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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다시,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임지현 林志弦
한양대 사학과 교수. 『당대비평』 편집위원. 저서로 『바르샤바에서 보낸 편지』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그대들의 자유, 우리들의 자유―폴란드 민족해방운동사』 『이념의 속살』 『우리 안의 파시즘』(공저) 등이 있음. jiehyun@hanyang.ac.kr
1. 운동으로서의 민족주의
민족에 대한 한국사회의 욕망은 참으로 집요하다. 민족주의로 표상되는 이 사회적 욕망이 단순히 허위의식이나 감정의 차원이라면, 논의의 필요성이나 가치를 느낄 이유가 없다. 민족주의를 바라보는 내 시선은, 그것이 ‘근대 세계사의 물질적인 현실의 운동방식에 근거를 갖는 것’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현실에 대한 사유와 실천을 구성하고 생산하는 현실 규정력을 지닌 담론이라는 것이다. 민족주의 담론은 물질적 현실의 단순한 반영을 넘어서, 현실을 만들어나가는 힘인 것이다. 『민족주의는 반역이다』에서 민족주의를 ‘관념의 힘’으로 규정하는 시각을 비판하고. “사회적 총관계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방향과 내용을 수정하면서 살아 움직이는 역사의 변화에 열려 있는 운동으로서 민족주의를 파악”하는 ‘운동사의 관점’을 촉구한 것1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민족주의를 사회적 내용이 채워져야 하는 이차적 이데올로기이자 단순히 감정의 차원으로 취급하는 시각부터 문제”2라는 유재건(柳在建)의 비판은 그가 서평을 쓴 바 있는 바로 그 책에 의해서 이처럼 부정된다. 책의 권두논문인 「운동으로서의 민족주의」를 발표한 1994년에 비해 내 생각은 또 달라졌지만, 운동사의 관점에서 민족주의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기본생각에는 변함이 없다.3
민족주의를 역사적 변화에 따라 움직이는 ‘이차적 이데올로기’로 규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는 자기완결적 논리구조를 갖지 못한다. 그것은 복수 주체들의 다양한 입장에 따라 그리고 역사적 조건과 맥락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박정희의 ‘조국근대화’론이나 북한의 ‘주체사상’, 남한의 ‘민중적 민족주의’ 등이 민족주의의 외투를 걸치고 병존해온 엄연한 역사적 현실에서도 그것은 입증된다. 해방과 저항 이념으로서의 민족주의라는 규범적 이해가 지배적인 한, 물론 ‘이차적 이데올로기’라는 규정성은 불편할 것이다.‘이차적 이데올로기’라는 규정성이 소중한 것은 역설적으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것은 민족주의〓절대선이라는 규범적 인식의 틈새를 벌림으로써, 민족주의의 복합적 현실에 접근하는 첫걸음인 것이다. 다행히 지난 몇년간 민족주의〓절대선이라는 인식은 많이 깨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좋은 민족주의 대 나쁜 민족주의, 혹은 열린 민족주의 대 닫힌 민족주의라는 이항대립의 규범적 인식틀은 완강하게 존재한다.
지배와 저항을 동시에 관통하면서 작동해온 20세기 한반도 민족주의의 복합적 현실 앞에서, 이항대립의 이 안이한 규범적 인식은 현실의 비판을 견뎌낼 수 없다. 민족주의에 대한 운동사의 관점이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운동사의 관점은 민족주의에 대한 본질주의적 이해를 거부한다. 그것은 민족주의가 역사적 변화에 따라 움직이는 이데올로기라는 점을 직시하면서, 사회운동 또는 정치운동으로서 민족주의를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운동사의 관점에서 민족주의를 포착한다고 할 때, 세계사의 정치·경제적 차원에 대한 분석이 요구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 분석에 기댈 때,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은 오히려 견고한 현실성을 갖는다. 구좌파의 변혁적 사고가 개별 국가단위에 갇혀 있었고 민족운동 또한 국가성에 대한 어떠한 역사적 대안도 제시하지 못한 채 체제의 제약들 안에 포섭되었다는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의 비판, 국민적/지역적 집단들의 정체성에 기초하여 저항의 거점들을 만들고자 했던 좌파의 노력이 결과적으로 ‘제국’의 발전을 지지했다는 마이클 하트(Michael Hardt)와 안또니오 네그리(Antonio Negri)의 비판 등은 무엇보다도 세계사의 정치·경제적 분석에 입각한 것이다.4 민족주의 비판이 마치 세계체제의 인식부족에서 비롯된 것처럼 몰고 가는 유재건의 논지가 다소 엉뚱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다양한 포스트주의의 이론틀에 기댄 민족주의 비판이 담론구성체로서의 민족주의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물질적 현실의 운동방식’을 소홀히 한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를 허위의식으로 규정하는 단순한 사고를 벗어나 이데올로기의 물질성이라는 인식에 다다르면, 문제의 차원이 달라진다. 소박한 기초주의적 인식론과 언어 표상이론을 벗어나면, 사유와 실재의 정연한 이분법을 액면 그대로 지탱하기 어렵다. 대상이 담론적 접합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지고 현실이 담론 속에서 구성된다면, 정치·경제·사회적 실천들 또한 담론적 틀을 통해 방향성이 규정되기도 수정되기도 하는 것이다. 예컨대 신념·의미·실천 체계로서의 이데올로기가 사회적 존재로서의 우리를 어떻게 ‘호명’하는가에 따라 실천의 지향이 정해지는 것이다.