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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학문의 주체성과 오늘의 대학

 

‘사범대 문제’의 대안은 무엇인가

 

 

곽차섭 郭次燮

부산대 사학과 교수. 저서로 『마키아벨리즘과 근대국가의 이념』 『조선 청년 안토니오 코레아, 루벤스를 만나다』, 편저로는 『미시사란 무엇인가』 『마키아벨리와 에로스』 등이 있음. cskwak@pusan.ac.kr

 

 

1

 

지금 ‘사범대 문제’를 거론한다는 것은 마치 잠자는 호랑이 코털을 뽑는 격일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내부자’도 아니요, 교육전문가도 아닌 필자와 같은 사람의 말이 사범대 교수와 학생, 혹은 동문의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사실 조심스럽다. 하지만 교육계 바깥에서 보면 교육을 업으로 삼고 있는 필자 역시 내부자의 한 사람일 뿐이다. 만일 ‘사범대 문제’(편의상 사범대의 존재와 정체성을 둘러싼 다양한 이슈의 집합을 이렇게 부르기로 하자)라고 명명할 수 있는 이 복합적인 난점을 풀어내려면 ‘내부자’가 곧 ‘국외자’가 되는 길밖에는 없다. 좁게는 사범대 구성원들, 넓게는 우리 교육계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관련 담론들이 얼마나 폐쇄적이고 답답한지 내부자 스스로가 자각하지 못한다면, 문제해결을 위한 적절한 대안이 나오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사범대 문제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혹자는 즉시 이른바 사범대 무용론 내지는 폐지론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단순히 사범대의 존재이유나 존속여부를 묻는 것에 머물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전문성을 갖춘 수준높은 교사의 양성과 예측 가능한 수급정책이 성취될 수 있는가의 문제이고, 인문·자연계 기초학문의 발전과 맞물려 있는 문제이다. 게다가 그것은 일제시대의 유산인 국가주의적 교육을 어떻게 하면 21세기 사회에 맞게 좀더 자유로운 교육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숙고하게 만드는 문제이다. 따라서 사범대 문제의 해답은 결코 사범대의 시각에서만 찾으려 해서는 안된다. 혹은 사범대와 제로썸게임을 벌이고 있는 대학교 교직과정의 입장에서 찾으려 해서도 안된다. 집단이기주의로 비칠 수 있는 좁은 시각을 전향적으로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사범대 문제를 둘러싼 사실과 담론이라는 두 측면 모두를 염두에 두면서 이 글을 써나가고자 한다. 즉 한편으로는 그동안 이 문제를 다룬 학계의 논의들과 관련 사실들을 면밀히 살펴 이에 관한 핵심논점을 파악하되, 동시에 학계의 대안 제시에 사범대 내부자로서의 어떤 편향성이 담겨 있지는 않은지 그 담론 분석에도 주의를 기울이겠다는 것이다. 이 두 측면을 모두 감안하면서 기초학문 및 지방대 발전이라는 새로운 문제의식과 연결시킬 때, 좀더 나은 대안이 도출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필자의 희망이다.

 

 

2

 

현실적으로 사범대 문제가 돌출하게 된 가장 최근의 사건은 다 알다시피 올해 3월 25일자로 헌법재판소가 내린 사범대 가산점 위헌판결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중등교원 임용고사에서 지역 소재 사범계 대학 출신과 복수전공 및 부전공 교사자격증 소지자에게 일정한 가산점을 부여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가산점과 임용고사에 관한 법률이 미비해서 헌법에 규정된 평등권과 공직임명의 기회를 보장하는 공무담임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을 판결의 이유로 제시하였다.1

