로벌한 문제의 심각성에 비하면 도리어 작은 문제가 아닌가, 이 지역은 상대적으로 안정돼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의 경우는 테러를 일으키거나 무력충돌을 일으킬 만한 상황도 아니고, 대립이라고 해도 동양적인 도의라든가 원칙, 또는 문화나 체면의 문제에 관련된 것이거나 다소의 무역마찰 정도에 불과하지 않아요. 무엇보다도 동아시아 전체가 종교적으로는 퍽 관용적인 지역이고요.

 

 

동아시아라는 관점에서 북한문제를 생각한다

 

오까모또  동아시아는 상대적으로 안정돼 있는 셈인데, 한국전쟁 이후 대규모 전쟁도 없었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지역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도 이 지역에 미국정부에 의해서 ‘테러지원국’으로 지칭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있다는 것을 잊을 수가 없어요. 냉전체제하에서는 청와대 게릴라 습격사건(1968), 버마에서의 전(全)대통령 암살 미수사건(1983)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테러를 비판하고 부정하는 입장을 분명히하고 있고, 동아시아의 안정이라면 북한을 포함해야만 하는 것 아니겠어요. 지난 1년 동안은 일본과 북한의 교섭이 중단된 상태이고 쌀 지원도 금년에는 전면 중지될 상황입니다. 거기에 2001년 후반부터 남북간 대화도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고 보이는데요.

지명관  앞으로 이 지역에서도 경제마찰 등 여러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2국간이 아니라 3국간 내지는 동아시아 전체의 테두리에서 생각해가야 한다고 앞에서도 말했습니다. 북한문제도 그렇습니다. 동아시아의 평화라는 테두리에서 북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되지 않겠어요. 북한은 지금 남북간에서, 기껏해야 미국과의 관계에서 생각하는 사고방식인데, 이제부터는 동아시아 전체라는 테두리에서 생각하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남한과 북한이 철도로 연결되면 일본과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의 유통이 연결될 뿐만 아니라 이것이 머잖아 유럽과도 연결될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언제 남쪽을 방문하는가입니다. 지금까지의 남북관계는 김대중씨의 평양방문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아무래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퍼포먼스적인 요소가 강했지요. 물론 김정일씨가 남쪽을 방문할 때도 그런 퍼포먼스의 요소를 무시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저는 이를 퍼포먼스로 생각하는 시대는 이제 거의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번영을 실현하기 위하여 북한이 어떻게 하면 이 테두리에 들어오겠는가,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북한 자체도 빈곤에서 벗어나 번영할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실질적으로 생각해야 할 시대가 된 것입니다. 어느 지역이 무너지는 것을 바랄 일은 아닙니다. 그것은 20세기에 모든 관계를 적대관계로 생각하던 발상이 아니겠어요.

예를 든다면 2002년 5월 월드컵은 한국에서 개회됩니다. 스포츠로서는 일본에서의 결승전이 재미있겠지만 정치적 이벤트로서는 개회식이 가장 흥미로운 것이겠지요. 이 개회식에는 중국의 쟝 쩌민(江澤民)씨도 초대돼 있고 코이즈미씨도 올 것 아닙니까. 거기에 김정일씨도 초대해서 정상들끼리 스스럼없이 만나고 웃고 이런 문제가 있으니 도와줄 수 없겠는가 하면서 이야기하는 그런 마당이 되면 좋지 않아요. 그렇게 되면 남북 쌍방은 남북간의 문제도, 정치적 퍼포먼스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자연히 동아시아라는 틀 속에서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봐요. 이런 의미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서울에 오는 것은 남북한간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그러니깐 중국과 일본도 한국과 함께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추진하여 새 시대를 열어야겠지요. 월드컵은 그런 노력을 위한 다시 가지기 어려운 기회라고 봐요. 여기에 한국의 외교력도 집중되어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쥐도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번 테러문제에서 생각할 것은 지나치게 북한을 코너로 몰아넣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 칸트(I. Kant)의 『영구 평화를 위하여』(1795)를 다시 읽고서 감동을 받았는데, 칸트라고 하면 대단히 어려운 철학자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소책자는 정말 현실적이에요. 오늘의 문제에 모두 적용될 수 있어요. 예를 든다면 “강대국이 밖에서 위협을 주고 있다면 위협받고 있는 나라가 전제적이 되어도 하는 수 없다. 그때 전제적이라고 비난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평화를 해치게 된다”라든가 “서양세력, 동인도회사 등이 잔인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일본이나 중국이 쇄국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라는 식입니다. 칸트가 말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도덕적으로 평화를 설득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고, ‘금력’ 즉 경제력으로 관계를 맺으면 자연히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북한과 경제교류, 인적 교류를 확대해가면, 북한에 공포감이나 위협을 주지 않고 동북아시아 전체가 안정을 누리게 된다고 생각해요. 참을 것은 참고, 인권문제를 제기한다든가 갑자기 보편적인 가치를 강요하면 도리어 압력이 되어서 평화를 해치게 되는 것이니까 조용히 대화하면서, 점차로 문제를 해결해간다는 발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까모또  미·소 냉전이 끝나 소련에서 오던 원조도 끊어지고 한국과 중국이 국교를 맺고 해서 북은 한때 고립상태였지 않았습니까. 미국이나 한국 또는 일본이 강한 압력을 가하면 북은 붕괴한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것이 1993년 4월의 전쟁위기를 몰고 온 것 아닙니까.