‘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호명된 주체의 인식/실천의 지평은 기본적으로 민족주의의 담론적 틀 안에 갇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민족주의는 이처럼 물질적 현실의 운동방식에 근거를 가질 뿐만 아니라 현실을 규정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운동으로서의 민족주의가 갖는 복합적 현실을 세계체제라는 물질적 현실의 반영으로 환원한다면. “한반도의 현실에 대한 복합적 사고를 회피한다”5는 유재건의 비판은 자신을 향한 부메랑이 될 수밖에 없다.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물질성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결여된다면, 민족주의 담론이 현실에 개입하는 복합적 작동방식을 이해하기 어렵다. 담론구성체로서의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의 의미를 성찰한다고 해서 소박한 실재론의 틀로 재단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내 논지는 물질적 현실이라는 ‘실재’(the Real)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의 코드로 그것을 인식하고 실천해나가는 ‘현실’(reality)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일상생활의 영역을 포괄하는 시민사회의 전공간으로 침투한 지배 헤게모니에 대한 대항 헤게모니를 생산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보면, 월러스틴이 잘 지적했듯이 일국적 지평에서 정치권력과 국가기구들을 장악하여 사회를 변혁한다는 1848년 이래 반체제운동들의 한계는 뚜렷하다. 기존 운동의 역사적 성취를 부정하거나 그 성취 안에 안주하는 자세를 버리고 그것을 딛고 서는 관점에 설 때, 다시 민족주의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2. 국가권력과 국민주권
타자를 복종시키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권력의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 단지 타자를 복종시키기 위한 매개들이 역사적으로 변할 뿐이다. 근대 권력의 역사적 특징은 그것이 마치 지배를 욕망하지 않는 듯한 외양을 띤다는 데 있다. 그것을 가능케 한 사상적 기제는 국가의 절대적이고 영속적인 권력인 주권이 인민에게 있다는 인민주권론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자꼬뱅(Jacobin)의 현실정치가 ‘주권적 혁명독재’의 이름으로 인민주권론을 국민주권의 사상으로 변형함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그것은 국가주권론보다는 진일보한 것이지만, 국민국가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사상적 기제이기도 하다. 즉, 다양한 욕망을 지닌 구체적인 개개인을 단일한 집합의지를 가진 민족/국민으로 추상화하고 권력의 의지를 국민 개개인의 의지로 내면화하는 근대 국민국가가 국민의 이름으로 자신의 지배 헤게모니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민족주의에 힘입어 ‘재주술화’된 국민의 물신주의에서 벗어나면, 국민주권의 존중과 국가주의를 구별해야 한다는 상식의 이면에 근대 국민국가가 만들어낸 지식/권력 체계가 작동하고 있다.
인민주권론은 물론 근대 시민혁명의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성취이다.‘하나이며 나누어질 수 없는’ 공화국을 선포한 프랑스 대혁명 이래, 공화주의 담론은 근대 국민적 주체들의 세계에 대한 사유와 실천을 규정하는 인식틀로서 존재해왔다. 이상적 공동체로서 고대 로마의 ‘시민적 공화정’(civic republic)으로의 복귀를 꿈꾸는 공화주의는 봉건제의 신분적 특권을 법 앞에서의 시민적 평등과 자유로 대체함으로써, 근대 국민국가가 내포한 해방의 가능성을 제시해준다. 민족주의 또한 계몽사상의 ‘신고전주의’와 결합하여, 특권적이고 제한적인 봉건사회를 평등주의적이고 자유로운 민족공동체로 발전시키는 이데올로기로서 해방의 메씨지를 내포하고 있다. 언어와 혈통 등에서 다양한 주민집단들을 프랑스 민족/국민이라는 단일한 공동체로 묶을 수 있었던 민족주의의 통합능력은 일차적으로 공동체의 수직적 상하관계를 수평적 평등관계로 대체한 그 담론의 해방적 성격에서 기인한다.‘혈통적 민족주의’에 비해 ‘시민적 민족주의’가 갖는 상대적 해방의 가능성도 이 점에 있다. 국민국가의 형성단계에서 인민주권설과 공화주의가 해방의 담론으로 작동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한편 그 해방의 담론은 억압의 논리를 내장한 것이기도 했다. 인민주권설이 국민주권의 사상으로 살짝 뒤바뀌면서, 억압의 논리는 슬그머니 현실정치의 무대로 고개를 내밀었다. 로베스삐에르(Robespierre)는 국민공회의 연단 앞에서 조국에 대해 자긍심을 가진 ‘국민’에 대해 자랑스럽게 보고하면서, 인권선언의 ‘남자’(l’homme)를 ‘여자’(la femme)로 대체하자는 올랭쁘 드 구주(Olympe de Gouges) 부인과 ‘국민’(la nation)을 ‘인류’(le genre humain)로 바꾸어 쓰고자 했던 아나르카르씨스 클로츠(Anarcharsis Cloots)를 처형했다. 자꼬뱅이 주도한 국민국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두 사람을 처형한 것은 여성과 외국인을 ‘비국민’으로 배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추상적 차원에서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특정한 헤게모니 집단, 인종 또는 계급이 국민을 대표한다는 설정을 통해 내부의 차이와 차별을 은폐하는 것이었다. 외부적으로도 ‘민족/국민’은 원주민 타자와의 변증법적 대립 구도 속에서 유럽 인민들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식민지 인종주의의 메커니즘을 정당화하였다.6 떼르미도르(thermidor)의 반동에 앞서 이미 자꼬뱅의 ‘시민적 민족주의’는 해방의 코드 속에 내장된 배타성과 타자화의 논리를 드러낸 것이었다. 국민국가의 발전과 더불어 배제의 논리가 현실화되었을 때, 그것은 프랑스제국 남성 부르주아의 헤게모니 논리로 확립되었다.
