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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성명

 

북·일 사이의 참된 화해와 평화를 바라는 긴급성명

 

식민지연구회

 

 

북·일 정상회담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조선인민공화국)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관하여, 조선인민공화국정부는 기본적인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했다. 생존자 5명, 사망자 8명이라는 발표가 어디까지 사실인지 현단계에서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얼토당토않게 개인의 삶이 짓밟힌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조선인민공화국정부 또는 정부에 관계된 기관이 ‘납치’에 관여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국가의 범죄이며 그 책임은 엄중하다. 동시에 우리는 전전과 전쟁기간 중에,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지배하는 상황에서 많은 한국인이 일본에 ‘강제연행’된 사실을 잊을 수 없다. 많은 경우 ‘강제연행’은 ‘납치’와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은 이미 1992, 94년에 일본정부도 인정한 바 있다. 일본인 피해자들에게 남겨진 가족이 있듯이, 한반도의 사람들에게도 남겨진 가족이 있다. 또 일본군의 ‘위안부’가 되었던 과거 때문에 반세기에 걸쳐서 고독의 나날을 보내고 지금 일본정부에 대하여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반세기가 지나도록 이 문제를 방치하고 정식 사죄와 보상을 하지 않았다. 한사람 한사람의 삶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인종, 민족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똑같은 진실일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진실은 얼마나 자주 현실의 힘 앞에서 우롱되어왔는가. 반세기도 지난 일이니까, 또는 전쟁중이었으니까,라고 변명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과거의 아픔은 커지면 커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반도에서는 ‘냉전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반세기도 지난 일이니까, 또는 전쟁 중이었으니까,라는 변명으로 일본정부, 일본인의 범죄적 행위를 간과해버린다면, 조선인민공화국정부에 대해 사죄와 보상을 요구할 수도 없을 것이다. 자기가 속한 국가의 범죄적 행위와 개인에 안겨준 고통은 간과, 묵인하면서 다른 국가의 범죄적 행위만을 일방적으로 지탄하는 ‘이중적 태도’는 결단코 허용할 수 없다.

일본사회의 텔레비전, 신문, 주간지 등 대중매체는 곧잘 이러한 역사적 시야와 자기성찰을 결여한 ‘북조선’ 보도를 반복하여 내보내고 있다. 이러한 대중매체의 감정적인 논조에 선동되어, 조선학교 학생들에게 돌을 던지고 협박전화를 하는 등 조선국적·한국국적·일본국적을 막론한 재일한국인에 대한 폭력적인 행위가 번져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우리는 강한 분노와 심각한 우려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중적 태도’로 활개치는 여론과는 다른 여론을 형성해가야 한다.

일본과 조선인민공화국과의 ‘국교정상화’ 교섭이 재개되고 한반도에서 탈분단운동이 진전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환영한다. 화해와 평화를 향한 길이 열리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역사를 성찰할 때이다. 역사적으로 축적되어온 폭력과 부정의에 대하여 공정한 판단을 요구해야 할 때이다. ‘과거의 극복’은 과거의 망각이나 ‘국익’에 기초한 손익계산으로는 도저히 이끌어낼 수 없다. ‘과거의 극복’은 폭력과 부정의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사람 한사람의 삶의 소중함을 느끼는 상상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최저한의 상상력이며, 그 상상력 없이는 북·일 사이의 진실한 화해와 평화는 이루어질 수 없기에.

2002년 9월 식민지연구회

 

■ 긴급성명에 대하여

「북·일 사이의 참된 화해와 평화를 바라는 긴급성명」은 ‘식민지연구회’라는 일본의 작은 모임에서 작성했다. 그리고 일본과 한국의 인터넷을 통해 3일 동안에 500명 이상의 서명을 받았고 그후에도 71명의 서명이 더해졌다. 이 중 한글로 서명을 보내온 분은 50명이었다. 번역을 맡아 서명취합에 참여한 필자는 타자의 삶을 관찰하고 해석하는 연구자의 직업근성이나 명분의 선명성을 앞세워 대중을 선취하려는 운동에서는 얻지 못할 소박하고 소중한 것을 간직하게 되었다. 원고지로 300매나 되는 서명자들의 글과 그 명단을 옮길 수 없어 안타깝지만, 성명문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참된 화해와 연대의 체온을 함께 나누게 되길 바란다.

북한에서 납치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의 가족들에 대한 동정이 일본의 모든 언론매체에 집중되던 9월 17일, 이 모임의 메일링 리스트에 올려진 화두는 ‘우울’이었다. 동경대지진 때 친지가 살해당한 기억을 지닌 재일교포 3세 신창건씨는 북한의 철저한 사죄와 책임을 촉구함으로써 식민지 지배를 전혀 문제삼지 않는 일본의 우익에 대해서도 도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달 22일 ‘히노마루·키미가요에 반대하는 네트’에 치마저고리를 입고 등교하는 조선학교 소녀의 등을 떠밀거나 그들에게 돌을 던지는 것과 같은 폭력의 실태에 분노하는 이따가끼 류우따 씨의 글이 실렸다. 이틀 뒤 코마고메 타께시 씨가 폭력적인 국민감정을 조장하는 일본언론의 시정을 요구하는 성명서 초안을 연구회 메일링 리스트에 올렸고, 연구회 성원들이 메일로 논의를 거듭하여 27일 성명서를 완성하고 서명운동을 시작하였다. 서명취합은 코마고메 타께시(쿄오또대 교수), 카와 카오루(시가현립대 전임강사), 이따가끼 류우따(토오꾜오대 대학원생) 씨가 직접 맡았다.

이후 다양한 사람들이 국가적 폭력에 맞서며 민족적 증오의 감정을 극복하려는 간절한 목소리를 서명과 함께 보내왔다. 물론 쉽게 화해되지 않는 엇갈림도 있었다. 식민지 지배와 납치 문제는 결코 같은 저울 위에 놓일 수 없는데 성명문의 어투가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겠는가 하는 진지한 비판도 들렸다. 수많은 영혼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저주하는데 일본인 몇명의 죽음을 부풀리는 일본 언론에 분노한다는 한글 메씨지가 있는가 하면, 피해자 가족들의 심정에 대해 너무 냉담한 서명에 찬동할 수 없다는 일본어 메씨지도 있었다. 서명자의 의견이 각 사회의 양심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글 속에서 그 사회에서 갈등하며 추구하는 양심의 결을 읽을 수 있었다. 또한 일본의 ‘새 교과서 만들기 모임’이 비판한 ‘자학사관’이야말로 일본사회의 자기중심주의를 부끄러워하는 일본인의 양심을 키우지 않았는가 생각해보았다. 자민족의 역사에 대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민족의 자긍심’을 내세우는 역사인식이 오히려 자국과 자민족의 폭력에 둔감한 채로 자신의 피해에 비분강개하는 배타적 민족애를 자아내는 것이 아닐까.

코마고메 씨가 일본언론에 공표한 글은 이렇게 끝나고 있었다. “증오를 선동하지 않고, 하나의 비극을 다른 비극과 비교하여 상쇄시키지 않으며, 국가의 틀을 넘어서 ‘고난의 공유’를 구하는 것, 그것은 끝없이 어려운 일이면서도 동시에 결코 ‘꿈’으로 끝내서는 안되는 것임을 느끼고 있다.”

조관자 / 가꾸슈우인(學習院)대학 객원연구원 chokwanja@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