지명관  그래요. 그러니까 동아시아적 발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예를 들면 이런 것이지요. 지금도 일본의 보수적인 사람들 사이에서는 중국은 내부적으로 다수의 민족을 안고 있으니까 위기가 오거나 분열될 것이라고 보고 또 이를 기대하는 경향도 있습니다만, 그렇게 된다면 동아시아에 커다란 사태가 발생하게 되므로 중국이 그러한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하도록 우리는 협력한다, 또는 중국의 발전을 위해 협력한다는 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발상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동아시아 공동체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세계인구의 5분의 1, 또는 4분의 1이라고 하는 중국이 혼란에 빠진다면 동북아시아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대혼란 아니겠어요. 반대로 중국의 안정과 번영은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의 안정과 번영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오까모또  일본도 실은 북한과 2국간 교섭을 하기보다는 동아시아의 테두리에서 대화를 할 수 있다면, 그런 편이 오히려 쉽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명관  북한도 오랫동안 정치공작을 위해서 남쪽에 간첩을 보내왔지만, 작년부터 그런 것도 점차 없어지고 있어요. 그리고 이번 테러사건에 대해 그런 수단은 옳지 않다고 분명하게 선언했으니 더욱 좋은 상황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보세요. 기회를 평화적으로 선용하지 못하면 피가 피를 낳는 무서운 사태가 와요. 무력과 보복의 광기 속에서 이런 역사를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됩니다.

그러나 현단계에서 북은 남북관계에서만 생각을 하니까 교섭이 난항에 부딪힌 것이지요. 미국은 강경자세이고 남한은 비상경계중일 뿐만 아니라, 김대중정권에 대한 지지율도 떨어졌으니, 김정일씨가 남한에 가도 그리 환영을 받지 못하리라고 보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저는 남북한 모두, 상대가 어려울 때야말로 곧 내게 유리할 때다라는 식의 낡고 적대적인 발상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때에는 피차가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화해의 시대를 향한, 통일의지를 품은 평화적 발상이라고 봅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당분간은 별로 진전이 없는 상황이 계속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거기에다 다수를 차지한 한국의 야당은 북과의 관계에 대해 매우 소극적이며 햇볕정책보다 반공적인 자세로 북에 대응하려고 하니까, 다음 선거에서 야당이 집권하게 되면 대북관계가 변할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그동안 햇볕정책하에서 성장한 국민의 인식 때문에 북과의 관계가 전적으로 이전과 같은 상태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래도 얼마 동안 교착상태가 계속될 가능성은 있습니다.

반세기 이상 적대관계였으니 그것을 해빙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겠지요. 그래도 실제 남북관계는 조용히 진전되고 있습니다. KBS는 현재 북에 가서 상당히 자유롭게 취재하고 있습니다. 물론 민중의 생활 같은 것은 안되지만 문화재라든가 자연은 여러모로 찍고 있어요. 정치적으로는 교착상태라고 해도 실질적인 여러가지 교류가 행해지고 있지요. 한·일관계에서 역사교과서 문제, 야스꾸니신사 참배 문제 등으로 정치는 교착상태에 빠져 있어도 국민의 교류나 문화교류는 계속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일관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차로 진전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처럼 정부관계는 진전되지 않아도 민간교류, 시민간의 교류가 크게 진전된다면 정치를 넘어서 좋은 결과가 나타난다고 생각해요.