민족/국민이라는 코드 속에 내장된 권력의 지배 메커니즘은 그러나 위로부터 강제되는 방식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자발적으로 구성되는 외양을 취한다. 이론적으로 그것은 전체를 구성하는 한사람 한사람이 자신의 인격과 모든 능력을 주권의 관리 아래 두고, 그 대신 각 개인은 전체의 불가분의 성원으로서 공동체에 받아들여진다는 루쏘(J.J. Rousseau)의 도식에서 잘 나타난다. 루쏘의 ‘일반의지’는 자꼬뱅의 현실정치에서 근대적 주체로서의 개인과 인민의 집합의지가 행사되는 대상으로서의 국민을 접합하는 매개로 작동한다.1789년 가을 빠리의 국민방위군이. “당신은 민족/국민에 속하는가?”(Etes-vous de la Nation?)를 암호로 사용했을 때, 이미 민족/국민은 혁명에 가담한 개인들의 상상적 관계를 표상하는 이데올로기로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상상적 관계를 현실화하는 계기는 물적 현실의 차원에서는 부르주아 국민국가이지만, 담론의 차원에서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국민주권 사상이었다. 이때 주권은 스스로 권력을 만들어내는 ‘구성하는 권력’으로서의 민족/국민의 의지에 기초한 단일한 초월적 권력으로 표상된다.
‘구성하는 권력’으로서의 ‘일반의지’, 즉 민족/국민의 의지는 헌법에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 헌법을 만들어낸다. 민족/국민은 어떠한 임의적인 것도 욕망할 수 있고, 그 욕망은 헌법과 동일한 법적 가치를 지닌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주권자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공안위원회의 자꼬뱅 독재 당시. “민족/국민이 자기 자신에 대해 독재를 행사하고 있으며” 그래서 합법적이라는 바레르(Barère)의 연설(1793년 4월 5일)은 이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이 연설은 시민적 덕성을 갖춘 개개인의 자연법적 자유는 ‘일반의지’와 일치하며 또 일반의지에 대한 복종을 통해 개인은 자신의 자유를 실현한다는 자꼬뱅의 신념을 드러내준다. 그러나 반혁명파들이 ‘주권독재’(dictature souveraine)라 이름붙인 그것은 일반의지에 입각한 독재이기 때문에 자유로이 계몽된 인간마저도 감수할 수 있는 독재이다.‘구성하는 권력’으로서의 일반의지에서 직접 도출되어 국민에게 호소하는 ‘주권독재’는 무제한으로 초헌법적 권력을 행사하며 또 민족/국민의 이름으로 그것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국민주권으로 변형된 인민주권론에 뿌리를 둔 이 ‘주권독재’는 근대 국민국가에 의해 호명된 국민적 주체로서의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지배 헤게모니에 포섭되는 근대적 지배와 권력의 정당성을 이해하는 한 축이 된다.7 알뛰쎄르(L.Althusser)를 패러디하면, 민족/국민의 담론은 결국 개별화된 시민사회의 성원들을 국민으로 ‘호명’하는 근대 국민국가의 담론화 전략인 것이다. 그 전략의 목표는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규율하여 자율적으로 국가의 규칙과 통제에 따르는 국민적 주체를 생산하는 데 있다. 이로써. “전체에 결합된 개인은 단지 자기 자신에게만 복종하는 것이 되어 예전과 마찬가지로 자유롭다”는 루쏘의 주장은 규율화된 국민적 주체를 생산하는 국민국가의 담론으로 탈바꿈하였다.8 즉 계몽주의가 시민적 자유의 개념을 발견하자마자, 국민국가의 현실은 그것을 민족/국민적 규율의 틀 속에 가두었던 것이다. 그것은 일반의지의 명령에 따라 스스로 권력을 만들어내는 국민주권의 사상으로 다시 정당화된다. 시민권이 인민을 정치적 과정에 포함시키는 개념이자 동시에 민족적 장벽 또는 숨겨진 계급장벽을 통해 배제를 함축하는 개념이라는 월러스틴의 지적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9
그러나 국민으로 호명된 개인들이 근대 국민국가가 요구하는 질서를 내면화하기 위해서는 ‘일반의지’와 같은 이론적 추상만으로는 불충분하다.‘일반의지’ 혹은 ‘주권독재’가 사상 혹은 이론적 추상의 차원에서 민족/국민의 규율을 내면화하는 담론적 기제라면, 일상적 삶의 차원에서 그 규율을 내면화하는 문화적 기제가 요구되는 것이다. 전통종교를 대신하여 공동체의 성원들에게 정체성의 촛점과 문화적 에토스(ethos)의 기초를 제공하는 ‘시민종교’(civil religion)로서의 민족주의가 주목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이 적절히 지적했듯이, 기억할 수 없는 먼 과거에서 출발하여 기약할 수 없는 무한한 미래로 이어지는 집단적 삶에 대한 민족서사는 개체적 죽음의 숙명성을 집단적 삶의 연속성으로 바꾸어놓는다는 점에서 종교적 사유의 공백을 순식간에 채울 수 있었다.10 민족주의가 근대의 다른 어느 이데올로기보다도 ‘시민종교’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유도 이 점에 있다.