이 판결은 교육계 전반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사범대 교수와 학생들은 사범대의 설립목적과 존재의의 등 특수성을 간과한 잘못된 결정이라고 크게 반발하였다. 가산점 제도는 우수교원 확보를 위한 유인책이기 때문에 이를 폐지하면 교사의 질이 저하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사범계와 비사범계의 차이를 없애서 사범대의 존립 자체가 의미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그동안 가산점을 부여받지 못했던 일반대 교직과정 이수자들은 가산점 폐지를 환영하고 나서 교육계의 반응은 각자의 이익관계에 따라 양분되는 양상을 보였다. 헌재의 판결은 일단 대전 지역에 한정된 것이었고 아울러 관련 법률 미비를 근거로 들고는 있으나, 평등권 침해를 주요 이유로 든 점으로 보아 이는 다른 지역에도 보편적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그동안 많은 논란 속에서도 가산점을 근간으로 유지되어온 사범대 중심의 교사임용제도는 어떤 식으로든 큰 변화를 겪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놓이게 된 셈이다.

돌이켜보면 사범대의 존립의미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른바 정체성 위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1990년 10월 8일, 이미 헌법재판소는 국공립 사범대생을 국공립 중등교사로 우선 임용하도록 규정한 교육공무원법이 평등권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므로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교사자격자 과잉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교육부는 1989년 ‘교원양성·임용제도 개선을 위한 종합대책안’을 발표했고, 이 속에는 1993년도 말부터 국공립·사립, 사범계·비사범계의 구별 없이 모두 교사채용시험을 치르게 하는 임용고사제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위헌판결로 첫 임용고사는 예정보다 약 3년을 앞당겨 1991년 1월 20일에 실시되었다.2 이로써 1963년 국공립 사범대 졸업자의 우선 임용을 보장한 이래 약 30년 가까이 유지되어온 국공립 교원임용제도의 기본원칙이 바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범대의 정체성 위기는 이러한 변화에 대한 충분한 숙고 없이 가산점이라는 미봉책을 통해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교육부는 이러한 변화의 근본적 의미를 되묻고 새롭고도 실질적인 미래지향적 대안을 내놓기보다는 지역·사범대 가산점이라는 자기모순적인 방안을 내놓았던 것이다. 신문보도에 의하면 1991년 11월 24일에 실시될 예정이던 1992학년도 임용 신규교사 채용시험의 경우,“교직의 전문성을 높이고 지역적 균형발전을 꾀하기 위해” 해당지역 대학 및 사범대 출신자에게 필기시험 성적에서 5%의 가산점을 주기로 한 것이다.3 사범계·비사범계 구별 없이 임용고사를 치르도록 제도화한 교육부가 다시 사범대에 가산점을 부여했다는 것은 정책결정이 얼마나 조령모개(朝令暮改)식인가를 잘 보여준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1990년의 위헌판결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보면 올해의 가산점 위헌판결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두 판결 모두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평등권이라는 헌법상의 권리를 재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4 결국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장래의 관련제도 개혁이 평등권에 위배되어서는 안된다는, 일종의 경계선을 명확히 그은 셈이다.

해방 이후 사범대학, 특히 국공립 사범대학은 대표적인 중등교원 양성기관으로서 확고한 위치를 점해왔다.5 그것은 일제시대의 사범학교를 전신으로, 지금까지 약간의 굴곡은 있었지만 꾸준히 그 수를 증가시켜왔으며, 중등교원 양성의 목적성과 전문성을 지닌 기관이라는 그 특유의 분위기로 정체성을 다져왔다. 일반대 교직과정을 포함한 기타 기관들의 이수자 수는 사범대학 졸업생 수를 크게 상회하지만, 결코 사범대학에 비교할 만한 응집력과 구심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족한 교사의 수를 보충한다는 임시방편으로 활용되어왔을 뿐이다. 하지만 1980년대 초에 이르러 지난 40년간의 무분별한 수급정책으로 인해 중등교사의 공급과잉이라는 초유의 상황에 놓이고, 그 결과 사범대 정원이 축소되면서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던 사범대의 위치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니 적어도 사범대 내부에서는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사범대의 존립을 위해서는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말이 사범대 내부에서 나오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쯤이 아닌가 싶다.6 이는 결국 1990년 국공립 사범대 졸업생을 국공립 중등교사로 우선 임용해온 것이 위헌판결을 받은 이후, 사범대 정체성을 둘러싼 ‘위기의 담론’이 사범대 내부에서 급증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3

