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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소용돌이 속의 동아시아

 

북한의 탈냉전 발전전략

 

 

김연철 金鍊鐵

고려대 아시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저서로 『북한의 산업화와 경제정책』 『남북경협 GUIDE LINE』(공저) 등이 있음. dootakim@hanmail.net

 

 

1. 또하나의 근대극복, 북한의 개혁

 

북한은 변화하고 있는가?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의 정책변화 수준을 ‘그럭저럭 버티기’(muddling through)라고 표현하지만, 이 개념을 단순한 현상유지로 해석하는 것은 오류다. 변화하고 있는 국내외적 환경에 적응해야만 그나마 더이상 추락하지 않고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속적인 변화를 모색하고 있고 실제로 변화하고 있다. 문제는 변화의 수준과 속도이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북한이 겪은 ‘최악의 경제위기 국면’은 변화의 계기였다. 세계체제로부터의 고립은 에너지와 원자재 투입을 제한함으로써 공장가동률을 하락시켰고, 관료적 조정에 의해 유지되던 계획 메커니즘의 작동을 둔화시켰다. 나아가 식량위기로 북한체제의 근간을 이루던 배급제가 불안해지고 소비재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서 사회적 유동성은 증가했고, 암시장은 늘어났으며, 충성의 이데올로기는 약화되었다.

변화의 국면에서 북한은 어떤 선택을 했는가? 북한은 시장지향적 개혁이라는 새로운 체제변화보다 전통적인 계획개선정책을 선택했다. 시장개혁이 가져올 ‘의도하지 않은 사회적 결과’보다는 통제가능한 변화를 모색한 것이다. 경제정책에서 북한의 제한적 변화는 공업부문에서 연합기업소 재편시도와 농업부문에서 토지정리사업으로 나타났다. 연합기업소 조직은 1971년 채취공업 부문에 시범적으로 도입된 이후 1985년 주요 공업부문에까지 확대 실시해온 북한 공업생산의 근간이었다. 북한은 2000년 1월까지 44개의 연합기업소·종합기업소의 조직개편을 단행했지만, 2000년 9월부터 다시 원상 복귀시켰다. 애초의 조직개편이 기대한 재정수입 증대효과보다는 기관본위주의·집단이기주의 등 부작용을 초래해 생산에 차질을 빚은 것으로 보인다. 계획가격, 생산재 시장의 부재, 그리고 연성예산 제약현상이라는 관료적 조정체계는 변화되지 않은 가운데 시도된 부분적 효율화 조치가 한계를 보여준 것이다.

농업부문에서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토지정리사업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1998년 강원도를 시작으로 평안북도(1999.10〜2000.5)와 황해남도(2000.10〜2002.3)의 토지정리사업을 완료했다.1 토지정리사업은 식량난 이후 급속하게 확산된 개인농토(뙈기밭)를 없애고, 경지면적을 확대하기 위한 사업이다.

현재의 싯점에서 토지정리사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토지정리사업은 집단적 계획영농체계를 유지하겠다는 북한의 의지를 반영한다. 중국과 베트남의 농업개혁과는 다른 선택이다. 중국과 베트남에서 ‘농가 생산책임제’라는 개인농 중심의 농업개혁은 소유제 개혁의 시작을 의미했으며, 농가저축 증가로 향진(鄕鎭)기업과 같은 농촌자본을 형성하고 농민소비를 증가시켜 시장을 활성화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농업개혁을 통해 개혁과정의 완충공간을 만들고, 더욱 어려운 공업개혁으로 이행해간 것이 중국이나 베트남 모델의 특징이다.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농업정책의 차이는 동아시아 사회주의의 경제개혁 모델을 북한에 적용하기 어렵게 한다.

그러면 향후 북한의 개혁모델은 어떤 형태로 진행될 것인가? 남북정상회담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북한의 개혁가능성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1998년 사회주의 헌법의 경제관련 조항 해석이나 북한 특수론의 기본 가정, 2000년과 2001년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방문 이후 북한 개혁개방론은 북한의 실제 정책변화와 차이가 있는 기대감의 산물이다. 북한의 정책변화는 가시화되고 있지만 그 변화의 수준과 속도는 분명 외부의 ‘기대수준’과는 괴리가 있다.

