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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

 

과거와 현재의 살아 있는 대화를 위하여

다시 보는 국립극단 50년대 대표작 「뇌우」와 「인생차압」

 

 

이상란 李相蘭

서강대 국문과 교수 sllee@sogang.ac.kr

 

 

선거열풍이 탄핵정국으로 유난히 거세던 2004년 4월, 벚꽃이 만개한 남산의 국립극장에서 두 장면이 관객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하나는 봉건적이고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숨죽이며 스멀거리던 욕망들이 퍼붓는 뇌우 속에서 폭발하는 장면이다. 이때 ‘달오름극장’ 무대에는 실제 비가 퍼붓는 장면이 연출되어 배우들이 빗속을 뚫고 지나가거나, 물이 흘러내리는 비스듬한 무대바닥으로 걷거나 뛰어다니고 천둥과 빗소리를 거스르며 절규한다.또하나는 극 속의 주변인물인‘용석아범’이 술상을 들고 나가면서 “우리들 늙은것들은 다아 죽어두 좋아, 암 어서 죽어야지. 서방님이나 도련님 같은 분들이 씩씩허게 일해야지, 헛 우리들이야 뭐 관 속에 한발 들여놓은 송장들인 걸, 헛헛……” 하고 중얼대는 장면이다.

이 두 장면은 국립극단에 새로 부임한 예술감독 이윤택(李潤澤)이 국립극단의 정체성과 개방성을 시도하며 내놓은 첫번째 프로그램인 국립극단 1950년대 대표작 차오 위(曹禹,1910~96)의 「뇌우(雷雨)」와 오영진(吳泳鎭,1916~74)의 「인생차압」에서 등장하는 인상적인 장면들이다. 통제하려 해도 결국은 그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고야 마는 인간의 욕망을 심리적 사실주의로 표현하고 있는 「뇌우」의 절정은 삶의 비극성을 치열하게 보여준다. 또한 50여년 전에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며 오영진이 창작한 풍자극 「인생차압」의 한 장면은 오늘날의 상황과 우연히 오버랩되면서 시사성을 획득한다.