 

사범대 문제에 대한 논의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은 그것이 지극히 ‘내부담론적’이라는 사실이다. 즉 문제 자체는 사범대만의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학술논문이나 연구서, 혹은 보고서를 쓴 필자들은 거의가 사범대 계열 교수이거나 교육부 관련기관 연구원들일 뿐 아니라, 논지를 전개하는 관점 역시 사범대의 입장을 반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7 비사범계 대학의 교수들이 또다른 관점에서 이 문제에 대해 본격적인 주장을 펼친 글은 찾기 힘들다. 지금까지 사범대 문제가 제대로 문제화되지 않은 데는 바로 이러한 담론의 편향성 내지는 일방성이 결코 작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본다. 내부의 문제가 내부자들의 토론과 합의로만 해결되기를 바라기란 어려운 일이다. 국외자의 시각이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다.

최근 10여년간에 걸친 사범대 ‘내부담론’의 양상을 잘 살펴보면, 여기에는 한두 가지 특징적인 방향성이 나타난다. 그들은 대체로 현재의 중등교원 양성정책이 난맥상을 보이는 이유로서 교육부의 중등교원 수급정책의 실패와 사범대의 전문성 부족을 꼽는다.하지만 앞의 요인이 주로 정부가 중등교원의 양성이라는 사범대 본래의 목적성을 망각하고 아무런 차후대책 없이 여타 교원양성기관을 신설하거나 증설해온 데 대한 비판의 측면에서 거론되고 있는 반면, 뒤의 요인은 국외자들이 사범대의 존재의의를 되묻는 싯점에서 사범대 자체의 전문성을 확보하여 이러한 정체성 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내부적 자성 혹은 대책의 일환으로 언급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면서도 그 해결책은 한결같이 현 사범대 체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요컨대 사범대의 위상이 흔들리는 것은 근본적으로 중등교사 양성이라는 사범대 원래의 취지를 간과하고 무분별하게 여타 양성기관을 신설한 교육부에 그 전적인 책임이 있지만, 사범대도 내부적으로 전문성을 높여서 폐지론이나 무용론과 같은 정체성에 대한 도전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범대의 ‘전문성’이란 어떤 것인가? 간단히 말하자면 그것은 교과교육론의 강화를 뜻한다. 사범대의 교육과정은 대략 전공·교양·교직으로 나뉜다. 전공이란 예컨대 역사학, 지리학, 불어불문학 등과 같은 학문분과를 가리킨다. 교양은 다른 단과대 학생들이 배우는 것과 같다. 따라서 사범계 학생의 전공과 교양은 사실 비사범계 학생들이 배우는 것과 별로 다를 게 없다. 실제로 많은 대학교의 교과과정을 조사해보면, 같은 전공의 비사범계 및 사범대 교과목이 거의 대동소이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교직인데(물론 일반대 교직과정 학생들도 약간의 과목 차이는 있지만 교직을 이수한다), 이것도 과목 대부분이 일반 교육학 이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범대 전문성의 요체라 할 수 있는 교과교직과목은 대개 ‘~지도법’과 ‘~교재연구’란 이름의 2학점짜리 두 과목뿐이다. 이론과 현장을 연결하는 교생실습기간도 겨우 한달이며, 그것도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진단은 필자가 아니라 내부 담론자들 스스로가 내린 것이다.