북한 사회주의에서 개혁이란 무엇인가? ‘개혁’이란 ‘고전적 사회주의 체제’(Classical socialist system)의 ‘점진적 변화’를 의미한다.2 현실사회주의의 역사에서 고전적 사회주의의 변화는 소련이나 동유럽에서 1960년대에 이미 시작되었고3 점진적 변화유형인 동아시아 사회주의에서는 1970년대 후반에 시작되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남아 있는 사회주의 중 꾸바는 1990년대 중반부터 관광분야를 시작으로 경제개혁을 추진하고 있다.4 북한은 이제 지구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고전적 사회주의’가 되었다. 북한은 다른 사회주의 국가와는 달리, 고전적 체제의 특징을 장기 지속해왔다. 반자본주의 산업화(anti-capitalism industrialization)를 지향했지만, 반근대적 근대화(anti-modern modernization)5로 귀결된 북한식 발전전략은 진보를 가로막는 사회적 관계들을 내재화했다. 북한식 체제는 가부장적 수령제 정치, 전시공산주의적 계획경제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과잉동원사회로 구성되어 있다.

의미있는 체제변화는 어디서부터 시작될 수 있는가? 분단체제의 규정력과 열악한 국제환경 등 변화의 거시정책환경을 고려할 때, 변화의 과정은 경제영역에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경제개혁이란 무엇인가? 경제개혁이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경제에서 관료적 조정체계를 약화시키고, 시장지향적 조정형태를 확대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중앙계획경제의 의미있는 변화’를 지칭한다. 정확히 표현하면 사회주의체제에서 경제개혁은 중앙집권적 계획모델에서 분권적 시장모델로의 변화를 의미하며, 분권적 시장모델로의 변화를 위해서는 투자의 우선순위 조정, 경제주체의 확대, 경제운영체계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동시에 국제시장구조에 참여해야 하는데, 이른바 경제개방은 무역정책의 분권화, 수출 확대, 외자유치 등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이런 개념적 기준을 토대로 북한의 경제개혁 가능성을 진단한다.

 

 

2. 북한의 경제개혁 가능성

 

(1) 왜 북한의 개방은 반복적으로 실패하는가?

북한은 (시장지향적) 경제개혁을 시도한 적은 없지만 국제경제체제에 참여하기 위한 경제개방은 몇차례 시도한 바 있다. 북한의 개방노력은 1970년대 초반의 유럽(프랑스 등)과 일본 등으로부터의 플랜트 도입, 1984년 합영법 채택, 1991년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 선포 등이 대표적이다. 1970년대 초반의 경제개방 시도는 오일쇼크와 북한의 비철금속 가격하락으로 결국 북한에게 모라토리엄(지불유예) 선언을 남겨주었다. 1980년대 중·후반 이후 합영법의 채택과 조총련과의 조·조 합영 역시 초보적인 노동집약산업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지만, 가격경쟁력 상실과 시장확보 실패 등으로 인해 근근이 명맥만 이어가고 있다. 1991년 나진·선봉에 자유경제무역지대가 선포되었지만 투자실적은 미미하다.

북한의 경제개방 과정은 개방시도―성공―개방확산의 방식이 아니라, 개방시도―실패―개방시도 등으로 단절적이었으며, 제한적으로 추진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중국의 경제개방 노력이 개방지역과 투자환경을 단계적으로 확산하는 누적적 확산전략이라면, 북한의 개방시도는 지속적이지 않고 체제위협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한된 공간 내에서 추진된다는 의미에서 단속적 제한전략이라 부를 수 있다. 중국의 경제특구가 시장경제개혁을 이루기 위한 자본주의 실험공간으로서의 매개적 의미를 가진다면,북한의 경제특구는 내부체제와 격리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왔다.

