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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김종길 金宗吉
1926년 경북 안동 출생. 194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성탄제』『하회에서』『황사현상』『천지현황』『달맞이꽃』등이 있음.
가을
동이 트자마자
거세게 울어대던
백련사 골짜기의 매미 소리가
불현듯
뚝 끊치고,
탁류 뒤의 맑은 시냇물처럼
영롱한 풀벌레 소리가
흐르기 시작한다.
가을이다.
내 살갗에 와닿는 서늘한 바람,
내 눈동자에 켜드는 해맑은 햇살.
가을은 해마다 이렇게 찾아오는
갑작스럽지만 반가운 계절,
내 살아 있음을, 내가 나임을
문득 참되게
일깨워주는.
우체국에 갔다 오면서
가볍게 눈을 쓴 북한산에
활짝 아침 햇살이 퍼지면
온 산은 한순간 만개한 복사꽃밭.
만해(萬海)스님이 어느해 겨울 저녁
내설악 오세암(五歲庵)에서
문득 얻은 시구(詩句)를
우체국에 갔다 오면서
동네 오르막길에서
홀로 떠올리느니,
“한번 소리치면 잠잠한 우주
눈 속에 펄펄펄 붉은 복사꽃.”1
고향길
철길섶 마른 풀잎
잎 진 가지들
그 위에 펼친 하늘
피는 흰 구름
한나절 육백리 길
하염없고나
앞으로 몇번이나
오르내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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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시구는 “一聲喝破三千界 雪裡桃花片片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