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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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정 成美旌

1967년 강원도 정선 출생. 199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대머리와의 사랑』 『사랑은 야채 같은 것』 등이 있음.

 

 

 

시인 실격

 

 

작년에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재작년에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 전년에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술을 끊고 음식을 전보다 더 가려먹기로 했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특별한 이유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맑고 밝고 명랑한 불신의 예가

세상에는 충만해 있습니다

 

저는 건전해지고 있습니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규칙적으로

변기에 앉는 일에 몰두하며

저는 건조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맨정신으로 죽고 싶습니다

여보 저는 시인입니다

인간실격과 사양을 읽고 밑줄친

구절을 골라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여보 저는 시인입니까

 

 

 

고통어 자반

 

 

사바세계의 사람들은 고통어 자반을 즐긴다

 

왕소금을 잔뜩 뿌린 고통어

숨이 죽을 대로 죽은 고통어는

고춧가루 신김치 마늘 형형색색의 고통을

듬뿍 첨가해도 쓰라려하지 않는다

그래야 더욱 맛이 좋아진다나

 

어떤 고통어는 너무 짜다

너무 비리다 코를 감싸쥐고

고통어 자반을 외면한다

고통어 자반에는 지독하게 푸르던 시절의

비린내가 여전히 펄떡거린다고 믿고 있는

 

어떤 고통어는 모두들 고통어 자반이 되어

고통으로만 교통하는 고등한 사바1세계에

아직도 덜 절여진

 

어떤 고통어는 고통어로 가득 찬

사바세계를 회유하며 비린내 같은

시 몇편을 지져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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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바: 일본어(さば)로 고등어를 뜻하기도 한다.