왜 북한의 경제개방 시도는 반복적으로 실패했는가? 첫째, 냉전적 산업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군수경제 위주의 중공업 발전전략은 국제경제체제로의 편입에 불리하다. 남북경협을 포함한 외자유치는 북한과 주요 투자자의 분업구조를 고려할 때, 당분간 노동집약산업 위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이 경공업 위주의 수출산업 중심으로 개편돼야 함을 의미한다. 특히 공정분업의 경우 북한 내 관련 부품산업이 발달하지 않으면, 투자기업들은 부품조달에 애로를 겪게 되고, 원·부자재 일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물류비 부담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수익성이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위탁가공이나 직접투자가 수익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수출산업 육성으로의 산업정책 재편이 필요하다. 물론 냉전적 자립경제 모델에서 탈냉전적 수출지향 산업화로의 변화는 한반도의 냉전체제 극복과 군비경쟁의 악순환이 중단되어야 가능하다.

둘째, 계획경제 고수로 북한의 비교우위 생산요소인 노동부문의 경쟁력이 발휘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은 시장가치를 반영하지 않는 환율정책으로 저임금의 매력이 없고, 노동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투자기업이 노동자를 선택할 수 없으며, 동시에 개인 인쎈티브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남북 경제협력이 단순조립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위탁가공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유일하게 직접투자 방식이 적용되던 경수로 건설현장에서 북한 인력이 축소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6 생산성과 연계되지 않은 지대당국 차원의 임금책정이나, 임금의 간접지급 방식은 북측 노동자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아 인쎈티브 효과가 없다.

정상회담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개성공단이 남북 경제협력에서 직접투자 시대를 열고, 동아시아의 새로운 경제협력 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한반도 차원의 냉전체제 해체와 북한의 경제개혁이 병행해야 한다.

 

(2) 북한 경제개혁의 조건

북한이 시장지향적 개혁이 아니라 계획개선형 경제정책 변화를 지속하는 이유는 정치체제의 경직성과 남북분단, 대외관계의 불투명성 때문이다. 북한은 체제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면서 당면한 식량난을 해소하고 외화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개방노력을 선택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조치로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북한은 더욱 새로운 정책을 모색해야 할 기로에 서 있다.

북한의 향후 개혁개방 가능성을 전망하기 위해서는 정치구조, 거시경제적 조건, 국제시장과의 연계성 등의 변수가 고려되어야 한다. 먼저 경제개혁 과정이 가져올 개인주의와 사적 이익 추구현상이 북한식 정치사상체제와 양립할 수 있는가부터 생각해보아야 한다. 개인숭배와 문화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개혁 리더십이 아니라 전통적 리더십에 의해 경제개혁이 추진된 다른 나라의 사례는 있다. 바로 꾸바의 까스뜨로 정권에 의해 시작된 1994년 이후의 경제개혁이 그것이다. 김정일 체제에서도 경제개혁은 가능할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혁추진 엘리뜨와 정책변화를 정당화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 수정 등이 필요하다.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계와 당의 영도원칙이 공식담론으로 유지되더라도 경제정책과 외교정책을 담당하는 내각의 책임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군부와 사상 엘리뜨가 변화과정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담론을 제공하는 대신, 실용주의적 실무관료들이 실제적인 정책변화를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주체사상의 실용주의적 재해석도 요구되고 있다. 기존의 주체사상 체계에서도 창조성이나 의식성 등은 시장논리와 결합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나아가 정치 사상적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물질적 인쎈티브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해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주체사상을 좀더 추상수준이 높게 규정하고, 김일성 주석의 유훈 등을 근거로 한 경제정책 변화를 정당화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체계의 정립이 요구된다.

거시경제적 조건은 어떤가? 북한의 점진적 경제개혁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은 북한의 산업구조에 주목한다. 중국과 베트남은 국가가 소유하는 중공업 부문이 상대적으로 적은 농업국가였기 때문에 점진적 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고, 북한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7

