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문화평
반환점을 돌고 있는 한국 여성영화
제4회 서울여성영화제를 보고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1. 한국에서 여성감독이라는 타이틀의 희귀성은 흔히 여성감독이 만든 영화가 여성영화라는 선입견, 혹은 여성영화=페미니즘영화라는 일정한 기대를 심어주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영화사에서 여성영화에 대한 고찰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여러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과연 여성감독이 만든 영화는 모두 여성영화인가? 그리고 90년대 후반 일군의 남성감독이 만든 여성영화는 어떠한 시각에서 평가해야 할 것인가? 넓은 의미에서 보면 여성영화는 여성감독이 만든 영화부터 시작해서 여성의 현실을 진솔하게 다루는 영화, 혹은 일반의 상업주의영화와는 다른 가부장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영화 등등 다양한 의미로 쓰여왔다. 그러나 이 용어는 기실 엄격한 의미의 페미니즘영화와도 다른 것이고, 또한 90년대 이후 한국에 대두된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영화들까지 포괄하는 아주 막연한 용어라고 하겠다.
영화학자 아네트 쿤(Annette Kuhn)은 페미니즘영화의 실천을 두 가지 영역으로 나누고 있다. 하나는 지배영화의 해체에 기반한 대항영화이며, 다른 하나는 지배영화에 대한 타자로서 특징지어지는 여성을 위한 표현양식으로서의 영화, 즉 여성적 글쓰기로서의 페미니즘영화가 그것이다. 대항영화는 흔히 공간과 시간의 연속성이나 논리적 미장쎈, 안정된 내러티브 등 영화가 가지고 있는 약호와 관습을 해체하고 전복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의도적으로 낯설게 보기를 유도하는 장치를 지니고 있다. 반면 여성적 글쓰기라 한다면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넘어선 다원성·다양성, 그리고 차이를 허용하는 존재·사고·표현방식일 것이며, 때로는 이방인·무질서·광기, 주변의 저급한 것들과의 화합을 매개할 수 있는 파격과 너그러움의 표현양식이고, 이는 페미니즘영화의 본질이기도 할 것이다.
한국영화계에서 페미니즘영화를 표방한 최초의 영화는 92년 발표된 이현승 감독의 「그대 안의 블루」로 기록된다. 당시 우파와 좌파 페미니스트들은 과연 「그대 안의 블루」가 페미니즘영화일 수 있는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그전의 영화들, 특히 80년대 이래 발전해온 여성영화들이 점점 권위적이 되어가는 가부장에 대한 폭로와 정체성에 대한 자의식을 키워나가는 여주인공을 그렸다면(정지영 감독의 「위기의 여자」, 박철수 감독의 「안개기둥」), 90년대 여성영화들은 다양한 여성적 정체성 추구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틀에서 신음하는 여성들의 주체성 확립이라는 공통의 의식을 갖고 있었다. 90년대 페미니즘영화들은 자의식 강한 전문직 여성들을 내세워 여성의 정체성과 여성의 몸, 그리고 사회와의 관계를 탐색하는 등 80년대 여성영화와는 차별되는 ‘여성의 자기 발견’에 대한 새롭고 의미있는 시도를 했던 것이다(오병철 감독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정병각 감독의 「코르셋」, 박철수 감독의 「301, 302」). 그러나 「301, 302」(1995)와 같이 상업주의에 대항하는 파격적인 조명과 스토리를 채용한 작품에서조차 과연 이 영화가 여성적 글쓰기로서 의미있는 페미니즘을 실천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없다.
