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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한국사회의 발전전략을 찾아서(21세기의 한반도 구상 3)
지방대학의 위기와 교육혁신의 방향
김종엽 金鍾曄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민교협 교육위원회 부위원장 역임, 사립학교법 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대변인과 공동사무처장 역임. 저서로 『연대와 열광』 『시대유감』 『에밀 뒤르켐을 위하여』 등이 있음. jykim@hanshin.ac.kr
1. 교육공급자의 위기
우리 사회에서 교육이 위기에 처했다는 논의는 그때그때 주제와 강조점만 달리했을 뿐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교육위기론은 교육수요자의 불만에서 비롯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교육이민문제나 평준화제도에 대한 논란 같은 것은 교육제도의 효율적이고 올바른 운영에 대한 고민이 깃들어 있다고는 하나, 그 저간에 있는 것은 역시 교육수요자들인 학부모·학생의 불만과 고통이다. 교육제도를 통해 산출된 지식과 인재의 주요한 수요자가 기업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학력저하의 문제나 대학졸업자들의 직무능력, 대학교수들의 연구수행성에 대한 비판 또한 수요자인 기업의 불만에 뿌리를 둔 것이다.
이에 비해 교육공급자들은 교육제도의 개선에 노력한다고는 해도 그것의 존재가치나 수행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으며, 교육제도의 개혁에 관심을 가진다고는 해도 사회적으로 제기되는 교육위기론에 대한 반응적인 성격이 강하다. 요컨대 교육공급자는 교육문제로 고민하되, 수요자만큼 절박하게 고민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제도라는 것은 일단 정립되고 나면 자신에게 요구되는 것을 잘 수행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존립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제도는 계속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존립할 수 있으며, 교육제도는 그런 점을 잘 보여준다. 그 존립기반은 주어진 기능의 수행보다는 제도적으로 부여된 공식적인 학력인증의 권한과 그런 학력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의 부재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지방대학의 위기는 교육공급자의 위기라는 점에서 매우 새롭다. 위기의 원인은 아주 간명하다. 세계 최저수준에 이를 정도로 지속적이고 급격한 출산력 감소가 학령인구의 감소로 이어져 이제는 입학지원자가 대학정원에 아주 밑돌게 된 것이다. 2002년에는 대입응시자가 입학정원과 거의 일치하였으나 2003년 입시에선 응시자가 정원보다 4만명 이상 모자라게 되었으며, 이런 경향은 약간의 부침(浮沈)이 있겠지만 계속될 전망이다. 그 결과 올해부터 많은 대학에서 미등록사태가 속출했다. 대학이 매우 가파르게 서열화되고, 중앙과 지방 간의 격차가 계속해서 심화된 걸 염두에 두면 그 파장은 지방에서 더욱 뚜렷하리라는 것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실제로 2000년의 경우 서울 소재 대학입학자의 48.8%가 지방고교 출신이라는 통계가 보여주듯이 지방의 우수 학생들은 서울로 진학하려 한다. 그 결과 경북·전남·전북은 미충원률이 25%를 넘어섰으며, 강원·제주 등의 지역도 미충원률이 20%를 넘어섰는데1 이 정도면 2~3년 안에 학생을 찾기 어려운 학교가 속출하리라 예상된다.
이런 위기는 여러가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몇해 전부터 입시철에 즈음하여 열악한 지방대 교수들이 수도권 고등학교에 입시홍보자료를 들고 다니며 자기 학교를 ‘쎄일즈’하려다가 수위에게 잡상인 취급을 당한 일이 그 일례이며, 요즘 들어 대학가에서는 모모 대학재단이 학교를 ‘팔기’ 위해 내놓았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현 지방대 위기의 직접적 원인을 대학교육의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에 둘 때, 그 해결방안을 생각해내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시장중심적인 발상에 따르면 초과공급 문제는 수요를 늘리거나 공급을 줄이면 해결되기 때문이다. 교육수요를 늘리는 방법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대학교육의 수요자를 고교졸업자에 한정하지 않고, 성인교육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그동안 여러 대학이 평생교육기관이나 특수대학원을 꾸준히 확장해왔음을 고려할 때, 수요와 공급의 심각한 괴리를 줄이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공급을 줄이는 문제를 생각해야 하는데, 국립대의 정원을 줄여서 지방 사립대의 교육수요를 늘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우리 대학교육의 질이 낮은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교수 대 학생 비율이 높은 데 기인하기 때문에 정원축소는 국립대 교육의 질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조차 만만치 않은 재정수요를 발생시키며, 국립대와 사립대의 격차를 키울 가능성이 크다. 결국 남는 방법은 광역시에도 속하지 않는 등 입지조건이 나쁘고 교육인프라도 열악한 지방대를 퇴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태를 방치하면 그렇게 될 전망이기 때문에 이 방안은 별다른 정책이랄 것은 없다.
그러니 위기라는 말을 호들갑스러운 사람들의 외침으로만 여기면 문제는 제기되자마자 해결되는 것이고 다만 사태가 정리되는 데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그러나 현재의 문제를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로 간단하게 정리하고, 또 장기적으로는 관철될 수요와 공급의 일치에서 답을 찾는 것이 그리 마음 편한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런 접근법은 사람들이 겪을 고통에 눈을 감는 것이고, 그런만큼 냉담하고 잔인하다. 또한 그런 접근법은 대학을 정원 수준에서 적정한 상태로 돌아가게 할 수는 있어도 나머지 모든 문제를 그대로 남겨두게 된다. 고통만 있을 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미봉책인 것이다.