문제는 사범대 전문성의 요체인 교과교육론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이다. 역사를 예로 들어보자. 현재의 교과서와 입시체제 안에서 역사의 새로운 시각을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란 매우 어렵다. 이는 또한 역사인식론 문제와도 연결된다. 학생들에게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에서 민족주의를 얘기하는 것은 적절한 것인가 아닌가. 현재의 고구려사 논쟁과 같이 여러 나라가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경우, 그것을 자국사적 시각에서 가르쳐야 하는가, 혹은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가르쳐야 하는가, 아니면 교사는 문제와 다양한 관점만을 제기하고 결론은 학생들에게 맡겨야 하는가. 이러한 의문들은 역사인식론과 역사교수법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교사 자신의 역사관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교과교육론이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어떤 고정된 지식의 제공보다는 문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방식간의 관계와 균형에 관한 문제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전공과목과 일반교육학 이론을 적당히 버무려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정답이 없다. 그리고 시간을 요한다. 하지만 현재의 사범대학 체제, 즉 종합대학교의 한 단과대학 체제로는 졸업학점을 대폭 늘리기도, 관련 교수진을 새로이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문제는 제기되었으되 해결은 난망한 셈이다.

사범대 내부담론이 내놓은 최근의 해결책 중 하나가 이른바 6년제(또는 5년제를 말하는 경우도 있다) 사범대 안이다. 여기에는 사범대 학부를 6년제로 바꾸는 방안과 일반학부를 2년간 이수하고 4년 과정의 교육전문대학원을 거치게 하는 방안이 있다. 사범대학 유지를 전제로 하는 6년제 모형이나 2+4 모형의 결정적 취약점은 무엇보다도 교사 수급현황에 빨리 대처할 수 없다는 데 있다.8 교사 수요 예측에 의해 교사를 증감하려고 해도, 위 두 모형의 경우 입학생 정원의 증감이 졸업생 증감으로 나타나려면 각각 4~6년 이상이 걸린다. 현재의 상태에서도 수급조절이 안되는데, 이를 6년제로 바꾼다면 문제는 더 어렵게 될 것이 뻔하다. 어떤 방안도 교사 수급조절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또다시 실패할 가능성이 많다. 역사가 이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사범대학이 창설된 지 이미 50년이 지났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사회의 여러 측면에서 사범대학이 만들어진 때와는 너무도 많이 변한 것이다. 몸이 자라면 옷도 새 옷으로 바꾸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정이 이러한데도 사범대 내부담론에서 내놓는 해결책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현 사범대의 위상강화로 귀착되고 만다. 문제점을 예리하게 지적해놓고도(너무나 빤한 것이므로) 대안제시에 가면 눈을 감는다. 필자는 이 글을 쓰면서 약 40여편의 관련 논문과 책을 읽었다. 가장 놀라운 점은 그 것들이 기본적으로 매우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각각 논의의 주제와 방향은 달라도 거의 모두가 사범대의 내부자적 입장에서 씌어졌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을 정도로 결론이 대동소이하다는 것이다. 대개 원론적 측면에서 사범대 체질강화를 촉구하거나, 교육대학과의 통합에 관심을 두거나, 몇개의 개혁방안 중에서 현재의 사범대 골격을 유지하는 쪽을 지지하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뚜렷한 지향점도 없이 여러 방안들의 장단점을 열거하거나, 모든 방안이 나름의 장점이 있으므로 장기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식의 논의로 일관하고 있다. 강을 건널 현실적인 방법을 찾기보다는 눈을 감고 그저 한 발을 어정쩡하게 물속에 담그고만 있는 듯한 답답함이 느껴졌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그렇다면 현재의 싯점에서 강을 건널 수 있는 대안은 어떤 것일까.