북한의 점진적 개혁가능성을 낮게 보는 입장의 기본논리는 다음과 같다. 중앙계획경제의 점진적 개혁은 중공업 부문의 조정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북한의 경제구조는 농업비중보다는 공업비중이 높은 동유럽식 산업구조라는 점이다. 농업이 집약화되어 있는 북한과 같은 특수한 조건에서는 농업개혁만으로 중국이나 베트남이 보여준 것과 같은 성장 잠재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위기 이후 북한의 농·공간 비율은 큰 의미가 없다. 계획경제의 본질적 모순과 외부적 자원제약 현상이 결합되어 나타난 북한경제의 구조적 위기로 북한의 공장가동률은 수출품 생산공장을 제외하고는 급격히 떨어졌다. 공장가동률이 떨어져 잠재적 실업률이 높아지면 잉여노동력이 발생한다. 현재 북한의 광범위한 잉여노동자층은 비국영부문의 성장원천이 될 수 있다. 또한 그동안 암시장의 확산으로 비공식적으로 증가한 소상품 경제형태 역시 경제적 구조조정의 충격을 완충할 수 있는 영역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의 산업구조상 농업개혁이 전반적인 공업개혁을 선도하기는 어렵지만, 공업부문의 공동화(空洞化) 현상으로 사회주의 일반에서 나타나는 공업개혁 과정에서의 첨예한 이해갈등은 상대적으로 작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북한이 본격적인 시장지향적 개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대외환경의 개선이 핵심적으로 중요하다. 현재의 북한경제가 선순환(善循環) 구조(개방―외화 확보―원자재 및 투자재 수입―생산가동률 상승―수출 확대)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대외 경제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북미관계 개선을 통해 대북 경제제재가 완화(투자 유입, 수출시장 확보)되고 국제금융기구의 개발지원(인프라 구축)8이 본격화되어야 한다. 동시에 남북관계의 안정적 발전을 통해 체제안정과 경협 활성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3. 과도기의 성장산업: IT와 관광산업의 가능성

 

북한이 동아시아 국제분업구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탈냉전적 수출지향 산업화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 그렇지만, 현재의 국제환경 수준에서 제조업의 경쟁력 확보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첫째, 북미관계 개선을 통해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가 철회되지 않는 한, 북한의 수출지향 산업화는 어렵다. 저가소비재 시장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미국시장에 북한산 제품이 진출하기 위해서는 정상무역을 위해 필요한 일반특혜관세제도(GSP)가 채택되어야 한다. 현재의 보복관세 상태에서 북한산 위탁가공제품은 중국제품에 비해 수출단가(FOB 기준)를 최소 30~50% 이상 절감하지 않으면 대미수출이 어렵다.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가 완화되지 않으면, 위탁가공의 규모 확대나 개성공단과 같은 대규모 생산기지의 건설은 어려운 것이다.

둘째, 공정분업을 통한 새로운 동아시아 국제분업구조에 북한이 참여하기 위해서는 기술수준의 격차를 좁힐 필요가 있다. 전자나 통신 등 첨단산업의 경우 남한(일본을 포함)과 북한의 기술격차는 크게 벌어진 상태다. 단순 전자조립 분야(모니터, TV 등)에서도 공정의 자동화 비율이 높아지면서, 저임금보다는 노동생산성이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기술격차를 좁히기 위한 초기투자 및 교육이 필요하고, 노동생산성을 제고할 수 있는 경제개혁이 전제되어야 한다.

결국 북한에서 제조업 분야의 경쟁력 확보는 국제환경의 개선과 기술격차의 완화를 고려할 때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과도기의 산업정책이 모색되어야 한다. 여기서는 특히 북한이 최근 관심을 보여주고 있는 IT산업과 관광산업을 중심으로 그 가능성을 살펴보자.

 

(1) IT 도약전략의 가능성과 한계

북한은 최근 들어 과학기술을 21세기 산업정책의 핵심으로 규정했다.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으며 디지털 경제를 학습하기 위한 열기도 높다. 남북경협 분야에서도 IT부문이 다른 분야에 비해 더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북한의 IT산업 도약발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북한의 입장에서 과연 IT산업이 도약의 돌파구가 될 것인가?