2. 시장주의적 정책의 실패
시장의 조정을 통해서 지방대 위기가 해소되기를 기다리는 것은 대학에 투자된 엄청난 공공자산을 폐기하고, 학생과 교직원을 고통스런 실업으로 내모는 것임이 자명하기 때문에 정책적 개입을 통해서 더 나은 해결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렇지만 고통을 줄이고 더 나아가서 지방대의 위기극복 과정을 더 나은 대학교육을 만드는 과정으로 승화시키고자 할 때, 우리가 마주치는 것은 실타래처럼 엉킨 복잡한 현실이다. 지방대 위기는 우리 대학교육이 안고 있는 여러 겹의 모순을 응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대학교육의 수요와 공급 괴리현상이 빚어진 직접적인 원인부터 다시 짚어보자. 올해 들어 정원미달 사태가 일어난 것은 전혀 갑작스런 일이 아니다. 대학정원이야 매년 교육통계에 의해서 잡히는 정확한 수치이고, 학령인구의 변동이란 매우 느린 인구학적 변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위기는 이미 수년 전부터 예견되어왔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1994년에 비수도권의 경우 대학정원을 대학의 자율적 결정에 맡겼으며, 1996년에 대학설립준칙주의(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대학의 설립을 인가해주는 정책)를 도입했다. 그 결과 1993년에 127개였던 4년제 대학은 2003년에 169개로 늘어났으며, 4년제 대학정원의 경우 1993년 110만명에서 2003년에 180만9천명으로 80여만명이 늘어났고, 전문대 정원은 45만6천명에서 92만6천명으로 두 배가 넘게 불어났다.2 지난 10여년 동안 대학정원이 끊임없이 늘어난 주요요인은 교육부의 정책 때문인 것이다. 이는 시장기제를 통해서 대학간·교수간 경쟁을 부추겨 대학 전체의 국제적 경쟁력을 높이려 한 것이라 해도 ‘고도 근시’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다.
지난 10년 동안 대학이 설립된 곳은 지방이고 정원을 늘려온 것도 주로 지방대인데, 그들 또한 대학교육에 대한 초과수요만 생각했을 뿐 임박한 조건변화에 잘 대처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 최선을 다한 대학도 있겠지만, 학생을 ‘쥐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도덕적 해이 속에서 지난 몇년을 보내온 대학들도 상당수 눈에 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지방대 위기는 시장주의적 교육정책의 실패라고 할 수 있는데, 수요와 공급의 괴리로 인해 대학이 위기에 처하는 것은 얼핏 보기에 당연한 것 같지만 좀더 생각해보면 필연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수요를 입학생 수라는 제한된 의미로 본다면, 정원을 채우지 못한 대학들이 정원을 줄이면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학교수 일인당 학생수가 OECD 국가 평균의 세 배에 이르고, 학생 일인당 교육비가 OECD 국가 평균의 절반 수준인 나라에서 입학생이 줄어드는 것은 교육여건을 개선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문제는 우리 대학, 특히 사립대의 경우 재정 전체가 등록금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통계를 보면 사립대의 경우 재정의 70% 이상을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재정 보고들이 상당한 분식(粉飾)을 거친 것임을 염두에 두면 이 수치는 훨씬 높게 잡아야 하며, 재정의 95% 이상을 등록금에 의존하는 학교도 매우 많다. 이쯤 되면 대학의 입장에서는 학생 몇명 미충원인 것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며, 지금처럼 학령인구가 급속히 줄어들면 곧장 존폐의 위기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사립대의 재정이 취약한 이유는 사립대는 너무 많고 정부지원은 미약하기 때문이다. 분단체제하에서 남한정부는 국가재정을 군사비에 과도하게 배정해야 했고, 이로 인해 사회복지·교육·의료·주택 분야에 공공인프라를 구축할 여력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팽창하는 교육수요가 있었다. 교육이 팽창을 거듭하게 된 이유는 강력한 평등주의적 성향, 집합적 지위상승의 제약, 그리고 학력과 학벌에 대한 높은 사회적 보상으로 인해 사회적 지위경쟁이 교육경쟁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소수의 국립대만을 육성할 만큼의 교육재정을 가졌던 국가는 사립대의 증설을 통해서 대중의 교육수요를 감당했으며, 등록금 통제를 통해서 대중에게 가격장벽을 제거해주었다. 이로 인해 사립대가 전체 대학의 80%에 이를 정도로 많아졌지만, 미미한 수준에 머문 사립대에 대한 정부 지원은 사립대를 오래 전부터 매우 불안정한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위기는 이미 내장된 것이었으며, 계속해서 존재한 초과 교육수요에 의해서 지연된 것뿐이었다.
3. 심화된 지역격차와 지방대학의 위기
왜 사립대가 대학체제의 약한 고리가 되고, 인구구조 변화의 부담이 왜 지방 사립대로 고스란히 전가되는가를 알았다. 하지만 현재의 위기가 지방 사립대의 위기로 한정되어 표현되지 않고, ‘지방대 문제’로 총칭되어 나타나는가 하는 점은 아직 해명되지 않았다. 지방 국립대의 특성상 지방 사립대가 직면한 지원학생의 감소로 인한 재정위기 같은 것은 없다. 그런데도 현재의 대학체제의 위기가 지방대학의 위기로 총괄되어 표현된다면, 그 이유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국·사립 혼용형태를 취하는 체제 내에 존재하는 이해관계의 분할선은 대단히 복잡하다. 서울대와 지방 국립대의 대립이 존재하고, 서울대와 서울 소재 명문사립대의 대립이 존재한다. 또한 지방 국립대와 서울 명문대, 수도권 사립대와 지방 사립대, 지방 국립대와 지방 사립대 간에도 대립이 존재한다. 이런 중층적인 이해관계의 분할은 효과적인 정책적 개입을 어렵게 하는 동시에 서열체계 속에서 위상이 다른 대학들간의 정책적 유대도 어렵게 한다. 그런데 지방대가 하나의 문제로 제기된다는 사실은 지방 국립대와 지방 사립대 사이에 어떤 이해관계의 일치가 존재하거나 적어도 그렇게 지각되는 공통의 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핵심적인 이유는 예전에 서울 소재 명문사립대와 어깨를 겨루던 주요 지방 국립대들이 경쟁에서 패배한 데 있다. 작년 입시에서 수능 성적 상위 4% 이내의 학생 가운데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한 학생은 68.8%였는데,3 이런 수치에 비춰보면 이제 주요 지방 국립대조차 서울 소재의 명문대는커녕 서울 소재 대학 일반과 경쟁하는 처지이며, 이조차 그대로 가면 서울 소재 대학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지방 국립대는 존폐위기까지는 아니지만 지난 10년간 급격한 실추를 겪었다고 할 수 있다.
