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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미암일기』를 통해본 16세기 생활사와 여성사

정창권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 사계절 2003

 

 

이종묵 李鍾默

서울대 국문과 교수. mook1446@snu.ac.kr

 

 

 

유희춘(柳希春, 1513〜77)이 쓴 『미암일기(眉巖日記)』는 재미가 없다. 비밀을 엿보는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요, 가슴을 움직이는 뭉클함이 있는 것도 아니다. 『미암일기』는 유희춘이라는 사람이 밖에서는 관료와 학자로, 안에서는 남편과 아버지로 살아가면서 겪은 시시콜콜한 것들을 비망기처럼 짤막하게 기록해놓은 무미건조한 일기다. 그럼에도 『미암일기』는 가장 중요한 16세기 미시사 연구 자료의 하나로 평가된다. 16세기 사회사·경제사·풍속사·여성사·서지학·농업사·의학사 등 다양한 분야를 이해하는 데 이 책의 가치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원문이 어려운 한자로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어지러운 초서(草書)로 되어 있어 학자들조차 접근하기 어렵다. 당연히 일반인들이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다. 담양 향토문화연구회에서 현대어로 번역한 책자를 내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여전히 어렵고 딱딱하다.

정창권(鄭昌權) 박사가 『미암일기』를 풀어쓴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는 재미있다. 이 책은 『미암일기』를 해체하여 그 내용을 주제별로 재구성했다. 관직생활·살림살이·나들이·재산증식·부부갈등·노후생활 등 크게 여섯 주제로 나누고, 다시 29개의 작은 테마별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이 책의 강점은 『미암일기』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당대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다른 일기나 고문서 등 옛 문헌자료, 그리고 이에 대한 최근의 연구성과를 충실하게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내용과 직접 관련되는 대목은 『미암일기』의 기록을 직접 인용하여 근거를 밝히고 있다.

그중 여덟번째 이야기의 하나인 ‘자기 조상의 제사는 자기가 지내야’를 보기로 하자. 먼저 ‘제사의식’이라는 제목 아래 16세기의 제사풍속을 적었다. 그 내용을 줄이면 이렇다. 제사는 기제(忌祭), 시제(時祭), 묘제(墓祭), 다례(茶禮)가 있다. 유희춘은 생일날의 다례는 지내지 않았다. 명절의 다례는 형편에 따라 지내지 않을 때도 있었다. 시제는 조부모와 부모 2대만 지내다가 벼슬이 2품에 오른 후에 증조까지 3대를 지냈다. 기제는 부모만 모셨다. 외조부모의 묘제도 지냈는데 외가 사람들과 돌아가면서 지냈다. 처부모의 기제도 지냈는데 불교식으로 지낼 때도 있었다. 제사를 지내기 전날에는 손님을 접대하지 않고 제삿날에는 출근을 하지 않았다. 개가 새끼를 낳으면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홀로벼슬이러한 내용은 『미암일기』와 학계에서 어느정도 확인된 역사적 사실에 바탕한 것이다. 이어 ‘친정어머니 제삿날’이라는 제목으로, 1568년 10월 14일 송덕봉(宋德峯)의 친정어머니 제삿날 풍속을 ‘재구’하였다. 여기서 ‘재구’라 한 것은 『미암일기』 해당 대목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되, 역사소설과 유사한 구성법을 취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체재가 이 책이 쉽게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한 이유 중 하나다. 물론 역사소설의 한 대목처럼 재구한 것이 역사적 사실에 어긋나면 역사를 호도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간 학계에서 논의된 것에 비추어 결정적인 잘못이 있지는 않다. 이어 ‘제사 음식과 상차림’을 역시 설명체와 소설체를 겸하여 기술하였다.

이 책에 실린 내용 중에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조선시대의 모습과는 다른 것이 많다. 이미 역사학계에서는 통설이 된 것이지만, 조선 후기 종법제(宗法制)가 일반화되기 전에는 장남만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차남이나 딸들도 돌아가면서 제사를 지냈다. 또 부부가 각방을 쓰지 않고 안방에서 함께 기거한다거나, 노비를 포함한 부인쪽의 재산은 철저하게 부인이 관리했다. 이러한 기대와 다른 낯선 풍속도를 제시하고 있는 것도 이 책이 독자의 눈길을 끄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이와 같은 장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내용은 쓰지 않았는가, 혹은 왜 이런 내용은 좀더 자세하게 쓰지 않았는가 등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유희춘의 경력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문제인 서적의 출판과 관련한 당시의 풍속도를 제시하지 못했다든가, 혹은 16세기에 정착되는 가묘(家廟) 문제를 깊이있게 다루지 못했다든가 하는 점에는 아쉬움이 있다. 또한 이 시기 여성생활사에서 『미암일기』보다 더욱 주목할 만한 『묵재일기(默齋日記)』를 참조하지 못한 것도 큰 아쉬움이다. 부부의 삶과 관련한 풍속도를 좀더 선명하게 그려내기 위해서는 『묵재일기』가 반드시 수용되어야 했다.

여성사와 생활사를 재구하고자 한 이 책에서 16세기 양반가를 보는 필자의 시각은 지나치게 우호적이다.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여 군사를 자신의 개인적인 역사(役事)에 동원한다든가 한 일을 두고, 당시 사회의 일반적인 일로 덮어버렸다. 좀더 양심적인 지식인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음은 역사에서 증명이 된다. 당시의 양반들로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는 것 때문에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자칫 옛글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옛것은 무조건 아름답고 그에 따라 부분적인 도덕적 무감각도 아름다운 것으로 몰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상업적인 목적에서 출판되었다. 상업적 출판은 지나치게 도판을 많이 집어넣어 독자로 하여금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 한 특징이다. 도판은 본문의 이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독자의 눈길을 엉뚱한 쪽으로 유도해서는 안된다. 이 책에서 활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도판이 16세기 생활사와는 별 관련이 없다는 점에서 작은 허물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평범한 독자들로 하여금 16세기를 이해하게 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이 책의 저자 정창권 박사는 한국 고전소설을 전공했으며, 여성을 비롯한 주변부 인물들의 문학과 생활사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고전소설을 전공했기에 고전소설에서 터득한 서사기법을 활용하여, 딱딱한 일기를 풀어씀으로써 유희춘과 그 아내 송덕봉, 그리고 그들이 살아간 16세기의 모습이 독자들에게 생동감있게 전달될 수 있었다.

이 책은 김탁환 교수의 『나, 황진이』(푸른역사 2002)와 나란히 읽을 필요가 있다. 김탁환 교수 역시 한국 고전소설을 전공했는데, 황진이를 소설로 쓰면서 황진이와 긴밀한 관련이 없는 수많은 한시 자료들을 삽입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황진이의 정신세계를 읽을 수 있게 했다. 김교수가 한시를 이용하여 허구를 극대화한 반면 정창권 박사는 허구적인 문체를 구사하여 역사적 사실이 독자들에게 쉽게 전달될 수 있도록 했다. 신병주 박사와 노대환 박사가 함께 쓴 『고전소설 속 역사여행』(돌베개 2002)은 또다른 ‘소설과 역사의 만남’이다. 이 책은 한국의 대표적인 고전소설 내용을 역사학계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해석해놓았다. 문학과 역사가 만나는 이 세 종의 책을 읽을 때 21세기 문학과 역사의 새로운 방향이 떠오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