예를 들면 박철수 감독의 「301, 302」에서 301호의 이혼녀 윤희는 요리를 하는 낙에 살고 302호의 송희는 요리를 거부하는 거식증 환자이다. 가부장제하 여성적 질서의 기본인 요리를 모티프로 한 영화에서 그녀들의 비상식적인 행동은 일종의 가부장제에 대한 도전으로 보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페미니즘 담론은 윤희가 송희를 요리해 먹는다는 ‘식인’이라는 내러티브의 급진성을 결국 쫓아가지 못한다. 왜 그녀들은 레즈비언적인 관계 대신 음식을 먹이고 받아먹는 일종의 유사(類似) 모녀관계를 택해야 하는가? 결국 식인에 의해 결합되는 두 사람은 가부장제하에서 여성적 연대에 의해 성적 해방을 이루는 작업의 어려움을 역설적으로 드러낼 뿐이다. 결국 90년대의 페미니즘영화들은 이데올로기적 급진성을 보여주거나 성차의 경계를 뛰어넘는 전복적인 기운을 띄지 못한 채,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여성과 연관된 몸의 문제, 혹은 성차의 문제가 얼마나 가부장적인 사회에 의해 조작되어진 것인가를 폭로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아네트 쿤이 주장한 좁은 의미의 페미니즘영화를 한국 주류영화계에서 찾기란 아직까지는 매우 힘든 일일 것이다.
2. 80년대 초반의 여성영화는 여성의 사회적 억압의 일반성을 강조하려는 경향이 짙었지만, 8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여성들의 현실과 정치적인 지향성의 차이에 의해 ‘여성’이라는 단일범주가 흔들리게 된다. 그리고 일반대학의 써클이나 영화아카데미 등에서 여성이 처한 현실에 대한 역사적·사회적·계급적 상황과 그 차이를 고려하고자 했던 일련의 여성영화인들의 연구는 90년 독립영화 진영과 여성영화인 모임들로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1989년 당시 김소영·문명희·정혜영·허현숙·문혜주·변영주 등이 활약한 여성영화집단 ‘바리터’는 독립영화 진영과 충무로 영화현장 그리고 대학원 영화과에서 활동하던 여성들을 한데 묶으며 1992년까지 여성민우회, 지역탁아소연합과 함께 많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사무직 여성들의 문제를 다룬 김소영 감독의 「작은 풀에도 이름이 있으니」(1989), 현대중공업의 노동운동사를 다룬 도성희 감독의 「전열」(1991), 대우조선 파업을 다룬 홍형숙 감독의 「옥포만에 메아리칠 우리들의 노래를 위하여」(1991) 등은 이 시기 바리터의 성과이다. 그중에도 변영주 감독은 1993년, 제주도의 관광기생으로 알려진 매춘여성들에 관한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을 발표하였고, 1995년 「낮은 목소리」를 발표하면서 민족과 성의 문제를 처참한 한국여성사와 연결하는 데 중대한 일익을 담당한다.
이밖에도 여성감독들이 만든 상업영화 역시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선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임순례 감독은 삼류밴드의 궁색한 일상을 그린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나 「세 친구」(1996)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적응력을 포기한 인간상을 통해 가족·학교·군대 그리고 이 사회를 이루는 조직적인 폭력이라는 문제를 탐구하였다. 또한 영상원 1호 입학생으로 최초로 충무로 감독이 된 정재은 감독은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인천을 배경으로 주류에서 소외된 이십대 여성들에게 의미있는 시선을 보냈고, 「반칙왕」을 제작했던 이미연 감독은 데뷔작 「버스, 정류장」에서 섬세한 시선으로 상처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는다. 이외에도 이수연 감독의 「4인용 식탁」, 배우 출신 방은진 감독의 「떨림」, 박경희 감독의 「미소」, 김은숙 감독의 「빙우」, 재키 곽 감독의 「최대공약수」 등도 충무로 물밑에서 진행중이다.
만약 이들 여성감독이 모두 영화를 만든다면 이전에는 다섯손가락으로 꼽아야 했던 여성감독들이 충무로에서 비약적으로 증가함은 물론이요, 한국영화의 지형도에서 여성감독과 여성영화에 대한 관계를 고찰하는 데도 적잖은 도움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여성감독들은 여성의 시선에서 본 여성의 몸과 원조교제의 문제, 이십대 초반 고졸여성들이 경험하는 고단한 사회경험, 혼자서 자신의 생계를 꾸려가는 여성 등 다양한 여성상과 그들이 겪는 사회적 억압을 섬세하게 포착하려 한다. 이제까지 다소 도식화되고 피상적으로 묘사되어온 여성과 사회의 문제는 이런 여성감독들의 손을 통해 좀더 구체적이고 대안적인 방식으로 스크린에서 재현될 것으로 보인다.