‘피지배자의 사회적 감성의 형태로 존재하는’ 시민종교로서의 민족주의는 일상의 사고와 실천을 규정하는 일종의 생활양식으로 발전하여, 일상적 삶의 차원에서 민족/국민의 가치와 규율을 내면화하는 문화적 기제로서 작동한다. 즉, 국민 공통의 가치체계나 신념체계를 내면화함으로써 사회 구성원들을 국민으로 일체화하는 국민화 프로젝트의 문화적 기제인 것이다. 민족주의라는 시민종교와 인민/국민 주권론의 담론적 틀 아래 ‘총체성’으로서의 국민국가의 목표와 규율을 내면화한 길들여진 국민적 주체는 자발적 총동원 체제를 떠받치는 기제이다. 네그리·하트의 표현을 빌리면,‘주권기계’(the sovereignty machine)의 작동으로 대중은 ‘질서화된 총체성’으로 변형되는 것이다. 일반의지의 이름으로 시민사회의 개개인이 민족/국민으로 호명될 때, 그것은 사실상 ‘생활세계의 식민화’가 시작되는 순간이며 내면화된 규율과 가치를 통해 합의와 자발적 복종을 유도하는 국가권력의 헤게모니가 작동하는 순간이기도 한 것이다. 주권독재를 개념적 지렛대로. “반자유주의적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반민주주의적이지는 않다”11고 나찌즘을 정당화한 카를 슈미트(Carl Schmitt)의 섬뜩한 리얼리즘에 비하면,‘대내외적인 국민주권의 존중’과 국가주의 또는 국가권력을 구별하는 한국사회의 ‘상식’은 지나치게 순진하다.
더 중요한 것은 양자를 구분하는 이분법이 상식이기 때문에 옳다는 태도가 아니라, 그 상식의 이면에서 작동하는 지식/권력 체계에 대한 이해가 아닐까 한다. 이 단순한 이항대립을 국민적 상식으로 끌어올린 이면에는, 국민주권과 ‘국민적 합의’의 이름으로 지배 헤게모니를 관철하는 근대 국민국가의 권력 정당화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분법의 사고에 갇혀 국민주권의 물신주의에 빠져 있는 한, 카를 슈미트의 ‘주권독재’나 일본의 새 역사교과서 모임이 제기한 ‘국민적 공화주의’에 대한 대항담론을 기대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국가주의 대 국민주권론, 혹은 국가주의 대 민족주의라는 이항대립의 논리로는 민족과 국민의 이름으로 저항하지만, 지배 또한 민족과 국민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역설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통선거권과 여성참정권 획득으로 프롤레타리아트와 여성이 ‘국민’ 속에 편입되었을 때, 국민국가의 지배 헤게모니는 사실상 더 강화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 점에서 정치적 민주화는 근대 권력의 정당화 또는 합리화 과정이기도 했다. 그것은 국민국가에 포박된 근대 민주주의의 역설이라 하겠다. 공화주의의 문제의식을 소중히 하면서 국민주권의 주술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서 네그리·하트의 ‘탈근대적 공화주의’가 주목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한편 유재건이 기대고 있는 세계체제론의 이론적 관점에서 보아도, 국민주권 개념은 성립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한다.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에 따르면, 일국의 주권은 국가간체제의 효과라고 할 수 있다. 국가간체제의 규정성은 주권국가의 힘에 일정한 제약을 가하고 있으며, 따라서 국민국가의 이데올로기적 원칙인 ‘주권의 총체성’은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12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에 기초한 기존의 반체제운동이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그것을 통해 변혁을 시도한 결과, 국민국가의 틀 안에 갇혀 거꾸로 국가간체제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월러스틴의 비판은 국민주권 개념의 한계를 다시 한번 입증해준다. 더 나아가 근대국가의 형성기에 유럽에서 확립된 다양한 근대 사회과학이 국민국가의 유지와 발전을 지향하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였다는 그의 비판은 민족/국민을 자명한 전제로 설정하는 근대 학문의 패러다임을 전복하자는 제안이기도 하다. 그것은 유럽의 역사를 보편적 잣대로 삼는 유럽중심주의를 극복하자는 함의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더 주목된다.
유재건은 월러스틴의 민족주의 비판이 ‘일종의 파국론에 기대어 국가수준의 사업을 배제하는 전략’이라고 재비판함으로써 ‘통일시대’라는 일국적 관점에서 세계체제를 이해하는 자신의 논리적 모순을 해소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가 인용한 글에서도 드러나듯이, 월러스틴은 ‘배제’라는 표현이 아니라 ‘유용성이 제한되어 있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것은 지역 또는 국가단위를 출발점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운동의 현실을 부정했다기보다는, 인식의 지평이 국민국가 혹은 ‘국가적으로 형성된 의식’에 머물 때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가능성이 사라진다는 우려를 표명한 것이 아닌가 한다.13 운동의 현실을 감안한다 해도 ‘국지적 맥락에서 세계체제의 변화를 유도하는 다양한 계기’는 인식의 지평이 국민국가의 틀을 넘어설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민족주의에 대한 나의 비판에서도 현실로 존재하는 국가를 무시하자고 주장한 바는 없다. 현존하는 국민국가의 존재를 세계사의 현실로 인식한다는 것과 세계에 대한 인식과 실천의 지평이 그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운동의 인식지평이 국민국가의 경계 안에 갇혀 있다는 비판은, 국민국가의 담론이 지닌 현실적 힘에 대한 인식을 전제할 때 오히려 가능한 것이 아닐까?