중국 화극(話劇)의 비약적 발전을 이끌었던 차오 위가 1934년에 발표한 「뇌우」는 중국에서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리얼리즘극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1950년 국립극단 제2차 정기공연작이었던 「뇌우」는 유치진(柳致眞)이 연출하여 당시 서울 인구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7만5천명이 관람했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아직 영화산업이 붐을 이루기 전이라서 문화적인 욕구가 연극에 집중될 수 있었고, 일본을 통해 들어온 서구의 사실주의극이 대본·연기력·무대기술·연출력에서 무르익어 당대의 관객과 성공적 소통을 이루어 맺은 결실이었다. 서양문학을 전공한 차오 위가 그리스 비극의 파이드라(Phaedra) 모티프를 중국의 봉건적 가부장적 질서와 충돌하게 함으로써 봉건제 붕괴와 자유에 대한 열망을 부각한 「뇌우」는 극적 기법의 완성도뿐 아니라 1930년대 중국사회의 새로운 시대열망을 담고 있어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나라에서는 1950년대에 새 시대와 자유에 대한 열망이 도덕적 담론에 의해 어느정도 길들여지면서 수용된다. 즉 의붓아들에 대한 열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주번의’가 극의 중심에서 밀려나면서 환경의 중압에 의해 희생된 ‘노시평’이 강조되는 인물구도의 설정이 유치진에 의해 연출되어, 도덕적 담론에 예민한 우리 관객들에게 호소력을 갖게 된다. 극적 환상을 극대화하는 프로씨니엄(proscenium) 무대에서 철저히 계산된 음향효과와 실제의 폭우를 연출한 무대기술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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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이윤택은 국립극단의 성공적인 레퍼토리 중 하나인 「뇌우」를 선택해 극단의 원로를 존중하고 유치진의 업적을 긍정하면서, 동시에 극작가의 의도를 최대한 살려낸다. 사실주의극의 완결성과 공연시간의 단축을 위해 지금껏 생략해왔던 원작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이번 공연에서는 그대로 포함해서 삶의 비극성에 대한 심리적·관조적 거리를 유지하려는 것까지 충분히 드러낸다. 휴식시간에 관객에게 따뜻한 국수를 선사하면서 네 시간 반의 공연을 무리없이 진행한 연출과 기획에서 관객은 국립극단의 저력과 푸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대기업가 ‘주복원’의 가족과 프롤레타리아 ‘노귀’의 가족은 사회계층의 대립을 형상화하는 두 개의 공간이다. 주복원은 봉건적 질서와 가부장의 권위를 형상화한 인물로 무대에서도 그 무게가 연기법이나 동선에 반영된다. 그에 반해 노귀는 집안에서도 대접받지 못하는 초라한 가장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 두 계층은 노동관계에 의해 주종으로 맺어져 있을 뿐 아니라, 애정관계로도 얽혀 있다. 현재 연극계에서 나이와 더불어 연기의 연륜이 쌓이는 것을 허락하는 단 하나의 극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국립극단의 장점을 살려 65세의 권성덕이 주복원을 맡아 무대의 무게중심을 담당하고, 노귀 역인 오영수의 희극적 연기로 극적 긴장을 순간순간 완화시킨다. 중견배우인 이혜경과 권복순이 주번의와 노시평으로 분하여, 같은 무게를 가지면서 각각 분방함과 절제미를 형상화한다.‘주평’과 ‘노사봉’ 그리고 ‘주충’은 풋풋한 젊은 단원들에 의해, 질서에 갇힌 지식인의 무력함과 부지불식간 이루어진 근친상간에 의해 희생당하는 순수한 열정으로 형상화된다. 극의 말미에 새로이 부상하는 노동자계층을 대변하는 ‘노대해’가 귀환하는 장면을 첨가함으로써 사회변혁의 가능성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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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번 공연은 1920,30년대 희곡 생산 당시의 기대지평을 재구성하여 나름의 의미를 첨가하는 데 상당한 성과를 이루었다.고전작품의 기대지평 재구성은 공연의 튼튼한 초벌그림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고전이 현재에도 여전히 살아 있으려면 과거와 현재의 역동적 대화가 필요하다. 작품 생산연대로부터 70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뇌우」가 살아 있는 공연이 되려면, 오늘날의 억압적 질서와 그에 대항하는 욕망, 그리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우리의 열망이 은유로 드러나야 할 것이다. 가령 주번의와 노시평의 욕망과 좌절이 현대 한국여성의 몸짓과 고민으로 형상화되고, 주복원과 노귀의 억압방식도 현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노대해는 새로운 계층의 등장을 예감하게 하는 인물이므로 지금 우리사회의 개혁 이미지를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다. 정체성을 파악한 다음에 혁신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작품에서 두 측면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현재의 관객과 심층적이고 생동감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오영진의 희곡 「살아 있는 이중생각하(李重生閣下)」는 1949년 초연부터 종종 「인생차압」이란 제목으로 공연되었다. 일제 때나 해방 후에나 권력에 기생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축재(蓄財)를 하는 ‘이중생’이 급기야는 재산을 지키기 위해 거짓죽음 놀이까지 벌이는 과정을 오영진은 풍자와 해학의 미(美)로 형상화하였다. 강영걸(康英傑)이 연출한 이번 공연에서는 이중생의 한옥집을 재현하면서 댓돌이 있는 대청과 마당이 위아래로 자연스레 이분화되는 고정무대를 활용한다. 그 안에서 인물들은 우리말 고유의 호흡과 결을 살려 대사의 리듬을 만들고 풍속화 속의 인물들처럼 생동감있는 제스처와 연기로 풍자극의 이미지를 구현한다. 주인공 이중생과 같은 인물은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우리 사회의 요소요소에서 흔히 볼 수 있어서 이제는 그리 새로울 것도 없다. 이번 공연에서 신선한 점은 이중생의 사위 ‘송달지’의 형상화와 ‘하식’의 등장이다. 특히 희곡의 대사를 충분히 살려내면서 대사와 대사 사이의 침묵을 어리숙하지만 진실한 지식인의 몸짓으로 메운 송달지의 형상화가 압권이었다. 이중생과 그의 처 그리고 맏딸 ‘하주’가 대청 위에서 자유로운 동선을 지닌 반면, 송달지는 주로 하인들의 동선영역인 마당에서 움직인다. 둘째딸 ‘하연’은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있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송달지의 주변을 맴돌며 그와의 우호적 관계를 보여준다. 극의 말미에 등장하는 이중생의 아들 하식도 송달지의 동선영역에 머물며 그의 입장을 지원한다. 송달지는 이중생의 사위이면서도 하인들의 시중을 거절하고 하인들과 어울려 즐거워한다. 이렇게 하여 송달지를 중심으로 민중인물군이 형성된다. 이문수가 분한 송달지는 우직한 말과 행동으로 극의 후반부로 가면서 더욱 빛을 발한다. 작가의 주제의식을 직접적으로 발화하는 듯한 하식의 장광설은 현대적 감각의 공연에서는 종종 삭제되었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는 그의 대사가 다른 인물과 유연하게 섞이며 진행되어서 교조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새로운 세대의 도래를 긍정하는 용석아범의 흘리는 듯한 언술은 하식이 무대에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도와준다. 원작을 존중하며 공연하려는 이번 「인생차압」의 제작의도에 의해 살아난 부분이 지금 우리사회의 개혁에 대한 바람과 우연히 겹쳐져 현재성을 획득한다.

일본을 통해 들어온 서구의 사실주의극은 ‘정통’ 연극이 아니라 하나의 사조일 뿐이다. 국립극단이 자신의 정체성을 ‘정통 사실주의’라고 믿는 이유는 사실주의극 실험을 시도한 유치진이 국립극단의 시발점에서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뇌우」 「인생차압」과 같은 레퍼토리가 의미있는 것은 ‘정통극’이어서가 아니라 국립극단이 자신의 장점을 살려 관객과 성공적인 소통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국립극단은 스스로를 위해서나 연극계를 위해서라도 관객과의 적극적 소통을 이끌어내고, 다양한 통로를 통해 동숭동이나 다른 지역의 극단에서 연마한 연극인들과의 협업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이윤택이 약속했듯 올해가 “국립극단이 한국 연극계를 향하여 문호를 개방하는 원년”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