제조업 비중이 낮아 산업연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투자여력이 부족한 저발전 국가에서 IT, 특히 쏘프트웨어 산업은 매력적인 분야가 될 수 있다. 교육수준이 높은 양질의 노동력이 있다면 말이다. 이런 점에서 인도나 아일랜드 모델이 중요한 시사점을 줄 수 있다. 오랫동안 후진국으로 여겨지던 인도가 쏘프트웨어 강국으로 도약하고 ‘서유럽의 환자’로 일컬어지던 유럽의 소국(국토면적 7만km², 인구 363만명)인 아일랜드가 부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선적으로 우수한 인적자원과 저렴한 임금, 파격적인 우대조치를 통한 외자유치정책과 쏘프트웨어 산업 육성정책 등을 들 수 있다. 세계적인 디지털 경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정책적 의지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국가의 역량을 집중한 정책적 노력이 결실을 거둔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국제적 개방화를 위한 노력이다. IT, 특히 쏘프트웨어 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술변화의 신속성과 급속히 변화하는 시장에서의 수요 대처능력이 요구된다. 두 국가 모두 미국 신경제의 부상이라는 타이밍을 적절히 포착했다. 인도의 쏘프트웨어 산업은 초기에 주로 미국 기업들의 아웃쏘씽(outsourcing) 활성화에 힘입어 급속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최근 들어 유럽의 비중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여전히 미국이 쏘프트웨어 분야 수출의 5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아일랜드 역시 외국계기업 중 미국의 비중이 40% 이상이다.

인도가 글로벌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미국과 12시간의 시차가 있어 미국기업은 아웃쏘싱을 통해 사실상 24시간 가동이 가능하며,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여 미국고객과의 접촉이 용이했기 때문이다.9 아일랜드의 성공에는 미국 내 아일랜드 출신의 역할이 중요했다. 미국 내 아이리시(Irish)는 그동안 대통령을 세 명(케네디·레이건·클린턴) 배출했으며, 아일랜드인들은 최소 1명 이상의 친족을 미국에 두고 있을 정도로 미국 내 아일랜드인이 많다. 미국의 대(對)아일랜드 투자가 집중적으로 확대되는 싯점 역시 클린턴 재임중인 1990년대이다.10 물론 외국자본 특히 미국 신경제의 하청기지화를 통해 부상한 이들 국가의 쏘프트웨어 산업이 대외적 민감도가 높고 국내적인 산업연관 효과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의견도 있다. 이들 국가 앞에는 산업구조 고도화와 국내적 생산기반의 확대라는 과제가 남겨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인도나 아일랜드의 사례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북한은 국제적 네트워크화를 이루는 데 불리한 점이 많다. 언어의 제약과 자립노선이라는 정치적 이데올로기, 그리고 여전히 미국에 의해 테러국가로 지정되어 있는 국제환경이 존재한다. 남북 사이의 협력이 그 틈을 어느정도 메울 수는 있다. 그렇지만 남북 IT 교류에서도 일반적 성공변수가 적용된다. 남북 IT 교류 역시 좀더 빠른 시간에 좀더 빈번한 접촉을 할 수 있는 네트워크 구축과 정보 인프라의 구축이 선행되어야 한다. 동시에 가격경쟁력을 보장할 수 있는 임금 및 생산성 수준의 보장과 적극적인 투자환경 조성도 필요하다. IT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보개방과 국제화가 핵심변수라고 볼 수 있다.

 

(2) 관광산업 활성화 정책

북한은 외국인 투자지역으로서의 장점이 적다. 내수시장도 작고, 지경학(地經學)적으로도 생산거점의 역할을 하기에 부적합하며, 미국의 경제제재 대상으로 투자위험도가 높다. 이에 따라 관광사업이 새로운 성장주력 분야가 될 수 있다. 관광을 통해 국제적 개방에 성공한 사례는 꾸바다. 꾸바는 관광개방과 외자유치로 외환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났다. 북한 역시 제조업 기반이 극도로 약화된 상태에서 단기간에 투자회수가 가능한 관광산업에 의욕적이다. 하지만 꾸바의 관광개방은 성공했지만, 북한의 관광개방은 전망이 불투명하다. 물론 자연환경이 다르다는 점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꾸바는 카리브해 연안국가 중에서도 전통적인 관광국가이다. 북한의 관광자원이 꾸바에 비해 열악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의 입장에서 단기적 외환수입을 위해서는 관광산업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금강산 관광을 수용한 것이다.