3.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구별해야 한다는 또하나의 완강한 국민적 상식은 닫힌 민족주의 대 열린 민족주의, 또는 나쁜 민족주의 대 좋은 민족주의라는 규범적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발생론적으로 그것은 충분히 이해된다.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저항 민족주의의 전통, 독립 직후의 참혹한 내전과 50년이 넘는 냉전적 분단상황에서 민족과 민족주의는 한반도의 현실이자 이상이었다. 식민지 시기에 일본의 제국주의 지배가 현실이었다면, 자주적 독립국가는 그 이상이었다. 해방 이후에 분단이 현실이었다면, 통일된 국민국가는 그 이상이었다.20세기 한반도의 이러한 역사적 구도에서는 이상과 현실의 ‘손쉬운 이분법’이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규범적 이해를 유도하는 경향이 강했다. 일본의 제국주의와 분단을 고착화하는 남한의 분단정권이 국가주의〓나쁜 민족주의라면,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는 저항 민족주의와 분단을 거부하는 민중적 민족주의는 좋은 민족주의라는 식이었다.
그러나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이러한 규범적 이해는 민족주의 또는 국민국가가 갖는 ‘모듈(module)적’ 성격을 간과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그것은 자본주의와 국민국가의 형성에서 한발 앞섰기 때문에 중심에 위치할 수 있었던 중심의 국민국가적 지배장치들이 주변부 민족주의의 모델이 된다는 것이다. 주변부의 옥시덴탈리즘이 동·서양의 역할이 전도된 오리엔탈리즘이듯이, 식민지 민족주의의 저항논리는 사실상 제국주의의 지배논리에서 주어와 목적어를 전도시킨 ‘적대적 문화변용’의 산물이다.14 민족해방운동의 이론적 두 축인 민족주의와 맑스주의가 다같이 유럽중심적 담론이라는 인도 써벌턴(Subaltern) 연구자들의 인식론적 반성은 이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 프라카시(Gyan Prakash)의 표현을 빌리면, 민족주의는 오리엔탈리즘의 사고를 역전시켰지만 식민주의가 이식한 이성과 진보의 담론 틀 내에서였으며, 맑스주의는 식민지 착취를 폭로했지만 유럽의 역사적 경험을 보편으로 삼는 역사주의 도식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15 대부분 민족해방운동의 담론이 ‘반유럽중심적 유럽중심주의’라는 월러스틴의 지적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주변부의 저항 민족주의가 손쉽게 국가주의로 전화하는 비밀을 푸는 열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착취개념을 부르주아지/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관계에서 중심부 국가/주변부 국가라는 국가관계로 전화시킨 신식민주의 이론은 국가주의를 손쉽게 정당화했다. 그 결과 민중의 삶의 질을 제고한다는 문제는 곧 국가적 힘의 강화라는 논리에 종속되었고, 좌파들조차 국가가 주도하는 자본축적 과정을 민족해방의 이름으로 지지하고 옹호했다. 신식민주의에 대한 경제적 대안으로 제시되곤 한, 모든 경제활동을 국가가 지도한다는 자급자족 경제체제론 또한 국가주의를 강화하는 기제였다. 민족해방이 근대 세계체제의 서로 다른 지역들(국가들)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는 월러스틴의 지적은, 세계체제론의 시각에서도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구분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개 국민국가가 중심―반주변―주변이라는 국가간체제의 위계질서와 국가간체제의 규정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 집권한 민족해방운동 세력에게 국가의 구조적 집중화 이외의 대안을 찾기란 사실상 어려울 것이다. 내 식대로 표현한다면, 민족이 민중을 전유하고 다시 국가가 민족을 재전유하는 전유의 연쇄고리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이어준다는 것이다.16 북한의 강성대국론에서 잘 나타나듯이, 중심의 힘을 욕망하는 주변부 민족해방운동의 저항은 이미 ‘지배가 내장된 저항’인 것이다.