사태가 이렇게 된 이유는 서울 및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날이 갈수록 심해졌기 때문이다. 이 점은 이제 상식이 되다시피 한 수도권 집중화 지표 몇가지만 보아도 여실히 드러난다. 수도권의 면적은 남한 면적의 11.8%이지만, 인구는 2002년에 47.2%이며, 최근에도 매년 30만명 정도씩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4 또한 2002년 현재 정부 중앙부처는 전부, 30대 기업의 본사는 88.5%, 외국인투자기업은 72.9%, 정보통신업체의 89%, 벤처기업의 77.1%가 수도권에 소재한다. 이렇게 서울과 수도권의 정치·경제적 중심도가 커짐에 따라 서울과 수도권으로 인재가 집중해갔다. 2003년 100대 기업의 취업자 비율을 보면 수도권 대학 출신자가 지방대 출신자의 4배에 이른다.5 이런 점을 고려하면 지방 국립대의 실추는 불가피한 것이었으며, 그나마 정책적인 이유 때문에 지연되어왔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대학은 수십년 동안 수도권 인구억제정책으로 인해 지방에서만 증설되었지 수도권에서는 미미하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도권은 인구의 47.2%가 살지만, 수도권 4년제 대학의 수는 전국의 40.5%, 재적 학생수로는 38.3%로 인구에 비해 적다.6
결국 지방대학의 위기는 지방 사립대의 격심한 위기를 매개로 해서 지방 국립대의 위기가 결합되어 표현된 것이며, 지방 국립대로서도 지방 사립대와 연대해야 할 만큼 상황이 악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지방의 위기가 사실은 지방대의 위기보다 먼저 있고, 지방의 위기문제가 더 심각한 것인데도 사회적으로는 지방대의 위기가 더 부각된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지방의 위기가 항상 지역주의에 의해 전치(轉置)되고 은폐된 형태로 제기되는 데 비해, 지방대 문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방대 위기를 올바로 아는 것은, 지역갈등이 실은 중앙의 권력투쟁에 지방주민의 불만을 동원하는 것이라는 것, 진정한 갈등의 축은 지역들이기보다는 지방과 수도권임을 인식하는 데 기여한다.
4. ‘참여정부’의 균형발전전략과 문제점
지방과 지방대의 위기가 이제 더이상 외면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거니와,이는 단지 지방의 문제만이 아니라 지나친 집중으로 인해 효율성이 크게 떨어진 수도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역주의 정치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노무현정부에 이르러 지방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이나, 지방대 총장 출신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의욕을 가지고 지방대 문제에 대한 논의를 펼쳐나가는 것은 모두 긍정적인 현상이다.
정부가 구상하는 지방과 지방대의 위기 타개책은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내놓은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제도적 기반 구축방안」과 교육인적자원부가 제안한 「지역혁신체제 구축을 위한 지방대학 혁신역량 강화 프로젝트(안)」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일별해보면 지방과 지방대 문제를 하나의 틀 안에서 해결하려는 것인데, 이 점은 분명 이전보다는 진일보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는 중앙정부가 국가균형발전 5개년 계획을 수립해야 함이 명시되어 있는데, 개발독재시절의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기저에 있던 불균형성장 개념이 균형발전 개념으로 전환된 것에서 보듯이 발상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은 확연하다.7
정부의 균형발전 방안은 지방에서 구축해야 할 것과 중앙정부가 해야 할 일을 구분하고 있는데, 지방은 지방자치단체·지방대·지방산업체·지역NGO·지역언론이 서로 협력하고 때로는 결합하는 지역혁신협의회를 만들어 자립적인 지방화를 이루도록 되어 있다. 이에 대응해서 중앙정부는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를 신설하고, 공공기관과 기업의 지방이전을 유도하며,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국가균형발전추진단을 구성하여 지방과 긴밀히 협의하고 지방의 혁신노력을 지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럴 듯해 보이는 전체 계획에도 불구하고 각론으로 들어가면 이 구상은 구체적인 성과로 연결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산업정책 없이는 지방대의 혁신도 없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 없이 옳다. 지방이 사람들을 흡수하고 고용할 토대를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지방’대학의 존재의의는 반감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산업을 육성할 것인지, 산업정책을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는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들, 예를 들어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활발히 논의되던 물류산업 문제나 금융허브 창출 문제가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보고서에서는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런 문제의식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이유를 납득 못할 바는 아니다. 금융산업에 관한 것은 아무래도 수도권 중심의 산업이니 지방육성을 위한 산업으로 고려하기는 어려우며,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정책과 분단체제의 두터운 벽에 막혀 운송산업의 혁신적인 활로를 찾기 어려운 지금 물류산업에 대한 논의도 여의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화나 중국경제의 부상 같은 환경변화 속에서 국내산업을 미래지향적으로 재편해보려는 동북아경제중심 논의의 문제의식이 국가균형발전 논의에서 빠져버리고 현재 지방에 존재하는 산업들을 중심에 놓고 몇가지 첨단산업의 이름을 열거하며 산업집적지(industry cluster)를 구성하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8