그런데, 왜 금강산 관광사업은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그 답을 꾸바 사례는 제공하고 있다. 꾸바가 꾸준히 관광 활성화를 위한 인프라, 즉 시장환율정책으로의 전환, 숙박업을 비롯한 개인상업의 허용, 호텔 및 위락시설 건설을 위한 적극적인 합영 및 외국인투자 활성화를 시도한 반면, 북한은 그렇지 않았다. 관광 활성화는 산업정책의 하나이며 거시경제적 조정과정을 필요로 한다. 금강산 관광은 꾸바식 관광개방과 근본적 차이가 있다. 꾸바의 관광산업은 꾸바정부의 적극적인 제도 변화와 합영을 통한 관광인프라 개선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확대되었고, 관광상품으로서의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 이에 비해 금강산 관광은 일괄지불(Lump-sum) 방식으로 추진되면서 관광상품으로서의 경쟁력보다는 분단체험 관광이라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에 의존하였다. 남북관계에서 관광교류가 갖는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금강산 관광이 관광상품으로서의 경쟁력을 갖지 않는 한 지속적 발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꾸바의 관광 활성화 노력은 북한의 관광개방에 교훈을 주고 있다.

 

 

4. 한반도의 탈냉전과 북한의 경제개혁

 

동아시아에 있어서 북한은 냉전의 섬이다. 북한의 지속가능한 경제발전과 전근대적 사회유형의 개혁은 이 지역에서의 냉전해체를 위한 핵심적 과제다. 당분간 북한은 동아시아의 경제분업구조에 제한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과거 동아시아 신흥공업국이나 중국의 부상이 가능했던 국면과 지금은 성격이 다르다. 한국·대만·싱가포르·홍콩 등은 국제적 생산주기를 활용하여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특히 한국과 대만은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일본으로부터 사양 섬유산업과 소비용 전자산업을 이전받아 초기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다. 또한 1970년대 후반 동아시아 신흥공업국이 통화절상, 임금상승, 선진공업국간의 무역마찰 문제로 산업구조의 재편국면을 맞이했을 때, 중국이 경제개방정책을 본격화한 것은 적절한 선택이었다. 중국은 저임금 생산기지로서의 비교우위가 충분히 발휘될 수 있는 싯점11에 국제분업구조에 참여한 것이다.

현재의 국면은 북한이 저임금 생산기지로 비교우위를 발휘하기 어려운 싯점이다. 지역별 불균등 발전을 고려할 때 중국의 첨단산업과 전통산업의 공존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은데, 중국에서 동부 연안도시들의 첨단산업화에도 불구하고 중부 내륙지역의 저임금 생산기지로서의 역할은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북한은 불안정한 국제환경 때문에 내부적인 탈냉전적 산업구조 재편이 당분간 어려울 것이며 정책변화 수준 역시 외국인 투자를 유입하기에는 미흡하다.

대안은 무엇인가? 북한은 매력적인 투자대상국가는 아니지만, 동아시아 경제공동체의 완성을 위해서는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다. 그것은 북한이 중계거점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지경학적 위치 때문이다. 북한은 대륙과 해양을 이어주는 교량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교통(철도와 도로)과 에너지(가스관 연결 등) 분야 등을 중심으로 북한 지역에 대한 공적 투자를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할 싯점이다.