물론 억압적 국가권력에 맞서 싸우고 지배 헤게모니의 담론적 기제로 작동하는 민족주의의 대안으로서 남한의 진보적 통일운동 또는 이념적 지향으로서의 민중적 민족주의가 해온 역사적 역할을 폄훼할 생각은 없다. 도덕성이나 정치적 선의는 물론이고, 민족과 민중을 양 축으로 ‘반공 규율사회’의 틈새를 벌렸다는 것만으로도 그 역할은 충분히 인정된다. 또 세계사적으로도 민족해방운동의 성공은 ‘제국주의’의 강고한 지배를 ‘제국’의 유연한 지배로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더욱이 노동자·농민이 주축인 민중을 민족주의의 주체로 세움으로써 국민이라는 획일성과 동질성으로 계급적 차이 등을 은폐하는 민족주의 일반의 역기능에서부터 일정하게는 자유로운 측면도 있다. 그러나 민중이 주인되는 통일된 자주 국민국가의 수립이라는 이념적 지향은 그 자체로서 이미 민족적 정체성과 계급적 정체성을 정점으로 하는 정체성의 위계질서를 구축하는 것이었다.‘밥·꽃·양’ 사건 등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그것은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의 변증법적 종합이라는 명분 아래 외국인-여성-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한국인-남성-정규직 노동자의 헤게모니를 정당화하는 잠재적 위험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
페미니즘·소수자·환경문제 등 탈근대론이 제시한 문제를 포함하여 ‘전체성’을 갖춘 사상으로 민족주의를 재구축하자는 윤건차(尹健次)의 제안이나 계급·민족·성·인종 등 다양한 정체성들 사이의 ‘위계적 관계’를 총체적으로 파악하자는 유재건의 주장은 일단 그 지향을 넓히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전체성’과 ‘총체성’에 대한 강조는 민중-민족을 나무뿌리로 삼아 여타의 범주들을 가지로 계통화하려는 헤게모니적 욕망을 드러낸다. 탈민족주의에 겨누어진 ‘근본주의’라는 비판은 실상 분단체제의 표출적 총체성을 고집하는 태도에 어울리는 비판이 아닐까 한다. 분단체제로부터 모든 것이 표출되는 구조를 갖는 표출적 총체성을 상정한 채, 계급·성·인종 등의 문제를 사고한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 분단체제의 효과라는 설명을 벗어나기 어렵다. 일상적 파시즘의 메커니즘을 분단체제에 대한 인식으로까지 확장해보자는 제안은 그러한 심성의 편린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 한다. 물론 그것은 건설적 제안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이미 내면화된 반공주의나 군사주의에 대한 분석을 통해 『당대비평』에서도 제시한 바 있지만, 분단체제의 효과로 환원하기에는 일상적 파시즘의 현실은 더 복합적인 것이다.
현실은 이들 다양한 범주나 정체성을 고립된 형태로 하나씩 드러내서 총체적 위계질서를 구축하려는 관념적 시도를 거부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이들 다양한 범주들이 서로 접목되어 항상 복합적으로 드러나며, 또 같은 범주 안에서도 다양한 충돌과 갈등이 맥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총체적인 위계질서로 묶으려는 시도는,‘대우캐리어’와 ‘밥·꽃·양’ 사태에서 보듯이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정규직 노동자의, 또 여성노동자에 대한 남성노동자의 억압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어질 위험성이 크다. 현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는 총체적 위계질서를 구축하려는 관념적 근본주의를 단념하고, 그 내부의 충돌과 갈등까지 포함해서 이들 다양한 범주가 맥락에 따라 다르게 접합하는 복합적인 현실을 긴장된 시선으로 쫓으라는 것이다.
세계체제론의 관점에서 본다고 해도, 민중적 민족주의의 역사적 한계는 뚜렷하다. 국가적 틀에 갇혀 국가간체제에 포섭된 저항에 그칠 수 있다는 월러스틴의 지적이나, 민족해방운동이 자신을 근대화와 등치시킴으로써 대중동원의 논리로 흘러갔다는 네그리 등의 비판은 민중적 민족주의에도 해당된다. 남한의 경우, 박정희 정권에 가장 비판적이었던 『사상계』의 논지가 그 좋은 예가 아닌가 한다. 그 비판의 논지 역시 산업화를 위한 민족주의적 동원논리에 서 있다는 점에서 권력담론과의 질적 차별성을 찾기는 힘들다.17 부강하고 통일된 국민국가의 수립이 역사적 과제라는 데에는 사실상 좌·우를 막론하고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60년대 후반 이후 비판적 지식인들의 변절도 사상적 전향의 결과라기보다는 민족주의적 근대화론과의 사상적 친화력 혹은 연속성의 맥락에서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날카로운 정치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박정희에 대한 기억을 둘러싼 역사의 내전에서 민중적 민족주의 진영이 겪고 있는 수세적 양상은 그들이 사실상 근대화론에 포박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근대화론의 코드를 공유하는 정치적 반대파가 지닌 역사적 한계가 아닌가 한다.‘민중사’(people’s history)가 민족주의적 서사를 고급정치의 영역에서 일상생활의 영역으로 바꾸어놓음으로써 자신들이 공격했던 바로 그 체제의 일부에 포섭되고 말았다는 영국의 ‘역사작업장’ 좌파 역사가들의 자기반성18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민중의 차원에서도 만들어진 국민으로 호명되어 ‘조국근대화’라는 담론의 주술에 사로잡혀 있는 한, 생존권 확보를 위한 이들의 저항은 일회성으로 불만을 드러내는 ‘표출적’ 시위에 그칠 것이다. 예컨대 노동자계급의 경우,1972년부터 1981년까지 한국의 피고용자 1천명당 노동쟁의로 인한 노동일 손실은 연평균 약 4천일에 불과했다. 그것은 필리핀의 5만 6천일은 물론이고 싱가포르의 8천일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낮은 수치였다. 강력한 노동통제 정책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의 1세대(1960〜1980) 산업노동자들은 초기 산업화 과정에서 투쟁적이고 저항적이었다기보다는 일에 대한 높은 수준의 헌신과 열의를 보여주었다.19‘산업전사’ 혹은 ‘근대화의 기수’로 호명된 남한의 노동자들에게 반공이데올로기와 조국근대화라는 권력담론이 ‘의사-합의’로 내면화된 것이다. 농민 또한 국가가 주도하는 다양한 프로젝트에 능동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권력의 요구에 부합하는 ‘국민’으로 구성되어갔다. 동원에서 시작하여 내면화 과정을 거쳐 자율적인 운동으로 발전해간 새마을운동을 통해 국가와 농민은 후원자―수혜자(patron-client) 관계를 형성했고, 국가는 반대의 대상이 아니라 제공자로 인식되었다.20 민중의 현실은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이 결합된 역사적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라는 민중에 대한 규범적 이해와는 이처럼 거리가 멀다. 민중적 민족주의는 무엇보다도 민족주의에 대한 규범적 이해 아래 근대화의 코드를 공유함으로써, 권력담론에 대한 대항담론으로 발전하는 데 실패했던 것이다.