교육영역으로 오면 문제가 더 심각하다. 교육인적자원부의 구상이 대체로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제시한 안에 부응하려는 수준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기획안이 꽤 두툼하지만, 핵심만 추려보면 지방대를 중심으로 한 민·관·산·학 협력사업을 중점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접근방식은 대학의 국제경쟁력 제고에서 국가균형발전으로 목표만 바뀌었을 뿐, 정책수단이나 발상법은 몇해 전 시도되었던 BK21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선택과 집중이라는 원칙에 입각한 자원 재배분이 정책의 핵심이며, BK21사업의 일부였을 뿐인 지역 우수대학 육성 프로그램을 지역혁신체제라는 새 옷을 입혀 전면에 내세웠을 뿐이기 때문이다.9
사업이 아직 완료되지 않은 싯점에서 BK21의 공과를 논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지만, BK21이 학문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가 추진하는 지방대 육성은 BK21이 의도했던 연구능력 강화라는 비교적 단순한 정책목표보다 훨씬 까다로운 문제여서 전망은 더 어둡다. 현재의 구상이 그대로 실현될 경우 지방의 주요 국립대와 몇개의 경쟁력있는 사립대들이 새롭게 조성된 자원을 거의 독차지하는 것이 예상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방 국립대가 서울 소재 사립대에 대해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 나름대로 의미가 크다. 하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그것은 지방 국립대가 지역에서 누리고 있던 독점적 힘을 더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점은, 지방대의 특성화를 유도하고 R&D(연구개발) 능력을 제고하기 위해 확보된 예산이 2200억원 정도인데 그 예산 가운데 상당부분은 기존의 지방대 육성 예산을 그러모은 것에 700억원 정도를 새로 추가하여 마련된 것이라는 데서도 드러난다. 2200억원이 적은 돈도 아니고 쓰기에 따라서는 상당한 효과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규모의 예산이 투자된 BK21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보아 사태를 낙관할 수는 없다.
정책이 지방대의 R&D 능력 제고에 편중되어 있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이다. 이 정책은 한참 후에야 효과가 나타나게 마련인데, 정책이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일관성있게 추진되는 것이야 환영할 일이지만,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열악한 지방 사립대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어서, 마치 시장의 조정을 통해 지방 사립대가 정리되는 것을 당연시하는 것처럼 보이기조차 한다.
5. 제도적 혁신의 모색 1: 사립학교법의 개정
현정부가 내놓은 지방대 육성책은 현재의 위기에 대해 치료제보다는 진통제나 영양제 정도로 작용할 것으로 판단되는데, 고통이 심하거나 기초체력이 약할 때는 진통제나 영양제도 효과가 있다. 그렇지만 막상 근본적인 치유책을 찾으려 하면 쉽지 않은 것이 우리 교육현실이다. 정부가 마련한 2200억원의 예산만 해도 그렇다. 예산이 그만한 수준에 그친 것은 현재 중앙정부가 짜낼 수 있는 예산이 거기까지이며, 짜내봐야 더 늘리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산 제약하에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제도혁신의 방안이다. 그러나 제도혁신을 생각하자마자 곧장 난관에 부닥친다. 왜냐하면 추가적인 재원을 확보하여 그것을 배분하는 정책과 달리 제도의 재편은 기존 이해관계의 구조를 변경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해관계의 구조 변화가 매우 느려서 집단적 대응이 어려운 경우가 아니고 정책에 의해서 단기간에 일어난 것이라면 이해당사자들의 집단적 저항이 조직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나 위기가 외과적 수술을 요하는 응급상황이라면, 살을 도려내고 피부를 꿰매는 일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대학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체제로 바뀌기 위해서는 중대한 변화를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교육인적자원부가 우회하고자 했던 제도변화의 길을 찾아보아야 한다.
지방대의 두 가지 위기 중 하나는 학령인구의 감소로 인해 발생한 지방 사립대의 위기이며, 다른 하나는 수도권과의 격차로 인한 지방대 일반의 지위실추 현상이다. 이 두 가지 문제가 단일한 정책 프로그램 안에서 해결되지 말란 법은 없지만, 그것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우선 지방 사립대 위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생각해보자. 지방 사립대의 위기는 매우 심각하고 급박하긴 하지만, 정직하게 사태를 관찰한다면 지방 사립대 전부가 살아남아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구노력이 충분치 않은 대학도 있고, 설령 자구노력이 충분하다고 해도 입지조건이 너무 나빠서 살려내기에는 너무도 많은 예산이 요구되는 대학도 있다. 시장 실패의 댓가를 모두 특정 대학에게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지만,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제도가 그렇듯이 만들기보다 없애기가 훨씬 어려운 법이다. 대학이 문을 닫을 경우에도 잔여 재산, 교수와 직원 그리고 학생 문제가 남는다. 따라서 경쟁력이 도무지 없어 보이는 대학에 대한 제대로 된 해산 또는 청산, 그리고 대학의 인수와 합병을 용이하게 하는 절차의 마련이 절실하다.