 

 

한국의 민주화혁명은 실패할 것인가

 

오까모또  한국에서 2002년은 선거의 해입니다. 지금은 한나라당이 우세하다고 전해지고 여당은 여러가지 부정부패 사건에다 의견대립으로 흔들리고 있는 것 같은데 2002년을 어떻게 전망하고 계신지요.

지명관  김대중정권은 레임덕 시기에 들어갔다고도 하지요. 1년 남짓한 임기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2002년은 선거, 월드컵 등으로 불안정한 시기가 될 것 같습니다. 야당에서 이회창씨가 대통령 후보가 된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확실합니다. 여당에서 누가 나올는지 모르지만, 대통령 후보가 되면 정치적 무게도 생기고 자금도 모이니까 낙선된다고 해도 서로 나가려고 하는 것 아니겠어요. 후보선출에 대한 김대중씨의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전에는 현직 대통령이면 부정한 방법을 써서 거액의 정치자금을 모아 이를 나누어주면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는데, 김대중씨는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은 김대중씨가 공정한 입장에 섬으로써 대통령 후보 선출과정도 민주적이 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현재 여당에서는 미국의 경우와 비슷하게 예비선거에 국민을 참여시키려 하고 있지요. 퍽 중요한 변화가 올 것 같습니다.

김대중씨에 대한 지지도가 내려갔지만 대통령 후보가 되리라고 생각되는 야당의 이회창씨의 인기도 올라가지는 않아요. 이회창씨에 대한 지지도가 20〜30퍼센트로 거의 변동이 없는 것은 국민이 지금의 정치 전반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겠지요.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선거전에 지면 그 순간부터 야당이 된 쪽은 대통령을 철저히 끌어내리려고 해왔습니다. 국회의원은 면책특권이 있으니까 온갖 중상(中傷)을 하고 신문은 그것을 재미있게 보도합니다. 야당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역량을 국민에게 인정받으려고 하기보다는 상대를 헐뜯고 끌어내려야 다음에 정권을 차지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정치풍토였지요.

한국이 실질적으로 민주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 지 어느덧 20년 가까이 됩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거쳐온 한국의 민주주의 제도 그 자체에 대해서, 한국 국민은 이제 피로를 느끼고 있는 듯한 생각마저 들어요. 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이념·정열·윤리는 쇠퇴했고요. 민주화란 하나의 혁명입니다. 그러나 ‘민주화’니까 비폭력적으로 해야 하고 필연적으로 구제도 구체제 내 사람들을 그대로 인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 아니겠어요. 정권 중추는 바뀌었다고 해도 전체적으로 기구는 그대로 존속되는 것이지요. 거기에 시행착오도 있고 민주화세력 자체가 퇴폐해지기도 하고. 그런 경우에 여야가 좀더 대화를 하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혁명이란 불가능한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민주주의적인 개혁이란 정말 어려운 것인만큼, 일본도 앞으로 개혁을 해나가는 데 참으로 많은 난관이 있을 겁니다. 개혁에는 여러가지 조건이 필요하지요. 아렌트는 ‘관료란 필연성의 앞잡이’라고 했지만, 관료는 대개가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현실에 끌려만 다니지요. 게다가 군사정권에 길들여져 있었으니까 개혁에 기꺼이 참여하려고 하지 않아요. 리프먼(W. Lippmann)은 “행정계획이란 기꺼이 해나가려고 하는 마음이 없다면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런 것이 없었어요. 그들에게 교육을 해서 그런 의식을 가지게 할 시간도 없었고요. 김대중씨는 말하자면 위로부터의 개혁을 하려고 했지만 관료도 정치가도 언론도 따라서 국민도 여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 하지 않았다고 하겠지요. ‘공공관념을 가진 능동적인 대중’이 없었어요. 또 한편 사회적 불만이 있는 경우 진정, 서명, 시위, 파업으로 대응하는 젊은이들의 비율이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경우 공공관념이 결여돼 있으면 집단이기주의로 치닫게 됩니다. 2000년에 의약분업으로 인한 싸움이 반년 이상 계속되었는데, 의사들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다보니 환자를 버려둔 채 파업을 할 정도였습니다. 농민은 농민대로 금년은 풍년이라 쌀값이 떨어졌으니 정부가 전량 수매해야 한다고 주장하지요.