4. 분단과 통일
현실적으로 민족주의에 대한 규범적 이해가 갖는 가장 큰 문제는, 민족주의의 복합적 현실을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또는 국가권력과 국민주권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재단한다는 점이다. 억압적 분단논리에 입각해 국가주의 동원체제의 이념으로 악용된 박정희의 민족주의와, 분단논리를 허무는 동력으로서의 민중적 민족주의라는 유재건의 현실인식은 그러한 이분법의 결과가 아닌가 한다. 그것이 정치적 선의를 담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복합적 현실을 설명하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이다.‘통일시대’라는 표현이 함축하듯이,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구분에 입각하여 통일이냐 분단이냐는 양자택일적 단순구도로 한반도의 정치현실을 이해하는 논리는 또다른 본질주의일 뿐이다. 남북한의 국가권력에 통일과 분단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 정세와 국면 속에서의 전략적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리영희(李泳禧)가 지적했듯이, 북의 힘이 강한 국면에서는 남이 대화와 통일에 소극적이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북이 소극적인 것이다.
박정희의 민족주의 담론이 억압적 분단논리라는 설정은 이 점에서 피상적인 관찰이 아닌가 한다. 현재 남의 극우/보수세력으로 이어지는 박정희의 기본담론은 북한의 ‘민주기지’ 노선에 대항한 일종의 ‘자유기지’ 노선이라 보는 편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것은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의 세련된 버전이라 할 수 있다. 공산주의〓야만〓반민족이라는 의미연쇄를 통해 민족주의 담론과 결합된 ‘반공 규율사회’를 겨냥한다는 점에서 양자간에 질적인 차이는 없다. 그것은 안으로는 ‘반공 규율사회’의 틀로 대한민국에 충성스러운 ‘국민’을 찍어내고, 밖으로는 북에 대한 흡수통일의 의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현재 남한의 자본이나 극우/보수세력이 계승한 그것은 ‘억압적 분단논리’이면서 동시에 ‘억압적 통일논리’였다. 남의 반공 규율사회에 대응하여 미제국주의〓남조선 괴뢰정권〓매국노라는 등식의 ‘반미 규율사회’가 자리잡았던 북의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동독의 ‘사회주의민족’론에서처럼 ‘조선민족 제일주의’에서의 민족이 북의 주민들에게만 한정된 용법으로 사용될 때, 통일에 대한 북의 강조는 북한 주민을 향하는 대내용일 뿐 남에 대해서는 사실상 닫혀 있는 것이다. 통일과 분단의 선명한 대립은 관념에서만 존재할 뿐, 현실에서는 이처럼 얽혀 있는 것이다.
남·북 권력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남의 자본이나 남북의 국가권력이 주도하는 현재의 남북관계에 민중이 개입할 여지는 별반 없어 보인다. 남북관계의 담론적 현실은 북한의 기아와 인권, 탈북자 문제 등에 대해 남한의 진보/통일운동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반면 극우/보수세력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남한의 진보/통일운동에 대해서는 북한의 권력이 적극적으로 지지를 보내는 구도가 아닌가 한다. 거칠게 말하면, 남의 권력-북의 인민 대 북의 권력-남의 민중이라는 담론적 동맹구도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 답답한 동맹구도는 또 반드시 한반도의 ‘분단체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사로 시야를 돌려보면, 기본적으로 그것은 국제적인 냉전체제가 강요한 현실이다. 그것은 서유럽의 자본/국가권력-동유럽의 노동자계급 대 동유럽의 국가권력-서유럽의 반체제운동이라는 동맹구도를 강요당한 얄따체제의 유럽 현대사가 입증해주는 바이다.