 

 

4

 

사범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앞서 지적된 교사수급의 원활성과 교사의 전문성 강화는 물론, 기초학문과의 연계성까지도 충분히 감안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뒤의 문제는 지금까지 사범대 내부담론에서 전혀 지적되지 않았던 것들로서, 현재의 사범대 체제를 폐지하고 교육전문대학원으로 가야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사범계 학생의 전공과목이나 사범대학 교수의 연구분야가 비사범계 학생이나 교수의 경우와 거의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사범대학이 취업에 유리한 조건을 전유해왔기 때문에 기초학문 분야의 우수 학생이 그쪽으로 분산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 의학이나 법학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보여주듯이, 사범대학이라는 학부가 교직을 주도하는 것은 이미 낡은 제도가 아닌가 생각한다.또한 일제시대의 사범학교를 전신으로 하는 사범대학의 역사성으로 인한 폐쇄적·국가주의적 교육의 유습 역시 인정하기 쉽지 않지만 거론해야 할 문제 중 하나이다. 학교 내의 지나친 위계성과 시대착오적인 관행들이 과연 ‘사도(師道)’라는 말로 납득될 수 있는지 스스로 진지하게 되물어야 할 때다.

이 모든 점을 고려하여 필자는 여기서 4+2 모형의 교육전문대학원을 제안한다. 이 모형은 간단히 말해서 지금까지 다양화의 이름 아래 사실상 난립상태에 있었던 유치원·초중등 교원양성의 통로를 일원화하여, 대학교 일반학부 4년 과정을 졸업한 학생들이 교육전문대학원 2년 과정을 거쳐 교사로 임용되는 제도이다.9 이렇게 되면 현 체제하의 사범대, 교직과정, 교육대학,2년제 유치원교사 양성기관 등이 폐지된다.(물론 교육전문대학원 졸업생이 현 제도 이수자들을 완전히 대체하기까지 상당기간 동안은 현 체제와 병존하게 될 것이다.) 또한 2001년 7월 26일 확정 발표된 교육부의 ‘교직발전종합방안’ 중 현직교사 대상의 교육학박사 제도 역시 폐지된다. 만일 교사가 전공분야를 더 심화하고 싶다면 기존의 박사학위과정을 이수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육전문대학원은 독립된 새로운 기관으로 설립될 필요가 있다. 기존의 사범대학을 변형시킨다면 어떤 식으로든 ‘구제도’의 영향을 받을 것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 방안의 구체적인 부분은 이후 더 논의를 심화시켜야겠지만, 그 대략적인 윤곽을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대학 학부에서 어떤 분야를 전공했거나 복수전공한 학생 중 일정 성적 이상을 받은 경우를 대상으로 교육전문대학원의 해당 교과 응시자격을 준다. 이는 물론 현 교육부가 사범대 학생들에게 권장하고 있는 복수전공제와는 기본의도가 다르고 가산점 같은 것도 없다. 복수전공제는 단지 학부수학 중 원래의 전공이 아닌 다른 전공에 관심을 가지게 된 학생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기 위한 취지에서 나온 것일 뿐이다. 유치원교사의 경우 4년제 대학교에 해당 학과가 없거나 부족할 수 있으므로 이 부분은 정비할 필요가 있다. 교육전문대학원 합격자 수는 해당 교과별 교사수요를 예측하여 1~2년 단위로 조정한다.

교육전문대학원에 입학한 학생들에게는 각자의 희망 분야에 따라 유치원교육과정, 초등교육과정, 중등교육과정(이는 일반과 고급으로 다시 나눌 수 있다), 특수교육과정 등으로 구분하여 그에 적절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각 프로그램은 물론 독립성을 가지지만, 동시에 유치원에서 초중등으로 이어지는 교육상의 연계성도 고려한다. 교과과정은 학부에서 배운 교과전공과 일반교양을 기초로 해서 교과교육적 측면에 촛점을 맞춘다. 또한 이론보다는 다양한 형식의 현장실습을 6개월 내지 1년으로 대폭 강화한다. 더불어 현직교원 연수프로그램과도 연계해서 예비교사와 현직교사 간의 대화를 유도한다. 교과내용과 교수방식에 대해서는 국가표준을 정하여 질을 유지하도록 하되, 획일적이고 경직되지 않은 방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