학교법인의 해산이나 청산절차의 기본규정은 현행 사립학교법에 마련되어 있으며, 공익법인인 학교법인이 해산될 경우 잔여재산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귀속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립학교법을 뜯어보면 해산, 청산, 인수 그리고 합병이 사회적으로 투명하고 타당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제대로 된 절차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래도 청산의 경우 청산법이 정한 절차들이 비교적 명확하지만, 나머지 경우는 제도적 미비가 두드러진다. 여러 절차를 감독할 사회적으로 대표성있는 기관이 있어야 하며, 이를 법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 또 청산과정에서 학생과 직원 및 교수의 피해를 최소하기 위해서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 마련도 매우 절실하다.10
현행 사립학교법은 해산이나 청산이 일어날 경우 학교 설립자나 그 후손에게 출연한 재산 일부라도 돌려줄 길이 막혀 있다. 학교법인의 재산은 이미 출연되는 순간 개인의 손을 떠나 공공자산이 되므로 그것을 돌려주는 것은 법리에도 어긋나고 대다수 국민의 법감정에도 어긋난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위기국면에서는 이런 법적 규정이 더 큰 고통을 낳을 수 있다. 사립학교법이 법인의 이사장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데, 만일 그 이사장이 부도덕하다면 대학이 문을 닫을 상황에 처해도 올바른 해산절차를 밟지 않고 끝까지 버티면서 학교의 자산을 갉아먹을 수 있다. 이런 경우 청산절차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많은 비리가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 학생, 직원 및 교수 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립학교법을 개정하여 법인해산이나 인수합병 과정에서 재산을 출연한 자가 그것의 일부라도 환수할 수 있도록 하여 재단비리와 사회적 고통을 줄일 필요가 있다.
이런 단기적인 처방은 사태가 악화되어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리게 되면 어떤 형태로든 마련될 것이지만, 될 수 있으면 미리 제도를 정비해 고통을 줄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어차피 사립학교법 개정이 불가피하다면 좀더 전향적으로 개정하여, 지방 사립대의 위기를 근원적으로 극복해야 한다.
지방 사립대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외부의 지원도 필수적이지만 내적 혁신의 노력도 대단히 중요하며, 혁신노력이 없는 대학에 국가재정을 투여하는 일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런데 내부혁신을 위해서는 사립대의 경우 재단 이사장과 총장의 도덕적 리더십이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립대는 비리로 얼룩져 있으며, 사립대 재단의 상당수가 부패재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리의 양상 또한 학교의 공금횡령과 회계부정, 교수임용 및 재임용 비리, 입시·편입학 부정, 족벌체제와 학사행정 간섭 등 재정과 학사과정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11 이런 상태로는 사립대 스스로가 위기를 극복하는 주체로 나서기 매우 어렵다. 따라서 사학재단이 소신껏 육영사업을 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동시에 사학재단의 전횡을 방지하는 내부감시제도를 법제화해야 한다. 그럴 때만 내부성원의 합의에 기초한 책임있는 사학운영이 이루어질 수 있고, 지방 사립대의 자구노력이 실효성을 갖출 수 있으며, 외부의 지원 또한 명분있게 이루어질 수 있다.
6. 제도혁신의 길 2: 국·사립체제의 정비
사립학교법 개정이 쉬운 일이 아님은 2000~2001년에 있었던 사립학교법 개정을 위한 사회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나, 비리사학을 민주화하는 데 앞장선 대학총장이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됐지만 사립학교법 개정 의욕을 보이지 못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교육영역의 작은 문제 하나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교육문제 전체가 이끌려나오고, 교육개혁은 큰 폭의 정치개혁과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실정이다. 그러나 어떤 개혁이든 그것의 지난함은 1987년 민주화투쟁 이후 우리 사회가 지겹도록 경험한 일이니 미리부터 지칠 필요는 없으며, 개혁이 답보상태를 겪고 있을 때라도 개혁방향과 프로그램을 가다듬는 일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사립대가 항상 내장한 재정위기 문제를 좀더 발본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으며, 이와 관련해 생각할 문제가 국·사립체제의 정비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의 대학체제는 사립의 비중이 매우 높은 국·사립 혼용체제이다. 이런 국·사립체제를 사회적 대의에도 맞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국립대는 지금까지 일정한 수준의 교육여건을 국가가 관리함으로써 사립대들의 교육여건을 향상시킬 사회적 근거를 마련하고 동시에 이공계 비중의 조절이나 등록금 인상의 억제 같은 교육정책의 통로 구실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국립대의 존재의의를 좀더 분명하게 생각해야 한다.