민중이 주체가 되어 자주적이고 통일된 국민국가를 이루자는 민중적 민족주의가 그 주장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남의 권력-북의 인민 대 북의 권력-남의 민중이라는 남북관계의 담론적 동맹구도를 돌파할 수 있을지는 사실상 의문이다.‘북한이 자본주의 세계시장으로 편입되는 것’을 부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남한의 진보세력이 간접적으로나마 북한의 개혁·개방에 관여하고 그 방향에 개입’한다는 발상은 북·남의 민중연대보다는 북의 권력-남의 민중이라는 기존의 동맹구도를 재생산하는 데 그치기 쉽다. 또 민중적 개입의 열의가 지나치다보면, 자칫 남이 주도하는 북의 민주화운동론으로 전락할 위험성도 있다. 민중적 민족주의 인사들의 북한방문기에서 엿보이는, 북한을 순종하는 여성상으로 대상화하고 북을 책임져야겠다는 우월한 주체의식에서도 그러한 위험성은 감지된다.21 그것은 북한을 오염의 주체로 설정하는 보수언론의 담론과는 또다른 맥락에서, 통일의 이름으로 북한을 타자화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하나의 국민국가를 당위로 전제하는 ‘통일’보다는 남북한간의 평화공존체제를 지향하는 ‘탈분단’(혹은 탈냉전)으로 그 담론적/실천적 지향을 바꾸자는 조한혜정(趙韓惠貞)·권혁범(權赫範) 등의 제안이 더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탈분단’으로 조성된 평화공존체제 속에서 북과 남이 각각 민주적 변혁의 길을 걸을 때, 남북관계의 현실에 대한 민중적 개입의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한다.‘분단극복이 아닌 분단체제의 극복’이 문제라면, 통일만이 유일한 해법은 아닌 것이다. 유일한 해법으로서의 통일에 갇혀 있다면, 미래의 복합적 정치공동체에 대한 상상력의 빈곤을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이다. 근대적 사유의 틀 속에 얽매어 있는 국민국가에 대한 대안적 경로들을 해방시킬 때,‘복합적 정치공동체’라는 발상의 창조성과 참신성은 더 심화되고 새로울 수 있다. 그럴 때 그것은 개별 국민국가의 ‘국가이성’을 유럽이라는 지리적 범주로 확장한 데 불과한 ‘유럽 공동체’의 한계를 넘어서, 동아시아의 맥락에서 세계체제의 변혁을 유도하는 ‘비판의 무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 글은 근대의 국민국가나 주권논리의 한계를 드러내고 그것을 비판하는 데에는 일정한 효과를 가지겠지만, 근대적 주권을 대신할 새로운 권력형식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짧은 글이 갖는 한계가 아니라, 내 생각이 짧기 때문이다. 내 자신이 근대의 자식이며, 근대를 넘어선다는 노력은 씨시포스(Sisyphos)의 노동인지도 모르겠다. 현실적으로도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근대 주권형식을 폐지하고 경계선을 가로지르기 위해 차이들의 포섭전략을 작동시키는 상황에서, 탈근대주의적 기획은 20세기의 민족해방운동이 그러했듯이 ‘제국’을 강화하는 기제로 사용될 위험성도 크다. 근대에는 분할과 배제에 근거한 인종주의가 있었다면, 차이와 포섭에 기초한 탈근대적 인종주의도 존재한다. 근대의 패러다임이 가진 한계들을 드러낸다고 해서, 포스트주의의 위험성에 눈을 감을 수는 없다. 개별 주체들이 고유성을 견지하면서 소통적 사회성을 구성해나가는 ‘다중’(multitude), 자본주의의 식민화에 대항한 소통적 사회성, 전지구적 시민권, 탈근대적 공화주의, 자율주의 운동 등의 어휘들이 대안과 관련하여 맴돌지만, 아직까지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그것이 민족주의에 서 있건 맑스주의에 서 있건,‘전진하겠다는 선의’가 복합적인 현실에 대한 이해를 압도하는 상황은 더이상 안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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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지현 『민족주의는 반역이다』(소나무 1999)25면.↩
- 「통일시대의 개혁과 진보」, 『창작과비평』 2002년 여름호 21면.↩
- 8년이 지난 지금의 싯점에서 되돌아보면, 오히려 프랑스혁명을 보편적 모델로 상정한 유럽중심주의라는 비판이 더 적실하지 않은가 한다. 『이념의 속살』(삼인 2001)에 수록된 글들은 운동사의 관점을 견지하면서 이러한 자기비판의 기조 위에서 출발하고 있다.↩
- I. 월러스틴·G. 아리기·T. 홉킨즈 『반체제운동』(송철순·천지현 옮김, 창작과비평사 1994)41,46,156면; A. 네그리·M. 하트 『제국』(윤수종 옮김, 이학사 2001)80〜82면.↩
- 유재건, 앞의 글 25면.↩
- A. 네그리·M. 하트, 앞의 책 151〜52면.↩
- 카를 슈미트 『독재론』(김효전 옮김, 법원사 1996)127〜89면 참조.↩
- 한국사회의 규율화된 국민적 주체의 현주소는 최근 오태양의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대응에서 상징적으로 잘 드러난다.↩
- I. 월러스틴 『유토피스틱스』(백영경 옮김, 창작과비평사 1999)38면.↩
- B. Anderson,Imagined Communities(London 1991)revised ed.,10~12면.↩
- 카를 슈미트 『정치신학 외』(김효전 옮김, 법문사 1988)102면.↩
- 『반체제운동』 73~76면.↩
- 같은 책 110면.↩
- 박환무 「‘제국’ 일본과 ‘민국’ 한국의 역사학적 교차로」, 비판과 연대를 위한 역사포럼 8차 쎄미나 발표논문(2001.5.19).↩
- G.Prakash. “Subaltern Studies as Postcolonial Criticism,”American Historical Review vol.99(Dec.1994)1475면.↩
- 임지현 「한반도 민족주의와 권력담론」, 『이념의 속살』 111~40면.↩
- 홍석률 「1960년대 지성계의 동향」, 정신문화연구원 엮음 『1960년대 사회변화 연구』(백산서당 1999)243~44면.↩
- Raphael Samuel ed.,Patriotism: The Making and Unmaking of British National Identity(London: Routledge 1989)vol.I,xi면.↩
- 최장집 『한국의 노동운동과 국가』(열음사 1988)11면↩
- 「박정희 시대의 국가와 민중」, 『당대비평』 2000년 가을호 54~63면.↩
- 전효관 「매체에 나타난 북한의 이미지구성」, 조한혜정·이우영 엮음 『탈분단 시대를 열며』(삼인 2000)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