부시행정부 출범 이후 북미관계 개선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지만, 한반도에서 실질적인 화해협력 분위기 조성과 경제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노력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현재도 벌어지고 있는 기술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적절한 공정분업 협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것이다. 따라서 경제협력의 양적 확대 및 질적 수준을 제고하여 상호의존도를 높이고, 북한의 인프라 지원 등 기본적인 투자환경을 조성해야 하며, 남북한이 공동으로 국토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산업분업체제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경제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단계적 이행시간은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완화 정도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싯점에서 중요한 것은 장밋빛 미래상이 아니라, 구상을 현실화할 수 있는 방법론이다. 아직 남북관계의 현실은 낙관의 틈을 허용하지 않을 만큼 불투명하며 경제협력의 호혜적 구조는 마련되지 않고 있다. 북한의 탈냉전적 발전전략이 가능할 수 있는 환경조성의 필요성과, 남북관계의 경제적 접근이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 파급효과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요구되는 싯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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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2년 4월 현재 북한은 황해남도 토지정리사업의 완료로 강원·평북·황남도 등 3개 도에서 총 18만여 정보의 토지를 정리하여 5700〜6700정보의 ‘새 땅’을 확보했다. 각 도별 토지정리사업 추진실적은 통일부 『주간 북한동향』(제585호: 2002. 3. 31~4. 3) 13~15면 참조.
  2. 코르나이는 사회주의 체제의 개혁을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첫째로 ① 공식적 지배이데올로기 또는 공산당 지배에 의한 권력구조, ② 국가소유체계, ③ 관료적 조정 메커니즘 중에서 한 가지 이상에 변화가 발생하고, 둘째로 그 변화는 사회주의 체제를 변혁시킬 만큼 급격하지는 않으면서 약간 급격한 혹은 완만한 수준이어야 한다. János Kornai, The Socialist System: The Political Economy of Communism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2) 361, 388면.
  3. 1960년대 헝가리·폴란드 등의 시장개혁 경험은 1990년대 체제전환 과정의 정치사회적 고통을 완화시킨 배경으로 작용했다. 시장개혁 경험이 부족한 동유럽의 저개발국인 루마니아나 알바니아 등이 체제전환의 계곡을 쉽게 통과하지 못한 것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분명하다.
  4. 꾸바는 관광개방, 외환 및 금융정책 개혁과 국영농장 개혁의 효과로 1980년대 후반부터 가속화된 경제침체로부터 벗어나 1994년부터 플러스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필자는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라는 국제환경과 전통적 리더십의 경제개혁 실험, 그리고 관광산업의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꾸바의 경제개혁 경험이 북한에 상당한 시사를 줄 수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졸고 「북한의 경제개혁 전략: 쿠바 사례의 적용가능성」, 『아세아 연구』 2002년 상반기호 참조.
  5. 반근대적 산업화라는 개념의 실증적 분석에 대해서는 졸저 『북한의 산업화와 경제정책』(역사비평사 2001년) 참조.
  6. 북한은 2000년 4월부터 월 110달러로 책정된 북측 근로자의 임금을 600달러로 인상해달라며 근로자 200여명 중 100여명을 철수한 바 있다. 이에 따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는 2001년 3월부터 우즈베키스탄 근로자를 투입하여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7. 대표적으로는 Marcus Noland, “Why North Korea Will Muddle Through,” Foreign Affairs, Vol.76, No.4(1997) 참조
  8. 국제금융기구로부터의 공적 차관은 당분간 어렵다. 국제금융기구의 사회간접자본(SOC) 공적 차관은 북미관계 개선 및 북한의 시장경제 변화를 전제로 첫째 회원 가입, 둘째 공적 차관 심사 등을 통해 진행될 것으로 보이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물론 국제금융기구 가입 이전에도 지원을 받은 사례는 있다. 팔레스타인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그런 경우이다. 팔레스타인의 경우, 미국의 결정에 의해 세계은행이 주도하는 특별신탁기금 명목의 3억 2천만 달러, 26개국이 참가한 홀스트 기금(Holst fund) 2억 6천만 달러를 지원받았다. 자세한 내용은 장형수·박영곤 「북한의 경제재건을 위한 다자간 국제협력 방안」, 『KIEP 세계경제』 제3권 5호(2000. 5) 참조.
  9. 1990년대 중반 인도 쏘프트웨어 산업의 현황에 대해서는 임덕순 『인도의 과학기술체제와 정책』(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 1997) 참조.
  10. 아일랜드의 경제부상에 대해서는 김득갑 「아일랜드: 외자유치로 이룬 경제기적」, 류상영 외 『국가전략의 대전환』(삼성경제연구소 2001) 381〜408면 참조.
  11. 션젼(沈圳) 경제특구가 운영된 지 10여년이 지난 1990년 션젼의 인건비는 홍콩의 1/5이었고 꽝뚱성(廣東省)의 기타 지역은 홍콩의 1/10이었다. 션젼에서 50~70년 사용의 토지임차비는 홍콩의 2~3%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