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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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 盧蕙京

1958년 부산 출생. 1991년 『현대시사상』으로 등단. 시집 『새였던 것을 기억하는 새』 『뜯어먹기 좋은 빵』이 있음. madraine@chollian.net

 

 

 

캣츠아이 13

미장원 처녀

 

 

내 친구 숙이는 미장원 처녀. 도시의 변두리, 지친 사람들이 밤늦게 돌아와 고단한 몸을 누이는 잠자리 곁에 그녀의 미장원이 있다. 우리가 어릴 적 꿈꾸던 마술거울이 걸려 있진 않지만, 들여다보면 늘 바쁜 아줌마들이 뽀골거리는 파마를 하고 있는 곳. 꽃무늬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서둘러 집으로 가는 거칠고 옹이진 손들 사이로, 그녀의 늙어버린 엄마가 중고 미용실용 의자 위에서 잠들어 있다. 그녀의 사악한 남편이 미용실 바깥에서 서성이고 있다. 그녀의 잔인한 시엄마가 손지갑을 흔들며 그녀를 때린다. 그녀의 굶어죽은 딸이 거울 속에서 잠들어 있다. 그녀는 길게 담배 한모금 내뿜으며 한 손으로 드라이를 한다. 숙이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산 여자. 고통이 그녀의 생을 종이처럼 접어 부피가 두터운 책으로 제본을 했다.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지 않는다. 그녀의 거울 속엔 지하실이 있고, 그 지하실 낡은 찬장 속엔 우리가 만들고 잊어버린 수많은 얼굴들이 있다. 아직도 머리카락이 자라나는 그 아름다운 소녀의 얼굴. 복숭아빛 뺨에 어울리는 둥근 타래머리를 하고 싶어요. 공주처럼 머리를 높이높이 올리고 싶어요. 사내아이처럼 앞머리를 자르고 싶어요. 거울 앞의 작은 소원들을 숙이의 거울은 하나도 남김없이 기억해둔다. 숙이가 낡은 집 먼지를 걷어내듯 거울 속으로 들어와 내 얼굴을 만진다. 불이 오른다. 차가운 그녀의 손이 내 불타오르는 얼굴을 식혀준다. 부드러운 그녀의 손이 내 머리카락 사이로 노래를 흐르게 한다. 그녀의 죽은 딸이 내 무릎 위에서 놀고 있다. 그녀의 손끝 아래서 늙은 여자들의 메두사 같은 머리가 안식을 얻는다. 고생을 모르는 손은 그 뱀들을 만질 수 없다. 오직 그녀만이 뱀들이 노래 부르게 만들 수 있다.

 

숙이는 미장원 처녀다. 오래오래 묵은.

 

✽캣츠아이: 묘안석, 또는 고양이눈이라 불리는 보석. 성분이 다른 물질을 자기 속에 받아들여 빛의 다발로 엮어내기 위해 오래 참은 보석임.

 

 

 

캣츠아이 14

다시 미장원 처녀

 

 

사람들은 쉬쉬하며 그 미장원 앞을 돌아간다

저 집에서는 부드러운 머리가 거칠어지고 고운 피부가 늙어간다네

미장원 처녀의 마음에 할머니가 살기 때문이야

 

그녀는 깊은 우물에서 올라오는 바람처럼

서늘한 손을 가지고 있다네 많은 추억을 간직한 손

 

그녀의 손이 내 머리를 만지면

햇빛이 너무 밝아 길 한복판에서 길을 잃는

캄캄한 대낮이 온다네 낡은 기억이 스며든다네

 

행복한 사람들은 말한다

너무 슬픈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다고

너무 많은 기억도 가지고 싶지 않다고

 

미장원은 한밤중에 문을 연다네

늙은 얼굴과 머리를 어루만지는

지친 여자들의 시간에.

 

 

 

캣츠아이 15

숲과 등불

 

 

새벽,

해뜨는 숲으로 갔네

 

불씨를 댕겨 아침이 오게 하기 위하여

 

돌처럼 굳어버린 말을

마른 나무에 대고 아프게 문지르네

 

온기가 숲의 심장에 전해져

반짝 등불이 켜들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