국립대는 교육적으로 꼭 필요하지만 시장실패의 위험이 높은 영역을 담당할 때 그 존재의의가 가장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국립대가 모든 종류의 학문을 담당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사회적 수요는 적더라도 전체 학문의 발전에 필요한 기초과학이나, 제대로 된 연구를 위해서 많은 투자가 요구되는 공학분야 등이 국립대가 담당해야 할 영역이며, 의대·법대·경영대같이 시장수요가 많은 영역이나 컨써버토리(conservatory) 형태가 더 효율적인 예술영역을 국립대가 맡을 필요는 없다. 따라서 이런 영역은 과감하게 사립대에 넘겨줄 필요가 있다. 더불어 사립대에서 국립대로 이전되어야 할 영역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사립대와 국립대 간의 적절한 기능분화가 이루어질 것이며, 사립대가 경쟁력을 갖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우리 사회의 심각한 학벌문제를 해소하는 효과까지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기관이나 교수 또는 직원이 국립대라는 제도 안에 속해 있을 때 가지는 높은 프리미엄을 생각하면 이런 제도적 재편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2000년 교육인적자원부의 「국립대학 발전계획」에 대한 국립대 교수와 직원들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저항은 이 점을 잘 보여준다.12 이 안은 사립대와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재정립한다기보다는 국립대 사이의 내부 연계, 기능분화와 통폐합, 경영혁신 등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이 계획이 대대적인 혁신을 추구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논쟁은 없고 투쟁만 있었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물론 「국립대학 발전계획」에 대한 반대가 국립대 교수들의 개혁의지의 부재 때문은 아님을 지적해둘 필요가 있다. 이 안을 들여다보면 저항할 이유를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추진방식 자체가 매우 관료적이며, 총장선임권을 교육인적자원부로 이양하려는 등 개혁을 빌미로 관료적 권한 확대를 시도한 것들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또 국립대의 재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확고한 보장도 없이 국립대학특별회계법을 제정하려 한다거나, 섬세한 고려 없이 교수 연봉제 및 계약제를 도입하려 한 것, 국립대를 교육중심과 연구중심으로 무리하게 재편하려 한 것 등도 그 예이다. 부패와 비리로 얼룩져 있고,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깊이 청취하지 않음으로써 신뢰를 얻지 못한 교육인적자원부가 이런 식의 개혁방안 추진에 성공하기 어려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어차피 사립대를 공공화하여 국립 일원체제로 갈 재정능력도 없고, 국립대를 민영화하여 사립 일원화로 가는 것도 사회의 세력관계상 불가능하다. 또한 사립 일원화의 폐해는 말할 것도 없고, 국립 일원화도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우리같이 산업의 발전과 재편 속도가 빠른 사회에서는 시장에서의 신축성이 높은 사립대를 지혜롭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 사립대의 비중이 현재 지나치게 높으므로 부실부패사학들을 공공화하여 국공립의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는 하나, 역사적으로 형성된 국·사립체제를 인정하고 그것을 민주화하는 동시에 시장과 국가라는 두 가지 기제를 활용하여 환경변화에 대처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앞으로 국·사립체제 재편을 위한 논의를 사회적으로 활성화하고 이어갈 필요가 절실하다.
7. 수요자 지향적인 지방대학 육성책의 필요성
앞에서 말한 개혁이 이뤄지면 지방 사립대의 위기를 한차원 높은 수준에서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방 국립대의 실추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사립체제 재편과정이 지방 국립대를 혁신한다면, 점점 더 벌어져가는 지방 국립대와 서울 소재 사립대 간의 격차가 어느정도 해소되겠지만, 문제의 원인이 대학 내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학의 혁신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사실 대학 자체만을 놓고 보면 지방대의 가능성은 풍부하다. 우리 사회에서 대학교수들이 나태하고 도덕적으로 해이한 집단이라는 비난이 자주 있었지만 그런 문제라면 대학교수 전체의 문제이지 지방대 교수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가파른 대학서열화에도 불구하고 대학별 교수의 실력차는 별로 크지 않으며, 대학교수의 임금격차도 서열화에 비하면 그리 심하지 않다. 그리고 수도권 인구억제 정책으로 연구인력이 지방에 산재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좋은 조건이랄 수 있다. 연구인력의 지방산재가 응집력있는 연구개발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한 측면도 분명 있다. 소규모 대학에 학과별로 네다섯 명의 교수와 부족한 교육·연구설비, 없거나 부족한 대학원생 등은 연구를 비생산적으로 만들었다. 만일 이런 교수들이 모두 수도권에 집중해 있었다면 더욱 효과적인 연구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균형발전을 추구하는 상황에서는 연구인력의 지방산재는 중요한 인프라 하나를 갖추었다는 점에서 기회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재와 자원을 고스란히 흡수하는 수도권의 흡인력을 그냥 놔두고 추가적인 재원을 쏟아붓는다고 해서 지방대가 새로운 연구중심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대단히 작다. 따라서 지방 국립대를 살리려는 정책은 대학지원보다는 산업정책에 더 역점을 두어야 한다. 하지만 개발독재 시절처럼 산업은행과 경제기획원 그리고 대자본의 연대 아래 장기적인 산업정책을 펼 수 있는 제도적 토대가 지금은 상당정도 무너졌다. 또 대자본을 국내에만 유치할 수 있는 정책수단도 별로 없으며, 이미 많은 자본이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게다가 이미 존재하는 지방의 주요한 산업단지들도 지역에 뿌리내린 경제 네트워크를 구축한 경우가 많지 않다. 정부의 지역혁신체제 구축이 이런 난관을 돌파하지 않는 한,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를 줄이기는 쉽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게 고안된 장기적인 산업정책이 필요하다.
산업정책의 효과가 매우 느리게 나타나는 만큼 의당 그것에만 기대지 말고 교육영역에서 혁신을 이룰 방안을 찾아야 한다. 예산을 추가로 투자하는 것으로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면, 제도적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 생각해볼 수 있는 것으로는 중앙의 교육독점을 약화시키는 것이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정책수단은 거의 없다. 중앙의 독점적 힘을 약화시키는 방법으로 서울대의 지방이전 같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행정수도는 옮길 수 있어도, 서울대의 지방이전은 지금 누리는 것보다 더 막대한 특권을 보장해주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또다른 방안은 수요자의 선호를 바꾸는 일이다. 물론 이 또한 쉽지 않다. 대학에 대한 선호가 명성이라는 매우 느슨한 씨그널에 따르며, 명성이란 매우 오랫동안 대학이 축적한 사회문화적 자산에 의해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요자의 선호를 바꾸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인쎈티브를 제공할 수도 있다. 요컨대 명성에 실익을 대립시키는 것이다. 제도적인 조치로는 지역인재할당제13나 지방대 입학자에 대한 정부의 과감한 장학금 지원 그리고 기숙사 설립에 대한 지원 등이 있다. 이런 조치들이 큰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견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 교육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 들이 매우 민감하고 적응력있는 시장적 행위자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이런 조치들은 일정한 성과를 거둘 것이다. 좀더 단기적인 정책성과조차 아쉬운 상황이라면 현재 정부가 기획하는 것처럼 지방대의 연구역량 향상에 집중하는 것보다 교육수요자들을 직접 공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14
8. 혁신의 주체와 전망
제도혁신을 위해서는 그것을 주도할 주체가 필요하다. 당면한 지방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여기서 제시한 방안만 해도 혁신의 주체가 확고하지 않은 한, 숱한 제약에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다. 설정할 수 있는 주체는 무엇보다 지방대 구성원이다. 내부적인 혁신의 노력이 없다면 어떤 거시적인 정책적 조정도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그러나 문제가 내부적인 혁신의 노력으로만 풀릴 수 없는 것인 만큼 단위대학을 넘어서는 혁신의 주체가 형성될 필요가 있다. 당연히 이는 교육인적자원부일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정책 실패를 거듭했으며 부패로 얼룩져 사회적 신뢰를 잃은 교육인적자원부가 그것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의 의제를 독점하기 위해서 교육에 종사하는 다양한 집단들을 차례로 개혁대상으로 삼기에 바빴고, 실제로 자신이 수행할 수 있는 정책 이상의 기대의 인플레이션을 유발해왔다는 점에서도 교육인적자원부는 실격이다.