3. 이러한 여성영화인들의 활발한 활동에는 과연 어떠한 배경이 있었을까? 여성들의 영화에 대한 자의식과 직업의식의 변화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뿐만 아니라 90년대 들면서 눈에 띄게 바뀐 충무로의 감독데뷔 씨스템 역시 여성감독의 개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90년대 다양해진 국내외 영화제들의 역할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중에서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격년제였다가 작년부터 매년 열리는 서울여성영화제는 한국 여성영화의 발전에 있어서 남다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서울여성영화제는 여성감독 지망생들로 하여금 페미니즘영화를 지향하게 하였으며, 여성감독이 충무로에 진출하는 교두보로서의 역할을 단단히 하였다. 제1회 서울여성영화제의 단편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낸 박찬옥 감독은 「질투는 나의 힘」을 촬영중이며, 제2회 서울여성영화제에서 「도형일기」로 최우수상을 수상한 정재은 감독은 「고양이를 부탁해」를 선보였고, 「고추 말리기」의 장희선 감독 역시 새로운 장편영화를 준비중이다. 박찬옥 감독의 경우, ‘여성영화제의 수상을 여성의 여성영화 만들기에 대한 지지’로 이해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지지에 힘입어 충무로 안에서도 여성영화의 행보를 늦추지 않겠다는 일련의 포부를 밝혔다.
서울여성영화제는 여성감독 배출의 산실이라는 점 외에 일반 여성관객에게도 특별한 마당을 선사하고 있다. 영화제를 일종의 해방구로서 정착시키려는 주최측의 의도로, 이 영화제는 관객들로 하여금 여성운동에 대한 의식을 고양시키고 여성으로서의 동질감과 자매애를 경험하게 하는 작은 축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제4회 여성영화제는 지난 4월 4일부터 12일까지 동숭아트센터와 하이퍼텍 나다에서 열렸는데, 평균 90% 이상의 좌석점유율을 보였고, 모두 3만 2천명의 관객이 다녀가 전례없는 성황을 이루었다. 대부분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인 이들 여성들은 동숭하이퍼텍 나다의 앞마당에 나란히 앉아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영화가 끝난 뒤 서로 의견을 교환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영화제 위원회측은 여성들의 공동체 마당이 소비주의적인 공간인 멀티플렉스 대신 일시적이고 작으나마 여성영화제에서 가능했다고 자부심어린 해석을 하기도 한다.
또한 금번 서울여성영화제는 제2회 때부터 팀을 이룬 이혜경 대표, 변재란 부집행위원장과 주유신·김은실·권은선·임성민 프로그래머 등이 세계 각국에서 고른 70여편의 영화를 상영하는 내실과 안정을 보여주었다. 특히 올해는 ‘아시아 여성영화의 힘을 북돋워주자’라는 제3회 여성영화제 모토의 연장선상에서 인도 독립여성영화를 소개하고 국내에 국한되었던 단편경선을 아시아 단편으로 확대하기도 했다. 또한 기존의 성과 욕망에 대한 통념을 뒤엎는 전복적인 작품들을 통해 신세대 여성들의 페미니즘 경향을 보여준 ‘한국영화 회고전’, ‘걸 파워’라는 주제로 구성한 ‘딥 포커스’, 한국 최초의 레즈비언영화로 발굴 소개된 김수형 감독의 「금욕」(1976)의 비디오 상영전 등이 신세대 여성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
특히 「숨겨진 반쪽」 「두 여인」 등을 연출한 이란의 여성감독 타흐미네 밀라니(Tahmineh Milani)의 작품 6편이 소개되었는데, 그녀는 인터뷰에서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는 이슬람이란 문화적 맥락에 의문부호를 내걸고 싶었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이외에 인도의 여성감독인 파리다 메타(Fareeda Mehta)의 장편 데뷔작인 「칼리 사와르」는 창녀 술타나와 그 주변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서 현재 급격하게 변동하고 있는 인도사회의 단면을 성찰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니샤 가나트라(Nisha Ganatra) 감독의 「인도식 팝콘」은 코미디의 틀을 빌려 인도 내에 존재하는 레즈비언 문제를 경쾌하게 다루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영화들은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생각보다 다원화된 문화적·종교적 맥락에 처해 있음을, 또한 지배적 사회기제인 이슬람 또는 인도 문화와 여성의 관계에 대해 성찰하는 드문 계기를 제공했다.