과격하다고 할 정도의 국민의 힘, 이런 힘으로 민주화를 쟁취했지만 이런 강한 국민이 집단이기주의로 치달리면 참 정치하기 어렵지요. 시행착오가 계속되고, 개혁이 시행되었다가는 저항을 받아 좌절되고 후퇴합니다. 이런 것이 반복되었어요. 그래서 정부나 법의 권위가 여지없이 추락했어요. 그렇다면 야당이나 신문이 이것을 이해하고 밀어주면 좋은데, 야당은 언제나 정부에 대한 비판과 비난 쪽으로 가고, 언론은 언제나 저항만이 바른 길이라고 생각해왔으니 결과적으로는 개혁을 뒷받침하기보다 정부 비판만 선동한 셈이 되고 말았지요. 이것을 견디어낼 수 있는 선하고 유능한 정부란 참 드물 겁니다. 그전에 군사정권과 싸울 때의 야당과 언론과는 달라져야 할 텐데 말이죠. 이제 야당이나 신문이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가를 깊이 생각할 때가 왔다고 봐요. 원한을 지닌 야당이라면 다음에 야당이 정권을 잡아도 마찬가지일 게 아닙니까. 어떤 점으로 보아도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했기 때문에 강한 개혁세력·지지세력이 형성되어야 했는데, 개혁주체인 정치세력이 자기네 이익을 위하여 정치개혁을 거부했고 신문은 특권에 안주하려고만 했다고 해야겠지요.

아주 비판적으로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정권하에서의 변화는 놀라운 것입니다. 이제 반공 일변도란 있을 수 없고 국민억압이란 생각할 수도 없으니까요. 저는 강하고 비판적인 한국 국민이 다음 선거를 통하여 또 한번 민주적인 전진을 쟁취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꼭 그래야만 하겠고요. 지역대립이나 정치이해 관계의 대립을 넘을 수 있는 정치, 한쪽이 승리하면 패배한 쪽이 그 다음날부터 원한을 품고 대결하는 일이 없는 정치, 그래서 지금 국민이 품고 있는 정치 자체에 대한 불신을 초극할 수 있는 정치, 이런 것을 다음 선거에서 한국 국민은 추구해야 할 겁니다. 그러니까 대립을 물리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인물을 국민이 선출해야지요. 지역적 대립으로 덕을 본다는 식의 낡은 정치여서는 안됩니다. 자기네 지역 출신만 지지한다면 그 얼마나 해묵은 반동적인 자세이겠어요.

이번에는 한국, 아니 남북한 그리고 동아시아가 나아갈 방향을 바라보고 그 이념을 위해 투표해야 하리라고 봅니다. 원래 한국 국민은 이념에 대한 민감성을 지니고 있으니까 그런 후보만 내세울 수 있다면, 그리고 그런 인물을 압도적으로 당선시켜서 진정으로 국민 화해와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크게 전진되리라 생각해요. 그 다음에는 무리없이 대화에 의한 개혁정치가 이어지겠지요. 저는 그런 낙관론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덕(德)을 잃어버린 미국

 