그렇다면 다른 비전을 찾을 필요가 있는데, 가장 유력한 대안은 대학교육혁신위원회(가칭)의 설립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교육개혁과 관련된 위원회를 보아왔던 터에 무슨 새로운 위원회냐고 생각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주장하는 위원회는 지금까지의 위원회처럼 관료집단의 자문기구로 존재하는 위원회가 아니라 구상기능뿐 아니라 명확한 법적 집행권한까지 가진 위원회이다. 그대로 모사할 수는 없겠지만, 금융감독위원회와 유사한 법적 지위를 가진 위원회를 교육영역에 도입하자는 것이다. 이런 위원회가 필요한 것은 관료집단이 교육혁신을 주도할 도덕적 헤게모니를 상실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관료집단이 가진 고유의 한계와 교육정책에 관련된 정치권력의 한계 때문이다.
이 기구는 우선 정책의 일관성 문제와 관련해서 필요하다. 권력의 창출과 유지를 위해서 단기적인 정책에 집착하게 마련인 정권과 그런 정권의 요구에 따라 흔들리는 교육인적자원부로는 교육문제 해결이 매우 어렵다. 헌법이 바뀌지 않는 한 정권의 수명이 5년을 넘길 수 없는데, 이로 인해 매번 새로운 정책수립이라는 사회적 낭비가 발생하며, 정권의 변화에 따른 정책변경 또한 일관성있는 교육개혁을 어렵게 한다. 정책 형성과정에서 필요한 사회적 합의의 창출을 위해서도 정치권력과 관료집단은 적합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매우 민감하게 정책에 대응해나가는 일반 시민과 민주화 이후 활성화된 이익집단의 이익정치로 인해 교육정책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기 쉽지 않으며, 사회적 합의의 토대가 넓고 깊지 않는 한 비전있는 교육혁신이 이루어지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사회적 합의의 창출과 창출된 합의의 안정적 수행을 위해서는 위원회 권력이 필요하다. 물론 이렇게 형성된 위원회가 자유주의적 정치모델에 따른 다양한 이익집단들의 타협의 장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절한 사회적 대표성을 가진 위원회가 형성된다면, 능동적 시민들의 심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의 장이 될 여지도 충분히 있다. 그런 장이 마련된다면, 이 글에서 제시된 정책대안도 좀더 심도있는 토의에 붙여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위원회 권력과 더불어 요구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의 교육혁신에 대한 의지이며, 아마도 이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이런 혁신의지가 요구되는 두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지난 수십년 동안 이룩한 발전의 성과가 중국경제의 부상이나 세계화의 압력 속에서 무너져내릴 위기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세계경제의 분업구조에 깊숙이 편입되어 제한된 기회를 잘 포착함으로써 도약한 남한경제는 매우 연약한 지반 위에 서 있다. 우리 경제는 석유화학·조선·철강·전자·정보통신 등 몇가지 거대산업의 생산력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산업들의 경쟁력이 약화되면 급전직하할 위험이 항존하며, 이제 그 위험은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기존 산업의 고도화와 정보집약화, 그리고 새로운 써비스산업의 발전을 이룩하지 못한다면, 남한경제의 남미화는 충분히 가능한 씨나리오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교육혁신이 필요한 이유는 이런 공동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이다. 수도권 대학을 포함하여, 수도권에 살며 남한사회의 모든 자원을 독점하고 풍요를 구가하는 주민들에게도 이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서울이 세계도시(global city)이기는 하나, 뉴욕이나 런던, 또는 토오꾜오나 싱가포르처럼 독자적으로 세계경제에 대응하는 도시가 아니라 다만 국민경제의 활력에 의존하는 2급 세계도시이기 때문이다.
교육혁신은 단순히 발전의 성과를 보존하기 위해서만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는 것은 사회로부터 이익을 얻기 위해서이다. 사회의 불평등이 참을 수 있는 경계 안에 가두어지고, 모두가 인간적 존엄성을 가지고 살 수 있을 때만 어울려 사는 삶은 가치를 가진다. 부강한 나라가 되고 2만 달러의 소득을 꿈꾸지 않더라도 존엄성을 잃지 않는 삶을 위해서는 물질적 토대와 더불어 인간다운 제도의 형성이 요구된다. 제대로 된 교육은 이런 제도형성의 토대이다. 시민적 덕성을 기르는 핵심적 제도가 교육이기 때문에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도록 가르치고 있는 우리 교육의 혁신이 간절한 것이다.