교육전문대학원을 졸업하면 1급 정교사 자격증과 교육학 석사학위(기존의 교육학 석사와는 다른)를 수여한다. 졸업을 위해서는 엄격한 자격고사를 거치도록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졸업자의 임용보장 여부인데, 일단 수요예측에 따라 정원을 조정했으므로 큰 오차는 없다고 본다면 대학원 성적 등 정해진 기준에 따라 차례로 임용순서를 배정받게 될 것이다.가능한 한 최대한 국비를 지원하여 대학원 학비를 경감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전문대학원은 각 지역당 적절한 숫자로 설치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어려운 과제 중 하나인데, 각 지역 교육전문대학원 졸업자를 그 지역 교사로 임용시킬 것인지, 혹은 전국적 차원에서 임용시킬 것인지는 숙고할 과제이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점은 졸업자 거의 대부분이 전국 어디든 가까운 시일 내에 임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임용이 어느정도 보장되지 않으면 대학원 2년 동안 드는 사회적 비용을 감수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이 문제는 곧 교사 수요예측을 얼마나 정확히 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러한 교육전문대학원 체제가 가진 장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과연 앞서 언급한 현 교사양성체제의 숱한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문제별로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교사의 전문성 확보가 현재보다 훨씬 더 용이하게 된다. 학부에서 전공과 교양을 배우고 진학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2년 동안 교과교육과 현장실습에 촛점을 두어 교육하기 때문에, 교사로서의 전문성이 훨씬 더 증대될 것이다. 사범대 6년제안처럼 현재의 사범대 문제를 그대로 방치한 채 2년을 더하는 것은 전문성 신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기득권 고수의 인상을 줄 우려가 있다.

둘째, 사실상 제도의 성패를 좌우하는 교사 수급조절에 훨씬 더 유리하다. 사범대학이나 교직과정의 경우, 모두 종합대학교의 단과대학 체제 내에 있기 때문에 수요예측이 정원에 반영된다고 해도 그것이 졸업생으로 현실화되기까지에는 적어도 4년이 걸린다. 최근에는 학생들이 학부과정에서 1년 정도 휴학하는 게 보통이고, 남학생의 경우는 군복무 문제도 있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릴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2년제 교육전문대학원 제도를 도입하면 이런 문제점 중 상당수가 해소될 수 있다. 또한 시대변화에 맞추어 제도를 적절히 변화시키기도 쉽다.

셋째, 교사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도 상당히 기여할 것으로 본다. 사범대학이 중등교원 양성기관으로 처음 설립된 해방 직후와 현재는 국민들의 교육수준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1970년대까지는 그래도 대학생은 소수집단이었다. 하지만 졸업정원제로 대학생 수가 한꺼번에 2배 이상 늘어난 1981년 이후에 대학 4년 과정이 지닌 ‘사회적 지위’는 하락하기 시작하였다. 지금에 와서 4년제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어렵게 교사직을 얻어도 그것이 어떤 새로운 지위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실질적으로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여하여 그러한 지위를 획득해야만 한다. 교사임용을 보장하는 수준높은 교사양성제도만이 그것을 성취하게 해줄 수 있다.