오까모또  테러와 미국의 보복전쟁으로 세계는 불안하기 짝이 없지 않습니까. 대규모 테러가 21세기의 시작을 알린 셈입니다. 냉전이 끝나고 10년, 미국은 자본주의가 승리했다는 도취감, 그리고 자국 주도의 세계화(globalization)에 대한 자신감에 들떠 있다가 갑자기 이런 것들을 상실하고 일종의 공황상태에 빠진 것같이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명관  저는 우선 세계정치에 대한 미국의 개입방식이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한국전쟁에 미국은 UN의 이름으로 개입했고 걸프전쟁 때는 다국적군의 이름으로 그랬고, 코소보 때는 NATO의 이름이었지요. 이번에는 세계적인 대(對)테러전쟁이라고 하면서도 거의 미국 혼자 싸우는 것 같아요. 마치 세계의 경찰관처럼 말이죠. 씨몬느 베이유(Simone Weil)는 “인간은 무기를 가지면 그 순간 인간이 아니게 된다”라고 했는데, 국가도 과도하게 무기를 개발하고 생산하면 반드시 그것을 실험할 장소, 그것을 소비할 장소를 찾는다고 생각해요. 즉 무장한 강대한 나라는 필연적으로 적국을 찾게 된다는 거지요. 일본도 과거 아시아에서 그랬으니까요.

일본이 “쇼우 더 플래그”(Show the Flag)라고 하면서 히노마루(日の丸)기를 내걸고 적극적으로 미국과 행동을 함께하려는 것을 보면서 그 반응이 그처럼 재빠른 데 참 놀랐어요. 메이지(明治) 이후에 일본이 열강의 대열에 참여하려고 애쓰면서 1900년 의화단(義和團) 사건 때 최대병력을 파견한 것을 상기했어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과거를 역사적으로 관련시키는 것은 그것이 원래 있었던 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의 순간에 머리에 떠오르는 회상을 붙잡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만, 이런 의미에서 그렇게 회상하게 됐다는 말입니다.

사실 메이지유신 때는 아시아 여러 나라가 그것을 모델로 삼아 기대를 걸고 따르려 했습니다. 그러나 점차 일본이 무력적으로 변하고 아시아를 군사적으로 침략하게 되자, 일본을 모델로 전혀 삼을 수 없는 나라이며 문화도 도의도 없는 비인도적인 무력만의 나라라고 보게 되었지요. 공산주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러시아혁명 당시에는 사람들이 새로운 시대에 대한 꿈을 거기에다 걸었지만, 러시아가 점점 세계를 무력과 억압으로 지배하려 하자 모두가 혐오하게 되었지요.

미국도 같은 길을 가는 것같이 보입니다. 일극지배를 하고 최신 무기로 세계 어디에다가도 미사일과 폭탄을 던지며 협박하고 있지요. 미국의 민주주의나 이념, 독립사상 등에 대한 존경은 점점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공산주의 이념의 붕괴가 소련 붕괴의 징조였던 것처럼 미국의 민주주의 이념의 붕괴가 미국의 일극지배 질서의 붕괴 징조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근대사에서 힘에 의존해 국가, 사회 또는 역사를 자기 뜻대로 만든다는 생각은 결국 나찌즘에서 파탄을 보여주었고, 그 다음에는 공산주의에서였고, 이제는 미국 자본주의체제의 차례가 아닌가 생각돼요. 역사는 정말 잔인하다고 할까요. 소련이 붕괴했을 때 세계는 자본주의가 말하는 이른바 자유주의(liberalism)의 승리로 ‘역사의 종언’을 맞이한다고 떠든 사람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나 이제 반성하게 돼요. 그것은 승리한 자들의 환상이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어용이데올로기지요. 세계 도처에서 그런 체제에서는 살 수 없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는데 말입니다.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의 말이지만 파워 즉 힘이 덕(virtue) 을 갖추지 못한다면 그것은 폭력(violence)으로 떨어진다고 했어요. 이것은 1970년대에 미국에 대한 경고로 한 말입니다. 이번에 거의 전세계의 나라가 미국을 지지했어요. 미국의 군사력·경제력이 두려워서 지지하는 것 아니겠어요. 한국에서도 정부는 미국을 지지하지만 국민은 거의 미국에 비판적입니다. 미국은 이미 그 정신력 때문에 지지를 받는 나라가 아니지요. 미국의 무력을 두려워하는 데 지나지 않아요. 그것이 미국의 일극지배, 그 패권의 붕괴의 시작이 아닌가 저는 두렵게 생각해요.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는 1961년에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미국과 세계혁명’이라는 연속강연을 했습니다. 1776년 미국의 독립전쟁, 미국혁명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것은 언제나 역사의 무거운 짐을 지고 온 농민들의 혁명으로서 세계에 희망과 목적, 그리고 에너지를 주었다”고 했지요. 미국혁명 후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고 세계적으로 혁명의 시대가 열렸지만, 세계 각지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이 사회변혁의 이상을 품고 일어나자 미국은 점점 자신의 혁명은 자랑하면서도 그러한 혁명을 눌러버리는 데 가담하게 됐다고 해요. 그래서 “미국은 세계혁명의 고취자나 지도자이기를 그만두고 마치 로마의 마지막처럼 가난한 자를 억압하고 부유한 소수자의 이익을 옹호하게 되었다”고 했어요. 로마는 그 영향하에 있던 외국에서 더욱 그랬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대중을 대표했던 미국이 그 대표 자리에서 추락하자 단순한 벼락부자인 데 불과하게 된 것이지요. 토인비는 미국에 강한 자기반성을 요구한 것입니다.