배가 위기에 처하면 선상 투쟁이 심각해지고 구명선을 향한 야멸찬 이기심만이 판을 칠 수도 있다. 그러나 공동의 위기의식만이 새로운 제도의 탄생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조급해서는 안된다. 이 글에서 핵심적으로 다룬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확대 문제만 해도 지난 수십년 동안 이루어진 사회진화의 귀결이다. 그동안 우리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몰랐던 것도 아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것이 참을 수 있는 경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십년 동안 진행되어 생긴 결과를 몇년의 정책적 개입만으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는 것은 착각이다. 또 교육혁신의 방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쉽사리 이루어지리라 생각해서도 안된다. 민주화는 높은 수준의 의사소통 비용을 요구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그 비용을 안 치르려고 우회할 수 없거니와, 우회하려는 시도는 더 큰 비용을 치르게 한다. 그러니 묘수만을 찾지 말고 교육혁신을 위해 성의있는 논쟁을 계속하며 합의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공(愚公)이 산을 옮기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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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성근 「지역혁신체제 구축과 지방대학의 역할」, 『제1회 전국사립대학교 교수협의회 회장단 대회 자료집』, 2003, 2면.↩
- 홍덕률 『‘지방대학 문제’의 제 차원과 정책대안』(미발표).↩
- 서울에 소재하지 않는 대학에 진학한 학생이 31.2%인 셈인데, 이 가운데 포항공대나 KAIST 같은 대학에 진학한 학생수를 빼면 통상적인 의미의 지방대에 진학한 학생은 훨씬 적다고 할 수 있다.↩
- 이는 지방으로부터 유입되는 인구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도권에 상대적으로 젊은층이 많이 거주해서 일어나는 자연증가분 때문이기도 하다.↩
- 이만희 「지방대학의 위기 진단과 구조조정 방안」, 제19차 KEDI 교육정책포럼 주제발표문,15~16면 참조.↩
- 지방과 수도권(또는 중앙) 간의 격차 심화는 이제 지방을 무시하는 심성으로까지 굳어져버린 것 같다. 무심결에 사용되는 일상적인 어법은 이런 점을 잘 보여준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는 “지방방송 꺼라”는 말이 곧잘 나온다. 매우 폭력적인 무시의 발언임에도 불구하고, 그럴 때 정말로 ‘지방방송’이 꺼지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 그러나 정부가 지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활용한 기본 아이디어는 지리학을 중심으로 해외에서 활발히 논의되어온 지역혁신체제(Regional Innovation System)론에서 온 것이다. 필요한 것이면 적극 배우고 익혀 활용해야겠지만, 현재 정부가 논하는 수준의 지역혁신체제론은 우리 현실을 신중하게 고려하여 이루어진 농익은 수용이라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역혁신체제론을 소개하고 우리 사회에 적용하려는 노력을 담고 있는 저서로는 이정식·김용웅 편 『세계화와 지역발전』(한울아카데미 2001)을 참조할 것.↩
-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시도하고 있는 것이 지역혁신체제 구축이라면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는 일종의 국가혁신체제(National Innovation System)를 구축하려고 시도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지방이 현재 가진 능력을 고려할 때, 양자가 결합되지 않고서 효과적인 정책수행은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처음부터 두 위원회가 분리되어 운영된 것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 BK21사업은 지원대상이 서울대와 서울 소재 명문사립대에 치우쳐 지방대 대학원을 약화시켰다. 그런데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를 심화시켰던 BK21사업이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이번에는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를 줄이는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점은 교육관료들이 얼마나 근시안적인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 사립대의 해산, 인수, 합병에 필요한 제도적 보완책에 대한 주목할 만한 연구로는 황홍규 외 「사립대학 구조정방안 연구: 해산, 인수, 합병을 중심으로」, 교육부 학술정책과제 보고서 1999 참조.↩
- 우리나라 사학재단의 부정부패가 얼마나 광범위하고 심각한가에 대해서는 이수인 『사학재단 부정부패, 개혁백서』, 2000; 전국교수노동조합 주비위원회 『사학비리백서』, 2001 참조.↩
- 국립대 발전계획의 문제점에 대한 국립대 교수들과 직원들의 비판으로는 국립대학발전계획철회와 공교육사수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국립대학 발전계획의 문제점과 대안」, 토론회자료집 2001 참조.↩
- 지역인재할당제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발상이지만 제도화에 어려움이 많다. 인재할당이 만일 공무원 채용영역에서 이루어지면, 가뜩이나 고시열풍에 휩싸여 있는 대학을 더욱 고시학원화할 가능성이 있으며, 공기업이나 사기업에 도입하게 하는 것도 기업들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되기 쉽다. 뿐만 아니라 역차별에 따른 위헌 시비도 일어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여성채용목표제가 위헌 시비를 피한 방법(한시적으로만 제도를 운용하고, 여성에 대한 역차별로 고용되는 인원은 정원 외로 추가하는 조치)을 참고로 하여 사회적 합의를 모은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역인재할당제에 대한 논의로는 김윤상 「지방대학 졸업자의 진로 활성화 방안」, 제19차 KEDI 교육정책포럼 주제발표문 참조.↩
- 제도혁신 논의 뒤에 이런 미시적인 접근을 거론하는 것이 적합성 없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도의 변화를 꾀하려는 노력은 거시적 조정 못지않게 미시적인 영역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여기서는 몇가지 미시적인 제도조정만을 예시했는데, 이런 조정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구상할 수 있으며, 미시적 제도조정도 집적되면 상당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요컨대 우리는 미시적인 조정과 거시적 조정 모두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