넷째, 교사직에 대한 목적의식과 적성을 확인하는 데서도 교육전문대학원이 현행의 사범대보다 더 나은 점이 있다.사범대 체제는 학생들이 이미 교사직을 목표로 하고 들어오기 때문에 교직과정이나 기타 교사양성기관의 학생에 비해 교사로서의 자질을 키우는 데 더 유리하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사범대 학생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10 3,4학년 학생 중 교직임용고사를 준비하지 않는 경우도 35.2%나 되었는데, 그 이유로 가장 많은 것이 기타(41.2%)였고, 높은 경쟁률(36.9%), 교직이 적성에 맞지 않다(22.0%)순으로 나타났다. 교직 외의 진로를 준비하는 이유도 교직 진출가능성이 적다(14.5%)보다는 자아실현(43.9%)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러한 결과는 사범대 학생들이 교직을 목표로 입학하기는 했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회의적으로 변하며 그 이유는 반드시 임용 가능성이 적기 때문만이 아니라 교직이 적성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교사로서의 적성과 목적의식은 고등학교보다는 대학교를 졸업하는 싯점에서 더 명확해질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인문·자연계 기초학문 분야의 강화에도 큰 도움이 된다. 만일 교육전문대학원이 도입되고 사범대학과 교육대학이 폐지된다면 장래 교사를 희망하는 우수한 학생들도 일단은 학부의 관련학과에 진학하게 될 것이므로 기초학문 강화에 일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인문학의 위기는 단지 이공계나 의학, 법학 분야와의 경쟁에서만 야기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인문학 분야의 가장 중요한 직업 중 하나인 교사직을 사범대학과 교육대학이 사실상 전유해온 데도 그 중요한 이유가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그 외에도 각 지역에 임용이 보장되는 교원양성기관이 세워진다면 지방자치와 지방대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수 있고, 현재 학교에 따라 사범계와 교직과정 학생의 수준이 고르지 못한 단점도 보완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사범대학뿐 아니라 교육대학교와 유치원교사 및 특수교사 교육과정까지를 일관체제 속에 통합함으로써 교육 전반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다. 현재 교육대학교는 여타 종합대학교와는 분리되어 독립적인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초등과 중등 교육의 연계성이라는 측면에서 취약한 점이 있다. 학생들 역시 일반대학교의 좀더 다양하고 아카데믹한 분위기를 공유하는 편이 학문이나 인격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유치원이나 특수교육 분야도 이수 연수나 과목을 초중등교육과 통합함으로써 수준면에서나 교육의 연계성에서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요컨대 사범대 문제는 오직 사범대 그 자체를 (물론 그에 따라 파행적으로 설치되어온 교직과정 등 다른 양성기관도 포함해서) 혁파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 사범대학은 50년 전에 설립된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나는 가운데 이제는 더이상 사회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여기서 연유한 폐단은 완전히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지 않고는 도저히 해결될 수 없다고 본다. 사범대 체질을 강화한다는 식의 미봉책으로 풀릴 문제는 아니다. 모든 제도가 장단점이 있기는 하겠지만, 현싯점에서 볼 때 사범대 체제를 강화하는 것은 문제점을 해결하기보다는 단지 기득권 유지라는 비판을 받을 여지가 많다. 하지만 필자의 이러한 제안도 보기에 따라서는 이상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여지가 없지 않다. 과연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고, 무엇보다 수많은 사람들의 이익이 걸려 있는 제도혁신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회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하자, 어떤 때는 이상주의자가 변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것을. 지금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안주하고 있는 체제 바깥의 더 넓은 시야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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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부산일보』 2004년 3월 26일자,2면,5면,34면.
