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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임선기 林善起
1968년 인천 출생. 1994년 『작가세계』로 등단. jaihopierre@hanmail.net
부정의 바다
누군가 기르는 붉은 태양이
바다 위를 지나고 있다
가까이 가면 눈이 먼다는
그 태양이다
나무에 푸른 물이 오르면
푸름은 내게도 차올라,
시인이 말한 먼바다를
꿈꾸어도 본다
모든 물방울의 눈에
아니오가 새겨진 바다,
모든 아니오 속의
밤별들의 바다
그 위를 지나는
바람들, 꿈꾸는
흉곽을 가진 구름들,
나는 그 세계를 보기 위해
나무에 오른다
하늘과 하늘에 뜬
넓은 창을 가진
나무에 오른다
밤 눈
계단들마다에
쌓이는
흩어지는
눈송이들
어느 빈터에
앉아
눈 맞는
아이들
돌멩이들
쏟아지며
날리며
그칠 듯
그치지 않을 듯
푸른 소리들
빈터에 앉아
밤의
어둠이 듣는
어느 까페의 독백
멀리서 보면 유리창이 넉넉한
그 까페는
무슨 동물 같아 보인다
자주색 털이 달리고
앞발을 기다랗게 뻗은
지혜로운 동물만 같다
어둠이 가로수마다에 걸리고
또 길에 떨어질 때
그녀는 불을 켜고
손님들을 받는다
손님들이 뜸한 때에는 물끄러미
생각의 끝에서 떠나기도 한다
지구선이 새벽을 향해 달릴 때
까페의 문이 닫힌다
그녀는 비로소 피곤한 몸을
누이며 중얼거린다
옛날에 이곳에 숲이 있었지
아름드리 나무들이 살았지
물은 자유롭게 흘렀고
불빛들은 소중한 것이었는데
나무가 잘려나가고
물은 갇히고
사람들은 이곳에 거대한
도시를 지어
스스로 수인들이 되었네
중얼거리며 까페는
희미한 불빛에 실려
잠 속으로 떠내려간다
지구선의 늙은 맥박 속에
남은 꿈들이
푸르게 풀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