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의미심장하며 성공적인 결실을 맺은 기획은 아시아 단편경선으로 보인다. 아시아에까지 문호를 넓힌 단편영화제에서는 모두 16편의 작품이 겨룬 결과, 조윤경 감독의 다큐멘터리 「가족 프로젝트: 아버지의 집」이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자신의 가족에 카메라를 들이대 한국사회에서 아버지의 자리와 그 의미를 되짚어보는 다큐멘터리. 밖에서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에 대해 열띤 지지를 보내지만 막상 집에 와서는 가부장적 권위를 내세우는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한국 가부장제사회에서 가족의 이중성과 아버지의 이중성을 날카롭고도 감동적으로 파헤친 작품으로, 사적인 이야기를 공적인 영역으로 옮기는 데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올 서울여성영화제는 연례행사로서의 내용성을 충분히 확보한만큼 관객들의 지지와 호응도가 높아졌다. 많은 관객들이 한국영화 회고전에 몰려 부쩍 높아진 한국영화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큰 성과이다. 다만 예년의 아네스 바르다(Agnes Varda) 회고전 같은 ‘여성영화제다운 화제작’이 드물었다는 사실은 한가지 아쉬움으로 남는다. 4회를 넘어선 서울여성영화제는 이제 한국 여성관객들에게 내재한 영화만들기와 영화보기의 욕망을 현실과 접목시키는 구체적인 방법을 돌아보는 반환점에 서 있는 것 같다.
4. 2000년대 들어 여성감독의 장편 극영화에서의 두드러진 활약은 무엇보다 여성억압의 현실적인 지층을 뚫고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90년대 독립영화계의 여성영화적인 다양한 실천은 이전까지 한국 안에서 숨겨진 여성의 역사를 드러내고 현실의 여성문제를 상기시키며 여성들 사이의 담론을 형성하는 의미있는 작업으로, 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나로부터 출발한 여성들의 일상, 여성들 사이의 관계, 무엇보다 변화에 대한 뚜렷한 욕구를 지닌 능동적인 여성상을 그리는 영화, 혹은 가부장제의 잔인함을 폭로하는 레즈비언영화나 제3세계의 정체성을 담은 영화들, 그리고 기록영화와 역사영화가 결합한 자기반영적인 영화들이 언젠가는 한국에서도 탄생하지 않을까? 그러한 측면에서 2000년대 대한민국에서 여성감독들이 봇물 터지듯 등장한 것은 바로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싸이렌의 등장, 대한민국 여성의 핏속에 들끓고 있는 여성언어의 존재가치 그리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려는 시대적 욕망의 징후로 읽힌다. 단편과 독립영화에서 서서히 자신의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는 한국의 페미니즘영화. 이제 기존의 영화만들기와 이데올로기 모두에 파격을 가하는 많은 여성영화들이 등장할 그날을 기대해본다. 이러한 발돋움 속에서만 90년대 이후 소비풍조를 부추기는 ‘미즈’ ‘미시’ 같은 말들로 호도된 페미니즘을 극복하고, 사회 전체가 여성적 글쓰기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금번 제4회 서울여성영화제의 열기와 단편들의 작품수준에서 느껴지던 한국 여성감독과 관객 들의 힘을 모두 모아 여성들이여, 파이팅! 대한민국에서 진정한 페미니즘영화의 시작은 지금부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