  2. 『중앙일보』 1990년 10월 8일자,19면;1991년 1월 19일자,17면. 이 판결 이전에는 국공립 중등교사로 국공립 사범대 졸업생을 우선 임용하고 남은 교사 수요를 사립사범대 졸업생과 비사범계 교직과정 이수자가 순위고사를 치러 각 집단 내에 배정된 일정수의 정원을 채우는 식으로 운영되었다.
  3. 『중앙일보』 1991년 10월 2일자,22면.
  4. 우리 사회의 각종 가산점 제도는 위험수위에 와 있다. 사범대와 교육대 가산점뿐 아니라, 제대군인 가산점(헌법재판소 위헌판결,1999년 12월 23일), 독립유공자 가산점, 자격증 소지자 가산점, 각종 대회 입상자 가산점, 심지어 최근에는 고교등급에 따른 가산점 등 그것이 사회 전반의 다른 제도와 연결되어 있는 방식에 대한 천착 없이 기득권을 지키려는 편의주의적 발상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주장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것은 사회적 약자나 성별, 계층상에서의 심한 불균형 상태를 개선하는 한 방책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평등권과 공정한 경쟁의 규칙을 깨뜨리는 데까지 나아가서는 안된다고 본다. 이 가산점 제도의 출현배경과 작동메커니즘에 대해서는 따로 깊이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5. 대한제국 말기부터 일제시대를 거쳐 1990년대까지의 중등교원 양성제도 변천사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글들이 참고가 된다. 노치숙 「한국의 중등교원 양성제도의 변천과정에 관한 연구」, 『논문집』 제12집, 성심여대 1981,355~67면; 김영우 『한국 중등교원 양성교육사』, 교육과학사 1989; 김영우 『교원교육: 한국 초·중등교원 교육사』, 도서출판 하우 1996.
  6. 물론 서울대 내에서는 사범대의 존재가치에 대한 문리대와의 논쟁이 이미 1960년대 초에 나타났다(박상완 「교원교육에 대한 대안적 관점과 교원교육의 체제」, 한국교원교육학회 『한국교원교육연구』 제19권 3호, 2002). 이는 서울대 내부의 헤게모니 투쟁과도 같은 한계를 가지고 있었고, 전체적으로 중등교사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고 있었기 때문에 외부적으로 확산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1980년대에 이르러 공급이 오히려 수요를 초과하자 이 문제가 전국적 현상으로 부각된 것으로 보인다.
  7. 필자는 이 글을 학술논문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아젠다〔의제〕를 논의하는 장으로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담론 해석 부분에 대해서는 일일이 논거를 제시하지 않겠다. 하지만 아무런 논거 없이 말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8. 이러한 모형들에 대한 논의 중에는 예컨대 다음이 있다. 황규호 「대학원 수준에서의 교원양성 방안」, 이화여대 사범대학 교육과학연구소 『교육과학연구』제30집 1호(1999). 황규호 교수는 6년제나 2+4 모형이 전문성 신장에서 4+2보다 더 유리하다고 말하지만 설득력이 없다. 무엇보다도 그는 이 모형들의 교사 수급조절능력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고 있지 않다.
  9. 이 방안의 골격은 ‘1989년 교육법’ 이후 프랑스가 설치해 시행하고 있는 교사교육대학원(IUFM)과 유사하다. 역사적으로 상이한 시기와 배경 아래 세워진 다양한 교사양성기관의 난립에서 야기되는 문제점을 해결하려 했다는 점에서 우리의 경우와 비슷한 면이 있다. 학부 교직과정 졸업 후 수습교사 2년 과정을 규정한 독일의 경우 역시 4+2 모형과 유사한 면이 있다. 두 국가의 제도를 잘 설명한 글로는 전효선 「프랑스의 교원양성체제: 프랑스의 교사교육대학원을 중심으로」, 고려대 교육문제연구소 『교육문제연구』 제16집(2002); 권오현·김정용 「독일의 중등교사 양성 및 재교육 제도 연구」, 한국독어독문학교육학회 『독어교육』 제25집(2002) 등이 있다.4+2 모형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으로는 대통령자문 새교육공동체위원회 「(지식기반사회의 교육공동체 구축을 위한) 교육정책 보고서」, 대통령자문 새교육공동체위원회 2000; 오영수·김병주 「제도내적 특성을 중심으로 한 교원전문대학원 체제의 비교 연구」, 한국교원교육학회 『한국교원교육연구』 제19권 3호(2002) 등이 있다. 하지만 둘 모두가 초등교사는 물론 유치원 및 특수교육교사 양성을 중등교사 양성과 분리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기존의 사범대학 중 일부를 교원전문대학원으로 바꾸자고 한 점 등이 필자의 안과 크게 다르다.
  10. 서울지역사범대학생협의회·전국국립사범대학생연합·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사범대학생 의식조사 분석 보고서』(2002.12),1~152면, 특히 15~19,36~38,4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