거의 같은 말을 유대인인 아렌트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했습니다. 그는 시오니즘(Zionism) 운동단체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그 운동을 비판했어요. 그는 이스라엘은 나찌를 비판하면서 나찌를 닮아간다고 비판하고, 이제는 다른 민족과 협조하면서 인간세계를 만들어가야 하는데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을 배척하고 추방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즉 나찌와 마찬가지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의 진정한 모습은 억압받은 자라는 역사적 경험 위에 서서 그 경험을 통해서 전세계의 억압받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데 있다고 했어요. 그것이야말로 이스라엘이 진정한 이스라엘일 수 있는 길이라고 하며 이스라엘 건국에는 비판적이었던 것입니다. 미국은 이런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물론 미국은 이제 그런 거대한 사상가들이 가고 없는 나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처럼 미국만이 정의이자 불후의 자유이고 상대는 악이라고 속단하는 발상을 미국이 어떻게 자제할 수 있는가에 따라서 21세기의 세계 속에서 미국의 위치가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한나 아렌트와 그의 스승 칼 야스퍼스(Karl Jaspers)가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왕복서간집을 읽으면서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1946년 11월 아렌트가 쓴 편지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까뮈는 매우 정직하고 위대한 정치적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이런 젊은이들이 유럽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언어가 서로 잘 통하지 않아도 어디서나 스스럼없이 만나 이야기하면서 연대를 다진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들 이전의 유럽 지식인들은 어떠했는가 하면 “좋은 유럽인이기는 하지만 어딘가 고결한 노예와 같았다”고 했어요. 위대한 학자나 사상가라고 해도 너무 국가 냄새가 났다는 것이겠지요. 자기 나라의 노예가 돼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대전 후, 즉 파시즘의 고통을 함께 경험하고 나서 내셔널리즘에서 자유로워진 젊은 지식인들이 나타났다는 거예요. 그는 더 나아가서 “민족이나 인종이라는 것은 인간의 타락한 모습”이라고 했어요.

저는 아시아의 지식인, 특히 한·일의 지식인을 보아오면서 마찬가지 느낌을 가집니다. 이전에는 일본에서 상당한 지식인들이라고 해도 역시 일본에 집착하면서 아시아에 대해서는 기껏해야 좀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정도였지만, 지금 일본의 젊은 지식인들은 함께 아시아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함께 시민적인 자유를 이야기하자는 자세입니다. 아마도 한국의 민주화운동 같은 것에 연대하고 이번에는 역사교과서 문제 같은 데 연대하면서 달라진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한·일 모두 이 세대의 지식인들은 내셔널리즘을 넘어서 동아시아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게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요. 일본에서 이번에 역사교과서 파동을 일으킨 사람들은 이런 것을 도리어 두려워하는지도 모르지요. 유럽에서 전후에 새로운 세대가 일어나서 유럽의 오늘을 구축한 것처럼, 동아시아에서도 평화와 협력을 함께 말할 수 있는 양식있는 시민의 공감대, 공통감각이 형성되고 있음을 저는 실감합니다. 여기에 낡은 정치세력은 조만간 굴복하고 말지 않겠습니까. 올해 한국의 선거는 우리가 그러한 시대에 얼마나 접근해가려는 것인지를 가늠하는 매우 흥미로운 정치적 실험이라고 생각해서 지켜보고 있어요. 그것도 역시 한국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적 과제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오까모또  희망에 찬 중요한 싯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